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
법정 기념일로 제정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올해로 벌써 마흔 번째를 맞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39라는 숫자가 40으로 바뀌기까지 지난 일 년의 시간 동안 편견의 벽을 얼마나 허물었을까. 국내 공연계에서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남산예술센터와 0set 프로젝트, 수어통역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배리어프리’한 세상으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가
배리어컨셔스를 위하여
* 배리어컨셔스
문턱을 없애는 것을 배리어프리(Barrier-Free)라고 부르지만 눈에 보이는 배리어를 없앤 곳에도 여전히 배리어가 있다. 있음에도 없다고 말하기보다 오히려 ‘배리어를 인식하고 그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배리어컨셔스라 한다.
- 법인 탄포포노이에 [민들레의 집] 편저, 오하나 역
<소셜아트 - 장애가 있는 이와 예술로서 사회를 바꾸다> 미쓰시마 다카유키 인터뷰 중
0set프로젝트의 출발
2017년 0set프로젝트는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활동을 시작했다. 프로젝트마다 생겨난 질문에 대한 조사, 인터뷰, 워크숍 등을 프로젝트 참여자들과 함께 진행하며, 그 과정을 공유하는 소소한 계기로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0set프로젝트 활동 시작의 출발점을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노들장애인야학’을 이야기한다. 2010년 즈음 노들장애인야학을 처음 만나면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질서, 논리, 농담마저도 하나씩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자 그 전에는 내 앞에 놓여 있었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들어갈 수 있지만 너는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 거리와 건물에 셀 수 없이 많은 ‘턱’이 있다는 사실,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이 사실들이 새삼스럽게 인식되면서부터 기존에 공연을 보거나 제작하는 공간일 뿐이었던 극장도 다르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어떤 사실이 문제로 인식된 순간부터 접근성에 관한 질문을 피해 갈 수 없게 되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관한 의심, 그것이 0set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대학로 거리에는 티켓만 있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는 듯이 공연 홍보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다. 하지만 휠체어 이용자가 ‘도움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극장은 소수에 불과하며, 소위 배리어프리 서비스로 일컬어지는 수어 통역, 문자 통역, 장면 해설 제공 공연이 정기적으로 편성되는 극장은 없다.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누군가는 어떤 공연을 보러 갈까 하는 고민을 하기 전에 극장 건물 입구, 공연장 입구, 화장실 입구에 턱이 있는지, 너비는 얼마나 되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며, 누군가는 수어 통역, 문자 통역, 장면 해설이 제공되는 공연에 한에서만 관람 여부를 고민할 수 있다.
비장애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소수의 접근성은 쉽게 누락되거나 애초에 전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에 관한 문제 제기 역시 소음이 되어버리거나 ‘맞는 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 금방 잊혀진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너’와 함께 극장에 들어갈 수 없음을 인식한 순간,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질문들로 확장된다. 극장이 누군가에게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누군가는 무엇으로부터 배제당하고 있는 것인가. 배제당한 사람들이 그곳을 ‘침범’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 모두는 그 행위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가.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장애인 중심의 극장에 대한 문제 인식
질문의 시작은 극장이 얼마나 닫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저마다의 입장과 위치에서 극장이 얼마나 닫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참여자를 모집해 극장 시설 접근성 조사 워크숍을 진행했다. 2017년 <불편한 입장들> 공연 제작 과정에서 진행한 워크숍과 2018년 <걷는 인간> 워크숍이 그것이었다. 참여자들이 직접 줄자와 체크 리스트를 들고 극장과 대학로를 돌아다니면서 턱의 높이를 재고 공간의 너비와 깊이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말로 하면 누군가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시설의 구체적인 현황을 파악하는 시설 접근성 모니터링을 한 것이다. 참여자들은 워크숍을 통해 극장 곳곳에 놓인 ‘턱’을 정확한 수치로 확인했다.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장애인의 몸에 있다고 여겨진 장애는 그동안 비장애인들이 무심코 발 디뎠을 몇 센티미터의 턱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턱으로 인해 대학로에 있는 대부분의 극장들은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없는 극장이 되었다. 15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진행한 <걷는 인간> 워크숍 당시, ‘대학로 공연장 안내도’에 표기된 약 120곳의 공연장 중 휠체어 이용자가 활동 지원 없이(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관객으로 입장해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연장은 단 14곳뿐이었다. 이 중 휠체어 이용자가 창작자로 무대, 분장실, 조정실 등 시설 전반에 접근 가능한 공연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또한 정기적으로 수어 통역, 문자 통역, 장면 해설을 포함한 공연을 상연하는 공연장도 없었다. 대부분의 극장 시설들은 장애인 관객을, 그리고 창작자를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찾고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때도 지금도 있다. 있지만 없어지는 것들에 관한 혹은 없지만 있어야 하는 것들에 관한 구체적인 확인과 변화 없이는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워크숍을 기반으로 제작한 공연을 본 몇몇 관객들은 내게 와서 몰랐던 장애인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며 반드시 시설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동의 의사를 밝혀주기도 했다. 또 다른 몇몇 관객들은 너무 옳은 이야기지만, 복지와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야 할 내용을 굳이 공연으로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묻기도 했다. 공연의 부족함과는 별개로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같은 의문이 들었다. 장애인은 어떤 이미지로, 어떤 경험으로 비장애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일까. 너무 ‘옳은’ 이야기라고 하기엔 우리는 여전히 ‘틀린’ 현실에 살고 있다. 너무 쉽게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누군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문제를 이해하기에 달렸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때로 변화가 어렵다고 말하며 발견된 문제를 이해해 ‘버린다.’ 문제를 쉽게 이해해 버리는 순간 변화는 멀어진다. 문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낯설게 볼 때, 다른 환경과 감각을 기반으로 생각하고 관계 맺으려 할 때 일어난다. 그것은 기존에 자신이 밟고 서 있던 기반을 뒤흔드는 일이다. 문제를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문제 앞에서 누군가는 지금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멈춰 서고, 누군가는 잘 모르는 일이라서 멈춰 서고, 누군가는 내가 감히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멈춰 선다. 하지만 당장 바꿀 수 없는 큰 문제 앞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할지라도 현재의 입장과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래서 해결이 안 될 때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계속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흐름은 쉽게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계속 머물러 있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9년 0set프로젝트가 머물렀던 질문은 비장애인 중심의 극장을, 공연을 그리고 창작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였다. 2020년에는 서로를 바라보고 인식한 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이어가려고 한다. 부디 이해해 ‘버리지’ 않고 이해하는 과정에 충분히 함께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대학로 공연장 안내도
▲ 휠체어 이용자가 입장 가능한 공연장 안내도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9호 202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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