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파트너
<에비타>(2011), <광화문 연가>(2011), <탈>(2010), <서편제>(2010). 이지나 연출의 최근 작품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특징을 감지할 수 있다. 화려하기보단 여백의 미가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작품에 박동우 무대디자이너가 함께했다. ‘미니멀리즘’과 ‘상징주의’ 무대를 선호하는 비슷한 지향점을 공유하고 있는 두 창작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향에서 비롯된 파트너십
두 분의 첫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이지나 제가 선생님과 함께한 첫 작품은 연극 <아트>(2003)예요. 당시 저는 신인 연출가였고, 박동우 선생님은 잘나가는 무대디자이너였어요. 하지만 제일 잘하는 디자이너와 작업하고 싶은 건, 어느 연출가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선생님처럼 유명하신 분이 신인 연출의 저예산 작품을 하실까 싶었지만, 일단 연락을 드렸어요. 선생님께선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이셨고요. 여러 해 같이 작업하면서 알게 된 건데, 선생님은 작품을 고르실 때 대본을 가장 중요하게 보세요. <아트>는 워낙 대본이 좋으니까 당신이 하겠다고 하신 거죠. 그런데 저희 제작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적어서 저는 선생님이 회의하러 오시면 만날 도망갔어요. (웃음) 소파 하나 제작할 돈이 여의치 않았죠. 그래서 선생님이 내신 묘안이 미니멀리즘적인 스타일이었어요. 전 그게 굉장히 세련된 무대였다고 생각해요.
박동우 <아트>는 무대를 심플하게 갈 수 있는 작품이에요. 값비싼 그림을 놓고 세 친구들이 논쟁을 벌이는 내용이거든요. 등장인물이 각각 성격이 다른 세 사람이니까, 무대에 흰 벽을 세 개 세운 다음 그림을 하나 걸어놓았죠. 그게 다였어요. 그런데 <아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무대를 좋아해요.
신인 연출가와 중견 무대디자이너가 만났으니, 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지나 에피소드 말해야죠. 저는 오늘 선생님 뒷담화나 할 생각으로 여기 나왔어요. (일동 웃음) 제가 선생님께 어떤 요구를 했었어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한데, 아마 무대를 객석 쪽으로 조금 빼달라고 했을 거예요. “선생님, 무대를 이렇게 좀 바꾸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딱 한 말씀하셨어요. “안 됩니다” 하고 끝. 설명도 없이 한 방에 거절당했죠. (일동 웃음) 그 비슷한 거절의 일화가 하나 더 있어요. (웃음) 어떤 작품 무대 디자인을 부탁드렸다가 또 깔끔하게 거절당했죠. 초고 대본을 읽으시곤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도 전날 대본을 읽고 막 울었어요. 대본이 예상과 너무 다르게 나왔어요. 그래도 잘하고 싶어서 같이 해주십사 전화기를 붙잡고 십분 동안 울었거든요? 끝까지 거절하셨어요. 그런데 그 작품, 각색이 잘돼서 잘 나왔어요. 나중에 제가 선생님께 그랬죠. “선생님, 그 작품 평도 좋았고요, 흥행도 잘됐어요.” 선생님은 그때도 “어, 예” 그러고 마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그 일로 한 가지 배운 건, 초고가 잘 안 나왔어도 각색을 잘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박동우 지금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박동우가 나쁜 사람이네. (웃음) 내가 그것 때문에 이지나 선생님한테 만날 씹혀요. (일동 웃음) 제가 좀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요. 선생님들과 작업할 때도 그렇고, 또 반대로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하고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굽히지 않죠.
작업 초창기에는 상대의 단호한 태도가 당황스러우실 법도 하셨을 텐데요.
이지나 아뇨, 저는 그날부터 선생님을 모시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출은 공연을 책임지는 위치라서 내가 과연 지금 잘하고 있는가, 항상 불안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처럼 자기 주관이 뚜렷한 스태프는 연출에게 힘이 되죠. 물론 의견차가 나면 싸우기도 하지만, 소신 있게 밀어붙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니까 믿고 가게 되거든요. 만약 스태프들이 제 생각대로 다 해주잖아요? 그럼 그 작품은 잘 나오기 힘들어요. 제가 무대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고, 음악 전공자도 아닌데, 제 요구대로 만들어주면 작품이 딱 제 수준으로 나와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죠.
