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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더 모먼트> 홍승안, 낭만의결과물 [No.202]

글 |박보라 사진 |김승완 2020-07-26 5,588

<더 모먼트> 홍승안
낭만의결과물


‘존재 가능한 상태들이 중첩되어 있다가 관측되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확정된다.’ 이 아리송한 이야기를 담은 <더 모먼트>는 우리에게 낯선 양자역학과 평행우주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적 이론을 설명하며 우연과 운명 그리고 낭만을 말하는 홍승안. 그의 낭만적인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의 우주가 궁금해졌다. 



필연과 우연의 운명적 작용   
<더 모먼트>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작품을 쓴 표상아 연출님과 잘 아는 사이에요. 연우소극장에서 연극 <페이퍼>를 함께했거든요. 그때의 인연으로 연출님하고 종종 공연을 같이 보는데, 어느 날 양자역학을 소재로 한 뮤지컬을 구상 중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전 복잡한 수학과 과학이 낯선 문과 체질인데도 연출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양자역학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신기했어요. 양자역학 이야기가 무대에서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궁금했죠. 그러다 이 작품이 공연될 거란 소식을 듣게 됐고, 감사하게 저도 참여하게 됐어요.

이번 작품에서 맡은 소년은 어떤 인물인가요?  소년은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는 10대 끝자락에 서 있는 인물이에요. ‘끝자락’은 설레거나 위태롭잖아요. 홍승안의 열아홉을 되돌아보면 불안한 동시에 확신에 차 있어요. 스물을 맞이하면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폭도 넓어졌고요. 이런 감정들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더 모먼트>에서 소년은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추억이 담긴 산장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녀 대신에 다른 아저씨들을 만나게 돼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들이 왜 여기에 함께 있지?’라는 궁금증이 점차 피어나죠.

배우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이잖아요. 소년에는 홍승안의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요?  소년은 저하고 너무 다르면서도 비슷해요. 소년은 미성숙하지만 무언가를 결정할 때 겁이 없어요. 과거의 홍승안도 겁이 없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내성적이면서도 겁쟁이었는데, 사춘기 때 많이 변했어요. 내가 진짜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많이 고민했고, 부모님이 기대하는 모습과 계속 부딪혔어요. 그 과정이 부모님과 가까워진 계기가 됐고, 결과적으로는 저를 신뢰해 주셨죠.

이 작품에서 흥미로웠던 요소는 뭐였어요?   양자역학과 평행우주라는 소재요. 처음에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라 뮤지컬에서 ‘이게 어떻게 가능해?’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연출님의 설명을 여기에 살짝 풀어놓자면 이래요. 시간은 흐르고 있는 게 아니고 평평하다고 가정해 보면, 시간을 한 장의 종이라고 여기는 거죠. 종이의 한쪽에는 기자님이 서 있고, 그 반대편에는 제가 서 있어요. 이 상태에서 우리는 만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종이의 가운데에 무거운 쇠 구슬을 떨어트리면 그 힘으로 인해 종이가 반으로 접히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거예요. 굉장히 아름답고 낭만적이지 않나요.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모먼트>는 여기서 출발하는 이야기에요. 여전히 이 개념에 대해 많은 사람이 논쟁하고 있지만 말이에요. 저희 작품 등장인물은 이러한 논리를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요. 이 논리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혹은 이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등장하죠. 

혹시 또 다른 매력 포인트를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저는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낭만이 있기 때문이죠. 이 작품에서는 낭만의 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요. 마음에 있는 낭만이 자연스럽게 샘솟을 수 있는 이야기죠.  

승안 씨가 생각하는 낭만은 무엇인가요?  낭만은 어떤 필연과 어떤 우연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정해 놓은 목표, 해내야 하는 무언가, 그리고 이것을 위해 과정을 선택하는 것은 제 스스로 정해야만 해요. 그런데 그 안에서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 발생하면 그 순간이 빛나 보여요. 내가 몰랐고, 예상하지 못한 감정과 선택들이 모여 마음을 타다닥 울리죠.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 같아요. 살면서 계획대로만 가도 즐겁지 않고, 계획이 없으면 쉽게 질서를 잃어버리죠. 필연과 우연이 만나고 그게 계속 이어지면 그게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신이 있다면 이러한 운명도 알고 있나. 궁금하기도 해요. 이렇게 살아가는 게 즐겁지 않나요? 

필연과 우연이 만나 발생한 낭만의 순간을 말해 줄 수 있어요?  낭만의 순간이 그렇게 거창하지 않은데 괜찮을까요? (웃음) 지금 <더뮤지컬> 인터뷰도 제겐 낭만적인 에피소드에요. 사실 얼마 전에 제가 많은 인터뷰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터뷰보다는 연습에 매진하고 싶었죠. 그런데 우연하게도 기자님이 연락을 주셨고, 1년 반 만에 다시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잖아요. 또 지금 인터뷰 때문에 오랜만에 분장 선생님과도 만나 한바탕 웃고 떠들고 왔어요. 오늘 벌어진 일만 해도 필연에 우연이 녹아든 거죠. 농담이 아니라 이런 매 순간이 특별해요. 이런 일을 만날 때마다 흥미롭고 설레고, 삶이 즐거워지는 것 같아요. 우선 지금 내가 재미있잖아요. 

