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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보통 사람들의 역사, <그때도 오늘> 이희준·오의식 [No.209]

글 |최영현 사진 |맹민화 2022-09-02 1,638

보통 사람들의 역사
<그때도 오늘> 이희준·오의식

 

연극 <그때도 오늘>은 1920년대 서울, 1940년대 제주, 1980년대 부산 그리고 2020년대 최전방 경비 초소에서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무대 위에서 익숙한 한국 현대사 속 기억되지 못한 낯선 사람들의 얼굴을 되살리는 건 오로지 배우 두 사람의 몫이다.
 
 
두 배우가 빚어내는 보통 사람들의 역사
 
<그때도 오늘>은 어떻게 참여하게 된 작품인가요?
이희준 무대에 서고 싶어서 민준호 연출님께 배우 둘이 실컷 연기하는 작품을 해 보자고 먼저 제안했어요. 오랜만에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단원들과 함께 공연하고 싶었고요. 처음엔 대본 비슷한 걸 써서 드렸는데 그건 별로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웃음) 오의식 배우의 동생 오인하 작가가 쓴 대본을 바탕으로 함께 연습하면서 공동 창작으로 작품을 완성했어요.
오의식 제가 소속된 극단의 신작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희준 형도 참여하는데 안 할 이유가 없죠. 무조건 참여해야죠. 저는 1년에 한 번은 무대에 꼭 서자는 나름의 목표가 있어요. 흔한 말로 무대가 제 고향 같아서 공연할 때가 제일 행복하거든요. 그중에서도 극단 작업을 할 때가 제일 좋아요.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작품 하나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 정말 크거든요.
 
무대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공연 제작까지 제안하셨나요?
이희준 장르마다 매력이 너무 달라서 어떤 게 더 좋다고 말할 순 없어요. 하지만 배우가 창작에 참여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어요. 드라마나 영화는 감독이 원하는 정확한 그림 안에서 연기를 한다면 연극은 연습 과정에서 함께 만드는 재미가 있거든요. <그때도 오늘>도 함께 연습하면서 완성된 대사가 많아요. 배우와 스태프들이 함께 작품을 연구하고 더 좋은 방향을 찾으면서 공동 창작하는 재미는 무대 밖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무대가 정말 그리웠어요. 
 
지난주에 첫 공연을 마친 소감이 어떠세요?
이희준 대학교 졸업 공연처럼 정말 많이 긴장했어요. 연습실에서 저희끼리 작품을 만들어 갈 때 관객 반응이 전혀 예상이 안 됐거든요.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재미가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 엄청 떨리기도 했고요. 그런데 무대에서는 다 잊고 오의식 배우만 믿고 연기했어요. 공연 후 객석 반응도 좋고 후기도 좋아서 가슴을 쓸어내렸죠. 살짝 자신감도 생겨서 지인들에게 공연 보러 오라고 연락하고 있어요. (웃음)
오의식 희준 형이 오랜만에 공연을 해서 그런지 공연 전엔 제일 불안해하고, 공연이 끝난 다음에는 제일 행복해했어요. 저는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에 참여해 제 연기를 보여 드릴 수 있어서 감개무량했어요. 관객분들이 따뜻하게 호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고요. 배우가 힘든 만큼 관객은 좋아한다는 선배님들의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어요. 연습 때 고생한 보람이 있어요. 
 
 
<그때도 오늘>에는 각기 다른 시간과 사건 속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요?
오의식 작품명인 ‘그때도 오늘’이 키워드인 것 같아요. 연습을 하면서 ‘그때나 지금이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는 곧 끝날 것 같았던 일들이 ‘오늘’도 끝나지 않은 게 참 많더라고요. 모두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세상은 그 바람만큼 변하기도 해요.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우리 삶에 들이닥치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희준 백 년 전 사람들은 독립만 하면 우리나라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독립 후에는 이념 때문에 갈라져 갈등하는 역사를 반복하고 있잖아요. 참 마음 아픈 일이에요. 지금도 진행 중인 역사인데, 평소에는 전혀 체감하지 못했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제가 너무 무심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처음엔 무대 위에서 신나게 놀아 보자고 시작했지만, 준비하면서 정말 많이 공부가 됐어요. 저처럼 관객 여러분도 한 번쯤 지나쳤던 우리 역사와 현재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한국 현대사를 다루는 작품이다 보니 사전 준비가 많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오의식 이인극의 경우 보통 연습 기간을 한 달 반 정도 잡는데, <그때도 오늘>은 석 달 전부터 모였어요. 역사 공부를 하긴 했지만 일부러 깊게 파고들진 않았어요. 역사 속에 싸우는 사람이 있고 희생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희가 연기한 인물들은 대부분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역사를 심층적으로 공부하기보다 대본에 담긴 각 인물 탐구와 분석에 더 시간을 쏟았어요. 연습 때 가장 경계했던 게 ‘뻔하게 연기하는 것’이었어요. ‘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 말투 같은 걸 많이 고민했어요. 극 안에 사투리도 많이 나와서 그 지역 사람들 인터뷰도 많이 했고요.
 
