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실황 영상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로 인해 각국 유수의 극장들이 잠정 폐쇄에 들어갔다. 브로드웨이도 웨스트엔드도 이를 피해가지 못 했고, 이들보다 더 먼저 감염병이 퍼진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공연 대표 슬로건에 맞게 국내외 유명 단체들이 앞장서서 온라인에 공연 영상을 무료 공개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집에서 영상으로 보는 공연은 이 시대의 새로운 관람법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떠오른 공연 영상
공연 영상 현황과 전망
지난 4월 18일 유튜브 채널 ‘더 쇼 머스트 고 온’에서 서비스된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 영상은 48시간 동안 전 세계 1천만여 명이 관람했다. 이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영국 내셔널 시어터의 라이브 영상은 전 세계 공연 팬들의 인기 아이템이다. 코로나19로 극장이 폐쇄되면서 이를 대체하는 공연 영상이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도 공연 영상의 대표 브랜드격인 내셔널 시어터의 NT Live 같은 공연 영상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연극 <혜경궁 홍씨>를 극장용 영상으로 제작한 컴퍼니 숨의 고충길 대표, 싹온스크린을 이끌어온 예술의전당 영상문화부 김미희 부장, 이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쓴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지혜원 교수와 공연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공연 영상의 현황
최근 코로나19로 공연 영상이 다양한 형태로 유포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혜원_ 공연의 영상화 자체는 오래됐다. 공연 실황을 미리 촬영해서 편집하거나 <캣츠>처럼 영상물을 만들기 위해 별도로 공연을 촬영하는 방식도 있었다. 하지만 2006년 론칭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Live in HD가 인기를 끌면서 공연 영상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를 영화관에서 라이브 중계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이슈가 된 것이다. 공연의 현장성을 결정짓는 ‘Here And Now(지금-여기)’에서 ‘Here’는 아니지만 ‘Now’는 충족시킨 것이다. 당시 론칭 공연이었던 <마술피리>는 타임스퀘어에서 상영했다. Live in HD의 성공 요인은 뉴욕에서만 볼 수 있는 오페라를 영화관에서 20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라이브 관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라이브 캐스트로 무대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관객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관심이 증폭되면서 2009년 영국 내셔널 시어터가 NT Live를 론칭했다. 이 프로그램 역시 유료 모델을 구축하면서 영상 퀄리티를 굉장히 높게 유지했다.
메트로폴리탄이나 내셔널 시어터 이외에 해외에는 공연 영상을 제공하는 곳이 많은가?
김미희_ 굉장히 많다. 베를린 필은 오래 전부터 공연 영상을 만들어왔다.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또한 공연 영상화 사업에 대한 신중한 조사를 마치고 2013-2014 시즌 동안 ‘라이브 시네마 사업부’를 출범했다. 유럽 12개국의 오페라 극장과 뮤직 페스티벌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오페라 비전(Opera Vision)이라는 플랫폼이 있다.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그것을 편집한 영상을 업데이트해서 보여준다.
지혜원_ 장르별로 약간씩 다르다. 레퍼토리로 공연되는 클래식 분야는 영상으로 내놓아도 라이브 공연에 영향을 덜 미친다. 예컨대, 올해 <리콜레토>를 상영했다고 해서 다음 해 공연 티켓 판매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다. 발레나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연극과 뮤지컬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특히 뮤지컬은 오픈런인 경우가 많아 작품을 생중계하는 데 부담이 크다. 공연 중인 뮤지컬은 극장 관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최초의 뮤지컬 생중계는 2014년 <빌리 엘리어트> 10주년 기념 공연이었다. 뮤지컬이나 연극의 경우에는 브로드웨이 HD가 지속적으로 운영 중이다.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로, NT Live가 자리를 잡은 이후 2013년에 론칭했다. 그래도 통상 연극이나 뮤지컬 장르는 공연의 종영 이후, 또는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 상영한다.
국내 상황은 예술의전당의 싹온스크린(SAC on Screen)이 가장 앞서가는 듯하다.
