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CULTURE INTERVIEW] <아들> 이주승·강승호, 정답, 그 어딘가를 향해 [No.204]

글 |배경희 사진 |최창민 2020-10-08 5,298

<아들> 이주승·강승호
정답, 그 어딘가를 향해


연극열전이 올해 선보이는 세 번째 작품 <아들>이 새롭게 국내 관객과 만난다.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2018년 작품인 <아들>은 마음의 길을 잃어버린 십 대 청소년 니콜라를 둘러싼 가족 이야기다. 초연 무대를 앞두고 인터뷰로 만난 니콜라 역의 이주승과 강승호는 인터뷰 내내 ‘모르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는데, 이 말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혼란에 싸여 있는 니콜라가 가장 많이 하는 표현이다. 어느 누구도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혼란을 이 두 배우는 무대에서 어떻게 보여줄까.



닮고도 닮지 않은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렸나요.
이주승_
2년 전에 연극열전에서 제작한 <킬롤로지>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당시 거의 8년 만에 제 인생 두 번째 연극을 한 거였는데, 대사가 거의 독백이다 보니 배우들 간의 호흡이 중요한 작품도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러다 작년에 <아들>이란 작품의 대본을 받게 된 거예요. 처음 대본을 읽자마자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순 없어도 곧바로 제 자신이 설득되기에 충분한 이야기라고 느꼈어요. 저는 그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출연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강승호_ 저도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니고, 두 번째 읽었을 때 바로 몰입이 됐어요. (웃음) 대본에 쓰인 말 자체가 어렵지 않아 막힘없이 읽히거든요. 제 생각에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단순한 어휘와 일상적인 표현들을 쓴 것 같아요. 등장인물 각자 내면에 소용돌이가 치고 있어서 일부러 더 쉽게 쓴 느낌? 대사와 대사 사이에 담긴 행간의 의미가 매력적인데, 저는 거기에 많이 끌렸던 것 같아요. 작품에 들어가서 이 인물을 깊이 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다고 들었어요. 연습 과정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나요?
강승호_
어떤 작품을 하게 되든 제가 걱정하는 부분은 사실 하나예요. 배우란 직업은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저는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 사람들하고 금세 가까워지지 못하거든요. 그런 점에 대한 고민이 늘 있어요. 그런데 이번 팀은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어가는 분위기라 좋아요. 그럼에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느낌? 이건 연출님 영향인 것 같아요. 민새롬 연출님은 이번에 처음 뵈었지만, 지금까지 제가 받은 인상으론 많은 사전 준비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이세요. 
이주승_ 맞아요, 연출님은 뭐랄까, 저희를 자연스럽게 작품에 집착하게 만드세요. (웃음)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가 쓰고 파리와 런던에서 공연한 다음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거예요. 연출님은 세 개 버전 대본을 하나씩 다 비교하셨대요. 보통 작품마다 4~6개월의 사전 작업을 거친다고 하시는데, 저희는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그만큼 준비 시간을 갖기가 어렵잖아요? 연습 초반에는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각자 다르니까 서로 속도를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도 빨리 연출님의 속도에 맞춰야겠다고 생각할수록 더 열심히 하게 돼서 좋더라고요.

이번에 연기할 니콜라는 정신적 방황을 겪고 있는 십 대 소년이에요. 실제 성격하고 잘 맞는 부분이 있는 인물이라 느꼈나요, 아니면 진짜 연기로 만들어야 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나요.
강승호_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저한테 잘 어울리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니콜라가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게 이해됐고, 성격 자체가 저하고 정반대는 아닌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왠지 모를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잘 모르겠어요. 니콜라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이거예요. ‘모르겠어요’. (웃음) 요즘 연습실에서 자신감이 조금씩 떨어지고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한편으론 이런 감정 상태가 니콜라를 표현하는 데는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주승_ 저는 어릴 때 삶이 혼란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그런 만큼 처음엔 니콜라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승호 마음이랑 똑같아요. 니콜라 대사 중에 ‘자기 자신이 둘로 나누어진 것 같았다’는 말이 참 아픈데, 저는 그렇게 극한의 감정 상태까지 내려가 본 적이 없는 것 같거든요. 그러다 보니 표현하는 데 조심스러워 지고 ‘지금 내가 하는 게 맞나?’ 하고 자꾸 제 자신을 의심하게 돼요. 연기에 정답은 없다고 해도 정답 어딘가에 최대한 가깝게는 가고 싶은데, 제가 느낀 대로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워요.

이 작품은 부모님의 이혼 후 엄마랑 살았던 니콜라가 아빠랑 살고 싶다고 하면서 시작돼요. 아빠가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 집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는 건 어떤 마음에서였을까요.
이주승_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살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나 환경을 바꾸어보려는 거죠. 니콜라의 첫 등장에서는 그런 절박함이 느껴져요. 
강승호_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희 연습실에 정신과 박사님이 오셔서 니콜라의 심리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만약 니콜라가 성인이었다면 자립해서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을 텐데,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방법을 못 찾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벽에 부딪히는 거라고요. 아버지가 새엄마와 사는 공간은 니콜라에게 트라우마로 다가올 수 있지만, 어쩌면 아픔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픔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요.

