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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소서노> 조정은 [NO.126]

글 |송준호 사진 |김호근 2014-03-25 6,126

빈틈이나 부족함도 전부 ‘나’다

                                            

판틴의 후유증이 컸던 탓일까. 조정은은 지난해 <레 미제라블>을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가에 들어갔다. 연말에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리딩 공연 <어차피 혼자>에 얼굴을 내비쳤지만, 이후 자취를 감췄다. 칩거하던 그가 복귀 소식을 알린 것은 <소서노>였다. 극을 혼자 이끄는 원톱 주인공에 욕심이 났던 것일까. 그런 의문이 무색하게, 조정은은 배우로서 출발지였던 서울예술단과의 10년 만의 재회에 담담히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소극장에서 발견한 다음 단계

<레 미제라블>이 9월에 끝났으니 반년 만의 무대 복귀네요.
막 내리기 전에 일부러 차기작 계획을 안 잡았어요. 무조건 푹 쉬리라 생각했거든요. <맨 오브 라만차>에 맞물려서 <레 미제라블>을 하게 돼 피로가 많이 누적돼 있었어요.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어요. 9월부터 12월까지 쉬었는데, 그 석 달 동안 하루도 지겨웠던 적이 없었을 정도였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쉬는 게 계획이었죠. 추민주 연출과 작업을 할 때까지 그 계획 정말 잘 지켰죠. (웃음)

 

그런데 ‘추민주’와 ‘조정은’은 언뜻 매칭이 잘 안 되는 조합 같았어요.
맞아요. (웃음) 사실 예전에 <빨래>를 보고 연출님에 대한 호감이 굉장히 컸어요. 언젠가는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었고, 실제로 <레 미제라블> 막바지에 연극 출연 제의도 왔었는데 그땐 제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나중에 변희석 음악감독을 통해 연출님이 새로 쓰신 <어차피 혼자>에서 저와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듣게 됐어요.

 

실제 해보니 어떻던가요.
너무 어려웠어요. 하지만 안 했으면 후회할 뻔했어요. 그리고 공연된다면 이 팀이랑 꼭 같이하고 싶어요. 사실 저 빼고는 거의 <빨래> 팀이라 처음엔 낯설기도 했어요. 하지만 배우들이 다 훌륭하고, 특히 이정은 언니는 개인적으로 팬이어서 만나보고 싶었죠. 이 기회에 제가 배우로서 풀어야 할 숙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풀어야 할 숙제라.
그동안 소극장 작품을 안 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스핏 파이어 그릴> 이후로 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또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소극장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소극장은 감출 수가 없잖아요.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거니까. 민얼굴의 나를 만나는 느낌? 감정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어요. 그런 작업이 굉장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던 차라, 얻은 게 많아요.

 

앞으로 가려는 방향에 대해 깨달은 게 많은 시간이었군요.
그동안 대극장 작품을 많이 하면서 스스로 의문을 가졌어요. ‘내가 대극장에 맞는 배우인가’, ‘내 기질과 대극장이라는 공간이 맞나’. 저는 뭔가 끊임없이 발산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무언가 많이 내뿜으면 그만큼 에너지를 축적해야 발산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가끔은 대극장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요. 반면 소극장에서는 굉장히 편안한 느낌이에요. 감정을 과장하지 않아도 되고, 소소한 넘버들이 감정을 드러내주기도 해요. 그게 대극장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면들이라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대극장과 소극장을 오가면서 다양하게 기회를 만들고, 그러면서 감정을 풍성하게 만들어가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작업을 즐겁게 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요.


그럼 앞으로는 창작뮤지컬이나 소극장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겠네요.
그럼요. 추민주 연출님이 마음만 바꾸지 않는다면 <어차피 혼자>는 꼭 할 생각이에요. 또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번지 점프를 하다>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저번에 연강홀에서 하는 거 봤는데, 역시 좋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중·소극장에서만 가능한 호흡이나 힘이 있어요.

 

 

 


 

 

‘과정’과 ‘사람’이라는 가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작품 선택의 기준도 바뀌고 있는 듯해요.
예전에는 그 기준이 제 빈틈을 잘 메워줄 수 있는 대본이나 제작진이었어요. 실제로 의지도 많이 했고요. 제가 까탈스러운 배우라서가 아니라, 그런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제가 채울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런저런 작품을 하면서 부족함을 무엇으로든 채우려는 노력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나만이 가진 장점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걸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했던 거죠. 물론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단지 그 기준만으로 출연 여부를 결정해버리는 우는 범하지 않겠다는 거죠.