김미희_ 싹온스크린은 2013년에 시작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공연 영상화 사업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공연 아카이빙의 확장 정도로 생각한다. 사실 공연 영상화 사업은 아카이빙을 위한 현장성을 살린 라이브 상영과 이를 편집 과정을 통해 더욱 재미있고 실감나는 영상으로 제작하여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배급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즉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나 예술자료원에서도 공연 영상을 제작한다. 2억 원의 제작비로 20~24편을 찍는다. 전체적인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아카이빙의 가치와 기능을 개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싹온스크린의 기술적인 부분은 영화나 광고, 방송 쪽 인력들이 참여하면서 메트로폴리탄이나 NT Live 못지않게 촬영 기술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이후 공공 단체들이 온라인에서 공연 영상을 무료 상영한 가운데 싹온스크린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싹온스크린의 제작 환경은 어떤가.
김미희_ 외주로 제작할 때는 제작비가 억 단위였다. 지금은 영상 제작과 편집 과정에 내부 전문 인력들이 투입되면서 장르에 따라 적게는 3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5천만 원까지 든다. 로열티는 제외한 금액이다. 공공 기관 우수 사례로 뽑히면서 2016~2017년엔 10억 원까지 예산을 받았지만, 2018년 수지차보존기관으로 전환되면서 예산이 점차 삭감되어 올해는 4억 원 정도이다. 이번에 국공립 단체들이 자료 기록용으로 촬영해 둔 영상을 무료로 공개하면서 싹온스크린의 영상과 오디오 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연 이해도가 높은 예술의전당 소속 영상감독과 음향 스태프들이 참여해 예산 절감뿐만 아니라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코로나19 이전 국내 공연 영상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네이버 생중계의 영향이 컸다.
지혜원_ 네이버 생중계는 NT Live나 싹온스크린의 경우와는 다르다. 고퀄리티의 공연 영상을 제작하기보다는 홍보 목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높다. 영상 자체가 아니라, 이 영상을 통해 라이브 공연을 보고 싶게 만드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 대형 뮤지컬은 메인 타깃층이 일반 관객인 반면, 중소형 뮤지컬은 마니아층이 든든한 지지 기반이다. 마니아층은 작품을 기다렸다가 보는 충성도 높은 관객층이다. 따라서 중소 공연의 관객과는 니즈가 잘 맞는 편이지만, 대형 뮤지컬을 네이버로 방송한다고 했을 때 일반 관객들이 이를 챙겨 본 뒤 티켓을 사는 비중은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김미희_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엑스칼리버>를 싹온스크린을 통해 선보였는데, 티켓 판매에 영향이 있었다. <영웅>도 티켓 판매에 도움이 됐다. 그때는 유튜브로 하지 않고 문예회관과 학교로만 송출했는데도 판매가 올라갔다.
고충길_ 네이버 생중계는 하나의 시도라고 봐야 한다. 작품 한 편을 생중계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300~500만 원 정도라고 들었다. 카메라 4~5대 정도로 촬영하고 오디오 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만족도가 높기 힘들다. 네이버의 시도는 예술의전당 작업하고는 또 다른 측면에서 굉장히 긍정적이다. 인터넷을 통해 라이브로 볼 수 있다는 자체가 공연 영상을 한 장르로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
공연 영상 사업의 시장성
국내에서 공연 영상을 꾸준히 제작하는 곳은 플랫폼을 제공하는 네이버를 제외한다면 예술의전당이나 예술자료원 등 국공립 단체 위주이다.
고충길_ 올 1월에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연락이 왔다. 한두 관 정도는 풀타임으로 국내 공연 영상을 편성하고 싶은데 콘텐츠를 모을 수 있느냐는 거였다. 영화관 상영이 끝나고 IPTV나 OTT로 서비스가 제공되면 얼마든지 수익성이 보장된다. 그런데 콘텐츠가 없다. 영상 제작사나 공연 제작사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공연 영상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혜원_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Met Opera on Demand 앱을 출시해 별도 유통망을 갖추기도 했다. <웃는남자>가 싹온스크린을 통해 제작된 이후 다양한 형태로 상영한 것은 좋은 케이스이다. 영상 퀄리티가 높다 보니 제작자인 EMK뮤지컬컴퍼니 입장에서도 활용 범위가 넓었다. 작년에 배우들과 함께 일본에서 개최한 영상 콘서트도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다. 국내 제작사들도 영상을 통한 노출 확대가 해외 유통 시장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컴퍼니 숨에서는 연극 <혜경궁 홍씨>를 영상으로 만들어 극장 상영했다.
