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COVER STORY] 놓지 못하는 편지, <팬레터> 이규형 [No.209]

글 |배경희 사진 |김현성 Stylist |임하영 Hair |이재황, 전혜경 Make-up |신누리, 양채원 2022-09-02 2,120

놓지 못하는 편지
<팬레터> 이규형

 

<팬레터>는 2016년 처음 관객과 만나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 공연됐다. 그리고 이규형은 그 네 번의 여정을 빠짐없이 함께했다. 관객들의 사랑으로 작품이 깊게 뿌리내리는 동안 그를 둘러싼 많은 것들 역시 달라졌지만, 그는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 다시 김해진으로 돌아왔다. 배우와 작품이 만나는 데도 인연이 작용해야 한다면, 이규형과 <팬레터>가, 그리고 김해진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은 어느 정도의 세기일까?

 

 

“확실한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좋아요”

 

어젯밤 새벽까지 드라마 촬영을 했다고 들었어요. 뮤지컬 두 편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드라마까지 참여하다니 체력이 정말 대단해요. 규형 씨 표현대로 ‘아이돌 같은 바쁜 일정’을 몇 년째 소화하고 있는데, 이렇게 쉼 없이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요. 
저는 바쁘게 살 팔자를 타고 났대요. 에너지가 넘쳐서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팔자라고, 제 사주팔자를 봐 주신 도사님께서 그러셨어요. 하하. 근데 실제로 그래요. 요즘 ‘MBTI’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예전에 테스트했을 때는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ESTP) 유형이 나왔는데, 얼마 전에 다시 해 보니까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ENTP) 유형이 나오더라고요. 전 아무래도 좀 뜨거운 사람인가 봐요. 활동으로 얻어지는 경제적인 소득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바쁘게 움직여야 오히려 에너지가 생겨요. 집에 가만히 있으면 건강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달까. 그래서 쉴 때도 몸을 가만히 두질 못해요. 막 이것저것 배우러 다녀야 직성이 풀리죠. 

 

바쁘게 활동하면서 얻게 된 가장 값진 선물은 뭐라고 생각해요?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진 거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저와 안 맞는 사람과는 거리 두는 법을 알게 됐거든요.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건, 다시 말해 안 좋은 사람들과 멀어졌다는 거잖아요. 나에게 좋은 사람과 안 좋은 사람의 기준은 각자 다를 텐데, 저는 네거티브한 사람과는 좀 안 맞아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저한테 안 좋은 영향을 주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확실한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에요. 설령 실패하더라도요.

 

배우 이규형이야말로 설령 실패하더라도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온 사람의 표본 아닐까 싶어요. 여러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대학생 때부터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기회를 얻고자 노력했으니까요. 동국대 연극과 후배인 이해준 배우가 말하길, 규형 씨는 학교에서 열심히 하는 걸로 유명한 선배였다고 하더라고요.
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웃음) 학교 다닐 때,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동기 (조)성윤이랑 저랑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죠. 저희 학교는 과목마다 수석 장학금을 삼십만 원씩 줬는데, 둘 다 형편이 빠듯해서 장학금을 받으려고 더 열심히 했거든요. 어떤 간절함 같은 게 있었달까요. 아! 학창 시절 이야기하니까 생각났는데, 대학교 때 요즘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정재 선배님이 출연한 <햄릿>에 저도 참여했어요. 아마 그게 선배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이었을 거예요. 학생일 때 톱스타 배우와 같이 공연하니까 신기했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해 온 선배님의 연기법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그때 매체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햄릿>은 어떻게 하게 된 공연인가요?
2008년에 이해랑예술극장 개관 기념으로 동문 선배님들이 주축이 돼서 올린 공연이 <햄릿>이었어요. 이정재 선배님이 햄릿이었고, 김소연 누나, 소유진 누나, (전)혜빈이가 트리플로 오필리어를 맡았죠. 저는 그때 3학년이었는데, 2학년 때 3학년 제작 실기 수업을 미리 들어서 교수님께서 <햄릿>에 참여하라고 하셨어요. 교수님이 왜 요즘 저녁에 안 보이냐고, 시간 있으면 동문 공연을 하라고 하신 거죠. 연기과 학생들은 보통 저녁부터 제작 실기 공연 연습을 하거든요. 제가 맡은 역할은 햄릿이 공연하는 극중극 장면에 등장하는 극단장이랑, 햄릿과 레어티스가 결투를 벌이는 장면에 나오는 심판이었어요. 그리고 앙상블장을 맡았죠. 그때 그 공연에 앙상블로 참여한 후배들이 이해준, 정재은, 정다희, 강소라… 와, 우리 학교 출신 중에 잘된 배우들이 진짜 많네요? 

