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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화려한 무대 뒤 찬란한 어둠을 기록하다, 음악감독 김문정 [No.208]

글 |최영현 사진 |원민화 2022-08-24 89

화려한 무대 뒤

찬란한 어둠을 기록하다

음악감독 김문정

 

무대와 객석 사이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지휘봉 하나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던 김문정 음악감독.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펜을 들어 첫 에세이집 『이토록 찬란한 어둠』을 발간했다. 20여 년간 음악감독으로서 걸어온 여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작가라는 새로운 도전

 

첫 에세이집 『이토록 찬란한 어둠』이 출간됐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난생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얼떨떨해요. ‘저자 김문정’도 낯설고요. 음악감독으로 첫 무대에 섰을 때나 첫아이를 낳았을 때처럼 흥분되고 설레요.

 

책 제목이 굉장히 시적이에요.
우리가 보는 무대는 굉장히 찬란하게 빛나잖아요. 그런데 찬란함에는 반드시 어둠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무대가 빛나려면 무대 밖 어둠 속에서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스태프들이 꼭 필요하죠. 무대 위 그리고 무대 밖의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공연의 아름다움을 제목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에세이집은 언제부터 준비하셨어요?
출판 제의는 예전부터 심심치 않게 받았었는데, 쉽게 결정을 못 하고 오래 망설였죠.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책을 내게 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 정리를 하고 있었어요. 『이토록 찬란한 어둠』을 쓰기 시작한 건 지난해 5월쯤이에요. 언젠가 나올 거라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준비 중이었죠. 11월쯤 막바지 수정 작업을 하는데, 출판사에서 엄청나게 몰아붙이시더라고요. 왜 이렇게 독촉하냐니까 다음 주에 책이 나온대요. (웃음) 이렇게 책이 빨리 나올 줄은 몰랐죠. 2021년은 제가 음악감독이 된 지 딱 20주년이 되는 해라 굉장히 의미 있었어요. 마치 기념 선물처럼 책이 출판되어서 감사했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 아쉬운 건 없으셨나요?
한정된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어서 빠진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책에 언급하지 못한 배우들이 섭섭해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나중에 배우들 이야기만 풀어 볼까 싶은 생각도 잠깐 해 봤는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책을 쓸 때 가장 고민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어디까지 이야기할지 정하는 게 어려웠어요. 뮤지컬 업계에 오랫동안 몸을 담고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겠어요. 그 수많은 이야기가 모두 자랑할 만한 좋은 이야기일리 없죠. 특히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선배로서 과거 뮤지컬계의 과오는 한 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함께 발전적으로 고민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용기를 냈죠. 다행히 다들 쿨하게 받아 주셔서 굉장히 힘이 됐어요.

 


음악감독 김문정을 만든 것

 

책 전반부에 어떻게 음악감독이 되셨는지 쓰셨는데, 어머니 얘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저희 어머니는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멋진 분이세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적금을 깨서 피아노를 사 주셨는데 어떻게 보면 그 덕분에 제가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됐죠. 대학 입시 때는 실용음악과에 지원해 보라고 하셨고요. 아이를 낳고 다시 일에 복귀할 때도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셨어요. 남편도 많이 도와줬지만 어머니는 같은 여자로서 저를 더 이해해 주셨죠. 일할 땐 절대 집에 전화하지 말고 일에만 집중하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엄마는 엄마가 잘하는 일을 할 테니까 너는 네가 잘하는 일을 해”라고 해 주셔서 일할 때 든든했어요.

 

음악감독으로 데뷔했을 때 어머니께서 굉장히 기뻐하셨겠어요.
기억이 잘 안 나는 걸 보면 극장에 못 오셨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너무 어렸을 때라 극장에 오기 힘드셨을 거예요. 어머니는 극장에 오실 때마다 항상 앞자리에 앉겠다고 하세요. 무대가 아니라 저를 보시려고요. 공연이 끝나면 우리 딸 팔 아프겠다, 다리 아프겠다고 항상 같은 말씀만 하세요. 그러면 저는 쑥스러워서 “아니! 공연을 봐! 나를 보지 말고!” 이러죠. (웃음)

 

음악감독으로 활동하시면서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특별히 고마운 사람이 있을까요?
악기 대여를 해 주시는 한승해 실장님이요. 제가 세션 활동을 하던 20대 초반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는 사이네요. 한 실장님께 악기 대여하는 게 편해서 뮤지컬 쪽으로 옮기고 나서도 계속 연락을 드렸죠. 한 실장님은 악기 대여뿐만 아니라 저희가 조금이라도 좋은 컨디션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챙겨 주시는 분이세요. 하다못해 보면대 전구에 쓰는 건전지까지 하나하나 다 챙겨 주실 정도예요. 오케스트라에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제일 먼저 뛰어와 주시고요. 한 실장님 덕분에 오케스트라 피트에서는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저에겐 천군만마 같은 분이죠.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뒤 곧바로 <명성황후> 런던 공연에 음악 슈퍼바이저로 참여하셨어요. 그때 경험이 이후의 행보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맡은 것보다 좀 더 많이 일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종종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요. 해외에 나가 보니 다르더라고요. 딱 자기가 맡은 일만 해요. 대신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다음 필요한 것을 요구해요. 그러니까 서로 미안해하면서 부탁하는 일도 없고, 부당한 요구도 하지 않아요. 그때 배운 것들을 제 나름대로 현장에 적용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예를 들어 연습이 늦게 끝날 것 같으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지금 퇴근해야 하는 사람은 퇴근하라고 해요. 먼저 간다고 눈치 주지 않죠. 왜냐하면 이미 각자에게 정해진 일은 다 했고, 연습이 늘어진 건 제 탓이니까요.

