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리틀 농구단> 박해림 작가
농구도 공연도 같이하는 것
농구도 공연도 같이하는 것
2016년 첫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시상식을 휩쓴 작가. 지난 3년간 여덟 개 작품에 이름을 올리며 가장 활발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신인 작가. 박해림 작가를 향한 수식어는 화려하지만, 정작 그는 인터뷰 내내 ‘나의 영향력이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매번 머리를 싸매고 글을 써도 작품의 성패는 그것만으로 좌우되지 않으며 자신도 알지 못할 어떤 힘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의 말대로, 어쩌면 작품에도 그만의 운명이 있어서 스스로 자기가 있을 자리를 찾아 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작품을 바라보는 한 작가의 이야기다.
2016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전설의 리틀 농구단 (안산)
2017 모래시계
2018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 금란방
2019 나빌레라 / 점박이 공룡대모험 뒤섞인 세계 /이토록 보통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출과를 졸업했는데, 연출가보다 극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연출과와 극작과는 커리큘럼이 거의 비슷하다. 연출을 하려고 해도 극작을 알아야 하고, 극작을 하려고 해도 연출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 안에 극작, 연출, 연기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친구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연출과 극작 가운데 하나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졸업 이후에는 뮤지컬을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 음악극창작협동과정에 진학했다.
판소리극 <수궁가가 조아라>를 연출하고 연희극 <백수들>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뮤지컬 창작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공연 장르보다 뮤지컬에 끌린 이유가 뭔가? 뮤지컬보다 먼저 좋아한 건 뮤지컬 영화다. <시카고>, <렌트> 모두 영화로 먼저 접했는데, 공연을 보니 더 재밌더라. 영화처럼 사실적인 묘사 없이 상징적인 무대 세트만으로 판타지를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게 멋졌다. 특히 음악을 통해 무한한 시공간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돌아보면 <수궁가가 좋아라> 연출을 맡아 판소리를 공부한 것도 뮤지컬 문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판소리에서 아니리가 창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뮤지컬의 송 모멘트와 비슷하다.
첫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한국뮤지컬어워즈 극본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차범석희곡상까지 받았다. 첫 작품의 큰 성공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나? 작품의 성공은 많은 부분 채한울 작곡가의 음악과 백석의 시에 빚지고 있다. 내 힘으로 이뤄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뮤지컬 가사가 시적이라고? 그럼 진짜 시로 뮤지컬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관객이 올지 장담할 수 없는 공연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큰 사랑을 받았다. 어쩌면 백석의 시가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지고 사랑받도록,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 우리를 도와준 게 아닐까 싶다.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은 많지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시인 백석이 아닌 그의 연인 자야를 주인공으로 삼은 점이 독특하다. 개발 과정에서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지만, 결국 자야의 이야기로 정리되었다. 자야의 삶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백석이 떠난 뒤 혼자가 된 자야가 대원각을 차리고 고급 요정으로 키우기까지, 그 긴 세월을 무슨 생각으로 버텼을까? 그 시간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결국 그 시간을 보상해 줄 수 있는 건 백석의 시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야가 생전에 백석의 시를 그토록 아끼고 자신이 나타샤라고 주장한 것은 단지 백석을 사랑해서라기보다 그가 쓴 시 안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이 시가 곧 나다, 이 시는 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여생을 버티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을 살펴보면 뮤지컬계의 트렌드를 의식하지 않고 청소년, 노인, 여성, 퀴어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설의 리틀 농구단>,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를 제외한 작품들은 따로 원작이 있거나 제작사에서 의뢰를 받아 작업했다. 물론 의뢰받은 작품 가운데 내 능력 밖이라고 판단되는 건 고사했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가 주인공인 작품들을 선택한 건 내 관심사가 반영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나란 사람이 무기력하고 소외된 주인공이 변화하는 이야기에 끌리나 보다.