고충길_ 영상 제작비가 8천만 원 정도 들었다. 40개월 정도 걸려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수익을 나누기까지 거의 4년이 걸린 셈이다.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40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공연 영상 시장이 형성될 경우 훨씬 수익 내기가 쉬울 것이다. 그래서 예술의전당에서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1년에 10개 미만으로 만들어서는 장르를 형성하기 힘들다. 1년에 20~30개 작품씩 만들어서 OTT나 IPTV에 내놓으면 이 시장은 분명히 형성된다.
지혜원_ 1년 내내 그곳에 가면 언제든 영상화된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더 확산될 것 같다. 모든 영화관이 아니라 대학로같이 공연 관객들이 밀집될 수 있는 지점을 전용관으로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미희_ 공연 영상을 꾸준히 소개해 온 메가박스의 클래식 소사이어티 같은 경우는 기조가 일정했다. 공연 영상 사업을 알리는 데 지금까지 많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공연 영상의 사업성이 있다는 것인가.
고충길_ 극장 체인의 생리상 한 관에서 점유율이 30% 이상 나오면 대전, 대구, 부산 다 나갈 것이다. 시도 자체를 못해서 그렇다. 한 배급사가 싹온스크린 작품을 전국에 개봉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김미희_ 유료화에 대한 고민 또한 있다. 이번 <웃는 남자> 영화관 유료 상영과 IPTV, VOD 서비스에 콘텐츠 판매 등으로 제작사들의 유료화에 대한 니즈를 확인했다. 유튜브 상영으로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데 성공했다. 완성도 높은 공연 영상을 마케팅용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장의 요구 또한 높다. 공연 영상화는 수입 창출이 가능한 사업이다.
지혜원_ 만약 유료화가 해결되면 자막 작업을 거쳐 해외 극장 체인으로 유통할 수도 있다.
현재 국내 공연 영상은 비즈니스 시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고충길_ 영상 프로덕션 입장에서는 사업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웃는 남자> 같은 경우는 공적 자금을 끌어들여 가능했지만 민간 자본이 지금의 시장 환경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 1~2억 원을 투자해서 한 편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공연 영상 100편이 쌓여 있다면 창업투자회사 중에 관심을 갖는 곳은 많다. 그런데 지금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지혜원_ 공연 영상 시장은 공연 시장이 먼저 단단하게 형성된 뒤에 그 관객의 일부가 파생되는 양상이 주요하기 때문에 공연에 관심 없는 사람이 진입할 가능성은 낮다. 관심은 있으나 티켓 가격이 부담되었던 사람들, 물리적인 시간과 거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시장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아직 국내는 공연 시장 규모 자체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어려운 거다.
김미희_ 자료원이나 창작산실의 영상도 유료화할 수 있는 영상물로 만들겠다는 계획하에 신청을 받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적은 제작비로 만들다 보니, 공연 단체나 제작사가 협조한 것에 비해 결과물이 좋지 않다는 평가다. 아카이빙이라는 명목이라 하더라도 잘 만든 몇 편이 수십 편보다 낫다. 이걸 설득시켜야 한다. 중장기적인 사업으로 공연장에 촬영용 카메라를 설치해서 이를 통해 라이브 상영을 하고, 편집 과정을 거쳐 플랫폼을 통한 상영회 등 다양하게 이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공연 영상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지혜원_ 단순히 공연의 영상이 아니라 공연에 기반한 새로운 미디어이자 플랫폼이라는 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카이빙의 발전된 형태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매체로 생산되고 수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 콘서트 실황 상영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된다. 물론 방탄소년단 인기의 영향도 있겠지만, 콘서트 영상은 분명 라이브 공연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공연장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나 앵글을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것은 엄연히 한 장르다.
고충길_ 유료화가 되어야 한다. 공연 단체 입장에서도 공연 영상으로 부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지만 제작이 늘어나고, 그래야 시장이 만들어진다. 무료 상영하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없다.
김미희_ 유료 콘텐츠나 초상권 활용을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고 더 많은 조건들이 붙을 것이다. 이 부분은 아마 1~2년 안으로 정리가 될 것 같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면서 유료로 전환해 달라는 제작사도 있다. <지젤>, <명성황후>,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같은 경우는 작년에 VOD로 팔았다. 수입을 나눴는데 뮤지컬 장르와 클래식이 배가 차이 난다. 뮤지컬이 초기 제작 비용이 많이 들지만 부가 수익 또한 많다.
