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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강신일, 존재의 이유 [No.108]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2-09-24 5,228

강신일이 무대에 선다. 이번 작품은 국립극단이 기획한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개막작 <꿈>이다. 삼국유사 프로젝트는 삼국유사 속 신화를 현대로 끌어와 재해석한 작품을 릴레이로 선보인다. 욕망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 <꿈>에서 강신일이 연기하게 된 인물은 식민 시대의 지식인 춘원 이광수. 연습 시작 한 달, 고민에 빠져있는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꿈>은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어요?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던 거예요, 아니면 순전히 작품 때문에 출연을 결정하셨나요? 둘 다 아니에요. 나는 이 기획에 대해서 몰랐고, 대본도 못 봤어요. 두어 달 전에 최용훈 연출이 자기 공연에 형님이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전화를 해서 시작한 거예요. 최용훈 연출은 97년도 연극 <김치국씨 환장하다>로 알게 됐는데, 믿음이 가는 후배이고 좋아하는 동생이에요. 그래서 대본도 안 나온 상태였지만 “그래, 그러면 하자” 그랬어요. 이 친구가 오랜만에 나를 찾을 때는 내가 꼭 필요하고 어떤 확신이 있는 것일 테니, 해야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전작인 <레드>의 경우에도 연출가가 대본을 읽고 곧바로 강신일이 떠올라서 프러포즈를 했고 그 점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셨죠. 연출자가 작품을 보고 어떤 배우가 떠올랐는데, 내가 바로 그 당사자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기쁘고 고마운 일이죠. 그럼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를 선택한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출연하게 되는 거죠.

 

<꿈>의 완성된 대본을 읽고 난 느낌은 어떠셨어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인데 지금의 강신일이기에 더 와 닿은 점이랄까 그런 게 있었나요? 글쎄요, 어떤 배우들은 작품의 캐릭터가 나를 움직였다 그런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난 그런 이야기는 잘 못하겠어요. 더욱이 <꿈>은 연출가와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하겠다고 결심한 거였기 때문에, 대본을 받았을 때 여기 인물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어떤 작용을 하겠구나, 그런 느낌은 덜했어요. 작가가 들으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연극은 대본을 봐서는 잘 몰라요. 연습실에서 동료들과 에너지를 주고받고, 교감하고, 캐릭터를 찾아가면서 감동도 서서히 느끼게 되는 거죠. 그래서 처음엔 감동 그런 것보다는 연출이나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나를 선택했을까, 상상했던 이미지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찾아가는 작업을 해야 하죠.

 

그렇다면 연출가가 이광수 역에 강신일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마 외형적인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내가 머리숱이 없는데 이광수는 머리를 밀었잖아요. 사실 내게서 지식인 이미지를 찾기 어려운데…. 어쨌든 이제는 이 작품 안에서 이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지, 나하고 이광수라는 인물을 어떻게 접목할지, 이게 숙제예요.

 

캐릭터 고민은 내 안에서 출발한다는 말씀인가요?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연기 변신을 한다는 건, 저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에요. 변신이라기보다 내가 여태껏 깨닫지 못했던 나의 여러 속성을 찾아내는 게 배우가 해야 되는 일이고, 나에겐 그게 연기의 근본이에요. 이광수로 예를 들자면 그는 조선의 3대 천재라 불리면서 일제 강점기 말년에 적극적으로 친일 활동을 했던 사람이란 말이에요. 이 사람이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했을까 유추하면서 내 안에서 찾아내는 거죠. 그게 찾아지면 접목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거고요. 어쨌든 연기는 그 자신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를 배제하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거죠.

 

이광수는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일 것 같아요. 자칫하면 이광수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일제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투쟁을 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친일을 했어요. 현실에 순응해서 친일 행위를 한 것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데, 극 중에서 춘원이 그런 말을 한단 말이에요. 난 욕망을 선택했다, 그게 죄인가. 그럼 죄가 아닌가? 어려운 문제란 말이에요. 이광수는 반민족행위처벌위원회에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친일 행위에 대해 끝까지 변명을 하지, 잘못했다고 반성을 안 한단 말이죠. 당시에 이 사람의 내면이 어땠을까 그게 고민스러운 거죠. 내면을 보여주되 결과적으로 친일 활동을 했고 여기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는 것까지 보여줘야 해서 굉장히 어려운 인물이에요.

 

물론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만 연기자로서 답을 가지고 연기하진 않나요? 극에서 춘원 한 명만 보이는 게 아니고, 여러 인물과 극적 장치를 통해 주제는 다르게 보일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춘원을 연기할 때 너무 미화하는 건 아닌지를 우려하며 연기해선 안 되는 거죠. 또 춘원 외의 다른 인물과 상황을 통해서 충분히 조절이 될 거예요. 그건 연출가가 해야 할 몫이고, 연기자인 내 몫은 이 인물이 그때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었을까를 찾아가는 거죠.

