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지연이 카르멘의 열정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송화로 돌아갈 채비 중이다. 송화를 만나 두 번의 대청소를 거친 시간 덕분일까.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의 말에선 한결 깊어진 성숙함과 여유로움이 묻어 나왔다. 독자들이 더뮤지컬 트위터(@lovethemusical)로 보내온 질문에 배우로 살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치며 쌓은 단상들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특별한 세 번째 만남, <서편제>
@BP_holic
<서편제> 출연을 다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lovethemusical
<서편제>는 제 안에 영혼과 감정적인 부분을 대청소하는, 1년에 한 번씩 대청소하고 몰아서 이불 빨래하듯이, 그런 작업의 시간이에요. 제게는 꼭 만나야 하는 작품!
“초연 때 적은 관객 앞에서 공연하면서 속도 상했지만 막바지쯤엔 매진될 정도로 꽉 차있는 객석을 보면서 더디더라도 오래도록 믿음이 쌓여 관객들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희망을 얻었어요. 재연 때는 극장이 커지면 진심이 전달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진심이 맞닿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체험했어요. 그게 감사해서 매회 울었던 것 같고. 이번엔 슬픔을 많이 토해냈던 지난 공연과 달리 혼자 눈물을 삼키고 아픔을 참아내고 곱씹어서 표현해보고 싶어요. 에너지를 발산하는 성격이라 무대에서 그래본 적이 드물어서 그래보고 싶어요. 눈물을 삼키는 송화를 표현하고 싶어요.”
@0305song
소리하는 집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고 하신 걸 기억합니다. 그런데 벌써 세 시즌 째 <서편제>를 하고 있잖아요. 그동안 국악과 소리에 대한 마음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lovethemusical
제가 조광화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이번에 다시 한 번 굉장히 진하게 와 닿았던 문장이 ‘시간이 가면 모든 건 제자리로, 시간이 가면 모든 건 잊혀지리.’ 그게 삶의 정답인 것 같아요.
@dulcinea_eun
<서편제> 연습 중일 텐데 세 명의 동호는 각각 어떤 매력이 있나요?
@lovethemusical
지오 씨는 여리고 가장 그 나이 때다운 정말 동호로 보일 것 같고, 용진 오빠는 좀 더 남자로 느껴지는 묘한 느낌의 동호고, 마이클 리 오빠는 순수하면서도 굉장히 감성적인 모성 본능이 자극되는 그런 동호가 아닐까 합니다.
“세 분의 열정이 대단해요. 모두 처음 같이 작업하는 건데 바쁜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집중해서 참여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송화의 힘에 유봉과 동호까지 삼각 무게 중심이 끊어지지 않고 팽팽하게 당겨져서 짱짱한 공연이 될 것 같아요.”
@0305song
송화 같은 캐릭터를 연습부터 공연까지 몇 달씩 하다보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많이 지칠 것 같아요. 일상에서도 그 캐릭터에 젖어서 지내는 편인지 정해진 시간 외에는 털어버리는 편인지 궁금해요.
@lovethemusical
특히 <서편제>를 할 때는 사생활에도 굉장히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작품의 연장선이에요. <서편제>를 하면서 늘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송화는 좀 더 도덕적인 삶을 살도록 이끌어줘요. 저도 사람인지라 남을 미워할 때도 있고 나쁜 마음을 먹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오염된 채로 무대에 올라가면 너무 힘들고 괴로워요.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첫 단어부터 입에서 나오질 않아요. 그래서 평소에 생활도, 마음도 좋게 먹으려고 노력해요. <서편제>는 (저를 정화시켜주는) 강력한 필터예요.”
@yoojung716
뮤지컬과 소리는 발성이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구분하고 관리를 하나요?
@lovethemusical
처음에는 요령이나 방법을 몰라서 사실 목을 다치면서 소리를 했는데 하다 보니 저만의 요령이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과해지지 않게 잘해 나가는 것이 이제 저의 숙제인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로서 목을 조금 덜 다치면서 노래도 하고 소리도 할 수 있는 요령을 찾았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아요. ‘살다보면’을 부를 때와 ‘심청가’를 부를 때는 다른 거니까요.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만의 무기가 되는 것이고. 어제 (장)은아 씨를 만났는데 역시나 제가 처음 했던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느꼈던 걸 얘기해줬어요. 정말 잘하더라고요. 괜찮은 송화가 탄생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3개월간 만난 ‘카르멘’
@ksj03332
관객들이 꼭 의미를 알아줬으면 하는 장면이 있나요?
@lovethemusical
우리의 삶이 다 그렇듯이 일터나 직장에서는 대부분의 것들을 숨기고 뭔가 좋은 척 씩씩한 척 웃으며 살아내지만 그 내면엔 말할 수 없는 고독과 외로움이 있다는 것을, 카르멘도 그와 똑같다는 것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yoori06
류정한 호세와 신성록 호세의 차이와 매력이 궁금해요.
@lovethemusical
신성록 배우는 파릇파릇하고 청년 느낌의 호세라면 류정한 선배님의 호세는 좀 더 농염하고 제가 리드를 당하는 그런 강인한 호세예요.
@ksj03332
카르멘에게 제일 공감을 느낀 장면이 어느 장면인지 궁금해요.
@lovethemusical
‘홀로 추는 춤’이란 넘버를 부를 때 가장 마음이 아파요.
“‘그럴 수만 있다면’과 ‘비바’에 집중해서 하다 보니 처음 연습할 땐 그렇게 관심을 두지 못했던 곡이었어요. 이 넘버가 길지도 않고 읊조리는 노랜데 올해 들어 가사에서 위로를 많이 받기 시작했어요. ‘우린 모두 다 슬픈 진실, 우린 모두가 홀로 추는 춤.’이란 부분. 인간이란 게 참 외롭고 힘든 것 같고 삶을 하루, 하루 살아낸다는 것이 힘겨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노래가 참 그런 것 같아요.”
