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루미에르>의 히틀러 유겐트
세뇌 교육이 길러낸 나치의 어린 전사들
나치가 모든 권력을 장악했던 1934년, 총통에 오른 히틀러는 제3제국 수립을 선포했다. 제1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 제2제국인 독일 제국을 이어 영원한 천년 왕국을 세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고 나서 이 계획을 현실적으로 실현시켜 줄 독일의 다음 세대, 유소년과 청소년들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훈련시키기 시작한다. 이들이 바로 히틀러의 비밀 병기라 불린 어린 전사들 히틀러 유겐트다.
초기의 히틀러 유겐트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단체가 아니었다. 키와 몸무게,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깔, 얼굴과 몸의 비율 등 엄격한 ‘인종 기준’ 선발을 거쳐 순수 아리아인 혈통으로 판정을 받은 청소년들에 한해 입단이 허락되었다. 독일 각지에 세워진 특수 학교에서 이들은 인종 및 진화론에 대한 이론수업과 강인한 체력을 기르기 위한 달리기, 수영, 체조 등의 체육 교육, 그리고 수류탄 던지기나 총 사용법 등 전쟁을 위한 훈련에 이르기까지 정신과 육체 모두 강인한 나치 전사가 되기 위해 강도 높은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우러러보는 단정한 제복과 빛나는 배지, 단원임을 상징하는 단도와 완장 등은 그들로 하여금 특별한 집단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히틀러의 유럽 정복 야심이 구체화되는 1936년에 이르러서는 독일의 신체 건강한 청소년은 모두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해야 한다는 법령이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전쟁을 위한 예비 군사들을 길러내기 시작했다. 14세에서 18세 소년들이 히틀러 유겐트의 주요 멤버들이었고, 18세가 넘으면 정식 나치 당원이 되거나 군인으로 전장에 투입되었다.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초반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단번에 점령할 만큼 강한 군사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오랜 교육으로 탄탄하게 길러진 히틀러 유겐트와 나치 돌격대 등의 조직을 꾸준히 보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소년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하일 히틀러’를 외치고, 해맑은 미소를 띤 채 ‘유대인 박멸’ 표어를 붙이고 다니고, 조국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이들 히틀러 유겐트의 사진이나 기록 영상을 보고 있자면, 무섭고 섬뜩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안쓰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창 배우고 고민해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어린 소년들은 모든 선택권과 생각할 자유를 박탈당한 채, 오로지 국가가 만들어낸 허상을 위한 전사로 길러졌던 것이다.
신체와 정신 모두 강인한 나치로 키워내기 위한 히틀러 유겐트의 프로그램에서 고된 체력 단련보다 더 섬뜩한 것은 정신 개조 교육이었다.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 유겐트의 총사령관에게 절대 복종하며 위험에 처했을 때 그분에게 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라는 엄숙하고도 무시무시한 선서로 입단을 시작하는 이들 히틀러 유겐트는 군대와 똑같은 조직 생활 속에서 엄격한 규칙과 무조건 복종을 수년간 체화했고, 수업 중에는 끊임없이 아리아인의 우월한 인종 의식과 유대인에 대한 비방을 배우고 반복해야 했다. 한창 가치관이 성립될 나이에 이토록 집중적인 세뇌 교육을 받은 이들은 히틀러의 선택이라면 무엇이든 옳다고 여겼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 또한 기꺼이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히틀러 유겐트는 후방에서 군대를 지원하거나 보급을 담당했고,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고학년부터 차례로 최전선에 투입되었다. 소년들은 작은 체구를 이용해 적군에 몰래 잠입하거나 참호에 숨어 있다 급습하는 작전에 투입되었고, 수류탄과 총을 사용한 전투에도 불려 나갔다. 철저한 사상 교육으로 무장한 소년들은 조국의 부름에 망설임 없이 달려 나갔지만, 미숙한 기술로 지뢰나 수류탄에 희생되는 일이 많았고, 본진에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영문도 모른 채 총알받이로 사라지기도 했다. 전쟁 내내 히틀러의 살인 병기로 활용되며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점에서 이들은 분명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장기간의 세뇌와 교육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모른 채 나치의 무기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는 이들의 삶 또한 충분히 비극적이다.
유겐트의 양면성을 그린 영화들
이처럼 양면적인 특성과 상반된 평가를 보여주는 히틀러 유겐트는 예로부터 수많은 영화, 특히 나치와 제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해 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에서 이들은 순수한 삶을 살고자 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치의 선전 도구로 전락해 버리거나, 반대로 큰 꿈을 품고 입단했으나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갈등하는 양면성을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데니스 간젤 감독의 <나폴라>(2004)는 청운의 꿈을 품고 엘리트 사관 학교에 입학한 평범한 소년 프리드리히가 나치 교육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모든 것을 잃고 망가지는지 그 과정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엄격한 규율과 비인간적인 교육 속에서 프리드리히는 동료와 친구를 잃고, 인간으로서의 자긍심마저 박탈당한 채 괴로워하다가 결국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학교로부터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맞아서 엉망이 된 그의 얼굴에 스치는 희미한 미소는 그가 적어도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돌아왔음을 암시하며 여운을 남긴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유로파 유로파>(1990)는 실존 인물인 솔로몬 페렐의 삶에 기반해 아이러니한 인생 역정을 보여준다. 유대인인 솔로몬은 피난길에 소련군에 이끌려 공산당 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다. 그런데 독일어와 소련어가 능숙한 덕택에 군대에서 통역관으로 활동하게 되고, 얼떨결에 공훈을 세워 포상으로 히틀러 유겐트에 입단하게 된다. 영화는 파란만장한 솔로몬의 삶을 따라가면서도 극적인 사건보다는 그의 정체성의 혼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태인이면서도 자신의 출신을 숨긴 채, 유태인 박멸을 외치는 유겐트가 되어야 하는 소년 솔로몬의 고민과 갈등이 선명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영화다.
한편 타이키 와이티티 감독의 최신작 <조조 래빗>(2019)은 코미디 형식을 빌려 나치의 허상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히틀러를 상상 속 친구로 둘 만큼 나치의 이념에 헌신적이었던 어린 조조가 엄마와 친구, 그리고 첫사랑을 만나면서 어떻게 공허한 이념의 세계로부터 진짜 삶의 세계로 나오게 되는지를 성장 서사의 형식으로 그려낸다. 작품 초반부에 조조가 히틀러 유겐트 주말 캠프에 참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악명 높은 히틀러 유겐트의 교육 프로그램들을 하나하나 희화화함으로써 이들이 그토록 엄숙하게 수행했던 임무들이 실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들이었는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비록 비장한 코미디로 처리되긴 했지만, 마지막 전쟁 장면에서 뒷배경의 포연 속에 사라지는 어린 소년들의 모습은 누가 이들을 이 비극의 현장으로 몰고 온 것인지 새삼 묻고 싶게 만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5호 202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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