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보다 설레고 아름다운 자매애『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콧의 소설 『작은 아씨들』은 그야말로 ‘자매애’의 바이블과도 같은 작품이다. 삶에 대한 가치관도 성격도 다른 네 자매가 서로의 곁에서 행복과 고통을 나누고, 그러면서 함께 성장해 가는 이 이야기는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독자들에게 ‘나도 저런 언니 혹은 여동생이 있었으면!’ 하는 로망을 심어주며 사랑받았다. 수많은 버전으로 리바이벌되면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형상을 만들어온 영화계의 영원한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소설 『작은 아씨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그처럼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네 자매의 개성에 있다. 차분하고 책임감 있는 메그와 활기차고 재능 있는 작가 지망생 조, 늘 남을 배려하는 선량한 베스와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 에이미까지,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마치가의 네 자매는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자신들의 사랑스런 매력을 한껏 드러내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들 자매는 각자의 단점으로 인해 서로 상처주지만 상처받는 모습조차 숨기지 않는데, 바로 이런 모습들이 오히려 네 자매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들어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더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아름답지만 허영심에 사로잡힌 메그, 다소 감정적이다 보니 앞뒤 안 가리고 후회할 짓을 저지르는 조, 수줍음이 너무 많아 낯을 심하게 가리는 베스, 얄미울 만큼 현실적인 깍쟁이 에이미 등 이들 자매들은 각자 자신들의 단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 하지만 서로 다투고 실망하고 부대끼는 과정 속에서 이들은 각자 뚜렷한 주관과 성숙한 내면을 지닌 훌륭한 여성들로 성장해 가는데, 바로 이러한 여성의 성장 서사로서 『작은 아씨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작은 아씨들』은 지금까지 무려 6번이나 영화화된 소설로도 손꼽히는데, 캐릭터 각자의 개성이 각각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매력과 어우러져 각 세대를 대표하는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형상을 구현해 왔다. 그중 많은 화제와 이슈를 가져온 버전은 1933년과 1949년, 1994년과 2019년 프로덕션을 꼽을 수 있다. 프로덕션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총출동하여, 각 시대를 풍미한 매력적인 배우들의 집합소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지적이고 독립적인 ‘조’와 사랑스런 ‘에이미’
조지 큐커 감독의 <작은 아씨들>(1933년)은 지적이고 독립적인 조의 캐릭터를 각인시킨 영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엔 조 역할을 맡은 캐서린 헵번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는데, 그녀는 당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지성파 여배우이자 실제의 삶에서도 독립적이고 진보적인 행보를 보여준 활동가였다. 미국영화협회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배우 1위로 선정되기도 한 캐서린 헵번은 자신의 성격과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지적이고 활동적인 여성 조를 연기하면서 조라는 캐릭터의 완벽한 스테레오 타입을 사람들 뇌리에 심어주었다.
1933년 버전이 조의 캐릭터를 각인시켰다면, 1949년 버전의 <작은 아씨들>은 아름답고 사랑스런 에이미 캐릭터를 완성한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세기의 미녀’로 손꼽히며 당대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새침한 공주 같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형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에이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당대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동화나 그림 같은 세트 및 배경과도 잘 어울리는 에이미의 러블리한 외모와 그보다 더 사랑스런 연기는 그 자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극 중 조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에이미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한곳에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의 1994년 버전과 그레타 거윅 감독의 2019년 버전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한 캐스팅으로 유명하다. 1994년 영화에서는 절정의 생기와 매력을 자랑하는 위노나 라이더가 조 역을, 후에 어마어마한 배우들로 성장하는 클레어 데인즈와 커스틴 던스트가 각각 베스와 어린 에이미 역을 맡았고,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던 수전 서랜든이 어머니 역을 맡아 기품 있고 현명한 네 자매의 어머니상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여기에 아직 앳된 모습의 크리스천 베일이 이웃집 청년으로 등장해 정중하면서도 예민한 성품을 지닌 로리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레타 거윅의 최신판 <작은 아씨들> 역시 캐스팅만으로 엄청난 화제에 오른 작품이다. 거윅 감독의 페르소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얼샤 로넌이 주인공 조를 맡은 데다 엠마 왓슨과 플로렌스 퓨가 각각 메그와 에이미 역에 캐스팅됐다. 또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티모시 샬라메가 로리로 등장해 개봉하기도 전부터 수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하지만 2019년 <작은 아씨들>은 단순히 화려하고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승부하기보다 기존의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시선과 신선한 각색으로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다. 일단 구성 면에서 이 작품은 단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구성과 편집을 사용함으로써 네 자매의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주인공 조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모습에 묻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다른 자매들의 선택에도 크게 무게를 실어주었다. 특히 이 버전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막내 에이미 캐릭터다.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철없는 새침떼기로 그려지곤 했던 기존의 에이미 대신, 플로렌스 퓨의 에이미는 현실 감각을 지녔으면서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똑똑하고 솔직한 여성으로 등장한다. 소설 『작은 아씨들』 을 영화로 옮긴 모든 버전을 통틀어 가장 현대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진 에이미 형상이라 할 수 있다.
동시대의 시선으로 그려낸 네 자매의 초상
그레타 거윅 감독이 만든 <작은 아씨들>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결말의 처리다. 앞의 세 버전들이 캐릭터와 세부 에피소드는 조금씩 달라도 모두 조가 베어 교수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로맨틱한 장면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번 버전은 조가 결혼을 택하지 않고, 자신이 꿈꾸던 작가와 교육자의 삶에 매진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또한 조가 출판 편집자와 “왜 여주인공은 꼭 결혼해야 하느냐”며 논쟁을 벌이는 등 몇몇 각색된 장면을 집어넣음으로써 원작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해석해 내고자 한 감독의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렇듯 당대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의 열연과 당대의 시선으로 새롭게 원작을 바라보려는 시도들이 있었기에 『작은 아씨들』 은 수많은 세대를 거쳐 사랑받고 공감받을 수 있었다. 아마 이후로도 메그와 조, 베스와 에이미는 늘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해 당대를 대표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이자 아름다운 자매애의 주인공들로 꾸준히 사랑받게 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6호 202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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