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
20년간 사랑받은 스테디셀러
인기 스테디뮤지컬의 탄생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중 하나인 <베르테르>가 올해 20주년을 맞는다. 2000년 11월 연강홀(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 소박하게 올라간 초연은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베르테르와 롯데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담은 괴테의 원작은 발행 당시 모방 범죄가 일어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뮤지컬로서는 그리 좋은 소재는 아니었다. 베르테르가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진 원작 소설은 주관적이고 사적인 언어로 가득했고, 러브 스토리가 중심 이야기지만 봉건 사회에 대한 저항, 귀족과 평민 계급 간의 갈등 등 당대 시대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갈등을 기본으로 하는 무대에서 서간체 형식은 적절하지 않았으며 작품 곳곳에 묻어 있는 시대상은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기에 걸림돌이었다.
각색을 맡은 고선웅 작가는 시대상을 버리고 세 사람의 사랑에 집중하기로 했다. 베르테르와 롯데, 그리고 알베르트의 삼각관계를 부각했다. 따뜻하고 해맑은 롯데를 사이에 두고 사색적이고 세심한 베르테르와 책임감 강한 원칙주의자 알베르트를 배치하여 세 사람 간의 갈등을 중심 플롯으로 삼았다. 거기에 주인마님을 좋아하는 하인 카인즈의 이야기를 서브플롯으로 두어 베르테르가 고뇌하고 행동하는 동기로 삼았다. 정민선 작곡가는 안타까운 세 사람의 사랑을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등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서정적인 음악으로 담아냈다. 초연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팬덤을 양산했다. 뮤지컬 동호회가 인기를 끌던 시기였는데 <베르테르>는 뮤지컬 작품으로 모인 최초의 동호회인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탄생시켰다. 스무 명 정도로 시작했던 모임은 가장 왕성할 때는 500여 명이 넘을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2003년과 2004년 공연은 베사모가 투자사로 나서 직접 공연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베르테르의 안타까운 사랑에 빠져 작품을 사랑하던 팬들은 롯데에게, 다시 알베르트로 공감하는 대상을 바꾸며 작품에 온전히 빠져들었다.
연출에 따라 다른 <베르테르>
지금까지 <베르테르>는 14회 앙코르 공연되었다. 특히 2000년 초연부터 10년 동안은 거의 매해 한 번씩 공연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초연 <베르테르>에서 3연부터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제목이 바뀌었다가 2013년 공연부터는 다시 <베르테르>로 돌아왔다. 지난 20년 동안 김광보, 고선웅, 조광화, 김민정 네 명의 연출이 주도하여 자신만의 <베르테르>를 만들어갔다. 현재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들이 뮤지컬 <베르테르>를 거쳐 간 셈이다.
초연 연출가인 김광보는 작품의 서정성을 극대화해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인물들의 감정선이 살아나는 섬세한 연출로 엇갈린 사랑을 하는 인물을 잘 표현했다. 김광보는 초연과 재연에 이어 2007년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2007년 공연에서는 초연 베르테르 서영주, 롯데 이혜경, 알베르트 김법래를 출연시켜 원조 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2001년 가을 연강홀과 2002년 컨벤션센터 공연은 각색자인 고선웅이 연출로 참여했다. 컨벤션센터 공연에는 베르테르 역으로 조승우와 엄기준이 참여한다. <베르테르> 역사의 가장 상징적인 두 배우 엄기준과 조승우가 바로 이때 투입되었다. 고선웅은 대사로 진행되던 장면을 상당 부분 삭제하는 대신 음악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각색하여 연출했다. 작품이 음악에 자리를 내어주면서 좀 더 감성적인 작품으로 거듭났다. 2003년과 2004년, 2006년 <베르테르>는 조광화가 연출로 참여한다. 조광화의 <베르테르>는 격정적이고 뜨거웠다. 하인즈가 잡혀가는 장면에서 평민들이 혁명이라도 일으킬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원작에서 사라졌던 귀족과 시민의 계급적 갈등을 되살렸다. 베르테르를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평민들의 대변인으로 그려낸 것이다.
2010년 10주년 공연부터 참여한 김민정의 <베르테르>는 사색적이고 상징적이었다. 원작에 등장하는 자석산에서 모티프를 차용해 자석산에 끌려 산산이 부서지는 배의 이미지로 무대를 만들고 운명적인 사랑과 죽음을 상징화했다. 롯데의 동생들을 등장시켜 롯데라는 인물이 마냥 해맑기보다는 책임감 강한 여성으로 보이도록 했다. 10주년 공연은 구소영 음악감독 대신 양주인 음악감독이 새롭게 참여했다. 2012년 공연에는 새로운 음악감독으로 이성준이 투입되었다. 2012년 버전은 원작 음악을 상당히 많이 편곡하고 곡 구성을 새롭게 하는 등 음악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2013년 <베르테르>부터는 조광화와 구소영이 다시 돌아왔다. 이때 정승호 무대디자이너가 새롭게 참여하면서 해바라기가 상징적인 오브제로 등장한다. 가장 뜨겁고 격정적인 <베르테르>를 선보인 조광화는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바치는 뜨거운 열정을 샛노란 해바라기로 표현했다. 2013년 공연 이후 해바라기의 메타포는 최근까지 이어진다. 20주년 공연에도 조광화 연출, 구소영 협력연출 및 음악감독, 정승호 무대디자이너가 참여하여 20년간의 전통을 이어간다. 특히 올해 공연에는 엄기준, 카이, 규현, 유연석 이외에 TV 오디션 프로그램 <더블 캐스팅>을 통해 선발된 나현우가 베르테르로 참여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3호 2020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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