박동우 옳은 말씀입니다. 내 뜻대로 다할 것 같으면 애초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작업할 필요가 없죠. 공동 작업을 할 때 자기 생각에 대한 고집은 분명히 필요해요. 하지만 상대방의 의견이 더 좋을 땐 포기할 줄도 알아야죠. 제가 첫 작업에서 느낀 이지나 연출의 인상은, 시각적 감각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사실 심플한 무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공연이 그야말로 밋밋해지거든요. 이지나 연출은 심플한 무대 안에서 배우와 조명을 활용해서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내더라고요. 미장센을 잘 만들어내는 연출인 거죠.
2007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모노 뮤지컬 <텔 미 온 어 선데이>로 두 분의 본격적인 파트너십이 시작된 게 맞나요?
이지나 네, 맞아요. <아트>를 하고 나서 선생님과 다시 작업하기까진 어느 정도 공백이 있었어요. 왜냐면 선생님은 웬만하면 창작뮤지컬을 하려고 하세요. 선생님이 어쩌다 라이선스 뮤지컬을 하시는 건, 프로듀서의 간곡한 부탁, 또는 연출의 조름 때문이에요. (웃음)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텔 미 온 어 선데이>는 여배우 혼자 나오는 모노 뮤지컬이었단 말이죠. 선생님밖에 안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의뢰를 한 거죠. 결과는 역시나 좋았어요. 우리 무대를 보고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가까운 미래를 보는 것 같은 무대였다고. 전 아직까지도 <텔 미 온 어 선데이>가 박동우 선생님의 베스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뒤로 연강홀(<텔 미 온 어 선데이>가 공연된 극장)에서 공연할 땐 항상 선생님께 제일 먼저 연락을 드렸어요. 연강홀에서 올린 <컴퍼니>와 <서편제> 모두 선생님과 작업했죠.
박동우 난 개인적으로 <텔 미 온 어 선데이>보다 바로 다음 작품인 <컴퍼니>(2008)를 더 좋아해요. <컴퍼니>가 더 심플하거든요.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한 유리블록 조형물 두 개, 소파 두 개가 세트의 전부였어요. 이 네 개의 세트를 움직여서 모든 장면을 만들 수 있다, 전 거기까지만 아이디어를 제시했어요. 그러고선 나중에 깜짝 놀랐어요. 이지나 연출이 장면마다 기발한 세트 조합을 만들어내더라고요. 저걸 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죠.
이지나 선생님, 그래서 구윤영 감독(조명디자이너)이 우리랑 안 하려고 하잖아요. (웃음) 구 감독까지 해서 저희 셋이 작업을 많이 하는데, 저희가 항상 그러거든요. “구 감독, 여기는 무슨 장소야, 세트가 없으니까 조명으로 좀 표현해줘.” 그럼 구 감독은 툴툴대죠. “앞으론 장소를 좀 만들어 주시는 게 어때요?” 하면서. 하지만 우린 굴하지 않아요. (일동 웃음) 저희가 <컴퍼니>를 하면서 기절했던 적이 있어요. 선생님께 “뉴욕(<컴퍼니>의 배경)의 상징이 뭘까요?” 하고 여쭤봤는데, 동시에 같이 “유리!”를 외쳤거든요. 뉴욕이 마천루의 도시잖아요. 그래서 유리의 이미지를 생각한 거죠.
미니멀리즘 무대의 막을 열다
개인적으론 두 분의 첫 창작뮤지컬 <서편제>야말로 미니멀리즘의 진가가 드러난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그 작품에선 세트랄 게 아예 없었죠. 게다가 무대를 온통 흰색으로 도배하는 과감한 시도를 하셨고요.