 

20년 전에 비하면 우리나라 뮤지컬 현장도 많이 바뀌었죠?
제작 시스템이 정말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악보 정리부터 악기 대여까지 모두 음악감독의 몫이었어요. 지금은 업무가 많이 세분화되었어요. 특히 일하는 환경은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저희가 ‘직업인’이라는 개념은 자리 잡지 못했어요. 물론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소위 ‘열정 페이’를 강요당하는 일은 여전히 존재해요. 출연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배우도 많고, 시도 때도 없이 불려 가서 반주해 주는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있어요. 제자들에게는 그런 부탁들은 들어주지 말라고 하는데, 그들의 꿈과 열정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무대밖에 없으니까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는 게 안타까워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이라는 인식이 명확하면 안 해도 되는 일을 할 필요가 없는데, 아직도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이 아쉽죠.

 

음악감독님도 나름대로 현장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직접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기도 하셨죠?
뮤지컬 오케스트라도 클래식 오케스트라처럼 고용이 안정된 상황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싶어요. 고용이 안정되어야 연주에 집중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관객 여러분께 더 좋은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거든요. 그런 선순환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뮤지컬 연주자들이 좀 더 자기 일에 프라이드를 갖길 바라고요. 주변에서는 뮤지컬 오케스트라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고 해요. 뭐든 시작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고 있어요. 제가 못 해내면 제 후배 중 누구라도 바통을 이어 주길 바라요.

 


한곳만 보고 달려온 시간

 

긴 시간 음악감독으로 활동하시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셨던 적은 없나요?
똑같은 공연을 몇백 번씩 하는데 왜 없겠어요. 불쑥불쑥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많죠. (어떻게 극복하세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극복하려 하지 않아요. 그냥 받아들여요. 혼자 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뮤지컬은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일인데 어떻게 혼자 극복해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다 바꿀 수도 없고. (웃음)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관객들은 치열하게 티켓을 예매해서 공연을 보러 오는데 감사하게도 나는 매일 밤 공연을 볼 수 있구나. 이런 식으로 제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매일 같은 공연이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풍경을 찾으려고 노력도 하고요.

 

에세이집이 20년을 정리하는 기분이라고 하셨어요. 지난 20년을 돌아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솔직히 저는 몇 주년 이런 걸 잘 챙기지 않아요. 왜냐하면 처음 지휘봉을 잡았던 때가 어제 같거든요. 그래도 20년을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면, 참 부지런히 살았구나 싶어요. 제가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이 50편쯤 되거든요. 반복해서 참여한 작품은 따로 수를 더하지 않았으니까 실제는 더 많겠죠. 지휘를 한 횟수만 따져도 주 8~9회 공연을 하니까 한 달이면 36회, 일 년이면 400회가 넘어요. 그걸 20년 동안 거의 매일 했으니까 정말 열심히 살았다 싶죠.

 

생각해 보니 저도 극장에서 제일 많이 만난 사람이 음악감독님이에요.
요즘은 후배 음악감독을 위해서라도 일부러 일주일에 2~3회 정도는 스케줄을 빼기도 해요. 그래도 여전히 무대에 자주 서는 편이죠. 공연을 하면 하루가 빨리 가요. 눈을 감았다 뜨면 주말이고, 그렇게 한 달이 쑥 지나 있고. 어떨 때는 공연장에서 내 시간을 다 쓰는 게 아닌가 싶어서 억울해질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공연이 잠깐 멈췄을 때, ‘나는 공연이 아니면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코로나19 덕분에 강제로 휴식기를 가져 보니 어떠셨어요?
매일 밤 8시면 극장에 있어야 하는데 집에 있는 게 정말 어색했어요. 근데 뭔가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언젠가 공연을 안 할 때가 올 텐데 그때를 위해 취미라도 열심히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서예를 했던 기억을 더듬어 서예도 다시 시작해 보고, 책도 많이 읽었어요. 집안 정리도 열심히 하고. 아, 처음으로 저녁 산책도 나가 봤어요. 집 근처에 한강시민공원이랑 용산가족공원이 있는데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거든요. 벚꽃 피었을 때 갔었는데, 집 주변에 그렇게 꽃과 나무가 많은지 몰랐어요. 공연을 시작하고서는 다시 못 갔지만 좋은 시간이었어요.

 

20년 후엔 무슨 일을 하고 계실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세요?
뮤지컬 스태프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어요. 무대나 조명처럼 실무가 중요한 일은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배우기 때문에 전문 교육 기관이 없어요. 우리나라 뮤지컬도 어느 정도 인프라를 갖추고 산업화되고 있는 상황이니 영화처럼 현장 스태프를 양성하는 아카데미가 생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20년 후엔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되면 좋겠어요.

 

과거로 돌아가 음악감독으로 처음 지휘봉을 잡은 김문정에게 한마디 해 준다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의미로 ‘이게 다가 아니야’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음악감독이 되고 너무 좋아했거든요. 근데 문정아, 그게 다가 아니란다. 곧 마법의 세계가 펼쳐질 거야.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8호 2022년 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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