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
코로나를 넘는 길, 누구도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야
코로나19 이후 공연계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에 빠졌다. 배우는 배우대로, 스태프는 스태프대로 공연을 할 수 없으니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이가 없다. 누군들 코로나19 정국을 타계할 특별한 묘안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고민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를 찾은 이유는 불안과 혼란의 시기에 같이 고민을 나누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를 맞다
코로나19로 공연계 전체가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공연을 하다 보면 어려움을 겪곤 해요. 코로나 초기에는 예전에 더 어려운 일도 겪었는데 이번에도 잘 이겨내겠지 그랬단 말이에요. 장기화되다 보니까 공연 산업 전체가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는 공연장을 전면 폐쇄했잖아요. 아직은 명쾌한 해결책이 없는 거 같아요.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지만 결론은 어떻게든 극복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거예요. 초반에는 무기력했지만 이제는 추스르고 이겨내야 한다는 마음을 품게 돼요.
이전에도 많은 고비가 있었을 텐데요. 이번 코로나19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대형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를 올릴 때 회사가 힘들었죠. 그때만 해도 우리는 <아이다>, <시카고>, <맘마미아!> 히트 콘텐츠가 있었으니까 버틸 힘이 있었어요. 흥행이 어려운 공연 뒤에는 <시카고>나 <맘마미아!> 등 히트작을 배치해서 잘 넘어갈 수 있었어요. 1999년 <갬블러> 할 때는 그런 콘텐츠가 없었지만 그때도 잘 넘겼어요. 지금은 우선 공연을 못 올리니까, 지출만 있지 수입이 없잖아요. 그때하고는 비교가 안 돼요.
모두가 힘든 시기에 취소된 공연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 들에게 개런티를 지급했다는 훈훈한 일화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SNS를 통해 나중에 알려져 기사화되기도 했는데요. 알리려고 한 일은 아니에요. SNS를 통해 알려져서 나도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맘마미아!>만 해도 스태프, 배우, 연주자를 다 합치면 130명이 돼요. 그중에는 젊은 친구들이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예술가의 꿈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였어요. 예술가를 꿈꾸는 20대 초반의 친구들이 집세는 낼 수 있어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지 않겠어요. 요즘은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이 친구들이 계속 눈에 밟히더라고요. 생활이 어려워서 꿈을 포기하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죠. 더더욱 고마운 것은 선배들이에요. 선배 배우들이 10%만 받으면 나머지 스태프나 후배 들에게 30%를 지급하겠다고 동의를 구했어요. 선배들이 흔쾌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응원해 주어서 용단을 내릴 수 있었죠.
훈훈한 일화로 배우들에게 조공을 받기도 했다고요. 앙상블 배우들이 도시락을 보내주었어요. 그냥 도시락이 아니라 신시 힘내라는 응원의 도시락이었어요. 한국 뮤지컬의 버팀목으로 신시가 힘을 내야 우리도 설 무대가 있다는 메시지를 함께 보내주었는데 참 감동스럽더라고요. 이번 <아이다>를 마치고 앙상블 배우들이 ‘감촉상’을 주었어요. 저는 그 상이 어떤 훈장보다 값지다고 생각해요(배우들이 마련한 감촉상장에는 <아이다>라는 좋은 작품을 발굴한 감(感)과 뛰어난 스태프와 뮤지컬 전문 배우로 훌륭한 앙상블을 이뤄낸 촉(觸)을 높이 사서 수여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금처럼 사회 전체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공연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문화 예술의 역할이 그런 것이죠.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보듬어주고, 삶의 윤활유가 되는 거잖아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위로를 전하고 꿈과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게 공연의 역할이에요. 지금이 오히려 더 절실한 시기인데 공연을 할 수 없으니까 답답하죠.
신시컴퍼니는 지난 30여 년 동안 많은 위기가 있었을 텐데 잘 극복해 왔습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우리와 함께한 배우, 스태프,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늘 하는 말인데 모든 콘텐츠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요. 사람의 창의력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지 기계가 해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고 예우하기 때문에 신시가 탄탄한 앙상블을 구축할 수 있었어요. 기획 팀도 마찬가지에요. 신시에는 15년 이상 함께한 사람이 많잖아요. 사람이 소중한 자산이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창의력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디큐브아트센터 장기 프로젝트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가장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요? 고향인 해남 신문에 칼럼을 쓰는데, 이번 주는 <렌트> 첫 연습을 앞두고 느낀 감회를 적었어요. 밥 세 끼를 먹듯 당연히 저녁엔 공연을 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모여서 연습을 하고 공연을 올리던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을 코로나 때문에 못하게 되니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알겠더라고요. <렌트> 첫 연습 때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앞으로 공연이 어떻게 될지, 또 관객들이 와줄지 아닐지 모르는 불안한 출발이지만 이렇게 모여서 연습을 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얼마나 원했고 소중한 일인지, 우리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자고 말이죠. 모두들 공감해 주더라고요. 전 세계의 공연계가 강제 휴업을 당한 상황이잖아요. 귀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자고 했어요.