박동우 대본을 덮는 순간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르는 작품이 있어요. 반대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고요. 그런데 마감 날짜라는 게 있잖아요. 마감을 넘기면 무대 제작 기간이 줄어드니까, 그 스트레스는 말도 못해요. 그럴 땐 하는 수 없이 좀 늦지만. (웃음) <서편제>는 후자였어요.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이 안 나서 이거 어쩌면 좋나 싶었죠. 아무래도 영화 <서편제>(1993/ 임권택 작)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서편제>는 대중의 기억 속에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담아낸 것으로 강하게 남은 영화니까.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 영화 이상의 풍경을 그려낼 것인가 고민이 컸죠. 그리고 기억은 어느 정도 미화되기 마련인데, 그 오랜 기억과 싸워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이지나 연출하고 내린 결론이 영화와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자는 거였어요. 흰 화폭처럼 무대를 완전히 비우고 가기로 한 거죠. 사실 그런 모험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지나 연출이 그때 했던 말이 아직까지 기억나요. “선생님, <서편제>가 우리의 무덤이 될 수도 있어요.” (일동 웃음)
이지나 원래 무대에선 흰색을 잘 안 써요. 조명 빛이 흰색에 다 반사되니까. 우리가 다른 스태프들이 울든 말든 무대 바닥까지 전부 흰색으로 하겠다고 했더니, 구윤영 감독은 자긴 이거 그만하고 집에 가겠다고 하고. (일동 웃음) 제 경우엔 흰색 무대를 고집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서편제>를 전위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제가 <서편제> 한다고 하면 다들 하는 말이 ‘판소리 하는 올드한 작품을 누가 보겠어?’였거든요. 그런 편견을 깨고 싶은 오기가 있었죠. 어쨌든 다른 건 몰라도, <서편제>를 통해서 무대에서 흰색을 잘 다스리면, 아름다운 비주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자주 시도하고 싶진 않지만. (웃음)
<서편제>에선 한지로 만든 전환막 활용도 돋보였어요.
이지나 저는 디자이너가 무대 미니어처를 주면 하루 종일 그걸 가지고 놀아요. 미니어처를 움직여보면 아이디어가 막 떠올라요. <서편제>는 미니어처를 받고 나서 갑자기 의욕이 솟아오르더라고요. 이 전환막을 잘 활용하면 무대의 태생적 한계를 커버할 수 있어! 무슨 말인가 하면, 장면1의 장소가 A고, 장면2의 장소는 B라고 치면, 영화는 A에서 B로 바로 다음 장면이 연결되는데, 공연은 A에서 B로 가기 위한 과정이 그대로 노출돼요. 게다가 배우 등퇴장 패턴은 거의 비슷하죠. 배우가 무대 상수(오른쪽)에서 등장해서 하수(왼쪽)로 퇴장하거나, 하수에서 등장해서 상수로 퇴장해요. 전 그걸 좀 극복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서편제>에선 전환막을 활용해서 등퇴장 패턴을 바꿔본 거예요. 배우가 움직이는 전환막 뒤에 숨어서 무대로 등장하는 걸로요. 전환막이 싹 사라지면, 배우가 무대에 이미 등장해 있는 거죠. 전환막의 움직임에 맞춰 배우가 움직여야 하는데, 한번은 아역 배우가 전환막보다 늦게 움직여서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던 적이 있어요.(일동 웃음)
박동우 가령 무대 폭이 12미터면,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최소 7미터 이상을 걸어와야 해요. 배우가 그 7미터를 걸어오는 시간, 그게 공연 전체를 놓고 보면 꽤 긴 시간이거든요. 걸음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무대에 등장하기 위한 걸음이니까 좀 지루하죠.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서편제>에서는 배경막 뒤에 배우가 있다가 막이 사라지면 등장해 있는 걸로 모든 등퇴장을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이런 단순한 무대를 가지고 저런 등퇴장 동선을 짜려면 얼마나 머리가 아팠겠어요. 이지나 연출은 정말 집요한 사람이에요.
<서편제>는 흥행 면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애착이 큰 작품일 것 같아요.