그 가운데서도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가장 여러 번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대학원에서 쓴 작품이다. 학교에서 열린 리딩 공연을 보러 온 여러 제작사 가운데 안산문화재단이 있었는데, 안산에서 이대로 한 번만 공연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서 그러자고 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처음 공연을 만들 때, 청소년이 주인공인 만큼 학교 강당 같은 곳에서 공연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언젠가 전국 각지의 학교를 돌며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안산, 구리, 김해, 목포, 군포, 수원에서 공연했는데 최대한 여러 지역에 가는 게 목표다. (웃음)
청소년의 죽음을 소재로 삼은 점, 그리고 안산문화재단이 제작을 맡아 2017년 안산에서 정식 초연을 올렸다는 점 때문에 세월호가 연상된다는 반응도 있다. 실제로 어떻게 구상한 작품인가? 세월호를 소재로 한 공연은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가 있은 뒤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영감을 주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생 시절 대구 지하철 참사로 친구를 잃었다. 그날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늦잠을 잤는데, 친구들이 지하철에서 자기한테 일어나면 연락하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는 그 친구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내가 만나자고 하지만 않았다면’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 무슨 얘길 나누고 싶어?” 내가 묻자 친구는 대답했다. “할 얘기가 뭐가 있어, 그냥 농구나 하면 좋겠어.” 구구절절한 말 대신 몸이 부딪히는 농구를 하고 싶다는 그 뜻밖의 대답에서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 탄생했다.
농구단에 들어온 왕따 수현과 코치 종우,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기 위한 해법을 어디서 찾았나? 수현과 또 다른 농구단 멤버 상태는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다. 아무 의욕 없이 죽은 듯 살아가는 종우 역시 유령 같은 존재다. 그리고 이들 곁에 진짜 유령들이 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유령’이라는 키워드로 묶여 있다. 그럼에도 공연 때마다 수현의 이야기로 시작해 종우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두 인물을 이어주는 눈에 보이는 연결 고리로 ‘호루라기’를 적극 활용하였다. 구조 신호를 보낼 때 호루라기를 부는 것처럼, 인물들이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호루라기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다. 또 수현과 종우에게 같은 노래를 부르게 하여 둘의 이야기를 매끄럽게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시즌에는 또 어떤 변화가 생겼나? 지난 시즌에서 두 주인공 수현과 종우의 연결성을 강화하면서 기능적인 캐릭터였던 구청 직원 미숙을 없앴는데, 그러자 미숙과 밀접하게 붙어 있던 지훈이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이 약해졌다. 이번 시즌에는 지훈에게 존재감을 되찾아 주기 위해 배우들과 즉흥극도 하고 재밌게 놀면서 답을 찾았다. 나는 평소에도 연습실에 자주 나간다. 작가로서 내 의도를 잘 설명하고, 배우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은 수정하기 위해서다. 때로는 배우들이 나보다 인물의 마음을 더 잘 알고, 연습 중에 나온 아이디어가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얘기하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다.
극 중 ‘농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이하는 것’, ‘농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대사가 나오지 않나. 평소 본인의 생각이 우러나온 것 같다. 맞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지만 끝없는 논쟁 끝에 해법을 찾을 때 오는 희열이 있다. 연습하면서 배우마다 의견이 달라 일주일간 세 번이나 수정한 장면도 있는데, 우리끼리 극 중 대사를 패러디해서 이렇게 놀렸다. 공연은 혼자 하는 게 아니야~ 과정이 중요해~ (웃음) 결국 작품이 사랑받는 게 중요하지, 작가인 내가 사랑받는 건 중요하지 않다. 어느 순간이 되면 작품이 내 것 같지도 않다. 배우가 ‘이 작품 내가 만들었다’라고 말하면 오히려 기분이 좋다. 우린 다 안다. 어떻게 혼자서 공연을 만들 수 있겠는가. 저 무대 위에 올려져 있는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는데. 그럼에도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최선을 다해 애정을 쏟았다는 뜻일 거다.
대본을 쓸 때 지문을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연출가한테 일을 떠넘긴다고 오해할까봐 조심스러운데, 내가 지문을 쓰지 않는 건 다양한 연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서다. 나 역시 연출을 하면서 지문에 갇힐 때가 많았으니까. 사실 대본에 쓰지 않을 뿐 지문에 해당하는 그림은 내 안에 다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이토록 보통의>는 여러 개의 스툴이 놓인 빈 무대를 상상하며 썼다. 각각의 스툴이 하나의 별이고, 인물이 땅에 닿는 순간 현실적인 감정이 표현된다는 규칙이 있었다. 연습실에 자주 나가는 이유도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물론 연습을 하다 보면 규칙은 바뀌기 마련이고, 거기에 상처 입진 않는다. 내 생각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함께 얘기해 보자는 마인드다.
