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현
노력으로 빚어낸 운명
한국 뮤지컬계의 역사를 새로 쓴 작품 <오페라의 유령> 초연 크리스틴으로 첫 무대에 선 김소현은 자신이 데뷔한 2001년 12월 4일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냐고 되물으면서. 데뷔 이후 여러 작품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했음에도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능력은 오로지 노력 하나라며 자신을 다잡았다. 무대에 서는 것은 마라톤 경기를 100미터 단거리를 뛰듯 달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김소현의 굳은 의지는 삶의 원동력이 된 지 오래다. 이제 우리는 안다. 오랜 시간 김소현이 쏟아낸 땀방울들이 모여 여유로운 무대 위의 모습으로 완성됐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될 2001년 12월 4일
이번 인터뷰는 <더뮤지컬>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기획됐어요. 주요 공연 관계자와 관객 들이 참여한 설문 조사에서 한국 뮤지컬이 성장하는 데 기여한 배우로 뽑힌 소감이 어떤가요.
이 투표에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뮤지컬을 좋아해서 뮤지컬배우의 삶을 살아왔고 무언가를 바란 적은 없지만, 마치 지난 시간의 노력을 보상받은 느낌이었어요. 소식을 듣자마자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어요. 게다가 <더뮤지컬>이 스무 해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함께 들어서 그런지 그 의미가 남달랐어요.
<오페라의 유령> 크리스틴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데뷔했죠. 운명을 바꾼 2001년은 어땠어요?
운이 좋았다는 표현은 식상하지만 정말 그랬어요. 한국 뮤지컬 시장은 <오페라의 유령> 전과 후로 나뉜다고 이야기하잖아요. 뮤지컬을 잘 모르던 제가 엄청난 작품으로 데뷔했고 뮤지컬 팬들을 넘어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동안 주변 선배님들이 제게 ‘넌 참 운이 좋은 배우야’라고 말씀해 주셨죠. 돌이켜보면 2001년에는 얼떨떨했지만 늘 감사하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어요. 저도 내년에 데뷔 20주년이 되거든요. 지금까지 출연한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들어 집에 두었는데, 이 인터뷰를 앞두고 인형들을 찬찬히 보게 되더라고요. 새삼 20년 동안 좋은 작품과 역할을 많이 만났다는 걸 깨달았죠. 다시 태어나도 이렇게 운 좋게 뮤지컬배우로 활동할 수 있을까요? 2001년에는 무대가 지닌 중압감을 전혀 몰라서, 지금과는 다르게 용감했고 거침없었어요. 지금처럼 무대가 떨리거나 무섭지 않았죠. 만약 2001년의 저를 만날 수 있다면 그런 모습을 배우고 싶어요.
그동안 그렇게 많은 무대에 서 왔는데 지금도 무대에서 많이 떨리나요?
그럼요. 그동안 무대에서 실수도 해봤고 아파도 봤고 많은 경험을 했잖아요. 그래서 더 그래요. 공연 전엔 저도 모르게 긴장돼요. 데뷔 초반에는 밥을 든든하게 먹고 무대에 올랐는데, 지금은 속이 안 좋거나 혹시라도 성대에 안 좋은 알레르기 반응이 생기면 어쩌나 싶어서, 공연 4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연륜이 쌓이면서 좋은 점은 걱정에도 노하우가 생긴다는 거예요. (자기 관리가 철저하시군요. 지난 <더뮤지컬> 표지 인터뷰에서도 정말 바쁘게 살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한창 바쁠 때였어요. 지금은 조금 여유로워졌어요. 당시엔 연습과 공연을 병행했고, 그 외 다른 활동도 하고 있었어요. 최근엔 코로나19로 모두가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잖아요. 저는 그동안 매년, 매 무대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면서 달려왔거든요. 그런데 올해 갑자기 멈춰버린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이상해요. <모차르트!>를 하면서 언제라도 공연이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당연하게 다가왔던 모든 것들이 감사하게 느껴졌죠. 커튼콜에서 객석에 불이 켜지면 모든 관객이 마스크를 쓴 채로 박수를 치고 있어요. 그걸 볼 때마다 눈물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어요. 이 마음으로 공연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정말 열심히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다짐도 했어요. 올해는 특히나 관객의 소중함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데뷔 전에 성악과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고 들었어요. 만약 <오페라의 유령> 대신 유학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요?
