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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캣츠> 40년의 발자취 [No.204]

글 |박병성 사진 |S&Co 2020-09-21 8,047

<캣츠> 40년의 역사

 

1981년 5월 11일. 이날부터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수식어를 지키고 있는 <캣츠>의 역사가 시작됐다. 독특한 컨셉으로 불안하게 출발한 이 작품이 어떻게 굳건한 역사를 만들어 왔는지, 40주년 기념 공연은 아날로그 무대의 가치가 소중해진 지금 또 어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지, <캣츠>가 부린 마법의 비밀을 들여다본다.

 

<캣츠> 40년의 발자취 

 

뮤지컬 <캣츠>가 40주년을 맞았다. 1981년 5월 11일 영국의 뉴 런던 시어터에서 초연한 <캣츠>는 21년간 8,950회를 공연하며 2006년 <레 미제라블>이 이 기록을 깨기까지 최장기 공연 타이틀을 얻게 된다. <캣츠>는 지난 40년간 30개 국가, 300여 도시에서 8천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국내에서도 <캣츠>의 사랑은 유별났다. 2000년대 관객 설문을 하면 <캣츠>는 국내에서 가장 보고 싶은 뮤지컬로 항상 1위를 차지했다. 



불안했던 출발

1980년대 메가 뮤지컬 4편을 의미하는 ‘빅4’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 <캣츠>이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 공연 팬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출발은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다. 
 

<캣츠>는 T.S. 엘리엇의 우화 시집 『노련한 고양이에 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다. 1970년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요셉 앤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에비타>를 성공시키며 세계적인 뮤지컬 창작자의 반열에 오른다. 로이드 웨버는 엘리엇의 우화 시집을 읽으며 처음으로 가사에 맞춰 곡을 작곡해 보고 싶었다. 이전까지의 작업은 로이드 웨버가 노래를 작곡하면 팀 라이스가 노래에 맞춰 가사를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T.S. 엘리엇의 원작은 다양한 개성을 지닌 고양이들을 소개하는 우화 시집이었다. 각 고양이의 사연을 묶어줄 이야기도, 관통하는 주제도 없었다. 뮤지컬이 되기 위해서는 관통할 만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우연한 기회에 해결책을 찾았다. 로이드 웨버는 1980년 여름 시드몬튼 페스티벌에서 <캣츠>의 몇 곡을 선보였다. 이때 방문한 엘리엇의 미망인 발레리 엘리엇이 미공개 시 몇 편을 웨버에게 전달했다. 그중 하나가 ‘그리자벨라, 화려했던 고양이’였다. 웨버는 연습 삼아 송 사이클 형식으로 준비하던 이 작품을 정식으로 올려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당시 <올리버>, <마이 페어 레이디> 리바이벌 공연을 성공시기며 주목받기 시작한 젊은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에게 <캣츠> 프로젝트를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캣츠>는 런던에서 21년 공연하는 동안 1억 3천6백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2천5백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지만 출발은 불안했다. <캣츠>가 초연됐던 뉴 런던 시어터는 <캣츠>가 공연되기 전 10년 동안 변변한 성공작이 없었던 공연장이었다. 주인공 그라자벨라 역에는 스타인 주디 덴치를 캐스팅했다. 주디 덴치는 영화 <007> 시리즈에서 짧은 머리의 미스터리한 상관 M 역을 연기한 바로 그 배우이다. 그가 연습 도중 발을 다치는 바람에 출연이 어렵게 되면서 <에비타>의 헤로인 일레인 페이지가 급하게 투입되었다. 원래 주디 덴치는 그리자벨라와 제니 애니 닷을 동시에 맡았는데, 갑작스런 사고가 발생하면서 주디 덴치의 언더스터디가 제니 애니 닷을, 일레인 페이지가 그리자벨라를 연기했다. 이러한 역할 분담은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초연 일정이 잡혔지만 음악과 가사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아 혼란을 빚으며 악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마침내 막이 올랐다. 결과는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판타지로의 초대