 

 

연기라는 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일 수 있겠네요. 나에 대해 얼마큼 잘 아느냐가 곧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을 테고요. 말씀하신 대로 연기는 나한테 그 의미예요. 나라는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나도 몰랐던 속성들을 하나씩 찾아가면 내 존재의 부피도 좀 커질 수 있을 거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연기가 더 깊어지겠죠. 물론 마음으로 느끼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연기의 전부는 아니에요. 나를 찾은 다음에 표현하는 게 진짜란 말이죠. 내가 아는 것과 다르게 표현하면 거짓말이 되고, 기교가 됩니다. 내가 아는 것과 표현하는 것의 간극을 없애는 게 진정한 연기라고 생각해요.

 

내가 연기하는 방향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은 없으세요?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는 문제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기에 대한 기준은 있어요. 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그의 정서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냐, 그것과 상관없이 겉으로 꾸며서 하는 것이냐, 이게 중요하단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흔들림이라는 건 없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도 그거예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네가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와 같은 것이니 네가 이 순간 느끼는 것이 이만큼이면 그만큼만 표현하라고 말합니다. 모른다고 기교를 부릴 생각하지 말고, 현재의 네가 할 수 있는 걸 자유롭게 하라고 얘기해주죠.

 

영화, 드라마, 연극 각 장르의 작품을 선택할 때 장르마다 기준을 가지고 계신가요? 어떤 장르든 중요한 건 작품 자체죠.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리고 재미가 있나, 없나. 내가 텍스트의 완성도를 따질 만큼 혜안이 있진 않지만 잘 읽히느냐 안 읽히느냐의 기준으로는 대본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대본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할 수도 없어요. 이 일이라는 게 사람이 만나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사실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인지가 가장 중요해요. 극단이 어디인가. 제작사가 어디인가. 감독이 누구인가. 가령 작품은 좋으나 제작자나 감독이 별로이면 안 할 수도 있고, 대본은 그저 그렇지만 내가 신뢰하는 감독이면 할 수도 있는 거죠.

 

20년 동안 연극 무대를 고수해 오다 영화계에 진출하셨는데, 이어서 방송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신 건 의외였어요. 조금 더 무게감 있게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왜 놀라요, 남들은 다 하는데? 사실 그 점에 대한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내 스스로도 영화를 하기 전까지는 나는 연극만 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영화가 가진 매력이나 파급 효과를 경험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어차피 연기할 거 더 많은 대중에게 여러 작품을 통해 웃음도 주고 기쁨도 줄 수 있다면 어느 한 장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연극을 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일정에 쫓기더라도 일 년에 한 편은 연극을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연극 배우로 시작해서 무대에 대한 애착이 클 수 있지만, 그 외에 연극 무대를 고수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영화나 드라마에도 진정성이 있어요. 자신이 하는 일에 혼을 담아서 하는 사람들, 어느 분야에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극은 타 장르와 달리 시작부터 끝까지 배우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첨예하게 연기하면서 사람들과 부딪히니까 거기서 오는 생동하는 에너지가 있어요. 특정 시간 한 공간 안에 속한 사람들, 그들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감동이 있다는 거죠. 그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거예요. 그 매력 때문에 연극을 계속하는 거죠.

 

 

연기를 시작했을 때와 30년이 지난 지금 연기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없나요? 특별히 달라진 건 없고, 반성을 합니다. 오래 할수록 나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채찍질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나이가 드니 후배들도 많이 생겼고, 나를 선생님 대접을 한단 말이죠. 자칫하면 내가 그 위에 붕 떠 있을 수 있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의 순수한 열정,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려는 자세, 연기에 대한 애정, 이런 것들이 바래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자신에게 엄격하신 편인 것 같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정진하게 하는 원동력은 뭘까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 그것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잠시 생각) 너무 뜬금없는 소린가요?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하는 게 재미있어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짜인 틀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하지만 무대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러니 재미있죠.

 

그런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겠어요. 카타르시스, 그건 정말 개인적인 거예요. 몇 달 동안 연습하고, 또 몇 달 동안 공연을 하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작은 손 동작 하나로 뭔가를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단 말이죠. 그런 데서 오는 게 카타르시스예요. 카타르시스가 뭐 대단히 거창한 게 아닙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배우들이 자신의 전성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배우로서 전환점이 될 만한 순간이 또 한번 오길 꿈꾸세요? 내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도약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내가 달리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달리기는 남하고 경쟁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자신과의 싸움이잖아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거고요. 그러니까 스타가 되는 것을 꿈꾼 적은 한번도 없어요. 이 나이 먹고도 이렇게 순진한 이야기를 하면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돈, 권력, 명예라는 성공을 향해서 달려가면 삭막할 것 같아요. 우리가 좇아야 하는 꿈은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 죽기 직전까지도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카메라 앞에 설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그것이 나의 꿈이고, 소망이고, 목표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8호 2012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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