솔직하게 말하면 10년 차에 온 슬럼프 때엔 오페라를 계속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 오페라 곡을 들으면 눈물이 왈칵 났죠.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에 참가할 당시에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심지어는 이탈리아에서 제 학업을 지원해 주실 분도 계셨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에 참여했는데, 주말에 최종 오디션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얼마나 아무것도 몰랐냐면 ‘저 주말에는 이탈리아에 있을 거예요’라고 했죠. 아직도 심사위원분들의 어이없는 표정이 기억나요. 하하. 이탈리아에 제 사정을 말했더니 딱 1년만 더 기다려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1년 뒤에 저는 뮤지컬을 선택했죠. 그때 이탈리아 유학을 갔더라면 제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아요. 그래도 지금까지 오페라보다 뮤지컬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하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생각지도 못하게 뮤지컬을 시작하게 된 거잖아요. 데뷔 초부터 뮤지컬배우로 활동하기 위해서 많이 고민한 부분이 있나요?
노래요.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쉽게 이해하실까요? 음. 노래가 스파게티 면이라고 하면, 스파게티 면을 뽑을 수 있는 기계는 인간의 성대에요. 성악은 스파게티 면 기계에서 스파게티에 맞는 정확한 면을 뽑아내는 거예요. 성악가들은 옳고 명확한 소리를 내는 걸 평생 연구하죠. 그런데 뮤지컬은 명확한 소리를 내면서 다양한 톤을 내야 해요. 장면마다 감정에 덧붙여진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죠. 그래서 소리를 어떻게 다양하게 낼 것인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옳고 바른 소리만 공부하다가 일부러 찌그려서 표현하기도 하고 감정을 덧입히고 많은 방법을 시도했어요. 또 뮤지컬은 마이크를 사용하잖아요. 그런 것도 고민했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지난 기사를 읽어보니,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데뷔 일인 2001년 12월 4일을 언급했더라고요.
김소현의 인생이 달라진 날이라 잊을 수가 없어요.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평범한 대학원생이 우연한 기회에 엄청난 기대작의 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합격하게 됐잖아요? 제 인생의 첫 뮤지컬 무대인 2001년 12월 4일 <오페라의 유령> 커튼콜에서 뮤지컬에 마음을 확 빼앗겼죠. 우리 말로 연기하고 노래하는 뮤지컬은 관객과의 교감이 바로바로 이뤄지잖아요. 그것도 짜릿했는데 커튼콜 무대에서 쏟아지는 박수를 듣자마자 직감적으로 ‘이걸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굳은 결심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도 무의식적으로 그랬어요. 그래서 유달리 2001년 12월 4일을 잊지 못하는 거고요. 물론 이렇게 오랫동안 무대에 오를 거란 예상은 못했지만요.
데뷔 초반엔 본인을 뮤지컬계의 ‘아웃사이더’ 같았다고 했어요. 새로운 분야에 처음 도전했고 낯선 환경에서 외로웠을 거라 생각해요. 어떻게 견뎌냈나요?
마치 이방인 같은 기분이었어요. 뮤지컬배우 김소현이라고 말하기엔 스스로가 부끄럽고 어려웠어요. 뮤지컬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지만, 그런 마음으로 10년을 버텼어요. 데뷔 후 10년이 흘러 다시 <오페라의 유령>과 <지킬 앤 하이드>에 참여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좋은 작품에 참여하고 바쁘게 살았지만, 무대 위와 아래 어떤 곳에서도 즐겁지가 않았어요. 주변에서 슬럼프가 왔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에서 상대역으로 손준호 씨를 만났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혼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결혼하고 임신하면서 처음으로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대를 떠나게 됐는데, 그제서야 무대에 대한 제2의 열망이 찾아왔어요. 출산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엘리자벳>에 다시 데뷔하는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그리고 그 전과는 전혀 달라졌어요. 데뷔 때는 아무것도 몰랐고, 10년이 흐르니 은퇴를 생각했고, 그러다 다시는 무대에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꿈처럼 돌아오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는 앞만 보고 달렸어요.