지난 작품의 공통된 화두로 ‘기억’이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설의 리틀 농구단>,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이토록 보통의> 모두 지난 기억을 붙들고 살아가는 인물이 등장한다. <나빌레라>에서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기억’과 함께 내 작품에 항상 등장하는 소재로 ‘죽음’이 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억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기억’은 ‘죽음’의 반대다. 기억한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기억되지 않는 순간은 죽는다.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도 기억에서 찾을 수 있다. 만약 환생이라는 게 진짜 있다 해도, 기억이 지워진 전생이나 후생의 나를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것은 기억이지 외형이나 영혼이 아니다. 내가 겪어온 모든 순간의 기억, 그게 나다. 인간의 기억은 왜곡되지만 그마저도 매력적이다. 왜곡된 기억이라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억은 삶의 필수 요소다. 다만 기억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보다는 기억을 간직한 채 지금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요즘 새롭게 관심을 갖고 있는 화두는 무엇인가? 요즘은 ‘죄책감’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감정인 것 같아서다. 도대체 사회가 만들어놓은 규칙이 뭐라고 이걸 깨려고 하면 불안과 죄책감이 생길까? 죄는 누가 규정하고 누가 용서하나? 시대가 변해서 사회 규범이 달라지면 죄책감도 변할까? 작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직 여기에 적합한 이야기는 찾지 못했다. 사실 나는 어떤 감정에 깊게 빠지거나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더 인간의 감정이 궁금하다. 가끔 작품 속에 실제 내가 투영된 캐릭터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솔직히 나는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상태에 가깝다. (웃음)
작품은 감성적으로 다가오는데 의외다. 감정을 분석하길 좋아한다. 첫눈에 뿅 반하는 일이 절대 없는 대신 첫눈에 뿅 반한다는 건 어떤 걸까 분석하려 드는 쪽이다. (현실에서는 첫눈에 반할 수 있지만, 무대에서 그런 식의 설명은 관객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관객은 감성적으로 느껴도 작가는 논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평소 좋아하는 뮤지컬 작품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 이유로 <어쩌면 해피엔딩>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좋아한다. 인물이 만나는 순간부터 사랑의 감정을 깨닫기까지의 과정을 아주 섬세하게 쌓아 올리지 않나. 감정의 층위를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게 직조할 수 있을까 존경스럽다. 두 작품 다 열 번 넘게 봤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소설과 영화도 봤지만 뮤지컬이 훨씬 좋았다. <잘자요 엄마>로 퓰리처상을 받은 마샤 노먼이 칠십 대가 되어 각색한 작품인데, 그래서인지 삶을 조망하며 쓴 느낌이 난다. 소설에서는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떠나자고 말할 때, 이것도 보여주고 저것도 보여주겠다며 한 페이지에 걸쳐 애걸한다. 반면 뮤지컬에서 로버트는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노래한다. 이런 게 훌륭한 각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연출가로 돌아올 예정이다. 2018년 화제작이었던 <베르나르다 알바>의 재연에 연출로 참여하는 소감은? 뮤지컬에 여자들이 이렇게 많이 나온다는 점, 게다가 그 여자들이 저마다 뚜렷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닫힌 문 안에서 누군가는 순응하고, 누군가는 반항하고, 누군가는 미치고, 누군가는 억압한다. 단순히 이 문을 빠져나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감정이 담겨 있어서 참여하고 싶었다. 초연 연출을 맡았던 구스타보 자작이 구축해 놓은 방향성을 유지하되, 각각의 캐릭터가 지닌 고유한 힘에 대해 배우들과 더 디테일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지금 한국 공연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공연이 다양한 이야기를 수용하길 바란다. 영화나 방송에 비하면 공연계는 관객의 피드백도 빠르고 변화의 속도도 빠른 편이다.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만 해도 몇 년 사이 많이 달라졌다. 그만큼 창작진이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반응할 줄 알아야 한다. 오래된 작품을 다시 공연할 때에도 지금 왜 이 작품을 다시 봐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야 한다. 핸드폰만 있어도 수많은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왜 극장에 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너무 추상적인 수식어가 되어버린 ‘살아 숨 쉬는’ 공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3호 2020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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