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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남산예술센터 배리어프리 공연, 우리의 공연, 모두의 공연 [No.199]

글 |박보라 사진제공 |남산예술센터, 이강물 2020-05-04 5,529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 

법정 기념일로 제정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올해로 벌써 마흔 번째를 맞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39라는 숫자가 40으로 바뀌기까지 지난 일 년의 시간 동안 편견의 벽을 얼마나 허물었을까. 국내 공연계에서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남산예술센터와 0set 프로젝트, 수어통역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배리어프리’한 세상으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 

 

남산예술센터 배리어프리 공연
우리의 공연, 모두의 공연


 

공연, 모든 관객과 만나다

 

남산예술센터는 지난 2019년 시즌 첫 프로그램인 연극 <7번 국도>를 시작으로 <명왕성에서>, <묵적지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을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선보였다. 배리어프리는 장벽(Barrier)과 자유(Free)가 합쳐진 용어로, 배리어프리 공연은 장애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된 공연이다. 수어 통역,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이나 휴대 기기를 통한 문자 통역, FM수신기를 사용한 음성 해설, 발달 장애인을 위한 릴렉스 퍼포먼스(Relaxed Performance) 등 다양한 형식이 있다. 남산예술센터는 이중 시·청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문자·수어 통역과 음성 해설을 동시에 진행했다. 
 

남산예술센터의 배리어프리 공연은 <7번 국도>를 공동 제작한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이 남산예술센터에 ‘시·청각 장애인과 지체 장애인의 관람이 원활한 공연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남산예술센터 내부에서는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고 갔는데, 일부에서는 배리어프리 공연을 한다고 해서 과연 많은 장애인 관객이 극장을 찾을 것인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치열한 논의 끝에 그동안 배리어프리 공연이 없었기 때문에 공연장을 찾은 장애인 관객의 비율이 높지 않은 것이라 판단했고, 본격적으로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에 착수했다. 남산예술센터는 시즌 프로그램 선정작에 한해 극단 측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에 의지를 보이면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남산예술센터의 김민정 PD는 “배리어프리 공연을 준비하면서 공연과 관객이 만나는 접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배리어프리 공연을 준비하는 모든 스태프들이 그 점을 가장 염두에 두고 열정적으로 제작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열린 공연장이 되기 위해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객의 안전’이다. 남산예술센터의 공연장 안내 팀은 공연장의 높은 내부 객석 단차로 인한 낙상 사고의 위험에 대비해 장애인 관객을 안전하게 객석으로 안내하는 일에 특별한 주의를 쏟았다. 남산예술센터는 1970년대에 건립된 건물로 내부 엘리베이터가 없고 나선형 계단을 이용해 상하층을 오르내려야만 한다. 건물 밖에 위치한 휠체어 리프트는 눈이나 비, 바람의 영향을 받아 이용이 쉽지 않고, 이용자와 휠체어의 무게가 200kg이 넘으면 운행을 멈추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성인이 탄 전동 휠체어는 쉽게 200kg를 초과하는 경우가 많아, 휠체어 리프트 이용자의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됐던 바였다. 이런 공연장의 한계를 고민한 끝에 <묵적지수>는 평지로 연결된 무대 세트 반입구를 객석 출입구로 변환하는 연출적인 아이디어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남산예술센터는 공연장 내부 시설 문제 외에도 가까운 지하철역인 명동역 1번 출구부터 극장까지 접근성이 좋지 않다. 공연 관람을 희망하는 장애인 관람객에게 공연장 오는 언덕길을 자세히 설명하고 충분한 양해를 구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보였다. 고민 끝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내 보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사전 예약을 통해 남산예술센터의 직원들이 명동역 1번 출구부터 공연장까지 관객을 직접 안내하는 서비스로 공연장에 도착하면 공연장 안내 팀이 예매 티켓 수령과 착석을 돕는다. 또 시각 장애인 관객들이 공연장에 더욱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남산예술센터를 소개하는 배리어프리 버전의 공연장 소개 영상을 제작하고,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직접 해당 영상의 음성을 녹음했다. 



 

고민 끝에 탄생한 다양한 서비스

 

배리어프리 제작 경험이 없었던 남산예술센터는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구자혜 연출가의 소개를 받아 영화, 드라마, 방송 화면 해설 등 배리어프리 콘텐츠 제작에 앞장서고 있는 예비 사회적 기업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와 손을 잡았다. 
 

