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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MUST SEE] <펀홈> 최유하·이지수·설가은, 가족, 그 밉고도 사랑스런 기억 [No.202]

글 |안세영 사진 |김호근 place | 듀드롭 2020-07-28 6,821

<펀홈> 최유하·이지수·설가은
가족, 그 밉고도 사랑스런 기억 


오는 7월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날 <펀홈>은 미국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레즈비언 앨리슨이 평생 게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살았던 아버지 브루스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뮤지컬에서는 연령대별로 세 명의 배우가 앨리슨을 연기한다. 9세 앨리슨 역의 설가은, 19세 앨리슨 역의 이지수, 43세 앨리슨 역의 최유하와 함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배우가 연기하는 한 사람 

 

<펀홈>은 국내에 소개되기 전부터 뮤지컬 마니아 사이에서 관심이 높았던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어떻게 처음 접했고, 어떤 점에 끌렸나요? 

설가은_ 아는 분이 해외에서 <펀홈>을 보고 오셔서 어린 앨리슨 역할이 저한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해 주셨어요. 그런데 딱 한국에서 오디션이 열린 거예요. ‘이건 해야 돼!’ 하고 오디션을 봤고, 그다음은, 지금의 제가 된 거예요. 안녕! 

이지수_ 어, 그거 19세 앨리슨 대사인데. ‘그다음은 지금의 나야, 안녕.’ (웃음) 저는 처음에 이 작품의 음악에 끌렸는데, 앨리슨 캐릭터가 제가 지금까지 연기해 온 역할과 색깔이 달라서 오디션을 볼까 말까 고민됐어요. 마침 저랑 친한 (이)예은 배우가 미국에서 <펀홈>을 봤다고 하길래 어땠는지 물어봤죠. 마냥 밝지 않은 작품인데도 관객들이 드라마에 공감하면서 재밌게 보더라는 얘기를 듣고 오디션을 보기로 결심했어요. 

최유하_ 저는 오디션 제의를 받고 이 작품에 대해 알게 됐는데, 대본을 읽고 감탄했어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도 장면마다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일관성 있게 이어지더라고요. 아주 멋지게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앨리슨 역할이 각자에게 도전적으로 다가온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설가은_ 이전에 연기한 <마틸다>의 마틸다는 감정을 직접 얼굴로 표현하지 않는 캐릭터였어요. 무표정하지만 관객들이 ‘마틸다는 지금 이런 마음이구나’ 생각할 수 있게 연기해야 했죠. 앨리슨은 마틸다와 달리 감정 표현이 풍부한 아이예요. 화난 표정도 짓고, 슬픈 표정도 짓고, 행복한 표정도 지어요. 이런 다양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싶어요. 

이지수_ 저는 그동안 드레스 입은 얌전한 아가씨 역할을 주로 맡아서 앨리슨 같은 털털한 캐릭터가 낯설어요. 하지만 평소의 저는 털털하고 소탈한 면도 지니고 있거든요. 두 가지 모습 사이에서 앨리슨다운 걸 찾으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공연 때는 머리도 더 짧게 다듬을 생각이에요. 

최유하_ 43세의 앨리슨은 극에 직접 개입하는 대신 내레이터로서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볼 때가 많아요. 저는 연기하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걸 즐기는 배우인데, 이 작품에서는 제 눈을 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상당히 외롭더라고요. 앨리슨처럼 만화를 그리면서 외로움을 달래야 할까 봐요. 기막히게도 제가 만화 동아리 출신이거든요. (웃음) 무대 위에서 실제로 그림을 그리면 좋을 만한 순간을 찾고 있어요. 앨리슨이 기억을 떠올리는 데 집중할 때는 그리기 어렵겠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는 그림을 그리며 연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각 연령대의 앨리슨만이 지닌 특색이 있다면 뭘까요? 