두 번째 맞이한 터닝 포인트
출산 후 복귀한 2013년 <엘리자벳>에서 김소현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어요.
스스로도 <엘리자벳>을 통해 그동안의 이미지를 깨고 나왔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낳은 경험을 바탕으로 엘리자벳이 지닌 모성애를 잘 보여줄 수 있었죠. 나이를 먹을수록 지금까지 쌓인 인생 경험이 연기에 녹아들 수 있잖아요. 10년이 넘도록 뮤지컬배우로 활동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여러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것들에 무대에 대한 갈증이 더해졌으니까 시너지가 폭발한 거죠. 이런 작품을 만나서 행복해요. 만약 그때 <엘리자벳>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또 다른 인생을 살았을 거예요.
결혼과 출산이 인생에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군요.
준호 씨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 결혼하면 배우로서 네 인생은 끝나는 거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하고 결혼을 왜 하냐. (웃음) 물론 준호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 거예요. 지금은 저도 그렇고 준호 씨에게도 윈윈이잖아요. 처음에는 같은 작품에 참여해도 함께 무대에 서지는 않았어요. 의도적으로 피했어요. 일상이 노출되는 방송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무대 위 저희의 모습에 몰입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부부페어’라는 애칭을 붙여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준호 씨는 정말 고맙게도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제 복귀를 밀어줬어요. 임신했을 때 다시는 무대에 못 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우울해하고 많이 울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준호 씨가 제게 뮤지컬배우로서의 삶을 다시 찾을 때까지 마음껏 하라고, 본인은 당분간 공연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 덕에 복귀할 용기를 냈고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었어요.
관객들이 김소현에게 거는 기대감이 클수록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긴장을 정말 많이 해요. 주변에서는 엄살을 부린다고 하는데 정말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떨려요. 쉽게 안정되지가 않아요. 처음 데뷔했을 때처럼 활기차게 마음대로 무대를 뛰어다닌 지가 언제인지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제 성격 중에 싫은 부분을 꼽자면 좋은 작품과 역할을 만나면서도 그걸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 거예요. 연습한 것만큼 마음껏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요. 무엇보다 저는 뮤지컬이 좋고 무대가 좋은데 너무 많이 긴장해서 마음껏 행복하지 못해 안타까워요. 덕분에 옆에서 준호 씨가 고생을 많이 하고 있어요. 왜냐면 준호 씨는 자존감이 굉장히 높거든요. 제발 닮고 싶어요. 공연 전에는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절 보면서 ‘연습했잖아! 두 달이나 했잖아! 그냥 해!’라고 말해 주는데, 이런 말을 하는 준호 씨가 부러워요. 제 앞에서 괜히 강한 척하는 건지도 모르지만요. 하하.
얼마나 긴장을 하길래, 준호 씨가 그런 말을 할 정도인가요?
올해 <모차르트!>에서는 ‘황금별’을 부르기 전까지 거의 한 시간을 떨려서 앉지도 못하고, 서서 수십 번 노래를 부르고 그랬어요. 대기실을 후배들이랑 같이 썼는데, 조용히 ‘언니, 정말 대단해요’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하하. 또 하루는 제가 연습하는 걸 몰래 찍어 보내면서 ‘언니, 오늘은 몇 번 부르셨는지 아세요?’라고 횟수를 세어서 주기도 했어요. 자신들 노래보다 ‘황금별’을 더 많이 듣는다고 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서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얘들아, 정말 미안해. (웃음) 사실 재작년과 작년에는 거의 쉬는 날이 없어서, 덕분에 365일 내내 긴장을 놓지 않았어요. 지칠 즈음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마지막에 웃기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매일매일 웃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공한 거다. 이걸 듣자마자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죠. 저도 마지막에 웃고 싶어서 치열하게 살았거든요. 지난 몇 년 동안은 매일매일 웃고 있지 않았어요. 그리고 마음을 바꿨어요. 생각해 보니까 준호 씨도 이런 말을 많이 해줬는데 제가 흘려들었던 거더라고요. 왜 이렇게 즐기지 못하고 스스로 엄격하게 열심히 사는지 모르겠다고 했거든요. 앞으로는 매일매일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김소현’ 하면 왕비나 공주 이미지기 떠오르잖아요. 이렇게 확고한 잔상이 오래 남는 건 배우로서 숙제일 수도 있는데, 어떤가요?