<캣츠>는 뮤지컬의 미다스 손이라는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와 대표적인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처음으로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이후 둘은 <오페라의 유령>으로 또 한 번의 큰 성공을 달성한다. 캐머런 매킨토시는 <캣츠>의 연출로 당시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젊은 예술감독이었던 트레버 넌을 과감히 기용했다. 그때까지 트레버 넌은 대형 상업물을 작업해 본 경험이 없었다. 어찌 보면 고양이들의 무도회가 이야기의 전부인 <캣츠>를 특별하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정통 뮤지컬 연출자가 아니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고전인 엘리엇의 작품을 해석하고 각색해 내야 했다. 트레버 넌은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함께 작업한 무대디자이너 존 내피어와 안무가 질리언 린을 이 프로젝트에 참여시킨다. 트레버 넌은 발레리 엘리엇이 전해 준 미발표 시 ‘그리자벨라, 화려했던 고양이’가 <캣츠>를 풀어갈 중요한 열쇠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시를 통해 각 고양이들의 에피소드를 엮을 아이디어, 새로운 삶을 얻게 되는 고양이 선발 무도회라는 형식을 생각해 냈다. 이것으로 개성 강한 고양이들이 모여 무도회를 벌이는 이유가 만들어졌다.  
 

트레버 넌은 <캣츠>의 관객들을 젤리클 고양이의 세상으로 초대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쓰레기장이 펼쳐진다. 실제보다 3배에서 10배 정도 큰 폐타이어, 깡통, 버려진 책, 신발 등은 고양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상이다. 실제 고양이의 모습을 본뜬 정교한 분장과 의상, 고양이의 동작을 연상시키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 듯한 인상을 주었다. 
 

<캣츠>의 성공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안무가인 질리언 린이다. 흔히 <캣츠>를 댄스 뮤지컬로 분류하기도 한다. 춤은 <캣츠>의 가장 큰 볼거리이다. 질리언 린은 고양이의 움직임을 차용하면서도 고양이 각자의 개성이 강하게 담긴 안무를 고안해 냈다. 사고를 내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도둑 고양이 몽고제리와 럼플티저는 아웅다웅하며 장난치는 동작을 춤으로 표현하고 기차 고양이 스킴블샹스는 쓰레기장의 소품을 퍼즐로 맞춰 기차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수십 번의 턴을 도는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나 하얀 고양이 빅토리아의 황홀한 발레 독무는 일품이다. 무엇보다도 극 초반 서른 마리의 고양이가 모두 등장해 ‘젤리클 송’을 부르는 군무 장면이 인상적이다. 역동적이면서 경쾌하게 움직이는 고양이의 매력을 잘 표현한 안무다. 질리언 린은 <캣츠>의 성공에 힘입어 웨버와 매킨토시의 최고 히트작인 <오페라의 유령>에도 합류한다. 2018년 질리언 린이 사망하자 <캣츠>가 초연한 뉴 런던 시어터는 그를 기리기 위해 질리언 린 시어터로 이름을 바꾼다. 극장 소유주가 웨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성 강한 고양이

<캣츠>에서는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새로운 생명을 얻을 헤비사이드 레이어에 가기 위해 경쟁한다.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 젊은 시절 유명했던 극장 고양이 거스, 말끔한 연미복을 입고 다니는 부자 고양이 버스토퍼 존스, 고양이들의 보호자 멍커스트랩, 그리고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 등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고양이는 열세 마리 정도이다. 이 중 작품의 테마곡인 ‘메모리’를 부르는 주인공 그리자벨라와 반항적인 인기남 럼 텀 터거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다. 록 스타를 연상시키는 쇼맨십으로 새끼 암고양이를 까무러치게 하는 럼 텀 터거는 2014년 런던 공연 버전에서 반항아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힙합을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초연 때부터 이어져온 록 스타 스타일의 캐릭터가 워낙 인기가 좋아 이후 공연부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한때 아름다운 고양이로 사랑을 받았지만 마을을 벗어나 갖은 어려움을 겪고 다시 돌아온 그리자벨라는 넝마를 뒤집어쓴 허름한 고양이였다. 2014년부터는 예전의 매혹적인 모습이 남아 있는 고양이로 바뀌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양이는 십여 마리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역동적인 덤블링과 움직임으로 작품의 활력을 더하는 파운시벌, 플레이토, 타토마일, 코리코팻 등 조역에 해당하는 고양이도 십여 마리가 등장한다. 이들은 각기 개성이 뚜렷한 고양이들로 그만의 서사를 지니고 있다. 관능적인 붉은 고양이 봄발루리나는 반항적인 고양이 럼 텀 터거를 좋아한다. 코리코팻과 탄토마일은 쌍둥이 고양이로 똑같은 동작을 취하곤 한다. 이들은 공연 중 말 한 마디 하지 않지만 명확한 캐릭터를 지니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개성 강한 고양이들이 등장하는 <캣츠>가 삶의 축소판으로 보이는 이유다. 사람마다 체취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 고양이마다 뚜렷한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향수가 다를 정도로 철저하게 고양이마다 특별함을 부여하려고 애썼다. 