이지나 초연 첫날 (차)지연이가 무대에 등장해서 ‘살다보면’ 첫 소절을 부르는데 눈물이 저절로 떨어지더래요. 첫날 관객이 서른 명이었으니까…. (웃음) <서편제>는 흥행이 너무 안 돼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사연 많은 작품이잖아요? 그래서 스태프들은 물론이고 초연 배우들도 애착이 강해요. 어떤 배우들은 <서편제>는 죽을 때까지 평생 할 거라고 하고. 사실 쇼 비즈니스계에선 초연 때 박살난 작품이 구제되기란 거의 불가능한데, <서편제>는 기적이죠. 이게 다 관객들이 입소문으로 살려준 거예요.
박동우 저희처럼 관객이 없었던 공연은 아마 없을 거예요. 보통 티켓이 잘 안 팔리면 무료 초대를 해서라도 일단 객석을 채우거든요. 하지만 <서편제>는 프로듀서가 공연계 관행을 깨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어요. 아무리 관객이 없더라도 할인 티켓이나 무료 초대권을 발행하지 않겠다고 고집했죠. 그러다보니 객석을 절반도 못 채우는 날이 많았어요. 다행히 재공연에선 초연보다 많은 관객이 왔고, 올해 그보다 많은 관객이 와준다면, 작품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가 우리 공연의 분수령이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죠.
그래도 이듬해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 연가>로 전작 흥행 부진의 한을 푸셨잖아요. <광화문 연가>에서 마름모꼴 모양으로 무대를 분할해서 사용했던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박동우 세종문화회관은 세계에서 무대 폭이 가장 넓어요. 지금은 좀 줄었지만, 원래는 무대 폭은 26미터 정도 됐어요. 그런데 <광화문 연가>는 대여섯 명의 사랑 이야기예요. 스케일이 큰 작품이 아닌 거죠. 어떻게 하면 무대를 좁혀서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마름모꼴 무대를 만든 거예요. 이지나 연출이 워낙 배우 등퇴장 동선에 민감하다보니, 그 작품 역시 동선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작업했어요. <광화문 연가>에서도 배우가 무대 좌우에서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이지나 <광화문 연가>에서 라일락 꽃송이가 음표가 되고, 하늘에서 오선지가 내려오는 장면, 아름답지 않았나요? 음표를 하나의 테마로 디자인하신 건데, 일관성 있으면서 얼마나 깔끔해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그 넓은 무대에서 배우가 혼자 서 있을 때예요. 배우의 존재감이 극장을 채울 때, 그것만큼 아름다운 게 없다고 생각해요.
혹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있으세요?
이지나 저는 제일 속상한 작품이 <에비타>에요. 철골 구조의 미니멀리즘 무대로 만들었는데, 관객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요즘 관객들이 선호하는 건 화려한 무대라고 하더라고요. 제 자랑이 아니라, <에비타>는 세트 전환의 교과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공을 들였거든요. 회전무대를 시계태엽처럼 돌리면서 암전 없이 장면 전환을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그런데 주위에선 죄다 ‘에비타’ 연기 얘기만 하더라고요? (웃음) 참, 박동우 선생님께 그때 처음으로 칭찬 들었어요. 연출 잘하셨다고.
박동우 아니, 그 전부터 칭찬 많이 했는데 못 들으셨나보다. 공연은 결국 관객이 있어야 완성되는 거거든요. 공연을 만든 사람끼리 좋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죠. 그런데 요즘엔 관객의 취향을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요. (웃음)
두 분의 새로운 창작뮤지컬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이지나 선생님은 웬만하면 창작뮤지컬을 하자는 주의시죠. 저도 그렇고요. 나이가 들수록 책임감이 생겨요. 연출도 직접 많이 해봐야 실력이 점점 늘거든요. 그러니 창작뮤지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본 요소가 탄탄하게 잡혀있는 라이선스 뮤지컬은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죠. 라이선스 작품을 하면서 자기 스타일이 생겨서 창작뮤지컬도 할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제가 지금 개발 중인 창작뮤지컬을 선생님께 하자고 말씀드렸어요. 선생님도 좋다고 하셨지만, 창작뮤지컬은 언제 공연될지 모르잖아요? (웃음) 그래도 기대해 주세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6호 2014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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