지금 같은 미래 계획을 세우기 힘든 시기에 신시컴퍼니는 2023년까지 디큐브아트센터를 3년간 대관하고 <렌트>, <고스트>, <시카고> 등의 라인업을 미리 발표했습니다. 디큐브아트센터를 지난 3월부터 사용하기로 했으니까 시작은 <맘마미아!>부터였어요. 신시의 시작은 항상 <맘마미아!>부터예요. 먼 미래를 보고 제작해 보자는 생각으로 3년치 라인업을 셋업해 놓았어요. 신시의 대극장 레퍼토리를 쉬지 않고 한 장소에서 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도전이에요. 요즘 같은 상황에는 걱정도 되고 불안하고 편치 않은 마음이에요. 그래도 나아지지 않겠어요. 몇천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연극이 없어질래야 없어질 수 없는 것이잖아요. 수많은 영혼을 치유해 주는 존귀한 작업이니까 일단 해 나가야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번 프로젝트를 임하는 자세도 다를 것 같습니다. 환경이 어렵다 보니까 배우나 스태프 모두가 절박하고 절실한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늘 할 수 있을 때와는 다르게 더 소중하게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전 세계 공연 환경이 어렵지만 이럴 때일수록 좋은 작품을 저돌적으로 마케팅할 필요가 있어요. 현실은 암담하지만 그래도 신시에는 어려움을 잘 이겨낸 좋은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이번에도 슬기롭게 이겨낼 거예요.
장기 프로젝트의 첫 작품 <렌트>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작품 선정은 내가 관여하지 않아요. 최은경 대표와 신시의 후세대가 다 알아서 해요. <렌트>를 한다고 했을 때 조금 걱정이었어요. 20년 전 초연할 때만 해도 충격적이고 스타일 자체가 놀라운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염려됐어요. 그런데 뉴욕의 오리지널 연출가를 불러다 해보자는 거예요. 그동안 신시의 <렌트>에서 벗어나 오리지널에 가깝게 만들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겠다 싶었죠(이번 <렌트>의 연출은 1997년 미국 투어 공연에 엔젤로 참여하고, 2011년 마이클 그라프의 조연출로 참여한 앤디 세뇨르 주니어가 맡는다). 외국 연출가가 참여하면 공개 오디션을 통해 배우들을 편견 없이 뽑을 수 있어요. 그동안 신시는 스타 캐스팅보다 공정한 오디션 과정을 거쳐 뮤지컬 전문 배우를 캐스팅해 왔어요. 스타를 쓰느냐, 신인 배우에게 모험을 거느냐, 이 선택은 늘 어려운데 저는 항상 후자를 선택했어요. 젊은 배우들도 실력이 좋으면 조역이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제작사가 몇 개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캐스팅을 하다 보니 앙상블이 좋아졌어요. 이런 작품들이 성공해야 뮤지컬 전문 배우가 어려움을 겪지 않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요.
이번 프로젝트가 걱정되시겠지만 공연계로서는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보통 한 작품에 150~200명의 인력이 투여되니까 다섯 작품이면 800~1,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거잖아요. 자꾸 일을 하게끔 만들어주어야 해요. 멍석을 깔아주는 게 프로듀서의 역할이죠. 지금은 그런 역할이 제일 중요할 때예요. 공연 시장이 위축되었다고 두 작품 할 걸 한 작품 하고, 한 작품 할 걸 취소해선 안 돼요. 힘을 갖고 예술가들을 무대로 끌어내야 해요. 그래야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요.
코로나 이후의 공연계
코로나19 이후 공연계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요? 최근 극장에 갈 수 없으니까 온라인 상영을 많이 하잖아요. 코로나19가 지속된다면 공연을 어떻게 온라인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극장 촬영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지 고민해야죠. 공연은 드라마나 영화와는 다르니까 영상도 무대적인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해요. VR을 통해 모든 방향에서 관람이 가능하게 한다든가, HMD를 이용하면 <마틸다>의 그네 장면에서는 그네가 눈앞까지 다가오는 느낌을 받지 않겠어요. 다양한 자리를 선택해서 객석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그러기 위해선 시스템에 엄청난 투자가 있어야겠죠. IT 강국이니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단지 온라인이다 보니 좀 더 대중적으로 인지도 있는 배우가 출연해야 할 것이고 신인들이 설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문제일 거예요.
랜선 공연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입니다. 영상화를 좋아하진 않죠. 공연은 현장성인데 그걸 좋아할 연극인이 누가 있겠어요. 코로나 시국이 장기화되면 공연을 안 할 수 없으니까 하나의 방법이라는 거죠. 온라인 공연을 할 때 배우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기술 스태프들까지도 개런티를 책정해 주어야 한다고 봐요. 그게 전제 조건이죠.
코로나19로 국경이 높게만 느껴지는데 투어 공연이나 레플리카 공연에 영향이 있을까요? 앞으로 투어 공연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거예요. 레플리카와 논레플리카 공연은 장단점이 있잖아요. 레플리카는 무대나 의상 등 모든 것을 공수해 오니까 원작의 작품성을 보장할 수 있어요. 반면 논레플리카는 우리 스태프를 발굴하고 경험을 쌓게 한다는 장점이 있죠. 우리 스태프의 역량이 높아지고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작품이 아닌 이상 논레플리카 방식으로 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대표님은 신시의 초창기부터 제대로 된 라이선스를 획득해서 작품성을 유지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는데 변화가 있을까요? 창작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근 35년을 넘게 공연계에 있었는데 <맘마미아!>, <시카고>처럼 공연할 때마다 보고 싶은 창작뮤지컬 한두 편은 만들고 은퇴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게 제 남은 꿈이에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연계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지금은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개인도 힘들고 제작사도 힘들고 다 힘들어요. 어려울수록 사람에 대한 보살핌을 잊지 말고, 나누고 베푸는 수밖에 없어요. 마음도 나누고 어려운 후배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게끔 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요. 어렵다고 나부터 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기보다는 누구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 보듬어주고 이끌어야 해요. 작품을 시작하다가 중단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라도 마음으로 상처받지 않고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게 선배의 역할이죠. 그런 선배들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1호 2020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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