 

학교 다닐 때 동국대생이란 프라이드는 없었나요? 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왠지 모르게 어깨가 펴진다든가 하는. (웃음) 
학교 다닐 땐 안 그랬어요. 존경하는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서 동국대에 들어간 건 맞지만, 프라이드가 강할 수 없었던 게 제가 외부 활동을 일찍 시작했거든요.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2학년도 안 마치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다 보니, 동대고 뭐고 쓰디쓴 현실의 벽이! (웃음) 그때 깨달았죠. 스스로 실력을 키우지 않는 이상 이곳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란 걸요.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학교 생활은 열심히 하되 학교 밖에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자주 그랬어요. 당장 작품을 안 하더라도 오디션을 보면서 늘 바깥 세상에 관심을 가지라고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더라도 공연하는 게 좋았어요” 

 

대학 졸업 전에 소극장 뮤지컬로 데뷔하게 됐죠. 데뷔 초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나요?
저는 활동을 빨리 시작하고 싶었던 터라 군대에 있을 때도 오디션 정보를 챙겨 봤어요. 그러다 말년 병장 휴가 때 오디션을 보게 됐는데, 거기 덜컥 붙어서 제대하자마자 공연을 하게 된 거예요. 그게 제 데뷔작 <두근두근>이에요. 공연해서 처음 받았던 돈이 십만 원쯤 됐던가? 소극장 공연에 대학생 신분으로 출연하게 됐으니 당연히 출연료가 많지 않았죠. 근데 다른 데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더라도 공연하는 게 좋았어요. 문제는 제 마음과 달리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는 거지만요. 첫 작품을 하고 나서 두 번째 작품 <빨래>를 만나기까지 2년 정도 걸렸는데, 그때 이후로는 감사하게도 한 해에 한두 편씩은 꼭 하게 됐어요. <싱글즈> <오디션> <극적인 하룻밤>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돈복은 없었을지 몰라도 일복은 항상 있었죠. (웃음) 

 