고충길_ 독립영화 한 편을 만들더라도 2~3억 원은 든다. 공연 영상에 2~3억 원만 투자하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분명한 손익분기점이 보장된다. 영화는 망하면 90% 손실이다. 이런 면을 생각해 보면 공연 영상 시장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중간 단계로 공공 단체와 민간이 협업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충길_ 유료화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예술의전당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내고 공동으로 참여할 의사도 있다. 그런 협업이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열려 있다.
김미희_ 다양한 제작 방식이 가능하다. 무료로만 배급하는 콘텐츠, 유·무료 병행 콘텐츠 등 제작 초기에 배급 부분을 확실히 정리하면 민간 제작사와 협업도 가능하다고 본다.
해외에서 공연 영상 시장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나?
지혜원_ 미국은 1950~1960년대에 유행했던 방식이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2000년대 중반 이후 방송용 라이브 뮤지컬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공연장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을 보여준다. 보통은 무관중 라이브로 진행되는데, 2019년 1월 Fox에서 방영되었던 <렌트>는 관객이 직접 참여해 몰입감을 높이기도 했다. 공연 콘텐츠에 바탕을 두되 플랫폼의 양식이 영화와 방송, 온라인 미디어 등이 결합된 양상으로 지속적으로 진화한다. 우리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공연 영상의 매체성
공연 영상이 미디어랑 경쟁을 해야 할 텐데, 어떤 강점이 있는가?
고충길_ 대중들이 경험하지 못한 미디어에 대한 새로움이 강점이다. 드라마나 영화, 예능은 많이 봤지만 실제 잘 만들어진 공연을 영상으로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모바일이나 인터넷이나 이런 디바이스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지혜원_ 공연 관객에게는 ‘방구석 1열’이라는 표현처럼 극장 객석 경험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공연을 볼 수 있는 재미를 준다. 반면 드라마나 영화의 관객들에게 공연 영상의 가장 큰 매력은 ‘날것’ 즉, 라이브로 진행되는 극이라는 점일 것이다. 다른 장르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고충길_ 공연 콘텐츠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쉽게 해준다. 공연장에서 10만 원을 지불해야 볼 수 있는 콘텐츠를 1,500~2,000원으로 볼 수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된다. 실시간 생중계뿐만 아니라 여러 촬영본을 편집하기도 한다.
고충길_ 라이브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공연 연출가와 영상 연출가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이 작품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공연 연출가와 영상 연출가가 한 달 이상 상의하고 제작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환경이 못 된다.
김미희_ NT Live의 경우 제작 들어가기 6개월 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조명이나 오디오까지 다 콘티를 짠 후 실시간 라이브 촬영을 한다. 공연 실황을 촬영한 다음에 이것을 재편집하는 것이다. 그래서 라이브 버전과 편집해서 배급하는 버전이 다르다. 싹온스크린도 마찬가지다. 라이브에 보통 카메라가 8대가 들어가면 4대를 더해서 라이브에서 놓친 부분들을 편집용으로 쓴다. 포커스를 놓치거나 앵글이 안 맞거나 했을 때 나머지 4대에서 대체 컷을 찾는다.
지혜원_ <빌리 엘리어트>의 스티븐 달드리는 영화와 공연을 모두 연출했는데 왜 영상 연출은 직접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는 공연의 영상이 확연히 다른 영역이라고 대답한 바 있다. 공연 영상의 연출은 이 분야 전문가의 몫이 크다는 말이다.
김미희_ 싹온스크린도 초기에는 혼란이 있었다.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편집 결과물이 나왔을 때 관계자들로부터 혹독한 질책을 받았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힘들게 만든 것이었다. 안무가가 원하는 앵글을 잡지 못한 장면이 많았다. 공연 영상은 사전에 안무가/연출가와 충분한 의견 조율이 필요하고 카메라 리허설 또한 필요하단 걸 실수를 통해 배웠다. 전문가를 영입해서 자체 제작을 하면서는 사전 소통과 메이킹 필름 제작 과정 등을 통해 이런 부분이 많이 해결됐다.
공연과 영상은 매체성이 다르다.