극 중 죽음이라는 소재도 등장한다고요.  우리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에 결코 익숙하지 않아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세 인물이 존재하는 시간이 다른데, 당연히 이들이 경험하는 죽음도 달라요. 10대인 소년은 죽음과 가깝지 않죠. 어린 시절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죽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예견한 죽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죽음도 있어요. 그보다 더 시간이 흐르면 죽음이 자신에게도 다가오는 나이를 먹게 되죠. 나이에 따라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무대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마음과 이야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봐주셔도 좋은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에 가까운 사람들과 영원한 이별을 경험했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사람이 마지막으로 완전하게 사라질 때가 기억에서 사라질 때라고. 제가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으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확신으로 뭉쳐진 진심   
연습실 분위기는 어때요?  정말 재미있어요. 특히 사내, 남자, 소년의 아이러니한 관계에서 오는 좌충우돌이 있죠. 팽팽하게 얽힌 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긴장과 재미가 있거든요. 그리고 엄청 멋있어요. 다들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숨을 못 쉴 정도로요. 

<더 모먼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나요?  아직 연습 중이지만 작품의 가장 첫 노래인 ‘저기 보이지 않는’이요. <더 모먼트>가 지닌 낭만을 담고 있는 곡이거든요. 가사와 멜로디를 들으면 꿈을 꾸게 돼요. 저절로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삶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그 장면을 바라볼 때면 예쁜 눈망울로 바뀌면서 노래에 젖어드는데, 촉촉해져요. 이 노래말고도 다른 음악도 정말 좋아요. 

만약 다른 시간에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어느 시절의 홍승안을 만나러 갈 건가요?   저는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1학년 때의 홍승안을 만나고 싶어요. 사춘기라고 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결과를 떠나서 충분한 고민과 생각을 해서 아쉽지 않거든요. 그보다 더 어렸을 땐 강해 보이고 싶었어요. 잘 싸우지도 못하면서 싸움을 잘하는 척, 축구도 잘하는 척했거든요. 남에게 지기 싫고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안타깝죠. 조금 더 솔직하고 즐겁게 놀 수 있었을 텐데. 남들이 보는 내 모습에 신경을 쓰기보다 나에게 더 집중했다면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아서요. 또 그때 만난 친구가 지금은 다섯 명 정도 곁에 있는데, 그렇게 살았으면 열 명 정도는 남지 않았을까도 싶어요.

작품과 작품 사이에 빈틈이 거의 없어 보이는데,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이유나 목적이 있나요?  작년에 정말 열심히 무대에 섰는데 <경종수정실록>을 끝내고 두 달 정도 쉬었어요. 꾸준히 무대에 설 수 있어서 감사했지만, 휴식이 필요했어요.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지? 내가 낮을 좋아했나, 밤을 좋아했나? 내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사라졌어요. 낭만을 잃지 않고 살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배우는 컨디션이 중요하고 일정한 생활 리듬에 맞춰서 살아야 해요. 정말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니까 나를 바라보지 못하게 됐더라고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 6주 정도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제 자신을 마주하고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 사랑하는 무대에 올라야죠. 

작품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확신이요. 확신을 느끼는 부분은 여러 가지인데, 함께 만들어가는 배우나 창작자일 때도 있고, 소재일 때도 있고, 대본이나 가사일 때도 있고, 노래일 때도 있어요. <더 모먼트>는 탄생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과학적인 소재들에 재미와 확신을 얻었다면, <베어 더 뮤지컬>은 대본에서 믿음을 찾았어요. 또 저는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좋아해야만 해요. 대본을 읽으면서도 제가 ‘이 인물을 좋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바라보는 편이죠.  

감정 소모가 큰 작품들에 많이 참여한 편이에요.   지금 출연하고 있는 연극 <언체인>과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도 그렇고 격한 감정을 많이 내뿜는 작품들에 참여했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제겐 모두 소중한 작품이에요. 감정을 소비하고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이 깃든 캐릭터를 연기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했죠. 그것이 정말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힘든 것보다는 매 순간 한 인물로 연기하고, 작품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지금까지 배우로 살아오면서 타협할 수 없는 점이 있다면요?   언제나 지키고 싶은 마음은 하나예요. 배우로서 무대에 오르면서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요. ‘아…, 오늘도 공연이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공연장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극장에 억지로 일하러 가는 마음이 든다면 슬플 것 같거든요. 혹시라도 만약에 컨디션이 안 좋거나, 투정처럼 이런 말은 할 수 있어도, 누군가가 시켜서 무대에 올라가고 싶지는 않아요. 무대에 오르는 그 순간은 정말 소중하거든요. 

마지막으로 <더 모먼트>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극장에 오시면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추억과 낭만을 꺼내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많은 분들께서 이런 마음을 느끼실 수 있도록 열심히 만들고 있으니, 꼭 공연장에서 뵀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2호 2020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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