그런 생각의 변화는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는 방증일 수 있겠어요.
그렇겠죠. <피맛골 연가>의 홍랑 역으로 제가 한국뮤지컬대상(17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그 작품이 여우주연상을 받을 작품은 아니라고 봤어요. 그런 상은 <아이다>나 <에비타>, <미스 사이공> 같은 전형적인 대작들에서 많이 나오잖아요. 당시 <아이다>의 정선아라는 강력한 후보도 있었고요. 그래서 저조차도 후보에 올랐을 때 별로 기대를 안 했어요. 그러다 수상 후 든 생각은, ‘내 고유의 색깔을 인정해주시는구나’였어요. 그때부터 받아들이게 된 거죠. 이전까지는 남들이 인정을 해줘도 저의 외모나 목소리를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이번에 <소서노>를 하게 된 것도 그런 변화의 영향인가요.
그런 셈이죠.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의미는 ‘서울예술단’에 있어요. 만약 이곳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곳에서 시작했고, 10년 만에 객원배우로 들어와서 다시 하게 된 데 큰 의미가 있어요. 첫날 연습에 갔을 때도 기대 이상으로 편했어요. 저만 열 살 더 먹었을 뿐인데 그 익숙한 느낌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 옛날 함께했던 선배님들이 지금도 계신데, 그때는 제가 마냥 아기 같았지만 지금은 동료로 대해주시고 의견을 공유해요. 이런 과정이 지금의 제게는 작품의 결과물보다 더 소중해요. 작품을 결정하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진 거죠. 작품 자체가 아니라 이런 과정들과 계기들, 사람들이 더 중요해진 거니까. 예전이라면 이런 결정을 안 했겠죠.

 

소서노는 드라마를 통해 현명하고 당찬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죠. 여기서도 그런가요.
역사에 근거한 소서노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 많아요. 그래서 바뀐 부분들이 좀 헷갈릴 수도 있어요. 아마 소서노도 영웅이나 장부로서의 모습보다는 ‘여성’에 중점을 두고 많이 각색될 것 같아요. 남자들은 그저 정복하고 싶어하잖아요. 전체의 안정보다는 개인의 야욕이 강하기 때문인데, 여자들은 엄마가 되는 과정을 겪어서 그런지 화합과 평화를 추구하는 점이 다른 듯해요. 이 작품의 소서노 역시 그런 여성만의 강점이 강조될 것 같아요.

 

첫 장면인 무술 대련 신부터 내내 소서노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가 되던데요. 타이틀롤이라 넘버도 많고 체력 소모가 클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소서노가 눈에 띄려면 결국 주몽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목이 ‘소서노’이다 보니 초반에는 제 분량이 많았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주변 인물들이 고르게 다 잘 보여야 그 바탕 위에서 소서노가 더 잘 보이겠죠. 그래서 지금 주몽의 비중이 굉장히 커졌고, 결국 이 두 사람이 시종일관 대비되는 모습으로 고치고 있는 중이에요.


아무튼 <레 미제라블> 이후 오랜만의 작품이에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팬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요.
조정은 개인의 어떤 모습보다는, 제가 서울예술단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도 그런 제 모습에 기대가 커요. 10년 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억하는 분들은 그때의 선배들과 다시 만나 이 작품을 하는 저를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저 개인의 출연에 방점이 찍히기보다는 그런 서울예술단과 저의 역사에 의미를 두셨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일단 작품이 잘 나와야겠지만요.

 

얼마 전 [더뮤지컬]의 ‘응답하라 2004’라는 기사를 혹시 보셨나요. 10년 전의 풋풋한 조정은을 다시 볼 수 있는 지면이었는데요.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의 프로필에 만족하는지.
그거 봤어요. (웃음) 그렇게 가끔 돌아보는 기회가 재미있고 좋은 것 같아요. 지금 봐도 그 눈빛에 이것저것 하고 싶어하는 것들이 다 보여요, 같이 사진 찍었던 선배들 보면 더 새롭죠. 지금 제 얼굴도 그때와 비교해보면 많이 변해 있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크게 벗어나지 않게 살아온 거 같아서 다행이고, 지나온 시간들에 만족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6호 2014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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