깨부수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이미지를 탈피하는 도전은 언제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어요. 오히려 계속 참여했던 작품과 역할을 통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희열을 느낄 수 있거든요. 최근에는 유독 했던 작품에 다시 재출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지난 시즌에서 좋았던 점을 더 발전시키고, 그 안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물론 도전하고 싶은 작품과 역할이 생기면 오디션에 꼭 참여해서 새로운 김소현의 모습을 보여주려 해야죠.
20년 가까이 활동을 했는데, 아직도 오디션을 봐요?
그럼요. 이번 <엘리자벳>도 오디션에 참가했는걸요. 지난번 <팬텀>도 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봤어요. <위키드>도, 처음 참여했던 <엘리자벳>도 당연히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됐어요. ‘오디션은 신인 배우만 보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경력이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잘 표현하고 무대에서 잘하는 건 아니니까요. 기자님, 믿지 못하시는 눈빛인데요? (웃음) 저 오디션에서 탈락한 경우도 정말 많아요. <미스 사이공> 초연 마지막 오디션에서는 세 명 가운데 제가 탈락자였어요. 오디션에 탈락하면서도 많은 걸 배워요. 물론 제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기는 하죠. <미스 사이공>에 떨어지고 나서는 2주 동안 식음을 전폐하기도 했어요. (웃음) 그런데 찬찬히 돌아보니까 ‘내가 이런 점에서 이 작품 혹은 캐릭터와 맞지 않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거절을 당하면서 ‘뮤지컬배우 김소현’이 어떤지 바라볼 수 있어요. 또 오디션에 계속 참여해야 긴장감도 생기고요. 사실 다른 오디션보다도 한 번 출연한 작품의 오디션을 다시 보는 게 정말 떨려요. 2013년 <엘리자벳> 오디션에서는 손이 너무 떨려서 맨손으로 들어가지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악보를 들고 덜덜 떨면서 오디션장 문을 열었는데 반갑게 맞아주시다가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절 봤어요. 다리가 후들거려서 주저앉을 뻔했다니까요. 오디션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난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했죠.
그럼 앞으로 욕심나는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어요?
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콕 집어서 선뜻 말하지 못했는데, 저도 요즘 많이 바뀌었나 봐요. 이번 기회에 다 말해야지. (웃음) 얼마 전부터 대구뮤지컬페스티벌의 ‘뮤지컬스타’라는 경연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여기에 참가한 스물세 살 학생이 <호프>를 준비했더라고요. 딱 한 곡만 들었는데 완전히 반했어요. 작품이 좋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들었는데, 아쉽게도 공연을 보지 못했거든요. 곧 재공연이 올라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요. 다음에 오디션이 있으면 지원해 볼 생각이에요. 그리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맘마미아!>도 하고 싶어요. 아, 맞다.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도요. 그렇게 카리스마가 넘치는 역할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 많이 해요.
연기해 온 인물 중에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캐릭터를 꼽는다면?
단연 엘리자벳이요.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는 감정이 가장 클테지만, 엄마 역할을 맡아서 더 그럴거예요. 무대 위에서 감정의 폭을 마음껏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목 놓아 울기도 했어요. 그 전까지는 내가 나를 무대에 쏟아낸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게 무대인지 현실인지 모르게 다 쏟아내고 싶었던 순간이었어요.