아빠 피에르와 엄마 안느가 니콜라에 대해 자신들의 이혼 전에는 밝았던 아이라고 기억하잖아요? 가장 가까운 존재면서도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 가족의 비극 아닐까 싶은데, 두 사람은 니콜라가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을지 생각해 봤나요.
강승호_
대본에 있는 내용에 제 추측을 더해 보자면, 니콜라는 어렸을 적 부모님과의 관계를 통해 행복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사랑으로 행복감을 크게 느낀 만큼 달라진 상황에 더 큰 상처를 받았겠죠. 하지만 분명한 건, 단지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만으로 니콜라가 이렇게 바뀌지는 않았을 거예요. 세 사람 다 자기 위치에서 삶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그 최선의 방식이 자꾸 삐거덕대는 상황이 안타까워요.
이주승_ 승호 말대로, 피에르와 안느 둘 다 각자 방식으로 니콜라의 상황을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해요. 니콜라 입장에서도 그 마음이 느껴져서 두 사람에게 고마울 거예요. 다만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움도 커지기 마련이니까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이 점점 커지는 거죠. 저는 그 부분이 제일 마음이 아파요. 차라리 아빠가 망나니 같은 사람이라 원망의 감정만 가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제 생각엔 니콜라가 부모님의 이혼 전부터 우울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을 것 같아요. 부모님한테 티를 안 냈을 뿐이죠.




연기하는 삶의 의미
이미 거쳐 온 연령대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좀 더 수월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나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나이의 캐릭터는 상상으로 채워야 할 요소가 더 많을 것 같거든요.
강승호_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요. 실제 경험해 보지 않은 걸 상상해서 연기하는 게 더 수월해요.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캐릭터에 접근하려다 보면, 시작부터 하나의 프레임을 씌우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보다는 ‘무’의 상태에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게 더 좋아요. 
이주승_ 전 중년의 나이보다는 이미 경험한 십 대나 이십 대를 연기할 때 부담을 덜 느껴요. 아무래도 그 연령대 고유의 분위기가 어떤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나이에 그 인물을 가두고 싶진 않아요. 저희 팀 이석준 선배님이나 정수영 선배님을 보면 제 또래처럼 느껴질 때가 얼마나 많은데요. 두 분 다 여전히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세요. 

승호 씨는 지금까지 여러 작품에서 학생 역을 맡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애틋한 마음이 드는 캐릭터가 있을까요?
강승호_
2018년에 공연한 <알앤제이>요. 엄격한 규율이 존재하는 가톨릭 기숙사 학교 소년들이 주인공인데, 금서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접하고 세상에 눈떠 가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에요. 저는 초연에 참여했던 터라 어떤 결과물로 탄생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설렘이 컸어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의 열정이 부딪혔을 때 나오는 에너지가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십 대 청소년들이 지금까지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매번 제 마음을 두드렸어요.

두 분은 학창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나요. 돌이켜 보니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싶나요?
이주승_
안 그래도 이번에 연습하면서 내가 학교 다닐 때 어땠는지 한번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청소년기보다 유년기 기억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저는 제 성격이 평범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렸을 때는 좀 특이했던 것 같거든요. 특히 7~9세 때쯤? 종이에 가면을 그려서 밖에 쓰고 다니고, 알 수 없는 행동을 많이 했어요. 집중력도 또래에 비해 떨어졌고요. 어렸을 때는 그게 그냥 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을 하다 보니까 혹시 나도 부모님의 이혼이 나에게 혼란을 줬던 걸까 싶더라고요. 이제는 그런 혼란을 다 지나왔지만요.
강승호_ 저는 니콜라처럼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했던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뭘 해야 행복할지,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학창 시절에 그 물음표로 채워진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시도하고 방황해 봤어요. 그러다 부모님 속을 썩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렇게 세상에 부딪히고 깨지다 보니 거기에 다시 살이 붙어서 단단해진 것 같아요. 만약 방황했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거예요.

사회에 나온 이후에 니콜라의 대사처럼 사는 게 버겁다고 느껴 본 적 있어요?
강승호_
제 삶의 원동력은 배우로 활동하면 연기하는 이 순간이 행복하고, 앞으로도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에요.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은 아무래도 좀 불안한 면이 있잖아요. 가끔 한 번씩 제 삶에 안전한 울타리가 없고, 더는 나아갈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나는 앞으로 뭘 해야 하는 거지?’ 하고 막막해져요.
이주승_ 나는 이 일이 항상 버겁던데? (웃음) 어떤 책에서 읽은 건데, 우울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래요. 저희 친할아버지는 연세가 아흔이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활력이 넘치세요.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내가 할아버지 나이가 돼도 저렇게 활력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풍성해져야 삶에서 활력을 잃지 않을 텐데, 저는 그렇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거든요. 그런 생각이 몰려올 때 좀 버거운 것 같아요.




때론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계속 이 일을 하는 건 그만큼 즐거움이 크다는 뜻이겠죠?
강승호_
안정적인 직업은 아니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있잖아요.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죠. 그래도 배우는 연기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지금은 연극이라는 작업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른 활동을 할 수도 있고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아직 저한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기대가 있어서 이 일이 더 즐거워요.
이주승_ 저는 솔직히 제 타고난 성격하고 배우라는 일이 안 맞는 것 같아요. 왜냐면 전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어떤 역할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해내야 하잖아요? 그럼 강박에 사로잡힌 것처럼 ‘너 이 사람에 대해 알아가야 해’ 하고 열심히 그 인물을 탐구해요. 어떤 때는 배우라는 직업이 제 삶을 이끌어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4호 202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