설가은_ 9세 앨리슨은 아직 자기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난 이렇게 하고 싶어’라고 말하다가도 ‘아냐, 아빠 말대로 할게’ 하고 그대로 따라요. 퍼즐로 치면 이제 막 한두 조각을 맞춘 상태인 거죠. 이 퍼즐을 어디서부터 맞춰야 할지 모르겠고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에요. 그에 비하면 19세 앨리슨은 조앤을 만나 자기를 더 잘 알게 됐고, 그래서 아빠를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퍼즐을 절반 정도 맞춘 느낌? 43세 앨리슨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그리고 나이를 먹어서 아빠에 대해서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퍼즐의 완성 같은 느낌이에요. 

이지수_ 원작 만화 속에서 19세 앨리슨은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책만 붙들고 있는 소심하고 냉소적인 친구였어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시크하고 반항적으로 연기했는데, 연출님께서 뮤지컬의 앨리슨은 만화 속 앨리슨과 달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밝은 면도 있고, 들쭉날쭉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를 표현해 달라고 하셨어요. 말투도 깔끔하게 정돈되지 않은 거친 느낌이면 좋겠다고요. 만화만 보고 제가 이런 캐릭터를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연출님 얘기를 듣고 오히려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최유하_ 가은이 표현을 빌리자면, 43세의 앨리슨은 퍼즐을 다 맞췄어요. 그런데 있어야 할 퍼즐 조각 하나가 없는 거예요. 혹은 완성된 그림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거죠.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 기억의 조각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기 시작해요. 43세 앨리슨은 공연 내내 ‘캡션’이란 단어를 외치는데, 여기서 캡션이란 만화 속에서 그림을 설명하는 글을 말해요. ‘캡션, 아빤 동성애자였다. 그리고 나도 동성애자였다.’ 이런 식으로 앨리슨은 캡션이란 말을 사용해 명확한 정의를 내려요. 하지만 뒤로 갈수록 캡션 뒤에 이어질 명확한 문장을 찾기 힘들어하죠. 더 이상 인생을 캡션으로 정의할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에 참고하기 위해 실존 인물인 앨리슨 벡델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나요? 

최유하_ 그가 벡델테스트(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고안한 영화 성평등 테스트)를 고안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실제 앨리슨 벡델이 어떤 사람인지 계속 알아보고 있어요. 처음에는 실존 인물에 연연하지 말고 극 중 인물로 다가가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실존 인물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왜냐면 이건 위인전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쓴 자전적 이야기잖아요. 그러니 당사자의 시선에서 그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대본만 읽었을 때는 짧은 소견으로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굳이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어야 하나?’라는 의문도 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앨리슨 벡델은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원했던 거잖아요. 이건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공연 때는 저도 실제 앨리슨 벡델처럼 머리를 짧게 자를 거예요. 안경도 똑같이 쓸 생각이고요. 
 

19세의 앨리슨은 학교 선배인 조앤과 사랑에 빠지죠. 뮤지컬에서 보기 드문 여성 커플인데, 조앤 역할 배우와 연습실에서 호흡을 맞춰본 소감이 궁금해요. 

이지수_ 아무래도 지금껏 이성 커플만 연기해 봐서 동성과의 애정 신이 어렵게 다가왔어요. 근데 막상 연습을 해보니까 이전까지의 연기와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으니까요. 사실 극에서 조앤이 앨리슨을 리드하는 것과 다르게 연습실에서는 앨리슨 역 배우들이 더 적극적이에요. 조앤 역의 (이)경미 언니가 스킨십을 쑥스러워해서 언니를 놀리다 보니 저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웃음) 
 

세 앨리슨에게는 각각 ‘열쇠고리’, ‘전공을 바꿀 거야’, ‘전화선’이라는 멋진 솔로곡이 있잖아요. 이 노래를 부를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설가은_ ‘열쇠고리’는 어린 앨리슨이 자기가 되고 싶은 모습의 여자 어른을 보고 부르는 노래예요. 귀가 녹을 만큼 듣기 좋은 노래인데, 가사의 의미를 알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을 표현하면서 부르려니까 어렵더라고요. 여기서 앨리슨은 알을 깨고 태어나는 병아리 같아요. 깜깜한 껍데기 속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병아리한테 처음 보는 밝고 넓은 세상이 펼쳐진 거죠.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무서움, 하지만 이제 내가 누군지 안다는 행복함, 이런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면서 노래해야 해요. 제가 그 감정을 잘 표현하면 좋겠어요.