@kes159500
실제와 카르멘의 성격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lovethemusical
전 남자한테 그렇게 공격형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아주 다르고요. 하하.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쓸쓸한 부분이 참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아요.
@unjust918
가장 기억에 남는 실수는 어떤 것이 있나요?
@lovethemusical
호세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호세 상의에 있는 단추나 장신구에 제 그물 망사 스타킹이 자꾸 걸려서 억지로 그걸 뜯어내다가 손바닥만 한 큰 구멍이 생겼어요. 공연 중에 계속 갈아 신어야만 했어요. 흑흑.
8년간 쌓인 뮤지컬의 흔적
@RosetteMusica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선택하는지 궁금합니다.
@lovethemusical
그 극이 저한테 주는 느낌을 믿어요. 그 힘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음악도 중요하지만 전 드라마를 많이 염두에 두고 작품을 보는 편이에요.
“모두가 좋다고 해도 내 가슴을 치는 게 없다면 제겐 지나가는 작품이 될 수도 있고, 모두가 작품이 좋지 않다고 해도 ‘빵!’하고 뭔가 오는 게 있다면 궁합이 맞는 거잖아요. 그리고 작품을 만나는 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때도 많고. 이젠 욕심이 없어요. ‘더 올라가야겠다.’ 하는 조바심과 조급함이 없기 때문에 편안해요.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서로 잘되는 걸 보면서 잘 늙어가고 싶어요.”
@Hobreadman24
했던 배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lovethemusical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명성황후’를 다시 만나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꼭.
“제일 힘들었던 공연이었어요. 정신적으로 가장 피폐해지고 불안했을 정도였는데 그 고통을 다시 겪고 싶어요. 뭔지 모를 감정이지만 뮤지컬을 했던 8년 동안 제게 가장 강렬한 일주일이었기 때문에 정말 다시 만나고 싶어요. 다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고 그때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서울예술단에서의 작업도 좋았고요. 객원 식구로 작업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눈치도 보게 되는데 또래 친구들과도 좋았고 선배님들도 잘 챙겨주셔서 전혀 그런 걸 느끼지 못했어요. 예술단 식구들도 다시 만나고 싶어요.”
@luckyJHW
다양한 여성상을 가진 배역을 많이 맡았는데 앞으로 또 어떤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나요?
@lovethemusical
재밌는 역할이요. 웃음이 많은 작품에 웃음이 많은 역할이요. 비극적인 색깔보다 신나고 매력적인 에너지가 발산되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하하하.
“정말!!! 하고 싶어요. (꼽아본다면) <시스터 액트> 같은 작품요. 그런 거 하고 싶어요. 따뜻하긴 하지만 계속 신 나서 안 죽고 모든 걸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그런 걸 해보고 싶어요.”
@dgshin1021
<서편제>, <잃어버린 얼굴 1895> 등 감정 소모가 많은 역할을 자주 맡았는데 그런 데서 오는 힘든 점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어떻게 이겨냈나요?
@lovethemusical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정말 닭살스럽고 안 믿으시겠지만 ‘무대’예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이 가장 자유로워요. 아이러니하죠.
“무대에서만큼은 차지연으로의 삶은 없으니까 가장 자유로워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또 괴로운 시간이에요. 늘 누군가에게 평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요즘 ‘배우로 산다는 건 뭘까?’란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답은 없더라고요. 궁금해요.”
차지연의 24시간
@yoori06
뮤지컬 배우가 아니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 것 같나요?
@lovethemusical
동물 조련사나 스포츠 선수요.
“동물과 아기를 정말 좋아해요. 요즘은 타블로, 강혜정 씨의 딸인 ‘하루’에 푹 빠져 있어요. 진심으로 만나보고 싶어요. 마음이 정말 따뜻한 게 보이고 특별한 아이인 것 같아서 위로를 많이 받아요. 엄마와 영상 통화할 때 휴대전화를 (엄마를 안 듯) 안아주는 걸 보고 너무 많이 울기도 했어요. ‘세상에 어떻게 저런 마음이 있을까?’ 하고요. 그래서 공연 끝나고 집에 가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꼭 다운 받아서 봐요.
@idaeunkim
가장 즐겨하는 스포츠가 궁금해요.
@lovethemusical
볼링도 많이 치고요. 헬스는 기본적으로 하고 혼자서 음악 들으며 산 타는 걸 좋아해요. 전에는 크로스 핏과 킥복싱에 푹 빠져 있었고요. 운동은 다 좋아해요. 진짜!
“될 수 있으면 운동은 꼭 혼자 하는 편이에요. 혼자 이겨내고 버텨내면서 정한 목표량을 채우는 게 큰 희열을 줘요. 산 타는 것도 즐겨요. 집에서부터 산이 있는 곳까지 음악을 들으며 걸어가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좋아해요. 귀에 들려오는 음악에 따라 같은 풍경도 다르게 느껴지고 사람들도 달라 보이기도 하고요.”
@sun00923
섹시한 카르멘으로 열연 중인데 평소에 본인이 생각해도 ‘내가 참 섹시하다.’ 하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없다고 하지 말고 무조건! 답해주세요.
@lovethemusical
분장이 아주 잘됐을 때요. 크크크.
@idaeunkim
팬들 사이에서 차언니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lovethemusical
살가운 호칭이라서 좋아요! 옆집 언니같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호칭인 것 같아서 좋아요. 친한 사람들이 많이 놀리면서 부르기도 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6호 2014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