우선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의 첫 단계는 음성 해설과 수어 통역용 대본 작업 착수다. 장면마다 음성 해설이 가능한 시간을 초 단위로 파악한 후 시각적 정보를 중심으로 장면 해설을 비롯한 캐릭터의 모습, 무대 장치와 조명의 변화를 대본으로 작성하는 식이다. 그렇게 제작된 대본을 가지고 연출 팀과 음성 해설 제작 팀이 상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대사와 대사 사이의 공백을 활용한 음성 해설 삽입 여부부터 줄거리, 캐릭터의 역할, 배우의 행동 등의 범위까지 자세하게 상의하고, 연출 의도와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삭제하거나 수정한다. 보통 음성 해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해설과 캐릭터 중심의 해설 두 가지 스타일로 구분된다. 남산예술센터의 배리어프리 음성 해설을 전담한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의 강내영 화면 해설 작가는 객관적인 정보 중심의 해설을 바탕으로 전맹 시각 장애인도 보편적이게 느낄 수 있는 색 정보를 활용해 작품의 분위기를 설명하려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문자 통역은 무대의 까만 배경 스크린이나 휴대용 기기를 통해 자막을 볼 수 있도록 서비스됐다. 문자 통역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배우의 호흡을 느낄 수 있도록 한 문장의 대사를 조절하는 것이다. 한 예로 ‘여기서 속초까지 얼마나 걸리지?’라는 대사를 ‘여기서/속초까지/얼마나/걸리지?’처럼 배우의 호흡에 따라 분절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자 통역 담당자는 연습과 리허설을 참관하며 배우들의 대사와 호흡을 분석해 정리한다. 배리어프리 공연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높은 연극적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남산예술센터는 이러한 문자 통역의 특성을 제작 극단에 충분히 설명하고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문자 통역 담당자를 섭외하도록 요청했다. 
 

문자 통역은 개방식과 폐쇄식으로 나뉜다. 개방식 문자 통역은 제작 초반에 무대, 조명 등의 디자인 단계부터 연출 의도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스크린 위치를 정한다. 남산예술센터는 <그믐>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방식 문자 통역 방식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배우들은 개방형 문자 통역 공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비장애인 관객이 스크린 속 자막과 실제 대사를 비교하기 때문에 부담이 됐다고. 때문에 배우들은 자막과 실제 대사가 언제나 동일한 호흡으로 이어지도록 강도 높은 연습을 이어 나갔다. 
 

폐쇄식 문자 통역은 지정된 자리에서 휴대용 기기를 통해 자막을 볼 수 있는 방식이다. <그믐>의 무대는 두 개의 달을 형상화한 무대가 기울어져 있고, 무대 양옆으로 배우들의 등퇴장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안전상 폐쇄식 문자 통역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산예술센터의 가변형 객석이 문제가 됐다. 객석 앞에 지지대를 설치하거나 의자 옆에 거치대를 설치하는 방안이 나왔지만, 지지대를 받치는 고정력과 높이 등의 이유로 실현이 어려웠다. 결국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에서 거치대 설치가 가능한 의자를 남산예술센터에 기부하면서 문제가 해결됐다. 폐쇄식 문자 통역에서 사용된 기술은 AUD사회적 협동조합의 실시간 문자 통역 플랫폼 ‘쉐어타이핑’ 앱으로, 극장 내부의 담당자가 온라인으로 연결된 앱을 통해 자막을 구동하는 방식이다. 
 

수어 통역은 배우의 대사와 속도, 길이에 맞춰서 통역을 진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조사가 없는 수어의 특성상 통역사의 표정을 통해 대사의 뉘앙스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유의해 대본을 작성했다. 또 수어 안에서 나타나는 은어, 세대 차이를 좁히기 위해 여러 차례 논의를 거친 후에야 정확한 통역을 완성할 수 있었다. 공연 내내 수어 통역사에게 핀 조명이 쏟아지기 때문에 작품 내의 조명 디자인과의 충돌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역사의 위치를 정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좋은 배리어프리 공연을 위하여

 

<7번 국도>의 배리어프리 공연은 전 회차 중 처음과 마지막 회차, 총 2회에 걸쳐 공연됐다. 첫 회차에서 음성 해설을 위한 대여 부스와 개방식 문자 통역을 위한 스크린을 설치했다가 공연이 끝난 후 모두 철거했다. 그리고 마지막 회차의 공연을 위해 해당 시설을 다시 설치했다. 시간적 노력이 배가 든 셈이다. 이후 남산예술센터에서는 배리어프리 공연을 연이은 회차로 편성하는 편이다.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하면서 실시간으로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도 아쉬움을 남긴다. 건청인으로만 구성된 상주 스태프는 수어 통역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없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남산예술센터는 모니터링단을 모집해, 배리어프리 공연 리허설을 별도로 진행했다. 청각 장애인, 시각 장애인, 비장애인 관객으로 구성된 열 명 정도의 모니터링단이 리허설을 관람한 후 실질적인 조언을 건넸고 이를 바탕으로 수어 통역과 문자 통역, 음성 해설을 수정하고 다듬었다. 
 