이지수_ ‘전공을 바꿀 거야’는 앨리슨이 조앤과 사랑에 빠져서 부르는 노래인데, 일반적으로 뮤지컬 넘버에 쓰이지 않는 직접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가요. ‘이제부터 내 전공은 조앤과 섹스하기, 부전공은 키스하기’ 이런 식이죠. 처음에는 민망했지만 일단 표현이 입에 붙으니 여느 뮤지컬 속 사랑 노래와 다름없이 진심을 전하는 노래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위키드>의 ‘Popular’처럼 대사 치듯 불러야 하는 노래라서 어떻게 하면 더 재밌고 다이내믹하게 부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최유하_ ‘전화선’은 처음 들었을 때부터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끌렸던 노래예요. 오늘 오전에 드디어 이 장면을 연습했는데, 아빠가 43세의 앨리슨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 솟더라고요. 그동안 무대 위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거리를 두고 지켜보던 앨리슨이 그 순간 기억 속으로 확 빨려 들어가요. 극 초반에 ‘난 기억이란 걸 믿지 않는다, 실제 물건이 있어야 그릴 수 있다’라고 말했던 그가 자기도 모르게 점점 기억과 가까워지고 있는 거예요. 그때 느끼는 혼란스런 감정이 이 노래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줘요. 공연 때 이 장면에서 울지 않도록 연습실에서 많이 울어 두려고요. 


 

낯설지만은 않은 가족 이야기 

 

나이를 먹으면서 앨리슨이 아버지에게 갖는 감정도 달라지겠죠? 각각 9세, 19세, 43세의 앨리슨이 바라보는 아버지 브루스는 어떤 사람인가요? 

설가은_ 다큐멘터리에서 파란 고리 문어라는 동물을 봤는데, 무늬가 아주 예쁘지만 맹독성 동물이라 함부로 만졌다간 죽을 수도 있대요. 아빠도 파란 고리 문어처럼 두 가지 모습이 있는 사람이에요. 화낼 때는 정말 무섭지만 비행기를 태워주고 자장가를 불러줄 땐 정말 다정하거든요. 

이지수_ 연출님이 말씀하시길 삼남매 가운데 제일 아빠와 친밀한 자식이 바로 앨리슨이래요. 브루스와 앨리슨은 취향은 다르지만 둘 다 예술가 기질이 있어요. 어쩌면 브루스도 앨리슨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걸 느끼고, 애정 어린 마음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전해 주려고 했는지도 몰라요. 조앤을 만나기 전까지 친구가 없었던 대학생 앨리슨에게 함께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빠는 유일한 대화 상대나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아빠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이 크면서도 내심 ‘아빠랑 내가 이래서 비슷했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최유하_ 그동안 아빠에 대한 트라우마 없이 잘 지내왔다고 믿었던 앨리슨은 마흔셋에 슬픔인지 후회인지 모를 어떤 감정과 마주해요. 무언가에 가로막혀 더는 못 나아가겠는 거죠. 근데 아빠가 죽은 나이가 딱 그즈음이거든요. 그래서 제 첫 솔로 파트 가사가 ‘마흔셋이 된 난 갈 길을 잃었어. 아빠와 닮아 그런가?’예요. 하지만 나는 아빠와 달리 동화 같은 이야기로 만족할 수 없다, 아빠는 클로짓 게이로서 예쁜 집과 가족이라는 쇼를 했지만 나는 그 안에 숨은 진실을 알아야겠다 마음먹고 기억을 돌아보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아빠가 나에게 준 상처를 봐요. 9세에는 귀를 막고 그 상처를 외면하다가, 19세에 막 ‘난 아빠와 달라’ 하고 반항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아빠의 비밀을 알게 돼요. 그리고 그 사실에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이별을 맞죠. 어떻게 보면 19세 앨리슨은 아빠와 소통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를 닮은 사람, 내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모든 걸 배운 사람에게 묻고 싶었겠죠. 아빠, 나도 동성애자야. 아빠는 그걸 알았을 때 어땠어? 그동안 어떻게 견뎠어? 그런데 그 사람이 나만 혼자 남기고 떠나버렸어요. 당연히 그에 따른 고통이 있었을 텐데, 그걸 무시하고 20년을 산 거죠. 앨리슨이 만화를 그린 건 그때부터 자기 안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남아 있던 아빠를 제대로 돌아보고 추모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감히 추측해요. 아빠는 20년 전에 떠났지만, 앨리슨이 정말로 자기 안에서 아빠를 떠나보낸 건 이 만화를 그린 다음이라고요. 
 