첫 작품을 하고 나서 의욕이 넘쳤을 텐데, 다음 기회가 바로 안 와서 낙담하진 않았어요? 
저는 천성적으로 힘든 상황을 잘 버티는 편이에요. 어떤 상황이든 덤덤히 받아들인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평소에 힘들다는 생각을 잘 안 해요. 2년간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졌지만 크게 좌절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아! 뮤지컬은 나하고 안 맞는다는 생각에 일 년 동안 오디션을 아예 안 봤던 적은 있어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말하면, 공고가 나는 뮤지컬 오디션은 전부 지원했는데 보는 족족 다 떨어졌거든요. 뮤지컬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당시엔 뮤지컬 부흥기라 늘 오디션이 있었는데, 일 년 동안 오디션을 끊고 학교생활에 전념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빨래> 오디션 소식을 듣게 된 거예요. <빨래>는 뛰어난 가창력과 춤 실력이 요구되는 뮤지컬과는 다른 결의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한번 도전해 볼까 싶어 다시 용기를 냈죠.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작품은 마음에 더욱 각별하게 남을 것 같아요. 게다가 <빨래>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믿게 하는 따뜻한 작품이잖아요.
저는 주위에서 누가 뮤지컬 좋아한다고 하면, “그럼 <빨래>도 봤어?” 이렇게 물어봐요. 안 봤다고 하면, 꼭 보러 가라고 하죠. 인생 뮤지컬이 될 거라고. 개인적으론 뮤지컬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라 특별할 수밖에 없어요. 공연에 대한 기억이 따뜻해서 더 특별하게 아끼고요. 이십 대 후반에 참여해서 공연한 지 벌써 십 년도 더 지났는데 팀 사람들하고 여전히 각별한 관계를 유지 중이거든요. <빨래>는 저한테 고향 집 같아요.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연극 <나쁜자석>도 어떻게 보면 <빨래> 덕분에 인연이 된 작품 아닌가요?
맞아요. <빨래>를 하면서 추민주 연출님을 알게 됐고 그 인연으로 연출님이 하시는 <나쁜자석>에 출연하게 됐어요. <빨래>가 저를 다시 뮤지컬 무대에 서게 해 줬다면, <나쁜자석>은 저한테 터닝 포인트가 되어 줬죠. <나쁜자석>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이후에 작품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 사실 저는 제가 그 작품으로 그렇게 사랑받게 될 줄 몰랐어요. (웃음) <나쁜자석>은 총 두 번 참여했는데, ‘자석 멤버들’과도 여전히 각별하게 지내요. 

 

다시 뮤지컬 이야기로 돌아오면, <빨래> 이후에는 계속 뮤지컬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나요?
그 후로 한참 후에, <시라노>를 했을 때 위기가 찾아왔어요. 시라노 역 노래가 어렵기도 했지만, 곡의 분포가 좀… 극악무도했죠. (웃음) 이건 진짜 과장이 아니라, 작곡가님, 음악감독님도 인정한 사실이에요. 시라노가 1막에 나오는 뮤지컬 넘버 절반 이상을 불러야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음악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처음엔 부담이 많이 됐어요. 뮤지컬에서는 노래도 대사의 연장이니까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작품이나 캐릭터에 따라 뛰어난 음악적 기량이 요구될 때가 있잖아요. 특히 대극장 공연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죠. 이제 와서 말하면, <시라노>를 준비할 때 선생님 세 분한테 노래 레슨을 받았어요. 노래가 중요시되는 작품에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죠. (웃음) 그래도 공연은 무사히 올라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제가 생각하는 해진의 핵심은 글을 쓰는 예술가예요”

 

<팬레터>는 개발 과정을 함께한 작품이에요. 리딩 공연 제안을 받았을 때, 곧바로 마음이 끌렸나요?
네, 시놉시스가 흥미로웠거든요. 제작사에 대한 신뢰도 있었고요. 라이브는 <마이 버킷 리스트>로 인연을 맺게 된 제작사인데, 그때의 작업 경험이 무척 즐거웠어요. 2인극이라 참여 인원이 적다 보니, 배우와 창작진, 배우와 배우, 서로 간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졌죠. 특히 저랑 같은 역이었던 (주)민진이랑 죽이 잘 맞았어요. 민진이가 저한테 “형, 여기서는 이런 노래가 나오면 어떨까?” 그러면 제가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면서 서로 막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런 다음 (김)혜성 누나(작곡가)한테 저희 생각을 말하면, 누나가 그걸 레퍼런스 삼아 새로운 곡을 써 오고, 드라마와 음악이 연기에 맞춰져 실시간으로 협업이 이뤄진다는 인상이 강했죠. “이거 어때?” 하면 “어, 좋다!” 하면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거, 창작 작업에서 이것만큼 즐거운 게 없는 것 같아요.