네 가지 에피소드마다 사용하는 사투리가 다 다르더라고요. 
오의식 평양, 제주도, 경상도, 충청도 사투리가 나와요. 저는 희준 형에게 경상도 사투리를 배우고, 저는 형에게 제주도 사투리를 알려 줬어요. 어렵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사투리라는 게 그 지역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이상 아무리 연습을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에요. 희준 형이 사투리보다 대사로 전달돼야 하는 말에 집중하라고, 억양은 많이 연습했으니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완성될 거라고 해 주신 말이 정말 많이 도움이 됐어요. 형 말대로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니까 사투리도 더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제주도 사투리가 나올 때는 무대 벽에 자막을 사용해서 이해가 쉬웠어요. 
이희준 어떻게 하면 관객 여러분이 낯선 제주도 사투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자막을 써 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제주도 출신이 아니면 제주 사투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니까요. 대사를 이해하기 쉽게 하면서도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나 흐름을 깨지 않아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관객 여러분께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함께하는 무대의 기쁨
 
네 가지 에피소드 가운데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나요?
오의식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배우로서 색다른 시도를 하거든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온 사람들 이야긴데, 가운데 벽을 두고 저희가 무대 양쪽에 앉아 있어요. 그런데 서로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객석을 보고 연기를 해요.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갔어요. 이런 연기가 처음이다 보니 연습 때도 제일 힘들었어요. 
이희준 연극에서 정면을 보고 앉아서 아무런 움직임 없이 둘이 대사를 주고받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처음 연습할 때는 이게 될까 싶어서 의심도 들었는데, 완성하고 나니까 정말 색다른 장면이 연출되더라고요. 서로의 목소리만 듣고 연기한다는 게 참 어려웠지만 매력적인 경험이었어요.
 
이인극이기 때문에 연기할 때 더 신경 쓰는 게 있을까요?
이희준 저 혼자 잘해서는 절대 안 돼요. 단둘이 연기를 하니까 서로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 대사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제가 의식 배우를 알게 된 게 10년 정도 되는데,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이기도 하고, 후배지만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어요. 공연 내내 제가 의식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연기하는 것처럼 편안했어요. (웃음) 
오의식 나는 형한테 많이 기댔는데? (웃음) 극단 선배들에게 배운 것 중 하나가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연기예요.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게 오히려 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걸 많이 배웠어요. 이번 작품이 이인극이다 보니 그런 공부가 더 됐어요. 처음에는 솔직히 좀 무섭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는데, 오로지 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우리 둘이 끝까지 가 보자는 전투력이 생기면서 저도 형한테 많이 의지하면서 공연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인극은 부담스러운 작업이긴 해요. 하지만 배우에게는 원 없이 연기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죠.
 
두 분이 생각하는 극단 작업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오의식 팀 안에 저에게 아낌없이 직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거 같아요. 아직도 나를 발전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심장 뛰게 하고, 약간 두렵게 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게 제일 좋아요. 후배 입장에서는 연기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배울 수 있다는 선배가 있다는 것도 든든하죠. 그리고 선배님들이 후배들을 많이 이끌어 주려는 것도 좋아요. 희준 형만 봐도 다른 데서 작업할 때마다 극단 후배들 추천을 많이 하거든요. 좀 속된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후배들한테 현실적으로 제일 도움이 되죠. 
이희준 저도 비슷한데 서로를 위해서 말을 아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희끼리는 “너 지금 편하게 연기하려고 늘 쓰는 장기를 쓰는 거지?”라는 말까지 해요. 오랫동안 서로 함께 부대끼면서 공연해 온 사이니까 가능한 일이죠. 서로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상처받지 않아요. 오히려 소중해요. 누가 그렇게 저를 살뜰하게 챙겨 주겠어요. 극단 밖에서는 제 나이쯤 되면 연기에 대해 조언해 주는 사람이 없거든요. 저는 극단 단원들이 제 연기를 보러 올 때가 제일 긴장되고 기대돼요. 솔직한 감상을 얘기해 주니까요.
 
앞으로 또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실 예정이시죠?
오의식 <그때도 오늘>에는 남자1, 남자2 이렇게 두 명이 나오는데, 역할마다 배우 세 명이 캐스팅됐어요. 저는 이시언 배우와 차용학 배우하고 호흡을 맞출 예정이에요. 이시언 배우는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굉장히 에너지 있고 배우로서 매력이 넘쳐요. 그 사람이 지닌 매력이 무대에서도 빛나더라고요. 차용학 배우는 극단 선배님이신데, 늘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 주셔서 말 그대로 저희 극단의 ‘믿고 보는 배우’예요. 선배님이 하시는 첫 공연을 봤는데 역시 잘하더라고요. 두 배우 모두 매력이 너무 달라서 함께 연기하는 게 벌써 기대가 돼요.
이희준 박은석 배우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힘이 돋보이고, 김설진 배우는 섬세한 무용가 출신답게 섬세한 연기를 펼치는 장점이 있어요. 배우마다 연기 스타일이나 성향이 너무 다르다 보니까 공연 전에 호흡을 맞추는 것도 숙제예요. 워낙 두 배우의 호흡이 긴밀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작품이어서 페어가 바뀔 때마다 계속 연습이 필요해요. 연기를 실컷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연습도 실컷 할 것 같아요. 
 
<그때도 오늘>을 관람하실 관객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오의식 공연을 만들면 흥행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없지만, 이번 공연은 저희가 하고 싶은 것,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대에 가지고 왔다는 걸 응원해 주시면 좋겠어요. 무대는 다양한 이야기를 시도해야 하잖아요. 거기에 <그때도 오늘>이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희준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만든 작품들은 지금까지 색깔이 전부 달랐어요. <그때도 오늘> 역시 또 다른 색깔의 공연이에요. 배우 둘이 실컷 연기하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작품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극장에서 확인해 주시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9호 202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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