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항해
EMK뮤지컬컴퍼니 김지원 부대표는 뮤지컬 판권과 배급을 관리하는 EMK인터내셔널과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EMK엔터테인먼트 대표직을 겸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발을 들인 공연계에서 다사다난했던 17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파트너들을 향한 진심과 신뢰였다고 말하는 김지원 부대표.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세 회사에 지치지 않고 진심을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실패를 딛고 쌓은 믿음
2020년은 EMK뮤지컬컴퍼니의 <모차르트!>와 <몬테크리스토>가 1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두 작품은 지금의 EMK뮤지컬컴퍼니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어떤가요?
<모차르트!>와 <몬테크리스토>가 10주년을 맞이한 동시에 EMK뮤지컬컴퍼니도 10년을 채웠어요. 올해는 갑작스럽게 팬데믹 상황이 발생해 회사의 운영 방향은 물론 공연 산업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재정비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명확하게 세우게 됐어요.
EMK뮤지컬컴퍼니는 창업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엄홍현 대표님과는 거래처로 처음 만났어요. 당시 전 새벽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일에 열정적이었어요. 엄 대표님이 자기 주변에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자기랑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거예요. 사업 초반에는 엄 대표님과 저를 포함해 네 명이 모여,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해보기로 했어요. 앞으로 무슨 사업을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엄 대표님이 가장 빨리 공연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오신 거죠. 예상하시는 바와 다르게 공연을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당시에는 공연을 거의 모르는 상태였거든요. 요즘 드는 생각은 제가 일 자체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일이 제게 오면 무한한 애정이 생기고, 열과 성을 다해 잘하려고 해요. 공연도 마찬가지에요. 갑작스럽게 공연 일을 하게 됐지만, 무한한 애정이 생겼죠.
평범한 직장인이 갑자기 사업에 도전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서른 초반에 창업을 마음먹었는데, 사업가였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어요. 창업을 고민하고 있던 시기에 부모님이 직장 생활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한번 해보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왜냐면 사업을 하다 보면 반드시 실패하는데 나이가 들어 무너지면 다시 일어설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처럼 실제로 호되게 실패를 경험했죠. 많은 분들이 EMK뮤지컬컴퍼니가 <모차르트!>로 갑자기 등장한 회사라고 알고 있지만, 저희는 2004년부터 공연을 올렸어요. 2010년까지 거의 6년 동안 정말 많이 고생했어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명확하게 보이던 실패의 원인 때문이었어요. 무모한 시작과 엉성한 준비를 반성했고, 이번에도 안 되면 깨끗하게 각자 다른 일을 찾자는 각오로 2009년 EMK뮤지컬컴퍼니를 설립했어요. 만약 과거의 실패가 없었으면 엄 대표님이나 저나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실제로 2006년에 제작했던 <드라큘라>가 실패하자 동업했던 두 분은 떠나셨거든요. 당시 엄 대표님은 본인 때문에 진 빚이니 그 책임을 모두 지겠다고 하셨어요. 그 상황을 지켜보던 부모님이 실패했다고 당장 그만둔다면 어떻게 동업자라 할 수 있냐고, 이 고비를 같이 버텨내며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그게 옳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엄 대표님과 제게는 전우애가 있어요.
엄 대표님과 파트너십이 돈독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네요.
비즈니스를 함께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생각이 커지니까요. 저희도 왜 그런 게 없었겠어요. (웃음) 돌이켜보면 엄 대표님과 저는 같이 갈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 적도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전 사업은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함께했고, 지금 엄 대표님과 저는 믿음으로 쌓여온 사이가 된 거죠.
특히 공연 비즈니스에서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잖아요. 대표님만의 커뮤니케이션 비법이 있을까요?
사람은 사소한 부분에서 감동을 받아요. 섭섭하거나 화가 나도 그 마음을 조금 건드려주는 순간 사르르 풀려요. 특히 공연 일이 저와 잘 맞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점이에요. 대부분의 창작자, 배우, 스태프는 돈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없으면 몸을 움직이지 않아요. 하기 싫은 작품은 1억 원을 준다고 해도 안 하거나 하고 싶은 작품은 아주 적은 돈을 준다고 해도 당장이라도 달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게 예술가잖아요. 돈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 부딪히게 돼요. 그런데 진심이 전달되면 그걸 바로 알고 마음을 열어요. 다행히 저의 그런 진심이 잘 전달되고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을 울리다
EMK뮤지컬컴퍼니로 출발해서 EMK인터내셔널과 EMK엔터테인먼트까지 사업을 확장했어요. EMK엔터테인먼트는 다양한 아티스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파생하게 되었나요?
