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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플라잉 오버 선셋> 의식 저편 어둠을 향해 날다 [No.209]

글 |여태은(뉴욕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22-09-02 391

NOW IN NEW YORK
<플라잉 오버 선셋> 
의식 저편 어둠을 향해 날다

 

지난 12월 링컨 센터의 비비안 버몬트 극장에서 개막한 <플라잉 오버 선셋>은 쟁쟁한 창작진의 만남으로 눈길을 끈다. <숲속으로>,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 등 스티븐 손드하임과 함께한 작품들로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받은 작가 제임스 라파인, <넥스트 투 노멀>로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받은 작곡가 톰 킷, 그리고 <닥터 지바고>의 작사가 마이클 코리가 이 작품을 위해 손을 잡았다. 상업성 짙은 브로드웨이에서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이들은 이번에도 뮤지컬 무대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독특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환각제 LSD가 합법적으로 유통되었던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성공한 삶 이면의 어두운 내면 세계를 탐험한 것이다. 작품은 실제로 LSD를 복용했던 유명 인사 세 명의 인생에서 영감을 얻었다. 소설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 히치콕 영화에 출연하며 헐리우드를 주름잡은 배우 케리 그랜트, 극작가이자 최초의 미연방 여성 하원 의원이며 이탈리아 대사였던 클레어 부스 루스가 그 주인공이다. 

 

 

내면 세계로 떠나는 여정


미국은 뉴욕주를 포함한 17개 주에서 마리화나를 합법화했지만, LSD는 1960년대부터 불법 마약류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LSD가 처음 시중에 유통된 1950년대에는 우울한 기분을 나아지게 하고 의식을 확장시키는 약물로 인기를 누렸다. 극소량으로도 강력한 환각 효과를 주고 중독성이 없어서 정신과적 치료 약물로 통용되기도 했다. 


<플라잉 오버 선셋>의 작가 겸 연출가 제임스 라파인은 2010년 미국 월간지 『베니티 페어』가 보도한 케리 그랜트의 LSD 복용 관련 기사에서 당대 유명 인사들이 즐긴 최고의 유희 중 하나가 LSD 복용이었다는 내용을 접하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 이후 리서치를 통해 작가 올더스 헉슬리와 정치가 클레어 부스 루스 또한 LSD를 즐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올더스 헉슬리는 그의 에세이 『지각의 문』에서 LSD를 문화 예술적인 관점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제임스 라파인은 세 인물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고, 이들이 LSD를 통해 내면 세계를 탐구하는 여정에 가이드 역할을 하는 제럴드 허드라는 캐릭터를 추가했다. 제럴드 또한 실존 인물에 기반한 캐릭터로, 실제로 그는 올더스 헉슬리, 클레어 부스 루스와 친분이 있었으며 주변 사람들이 의식 세계 확장을 목적으로 LSD를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플라잉 오버 선셋>은 세 주인공 케리, 올더스, 클레어가 LSD를 복용하며 보게 되는 환상을 무대 위에 펼쳐 놓는다. 하지만 이들이 환각 상태에서 마주하는 건 다름 아닌 내면 깊숙이 묻어 둔 어두운 기억, 갖고자 하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무언가이다. 자칫 마약 장려 뮤지컬이라는 오명을 쓰기 쉬운 이 작품은 세 인물이 어떻게 깊은 내면의 은밀한 진실을 마주하는가에 집중하며 이러한 함정을 피해 간다. 

 

눈부신 삶의 어두운 이면


1막은 실화에 기반해 세 인물이 각자 어떤 사정으로 LSD를 복용하고 어떤 환상을 보는지를 그린다. 올더스 헉슬리는 성공한 작가이자 모르는 게 없는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다. 하지만 아내의 투병 생활을 지켜보며 우울증에 빠지고 집필 활동도 부진해진다. 설상가상 시력마저 잃어 가던 올더스는 LSD를 복용하며 형형색색의 세계를 보게 되고, 이러한 자극이 그에게 새로운 활력을 준다. 케리 그랜트는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줄 모르고 자신을 떠난 줄만 알았던 어린 시절의 상처와 여자아이처럼 파자마 드레스를 입고 보드빌 공연단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헐리우드 배우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쌓았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LSD를 복용한 케리는 환각을 통해 어린 시절 자신과 똑 닮은 소년 아치를 만난다. 클레어 부스 루스는 성공한 여성 정치가이지만 자동차 사고로 어머니와 딸을 연이어 잃은 뒤 화려한 커리어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 와중에 남편까지 젊은 정부와 바람이 나자 클레어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절친한 친구 제럴드만이 그를 이해해 주며 LSD의 세계로 인도한다.  