 

과거 인터뷰에서 작품의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팬레터>라는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거 잘 되겠다’였어요. 방금 말했듯이 시놉시스가 굉장히 흥미로웠으니까요. 우리 민족에겐 가슴 아픈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당대를 살아간 문인들에게 모티프를 얻은 이야기에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거든요. 작은 오해에서 시작된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 가는 과정에서… 아, 이건 ‘스포’가 될 수 있으니까 여기까지. (웃음) 이야기를 조금 다듬으면 진짜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겠다 싶었어요. 


노래는 어땠어요? 처음 듣자마자 단번에 반한 곡이 있을까요?
해진이 부르는 솔로곡 ‘그녀를 만나면’이요. 연습하면서 더 좋아하게 된 곡은 ‘섬세한 팬레터’요. 1막 마지막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을 담고 있어서 부를 때마다 힘들지만, 그 순간 제 안에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큰 만큼 여운이 오래가요. 해진, 세훈, 히카루 세 사람이 함께 부르는 노래라 더 애착이 가고요. <팬레터>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좋아하는 곡이에요.

 

김해진이란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 가장 고민했던 점은 뭔가요.
해진이 처한 상황에서 그가 가장 원하는 게 뭘까? 해진에게 저를 대입해서 생각해 봤어요. 내가 곧 죽는다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게 뭘지요. 나한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전 그럼 다른 것보다 온 힘을 다해 내 모든 걸 쏟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길 만한 그런 작품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해진이 글에 집착하는 이유가 이해됐어요. 솔직히 말해 제게 해진은 공감하기 어려운 인물은 아니었어요. 저도, 해진도, 어떻게 보면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히카루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해진이란 인물이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해진의 핵심은 글을 쓰는 예술가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야기만 들어봐도 규형 씨한테 <팬레터>는 여러모로 특별한 작품 같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오래 이 작품에 함께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 같아요. 초연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즌에 빠짐없이 참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어떤 작품을 하는 데는 공연 시기가 중요한데, <팬레터>는 신기하게 그 타이밍이 되게 잘 맞았어요. 제가 아무리 뭔가 하고 싶더라도 스케줄상 불가능한 상황이면 어쩔 도리가 없거든요. 스케줄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정이 있을 수 있고요. 예를 들면, 건강 문제 같은. 그런데 <팬레터>는 처음 참여할 때부터 굉장히 적절한 타이밍에 저를 찾아줬어요. 당시 소속된 회사 뜻에 따라 공연을 쉬면서 다른 일을 기다리고 있을 때 출연 제안을 받았거든요. 소속사는 당분간 다른 매체 활동에 집중하자고 했지만, 일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잖아요. 촬영을 기다리면서 공연을 반 년 정도 쉬다 보니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때 딱 제안이 들어온 작품이 <팬레터>랑 연극 <날 보러 와요>예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한동안 에너지를 못 쓰고 있었으니 반가운 마음에 두 작품 다 해 버렸죠. (웃음) 제가 이렇게 여러 시즌 참여한 작품은 <빨래>랑 <팬레터>가 유일할 거예요. 

 

네 시즌에 출연하면서 여러 지역에서 공연했잖아요? 많은 추억이 있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 제일 특별한 기억은 뭐예요?
2018년에 대만에 공연하러 갔던 거요. 저희가 공연한 극장이 NTT(대만 타이중 국가가극원) 대극장이었는데, 거기 객석 규모가 2천 석이 넘었거든요. 근데 그 큰 극장이 전석 매진이었어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뮤지컬로 2천 석을 채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외국에서 한국어로 공연되는 작품에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찾아 주시다니 신기하고 감사했죠. 대만은 자체 콘텐츠를 많이 안 만들어서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 공연을 많이 본대요. 가만 보면 우리나라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도전처럼 느껴지지 않는 작품은 없어요.”