이 작품은 브루스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그 안에 어머니 헬렌의 이야기도 담겨 있잖아요. 헬렌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설가은_ 헬렌은 ‘매일’이라는 노래에서 ‘이 집의 모든 게 조화롭고 편해’라고 노래하려고 하지만 차마 ‘편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해요. 편할 리가 없죠. 헬렌은 브루스가 동성애자라는 걸 알았을 때 배신감을 느끼고 속상했을 거예요. 한때는 자기를 설레게 만들었던 사람이지만,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많이 울었을 거예요. 그리고 앨리슨이 동성애자라는 걸 알았을 때는 딸도 아빠처럼 진짜 자기 모습을 숨기고 힘들게 살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 같아요. 

이지수_ 헬렌이 클로짓 게이인 남편과 살아온 아픔을 19세 앨리슨에게 처음으로 드러내는 노래가 바로 가은이가 얘기한 ‘매일’이에요. 이 노래를 들으면 가족을 위해 희생한 저희 엄마 생각이 나요. 너는 나처럼 되지 말고 소중한 네 삶을 살라는 얘기가 마치 엄마가 저한테 해주는 말 같기도 하고요. 엄마와 딸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잘 드러나는 노래예요. 

최유하_ 헬렌의 서사가 없었다면 <펀홈>이 지금처럼 좋은 작품이 되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브루스라는 클로짓 게이가 가족에게 끼친 악영향이 헬렌의 서사를 통해 처연하고 현실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 작품이 단순히 브루스를 미화하고 연민하는 극이 되지 않는 거죠. 헬렌의 서사가 없었다면 저는 이 작품에 출연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벡델 가족의 이야기에서 나와 내 가족을 떠올리게 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지수_ 브루스는 딸 앨리슨에게 좋은 책을 소개해 주고 같이 토론도 하잖아요. 실제 저와 아빠의 관계도 비슷해요. 아빠가 종종 제게 뮤지컬 음반이나 공연 티켓을 선물해 주셨거든요. 함께 음악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같이 재즈 댄스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죠. 제가 뮤지컬배우가 된 건 아빠 덕분이에요. 

최유하_ 저는 20대 중반까지 우리 가족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죠. 그러다가 제가 배우의 길을 선택하면서 부모님과의 관계가 틀어졌어요. 부모님은 제가 배우 일을 하는 걸 반대하세요. 지금도 가족이 모이면 즐겁게 웃으며 시간을 보내지만, 제 커리어에 대해 말하는 건 금기시되어 있어요. 마치 헬렌과 브루스가 동성애에 대해 대놓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요. 어떤 가족이든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 곪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벡델 가족도 겉보기에는 멋진 집에 살지만 마음은 곪아 있잖아요. 그걸 이 작품은 ‘웃기는 집안(Fun Home)’이라고 시니컬하게 표현한 거고요.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돌아가길 바라나요? 

이지수_ 가정사라는 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 몇 개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잖아요. <펀홈>은 그런 가족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작품이에요. 공연을 보면서 ‘왜 우리 집만 이럴까’라는 괴로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길 바라요. 

설가은_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여러분 가족 중에도 브루스나 앨리슨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당신의 제일 친한 친구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요. 나와 내 가족, 친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공연을 보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이 공연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2호 2020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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