완벽히 채우는 매일
배우로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은 뭐라고 생각해요?
노력. 이만큼 노력했으니까 됐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도 더 좋은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안 좋은 평가를 받을 때도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모든 건 제 탓이라 생각해요. 관객들은 몇 달 전부터 티켓팅을 하고 이날을 기다려 와주셨고, 심지어는 티켓 가격도 비싸고 공연 시간도 길잖아요. 솔직히 조금이라도 작품이나 저와 관련된 안 좋은 평가를 들으면 속상해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주할 수 없고 화들짝 정신이 차려지죠. 제게 있는 아쉬운 부분을 채워 넣어야만 하니까 몇 배를 더 노력하고요.
유튜브에서 소현 씨의 많은 영상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잖아요. 지난봄에 TV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아역 배우와 부른 <모차르트!>의 ‘황금별’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고요.
그 무대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제 아이디어였어요! 댓글에 누구 아이디어냐고 묻는데 제가 직접 쓸 수는 없잖아요. 하하. 많은 분이 (안)소명이와 무대를 한다고 하니까 발랄하고 밝은 무대를 생각하셨나 봐요. 이 무대를 이렇게 연출하고 싶다고 했을 때 처음엔 다들 부정적이었어요. 내 선택이 잘못됐나 싶었지만 그냥 밀고 나갔죠. 무엇보다 제가 소명이에게 ‘황금별’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나는 나만의 것’을 더해서 지금 저의 상황과 앞으로 소명이의 미래에 용기를 주려 했고요. 많은 댓글을 보면서 제가 전하고 싶었던 진심을 잘 느껴주신 것 같아 뿌듯해요.
김소현처럼 되고 싶다는 후배들이 많아졌는데,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어때요? 자주 하는 조언이 있나요?
20년이 흘렀지만 제가 완성됐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매 공연이 데뷔 무대처럼 떨리는데 이런 저를 보고 꿈을 꾼다는 것이 부끄러워요. 진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죠. 많은 분들이 SNS를 통해서 고민 상담을 하세요. 종종 어린 친구들이 나이가 많아서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없다고 속상해하는데, 그때마다 그 나이에는 저도 제대로 시작을 하지 못했다고 말해요. 시작도 안 해보고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도 하고요. 마지막으로는 저보다 잘되어야 한다고 해요. 꿈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이런 고민을 하는 많은 친구들이 저보다 훨씬 잘하고 잘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뮤지컬배우는 데뷔를 멋있게 했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오디션을 수십 번 떨어지고 주저앉아서 되는 일도 아니에요. 끝도 없는 길이에요. 공연하는 사람들은 평생토록 열심히 해야만 해요. 스스로 만족할 수도 없고 만족해서도 안 돼요. 전에 제가 책을 냈는데, 뮤지컬배우는 100미터 달리기 힘으로 마라톤 경기를 뛰는 사람이라고 썼어요. 그만큼 끊임없는 노력, 긴장감을 갖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없으면 시작도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동안 걸었던 20년에 대해 점수를 매겨본다면 몇 점일까요?
40점이요. 그런데 점수가 100점이 되면 끝나는 거잖아요. 스스로 100점이라 생각하면 그땐 은퇴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점수를 매기고 싶지는 않아요. 스스로 한 번도 만족한 무대를 한 적이 없어요. 저는 아직도 모자라고 평생 더 배워야만 해요.
앞으로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의지나 믿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충 좀 해. 내려놓을 때도 됐잖아.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진심으로 화가 나요. 끝이 없는 노력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죽을 때까지 이 마음을 놓고 싶지 않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연륜과 경험을 얻지만 그것만큼이나 잃는 것도 있어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노력을 해야만 하는 이유죠.
앞으로 20년 뒤에 김소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지금까지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지만 앞으로의 구체적인 모습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20년 후에 내 모습을 상상하고 선을 그어놓으면,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속상할 것 같아요. 또 만약 그 모습보다 더 좋아도 왠지 모르게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대신 오늘 하루에 충실하고 열심히 웃으면서 살려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5호 202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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