EMK엔터테인먼트는 떼아뜨로와 EA&C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춰왔어요. 거의 10년이 지났네요. 김승대 배우가 저희의 ‘1호 배우’였는데, EMK뮤지컬컴퍼니를 설립하기도 전인 2007년 <햄릿>을 하면서 만났어요. 승대 씨가 자꾸만 매니지먼트를 맡아달라고 하더라고요. 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믿고 의지하는 울타리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때 승대 씨와 친했던 조순창 배우와 박은태 배우도 합류하면서 세 명으로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했어요. 메인 업무가 공연 제작이다 보니 매니지먼트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겠다는 목표보다는 아티스트를 믿고 지지해 주자는 마음이 컸죠. 지금 가장 오래된 소속 아티스트는 김주원 발레리나고, 외에도 임선혜 소프라노, 신영숙, 민영기, 김소향, 김준현, 에녹, 카이, 이범재 피아니스트 겸 음악감독을 담당하고 있어요.
지금도 아티스트를 믿고 지지해 주자는 마음으로 EMK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고 있으신가요?
한때는 이왕 하는 매니지먼트 사업이라면 제대로 해보려고 규모를 키워보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아티스트들을 적극적으로 방송이나 영화 장르로 진출하게 해줄 여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어요. 대신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을 확실하게 지원해 보자고 마음먹었죠. 여전히 지금도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소속 아티스트들이 행복하게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응원해 주고 싶어요.
EMK인터내셔널은 뮤지컬 작품의 배급과 판권을 관리하는 회사잖아요. 한국에서는 굉장히 보기 드문 회사인데, 설립 이유가 궁금합니다.
EMK인터내셔널은 제가 원해서 확장한 사업이에요. <모차르트!>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바를 토대로 2014년에 설립했죠. 지금까지도 많은 한국 제작사들은 직접 해외 라이선스 계약을 진행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에이전시나 판권·배급 전문가를 통해서 작품을 선정하고 계약하는 경우가 많죠. 저희에겐 이런 시스템이 맞지 않았어요. 전 평소에 인터넷 쇼핑을 잘 안 하는데, 물건을 직접 보지 않는 한 구매하지 않아요. 무언가를 살 때 보수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면이 있거든요. 이런 제게 직접 보지 않은 작품을 사 온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앞으로도 해외 작품은 직접 가서 보고 작가나 작곡가, 라이선스 권리자와 같이 이야기하고 이후에 조건을 협상해서 사 올 거예요. 그동안 직접 뮤지컬 라이선스를 들여오면서 저만의 노하우도 생겼고, 나아가 이걸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EMK뮤지컬컴퍼니가 창작뮤지컬을 만든다면 거꾸로 작품을 역수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계획도 있었고요. 2015년 <마타 하리>를 공연하면서 본격적으로 EMK뮤지컬컴퍼니의 콘텐츠를 해외에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올해부터는 활발하게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작품에 직접 투자하고 프로듀싱으로 참여하려고 했어요.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멈췄지만, 꾸준히 온라인으로 해외 시장을 살피며 소통하고 있어요. 나아가 앞으로는 한국의 좋은 콘텐츠를 모아서 세계 뮤지컬 시장에 소개하고 싶어요.
<모차르트!>를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요.
<모차르트!>는 2005년 우연히 일본에서 본 작품이에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당시 공연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런 상태에서도 작품을 봤는데 정말 좋았고 꼭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오리지널 제작사인 오스트리아 비엔나극장협회(VBW)에 연락하기 시작했어요. 거의 매일 1년 동안 메일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죠. 그러다 우연히 일본 <모차르트!> 공연 개막 날에 창작자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갔어요. 로비에서 당시 VBW의 대표님을 만나 다짜고짜 <모차르트!>를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정말로 이 작품을 하고 싶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죠. 갑자기 자기 명함에 담당자 이름을 적어주면서 당장 다음 달 안에 VBW를 찾아와서 이 사람을 만나라고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VBW 대표님이 담당자에게 ‘한국에서 소피가 올 테니 그녀와 계약하라’면서 퇴임하신 거죠. 비엔나로 가보니 제가 1년 넘게 메일을 보낸 담당자가 눈앞에 앉아 있는 거예요. 1년 넘게 당신에게 보낸 내 메일을 봤냐고 물어봤어요. 갑자기 VBW의 담당자가 일어나 두꺼운 종이 뭉치를 가지고 왔는데,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한국의 제작사들이 VBW에 보낸 메일들이었어요. 그런 굵직한 제안들이 있었는데, 당시 회사도 없던 제가 비엔나를 찾아온 거죠. 그때 전 <엘리자벳>의 공연권을 원하는 한국의 다른 제작사들과는 다르게 <모차르트!>를 먼저 가져가고 싶다고 했어요. <모차르트!>로 먼저 한국 시장에 비엔나 뮤지컬을 알리고 성공시킨 다음에 <엘리자벳>을 들여올 거라고. 이게 제 전략적인 계획이라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그렇게 VBW를 설득했고 회사 설립 전에 계약을 따냈어요.