 

<캣츠> 한국 공연 기록

<캣츠>가 한국에 처음 공식적으로 선보인 것은 1994년 예술의전당 공연부터이다. 당시 <캣츠> 공연의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2천 석이 넘는 예술의전당에서 티켓 가격이 8만 원으로 당시 대형 공연의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었지만 모두 팔려 나갔다. 당시 신문 기사는 공연계가 세계 무대와의 실력 차이를 느끼며 패닉에 빠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2주간 3만 6천 명의 관객이 관람했으며 <캣츠> 열풍이 문화 현상으로 확산되었다. <캣츠>는 한국 뮤지컬계를 자극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사실 국내 무대에 <캣츠>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91년이다. 정식 라이선스를 체결하지 않고 올린 공연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WTO에 가입하지 않아 세계 저작권 협회에 가입했던 1987년 이전의 작품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소급 적용하지 않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불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WTO에 가입하면서 1996년부터는 해외 라이선스를 소급 적용받았다. 그럼에도 민간 제작사는 <캣츠>를 저작권 없이 간간이 공연했다. 그러다 사달이 난 것이 2000년이다. 국내 저작권 사례집에 보면 빼놓지 않고 나오는 것이 2000년 <캣츠> 저작권 분쟁 내용이다. 무단으로 공연한 2000년 공연에 대해 원 제작사인 RUG가 공연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해외 원작사가 무단 공연에 철퇴를 가한 첫 사건이었다. <캣츠> 저작권 분쟁은 2000년대 국내 뮤지컬 시장에 저작권 인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3년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것도 <캣츠> 내한 공연이었다. 이 작품의 공동 제작사로 CJ엔터테인먼트(현 CJ ENM)가 참여한다. 1990년대 삼성영상사업단으로 공연계에 발을 들인 이후 대기업이 뮤지컬 제작을 시도한 케이스다. 이후 CJ엔터테인먼트는 한국 뮤지컬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이어진 <캣츠> 빅탑시어터 공연은 대형 뮤지컬을 통해 지역 시장을 성장시키려는 의도로 진행되었다. 움직이는 공연장 빅탑시어터로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투어 공연을 시도했다. 대구 공연은 사전 예매만 90%가 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부산 공연에서 초속 50미터가 넘는 태풍 매미가 공연장을 초토화시키면서 지방 투어 공연이 중단되었다. 2007년 내한 공연 역시 그해 최고 흥행을 이루었다. 2008년에는 3개월간 내한 공연을 한 후 4개월간 국내 배우들이 라이선스 공연을 이어가 장장 7개월간 공연했다. 정식으로 처음 공연되는 <캣츠> 라이선스 공연이었다. 신영숙, 옥주현이 그리자벨라 역을 연기했다.


 

2011년에는 <캣츠> 30주년을 맞아 두 번째 라이선스 공연이 올라갔다. 그리자벨라 역에는 인순이, 박해미, 홍지민이 캐스팅되었다. 30주년 기념 공연은 좀 더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무대로 큰 사랑을 받았다. 2014년, 2015년 내한 공연에 이어 2017년에도 내한 공연이 이루어졌다. 2017년 내한 공연은 2014년 런던과 2016년 뉴욕의 뉴 버전 <캣츠> 중 장점을 받아들여 만든 최신 버전이었다. 그리자벨라의 캐릭터가 비주얼에서 매력적으로 바뀌었으며 더욱 역동적인 안무, 각 캐릭터를 강화한 분장과 의상으로 주목받았다. 2018년 공연과 40주년을 맞는 올해 공연도 뉴 버전 스타일을 유지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4호 202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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