2막은 작가 제임스 라파인이 상상력으로 창조한 내용이다. 제럴드의 소개로 만난 클레어와 올더스, 케리는 캘리포니아 별장에 모여 함께 LSD를 복용한다. 세 사람은 이 파티에서 환각을 보며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빠진 올더스, 내면의 어린아이를 거친 파도 속으로 떠나보내는 케리, 어머니와 딸의 비극적인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는 클레어까지 각자의 어두운 내면 세계를 마주한다. 하지만 2막 마지막까지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1막에서 풀어낸 이야기를 흐지부지 끝맺는다. 인물 각자의 트라우마와 환각을 보여 줄 뿐, 이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 세 인물이 한 자리에 모여 LSD를 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오직 클레어만이 외로움은 약물로 해결될 수 없으며,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로만 위로받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올더스에게 기댄다. 비중이 큰 조연 제럴드 허드가 나머지 세 사람의 가이드로 납작하게 표현된 점도 아쉽다. 2막에 그가 자신을 팬지 꽃 같다고 한 클레어에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는 장면이 있기는 하나(팬지 꽃은 남자 동성애자를 비하하며 놀리는 표현으로 쓰인다), 그것도 아주 잠깐의 해프닝에 불과해 이야기와 캐릭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주연 배우들은 모두 호연을 펼쳤다. 올더스 역은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헨리 히긴스 교수를 연기한 바 있는 해리 헤이든 패튼이 맡았는데, 영국 출신의 지성인 캐릭터를 보여 주기에 손색없는 캐스팅이다. 케리 역의 토니 야즈벡은 환각에 몰두해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기괴한 춤을 추다가도 다시 젠틀한 헐리우드 배우로 돌변하는 케리 그랜트의 모습을 훌륭하게 연기한다. 클레어 역은 <브라이트 스타>로 토니상 후보에 오른 카르멘 쿠작이 맡아 흠잡을 데 없는 노래 실력을 뽐낸다.

 

 

잔잔한 음악, 흥겨운 탭 댄스


<플라잉 오버 선셋>의 핵심 뮤지컬 넘버는 LSD를 복용하면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와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내면 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플라잉 오버 선셋(Flying Over Sunset)’이다. 이 곡의 멜로디는 공연 내내 반복해서 리프라이즈되며 이들이 닿을 수 없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유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곡이다. 1막 초반에 올더스의 아내 마리아가 부르는 노래 ‘더 뮤직 플레이즈 온(The Music Plays On)’도 효과적으로 리프라이즈된다. 이 곡은 2막에서 올더스와 죽은 마리아가 환각 속에서 함께 왈츠를 추며 부르는 노래로 변주되어 눈시울을 적신다. 하지만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시종일관 잔잔함을 유지하는 음악은 다소 지루한 느낌을 준다. 더 다양한 음악 장르를 활용해 환각의 세계를 보여 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히 잔잔한 음악에 감초 역할을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흥겨운 탭 댄스다. <플라잉 오버 선셋>의 안무가는 뉴욕 기반의 탭 댄스 컴퍼니인 ‘도런스 댄스’의 수장 미셸 도런스다. 심장 박동 소리에서 시작된 리듬이 배우들의 주저하는 듯한 발자국 소리로, 그리고 다시 음악의 일부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1막과 2막 오프닝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장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무대 바닥에도 마이크 장치를 설치해 배우들의 발소리가 잘 들리도록 만들었다. 탭 안무는 케리가 정신과 상담 중에 LSD를 복용하고 어린 시절 자신을 마주하는 곡 ‘퍼니 머니(Funny Money)’에서 빛을 발한다. 케리 역을 맡은 토니 야즈벡은 내면의 어린아이 아치와 거울처럼 마주보며 탭 댄스를 추고, 이어서 책상에 올라가 신들린 탭 댄스 실력을 뽐낸다. 보드빌과 브로드웨이를 거쳐 헐리우드 스타가 된 케리 그랜트 역을 토니 야즈벡이 아니면 누가 이만큼 소화할 수 있을까. 아치 역을 맡은 12살의 애티커스 웨어도 베테랑 브로드웨이 배우 못지않게 다양한 탭 댄스 안무를 소화해 낸다. 그는 네 살에 춤을 추기 시작해 여섯 살부터 무대에 올랐고, 이 공연을 위해 안무가 미셸 도런스에게 직접 탭 댄스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환각을 구현한 환상적인 무대


다소 단조로운 이야기와 음악을 무마하는 이 작품의 백미는 환상적인 무대 미술이다. <플라잉 오버 선셋>의 무대는 무대디자이너 베일로프 보릿과 <하데스타운>으로 토니상을 받은 조명디자이너 브래들리 킹,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넘나드는 프로젝션 디자인 그룹 ‘59 프로덕션’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세 개의 거대한 벽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정신과 의사의 상담실, 계단, 정원 등의 배경이 되는데, 이때 하얀 벽면에 투사된 프로젝션이 환각의 세계를 그려내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올더스가 환각을 보는 장면에서 세 개의 벽에 보티첼리의 명화 ‘베툴리아로 돌아가는 유디트’를 투사해 앙상블 배우들이 그림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연출하는가 하면, 케리가 환각 속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는 장면은 다양한 영화를 편집한 프로젝션 영상으로 표현한다. 요즘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프로젝션을 활용하지 않은 공연을 찾아보기 힘들다. 2019년 제73회 토니상에서는 <비틀쥬스>와 연극 <네트워크>의 프로젝션 디자이너가 조명디자이너 부문 수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플라잉 오버 선셋>을 보니 이제는 토니상이 조명디자이너와 별개로 프로젝션 디자이너를 위한 수상 부문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링컨 센터 시어터가 제작한 <플라잉 오버 선셋>은 당초 2020년 2월 개막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브로드웨이 극장가 전체가 셧다운되면서 2021년 12월로 개막이 연기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끝내 코로나19의 영향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인해 당초 2월 6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공연을 1월 조기 폐막한 것이다. 링컨 센터와 같이 큰 비영리 단체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리자 다른 극장들도 영향을 받았다. 현재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는 공연을 잠정 연기하거나 조기 폐막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다시금 극장 산업이 위기를 맞지 않을까 우려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9호 202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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