대표님께서 하시는 일은 궁극적으로는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좋은 작품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있나요?
지금까지 저희는 주로 대극장 규모의 작품을 소개하고 창작해 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남녀노소 다양한 관객층의 마음이 움직이는 작품을 선택하려 해요. 친구나 부모님에게도 혹은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같이 보러 가자고 할 수 있는 작품인가.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존재하는가. 해외에서 새로운 공연을 볼 때, 해당 국가의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관람하는 것이 제겐 정말 중요해요. 왜냐면 뮤지컬은 언어를 뛰어넘는 감동이 있거든요. 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음악, 안무, 무대 세트, 의상, 조명 등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무슨 말인지 몰라도 감동받았다면, 후에 모국어로 공연됐을 때 얼마나 더 좋겠어요.
그렇다면 보자마자 정말 큰 감동을 안겨준 작품이 있나요?
<레베카>요. 원작 소설이나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보자마자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배우들의 연기나 노래뿐 아니라 시각적인 무대 장치, 소품, 의상, 조명 등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해서 그 자체가 감동이었죠. 낯선 언어의 작품을 봤는데도 무언가 확신이 생겼어요.
새로운 항해를 위하여
얼마 전에는 웹뮤지컬 <킬러파티> 공개 소식을 알렸어요.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에요. <마타 하리>와 <웃는 남자>를 편곡한 제이슨 하울랜드가 음악을 썼어요. 꼭 한번 작곡가로 같이 작업하고 싶었거든요. 지난 4월에 서로 안부를 전하다가 웹뮤지컬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고, 직접 제작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제이슨 하울랜드가 미국 버전을, 제가 한국 버전을 만들게 됐어요. 미국 버전은 8월에 먼저 공개됐고 한국 버전은 오는 11월에 공개돼요. B급 병맛 스토리인데 말이 안 되지만 특별한 매력이 있어요. 또 노래가 정말 좋아요. 현재는 시즌2 작업에 들어갔어요.
웹뮤지컬도 신선하지만, EMK뮤지컬컴퍼니는 공연 영상화에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얼마 전엔 <모차르트!> 공연 영상을 유료로 서비스했는데, 공연 영상화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2015년 <마타 하리>로 상영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공연 영상화를 계획했어요. 앞으로 한국에서도 공연 영상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거란 기대가 있었거든요. 사실 한국과 브로드웨이는 그동안 공연 영상화 사업에 부정적이었잖아요. 처음엔 일본 시장을 두드렸죠.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영상화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지금의 팬데믹 상황과 맞아떨어진 거죠. 꾸준히 공연 영상화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제작사들보다 빠르게 시도할 수 있었다고 봐요.
<모차르트!>의 유료 온라인 공연은 1만 5천 명이 관람했어요. 내부적인 평가는 어떤가요?
솔직하고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제겐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공연 영상을 촬영한 다음 날 데이터를 다운받아 그다음 날 일본에 바로 송출해야만 하는 스케줄이었어요. 살인적인 스케줄 덕분에 현장에서 생중계처럼 실시간 편집을 했어요. 사전에 촬영 팀과 회의를 많이 했어요. 장면별로 앵글과 큐잉을 구성했더니 300장이 넘는 큐시트가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꼼꼼하게 준비를 했는데도 현장 상황에 따라 앵글이나 화면 전환, 음악의 템포 등이 미묘하게 어긋났더라고요. 이번 경험을 통해 고퀄리티 영상을 위해 후반 작업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아홉 대의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이후에 모든 데이터를 다 받아놨어요. 원본 영상을 재편집해서 또 다른 버전의 영상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려 해요. 마치 프리미엄 감독판처럼요.
마지막으로 2021년의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2021년의 라인업은 이미 정해졌어요. 아마 큰 변동이 없다면 <팬텀>, <마리 앙투아네트>, <엑스칼리버>, <레베카>를 선보이게 될 거예요. 또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강화하고 다각화하려는 계획도 있어요. 올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시기였다면 내년엔 직접 실행하려 해요. 새로운 창작 뮤지컬인 <베토벤>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고, 새롭게 소개할 라이선스 작품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올해 <시스터 액트>의 내한 공연이 취소되어 아쉬운데 밝은 작품에 대한 갈증도 있어요. 또 장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작품도 시도해 보고 싶어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변하지 않으면 정체되는 거잖아요. 뭔가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해 보려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6호 202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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