김미희_ 수요자의 입장에서 국립극장에서 서비스하는 내셔널 시어터의 NT Live와 영화관 상영을 비교하면 확실히 국립극장에서 볼 때가 좋다. 공연 영상을 위한 음향이나 관람 컨디션 자체는 영화관이 좋다. 그럼에도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인지 국립극장의 경험이 좋다.
지혜원_ 국립극장에서는 공연장의 관습을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상영 시간도 공연과 유사하게 편성하고, 하우스매니저와 어셔가 있고, 영상이라는 점만 다를 뿐 공연 관람과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영화관에서는 팝콘도 먹고, 지연 입장의 개념이 크게 없고, 상영 중간 출입도 자유롭다. 예매 방식도 다르다. 영화 예매는 보통 며칠 전이나, 혹은 당일에도 하지 않나. 영상화된 공연은 마치 라이브 공연처럼 몇 달 또는 몇 주 전에 예매가 가능하고 미리 티켓을 구입하는 관객이 많다.
공연 영상이 공연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지혜원_ 공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견은 다소 갈린다. 메트로폴리탄의 Live in HD는 기대 이상의 수익을 냈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새로운 플랫폼으로 단체의 수익을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킨 것은 맞다. 하지만 라이브 관객이 다소 줄어들 위험이 있다. 또한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라이브 무대의 제작비 상승 문제가 발생한다. 무대 공연을 단순히 그대로 담아낸 영상이라는 인식은 공연 산업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공연장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나 백스테이지를 보여준다거나 창작진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양식을 도입해 새로운 콘텐츠라는 인식이 형성되어야 라이브 공연과 상생할 수 있다.
김미희_ 딜레마인 것 같다. 극적인 무대 언어를 그대로 담아야 할까. 아니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트렌디한 영상 편집이 필요할까. <명성황후>는 시해 장면을 스테디캠으로 촬영해서 슬로모션으로 영상을 편집했다. 이런 편집은 굉장히 조심스럽다. NT Live도 해를 거듭하며 영상미만 앞세운 촬영이라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공연 영상화 사업이 처한 딜레마다.
고충길_ 아무리 첨단 장비로 고화질 영상을 만들고 어떤 디스플레이로 상영한다 해도 실제 라이브 공연의 감동을 전할 수 없다. 이 영상을 경험한 분들은 실제 공연을 경험하기 위해서 공연장으로 유입될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공연 연출가가 생각하는 의도를 해치지 않고 과장되지 않게 그대로 촬영하려고 노력한다. 영상 표현을 굉장히 자제하고 객석에서 보는 시야 안에서 표현하려고 한다.
지혜원_ 영상화된 공연은 재매개된 결과물이다. 영상을 통해 가깝고 친근한 접근이 어느 시점까지는 좋게 느껴지다가도 흔히 말하는 ‘언캐니 밸리’를 넘어서면 오히려 매력적이지 않다. 그래서 줄타기가 중요하다. 아직까지 정답은 없지만 그걸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래서 공연 연출가와 영상 연출가의 협업이 중요하다. 공연의 본질을 흩트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공연 영상이 하나의 영역으로 굳어진다면 이것을 감안해 라이브 공연의 형식이나 양식이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촬영할 영상을 고려해 라이브 무대를 디자인 한다든가 영상과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기획도 가능하다.
국내 공연 영상화가 자리 잡기 위해 실천적인 방안이 있다면?
지혜원_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바탕으로 산업화의 토대를 갖추는 것이다. 정책적 근거는 문화 자본의 형평성, 예술의 공공성이다. 유료화를 기반으로 한 산업적 모델과 공공 영역의 접근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고충길_ 문광부 차원의 모태펀드가 만들어져야 한다. 5~10억 원 받아가지고 어떤 연속성이 있겠나. 100억 원 이상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고 민간단체도 수익 모델을 만들어서 협업해야 한다. 공연 영상은 예술의 산업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모델이다.
김미희_ 긴 호흡의 중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문화원에서 자체 유튜브 채널로 싹온스크린에서 제작한 영상을 상영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았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불법다운로드 등으로부터 안전하고 접근성이 용이한 넷플릭스, 왓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과 같은 플랫폼 구축이 절실하다. 예술의전당이나 민간 차원이 아닌 정부 차원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0호 2020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피처 | [SPECIAL]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떠오른 공연 영상, 현황과 전망 [No.200]
글 |박병성 2020-05-31 12,364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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