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앤잇>
AI 로봇으로 돌아온 연인
가까운 미래의 대구 북성로. 쇠를 만지는 주조자 규진과 흙을 만지는 도예가 미나 부부는 오래된 집에서 함께 일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미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규진은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는 미나와의 추억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그리움을 견디지 못한 규진은 결국 죽은 미나를 복제한 AI 로봇을 주문한다. 하지만 미나가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규진은 서서히 자신이 사랑한 미나와 새로운 로봇의 차이를 감지하고, 본인이 로봇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미나는 자신을 밀어내는 규진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연 규진과 로봇 미나는 행복했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제1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뮤지컬상을 받고 대학로에서 첫 장기 공연에 들어가는 <유앤잇(You&It)>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인간과 AI 로봇의 사랑 이야기다. ‘인간을 복제한 로봇’이라는 설정은 이제 뮤지컬계에서도 생소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AI 기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방증하듯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이토록 보통의>, <로빈> 등 비슷한 소재의 창작뮤지컬이 무대에 올랐다, 인간과 쏙 빼닮은 로봇의 이야기는 인간다움의 조건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낳는다. 앞선 뮤지컬 작품들은 기발하고 논리적인 SF적 세계관을 선보이기보다는 철학적인 주제를 감성적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
<유앤잇>의 주제 의식과 분위기도 이와 닮아 있다. 독특한 것은 대구 북성로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실제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주조자와 도예가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상품이 기계로 대량 생산되는 시대에 고지식하게 전통을 이어가는 두 인물의 모습은 SF적 세계관 속에서 묘한 균열을 일으킨다. 또한 틀에 쇳물을 부어 똑같은 형태를 찍어내는 주조업과 손으로 저마다 다른 형태를 빚어내는 도예의 대비는 ‘인간 복제’라는 소재를 바라보는 이 작품만의 시각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유앤잇>은 뮤지컬 <기적소리>, <기억을 걷다>, <길> 등을 제작한 EG뮤지컬컴퍼니의 작품으로, 꾸준히 호흡을 맞춰 온 오서은 작가, 이응규 작곡가 겸 음악감독, 이종혁 안무가가 참여한다. 2018년 트라이아웃 공연으로 처음 소개된 뒤, 2019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창작뮤지컬상을 받고,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레퍼토리’ 창작뮤지컬 분야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번 대학로 공연에는 기존에 출연했던 서형훈, 서찬양이 다시 참여하고, 규진 역에 김영한, 백승렬, 미나 역에 윤진솔, 권소이가 새롭게 캐스팅되었다.
MINI INTERVIEW
오서은 작가·이응규 작곡가
어떻게 AI를 소재로 한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나?
이응규_ 대구 북성로에 관한 작품을 구상하던 무렵 세계 최초로 시민권을 받은 AI 로봇 소피아가 한국을 찾았다. 컨퍼런스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등장한 소피아가 오드리 헵번을 닮은 얼굴로 로봇의 권리에 대해 능숙하게 연설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오서은_ 인간과 철학적 대화가 가능할 만큼 발전한 AI의 출현은 새로운 삶의 형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기술이 점점 더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며 AI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구상했다.
두 주인공의 직업으로 주조자와 도예가를 선택한 이유는?
이응규_ 실제로 북성로에서 쇠를 만지는 장인을 만났는데, 중국산 대량 생산 제품에 밀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전통대로 일일이 손으로 주조물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아 규진의 모델로 삼았다. 또한 오래된 목조 가옥을 복원한 ‘삼덕상회’와 그 안에 전시된 도예품을 감상하면서 도예가 미나를 떠올렸다.
오서은_ 북성로는 대구에 처음 생긴 신작로로, 대구 근대사가 녹아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전쟁 때는 미군 부대에서 나온 폐부품으로 새 물건을 만드는 공업사와 자재소가 성행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공구 골목으로 이어졌다. 주조자는 이제 북성로에서도 희귀한 직업이지만, 쇳물을 틀에 부어 형태를 만드는 일이 미나를 복제한 AI 로봇을 주문하는 규진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한편 임대료가 낮은 북성로 공구 골목은 미나와 같은 젊은 예술가에게도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도예 역시 주조업처럼 불과 틀을 사용하지만, 손으로 빚어 제각각 다른 형태의 영혼이 담긴 그릇을 만든다는 점에서 주조업과 대조된다. 이러한 미나의 예술가적 특성은 로봇 미나의 이성과 부딪혀 흥미로운 갈등을 만들어낸다.
특히 애착이 가는 뮤지컬 넘버를 꼽는다면?
오서은_ 오프닝 넘버인 ‘새로운 시작’은 현악기의 서정적인 음색이 꽃처럼 피어나는 가운데, 규진과 미나가 동시에 희망을 꿈꾸는 따뜻한 노래다. 로봇 미나가 돌아온 뒤 일상을 되찾은 규진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른 채 희망을 품는 모습이 슬프지만 아름답다.
이응규_ 규진이 로봇 미나로 인해 갈등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 ‘그런데 왜’를 좋아한다. 한 곡 안에 ‘그런데 왜’라는 가사가 7번 반복되는데,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두 단어만으로 그의 혼란스런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대학로 공연을 앞두고 수정한 부분이 있나?
이응규_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던 시절 규진과 미나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은 ‘상상해 봐’라는 곡을 새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과거를 조명해 보니 둘의 이별이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또한 규진이 AI 로봇을 구입하며 느끼는 재회의 기쁨과 다시 찾아온 이별의 슬픔 사이에서 감정을 매끄럽게 이어가기 위해 ‘Oddly Fine Day’라는 곡을 추가했다.
오서은_ 2인극인 만큼 인물의 감정선을 다듬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무대도 과거와 미래의 풍경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더 분명한 극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특히 새로운 곡 ‘Oddly Fine Day’에서 두 사람이 춤추는 장면이 무척 아름답다.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
이응규_ 우리는 보이지 않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놓치고 살아간다. ‘사랑했던 기억은 그 시간 속에 있을 때 가장 빛나는 것’이라는 미나의 대사처럼 소중한 현재를 돌아보는 기회를 선물해 드리고 싶다.
오서은_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여러 사람이 부대끼며 만들어가는 이 공연이라는 예술이 언젠가 먼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다. 그러나 거리 두기가 시대의 흐름이 될지라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일은 가장 사람다운 것이라고 믿는다. 영혼, 사랑처럼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가장 인간다운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7월 21일~9월 27일
드림아트센터 2관
02-922-9553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3호 2020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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