 

아까 사진 촬영할 때 이번에 보여 줄 해진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질 거라고 했어요. 생각에 어떤 변화가 생긴 건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아,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이전에 참여했던 작품이라 해도 다시 출연하게 되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봐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캐릭터의 모든 걸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거죠. 지난번 공연보다 뭘 더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요. 이번 공연에서 어떻게 할지는 아직 비밀이지만… (웃음) 살짝만 말씀드리면, 해진을 이전 시즌보다 더욱 더 글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표현해 보려고요. 어떻게 하면 작품 속 갈등이 극대화될까 고민해 봤을 때, 등장인물들이 각각 지향하는 바가 달라야겠더라고요. 그래야 서로 부딪혔을 때 파장이 커지고,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울림이 커지지 않을까 싶어요.

 

첫 공연을 한 달 앞두고 있는데, 요즘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나요.
며칠 전 연습 중에 문득 초연 때 생각이 났어요. ‘내가 이 장면에서 이런 감정을 느껴서 이렇게 움직였지’ 하고 옛날 생각이 확 떠오르더라고요. 연습하면서 느낀 감정이 동선으로 만들어지고, 그게 곧 무대 위의 한 사람을 설명하는 움직임이 된다는 게 새삼 특별하게 다가왔죠. 그리고 초연 연습 과정에서는 정말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져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연출님께 “지금 보여 준 거 너무 좋다, 이거 그대로 가자”라는 말을 들으면,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모든 공연 연습에는 그런 빛나는 순간들이 있는데, 초연에는 더욱더 많은 피, 땀, 눈물이 들어가요.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팬레터>가 있는 거겠죠.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이번 <팬레터>가 어떤 선물이 되길 바라나요? 
이번 시즌에는 기존에 호흡을 맞췄던 멤버들과 새로 합류한 배우들이 적절히 섞여 있어요. 이 작품이 처음인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을 때 어떤 새로움을 느낄지, 특히 처음 만나는 세훈하고 히카루 배우들과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궁금해요.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네 번째 시즌에 연달아 출연해도 여전히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전에 이 공연을 본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을 공연을 보여 드릴 수 있었으면 하죠. 

 

그러고 보면 이규형이란 배우는 매번 새로운 공연을 선택하기보다 참여한 작품에 여러 번 출연하는 편인 것 같아요. 내가 만든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커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늘 아쉬움을 느껴서?
어떤 작품이든 한 번만 참여해서는 완벽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완벽하지 못하니까 아쉬움이 남고요. 그리고 제가 어떤 작품을 처음 했을 때 관객분들이 좋아해 주시면, 자연스럽게 그 작품을 다시 하고 싶어져요. 공연할 때 관객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열정 넘치는 뜨거운 사람이라(웃음),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해 보고 싶죠.


새로운 도전이라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방송에 공개된 규형 씨 집 거실에 <킹키부츠> OST가 있는 걸 보고 혹시 마음에 품고 있는 작품인가 생각했어요. 그 방송을 보고 저처럼 생각한 팬들도 분명 있을 걸요? 기대해 봐도 될까요? (웃음) 
아, 그거 그런 의미는 아니고… <킹키부츠>를 보러 갔을 때 산 거예요. 내돈내산! (웃음) 재작년이었나? (박)은태 형이랑 (이)석훈이가 하는 공연을 봤는데, 작품이 너무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공연 끝나고 바로 (양)주인 누나(음악감독)한테 전화해서 공연을 너무 재밌게 봐서 OST까지 샀다고 막 흥분해서 이야기했죠. 

 

그렇다면 어떤 스타일의 뮤지컬이 규형 씨한테 도전처럼 느껴질까요?
처음 출연하는 작품은 저한테 다 도전이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언젠가 <킹키부츠>를 하게 된다면 그것도 도전일 테고, 제가 좋아하는 <맨 오브 라만차>를 하게 된다면 그 또한 엄청난 도전이 되겠죠. 세상에 도전이 아닌 쉬운 작품은 없어요. 어떤 작품을 하든 숱한 고민과 피땀 어린 노력이 수반돼야 관객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으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9호 202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