남산예술센터는 장애인 관객이 극장을 찾기 위한 방안을 고민 끝에 <7번 국도>와 <묵적지수>의 점자·묵자 혼용 리플릿을 제작했다. 본래 점자 리플릿 제작만 계획했지만, 일부 시각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저시력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묵자 디자인을 결합해 최종적으로는 점자·묵자 혼용 리플릿을 제작했다. 해당 리플릿의 인쇄 수량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장애인 관련 기관에 배포할 리플릿에만 제한을 두어 제작할 것인지, 전량을 점자·묵자 버전으로 제작할 것인지 고민했다. 결론은 수량적 제한을 두는 것 역시 차별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전량 점자·묵자 혼용 리플릿으로 제작했다. 이런 고민 끝에 제작한 리플릿이지만 정안인으로 구성된 스태프들이 직접 점자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작 이후에 관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했다. 점자·묵자 혼용 리플릿은 종이에 압력을 가해 다른 한 면을 볼록하게 튀어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인쇄했는데 일부 시각 장애인 관객에게는 해당 리플릿의 점자가 날카로워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남산예술센터는 이러한 평가를 수용해, 앞으로는 점자를 종이 위에 새기는 UV 점자 인쇄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배리어프리 공연의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는 한정된 제작비였다. 공연 제작 초기에는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의 인원에 맞춰 일대일 수어 통역 체계를 갖추는 것을 추천받았다. 그러나 일대일 수어 통역 체계를 갖추면 무대 디자인이나 연출 측면 외에도 예산에 제약이 발생한다. 또 점자·묵자 혼용 리플릿 제작은 기존 리플릿보다 약 2.5배의 제작비가 들어간다. 남산예술센터는 두 명의 수어 통역사를 무대 양옆에 배치하고, 서울문화재단의 사회 공헌 모금으로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며 해결책을 찾았다. 

 

공연장까지 이어지는 발걸음을 기대하며

 

남산예술센터는 수어 통역, 문자 통역, 음성 해설을 진행하는 회차를 사전에 고지해 배리어프리 공연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든 동일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FM수신기를 통해 진행되는 음성 해설의 경우, 장애 유무를 따지지 않고 신청서와 신분증을 제출하면 대여와 사용이 가능했다. 공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시각 장애인들이 웹서핑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인 스크린 리더기는 웹사이트 내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하는데, 이미지 파일은 사용이 불가능하다. 스크린 리더기로 음성 변환이 가능하도록 온라인 공연 소개 페이지 내 세부적인 설명을 모두 문자로 등록했고, 개막에 앞서 정리한 공연 해설집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또 청각 장애인 관객을 위한 문자 예매 창구를 열었다. 
 

해외에서는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무대 세트와 소품, 의상 등을 직접 만지고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터치 투어(Touch Tour)가 진행되고 있다. 남산예술센터 또한 <묵적지수>를 준비하면서 터치 투어를 기획했다. 고대 중국이 배경인 작품은 철제 프레임으로 고성을 표현해 무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해당 철제 프레임에 여러 손길이 닿으면 구조물이 떨어지거나 휘어지는 위험성이 존재했고, 안전상의 이유로 터치 투어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남산예술센터는 향후 기회가 된다면 터치 투어를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남산예술센터가 지닌 고민은 앞으로의 관객 개발이다. 시각 장애인 21명, 청각 장애인 42명이 <7번 국도>를 관람했고 이후에 공연된 작품은 약 열 명 내외의 장애인 관객이 찾았다. 남산예술센터의 배리어프리 공연을 관람한 관객 황진옥은 “자막이 지원되는 해외 공연을 주로 보았는데, 국내 공연을 문자·수어 통역으로 즐길 수 있어서 신기했다. 배리어프리 공연의 범위가 늘어났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배리어프리 공연의 시작 단계라고 볼 때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은 편이다”고 의견을 밝혔다. 
 

최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 시즌 프로그램의 공연 일정이 연기되었지만 앞으로도 남산예술센터의 배리어프리 공연은 계속될 예정이다. 앞으로의 숙제는 배리어프리 공연 소식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공연장까지 관객들의 발길을 이끌 수 있는가다. 남산예술센터의 김민정 PD는 “배리어프리 공연의 방향이나 종류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보다는 지난해 진행했던 배리어프리 공연이 단순한 이벤트성 행사가 되지 않도록 이어가려 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오는 9월, 예배를 퍼포먼스화한 연극 <대부흥성회>는 전 회차를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공연할 계획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9호 202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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