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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프리스트> 백기범, 노력으로 뒤바꾼 운명 [No.199]

글 |박보라 사진 |오충석 2020-04-16 5,651

<프리스트> 백기범
노력으로 뒤바꾼 운명 




“잘나고 멋진 사람들만 배우를 할 거라 생각했어요. 내가 배우를 한다고? 에이, 말도 안 돼.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배우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백기범은 생각할 수도 없었죠.” 그랬던 백기범이 뮤지컬배우의 꿈을 꾸게 된 것은 군 제대를 앞둔 무렵 우연히 접한 ‘나도 뮤지컬 스타다’ 때문이었다. ‘나도 뮤지컬 스타다’는 한 은행에서 개최한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당시 페이스북에 영상을 업로드해 본선 진출자를 가렸다. 학교 선후배와 동기 모두가 해당 오디션에 지원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군 간부에게 어렵사리 부탁해 오디션 영상을 촬영해 지원했고, 곧이어 군부대로 전화가 왔다. 본선 오디션에 참여가 가능하냐는 연락이었다. 참가자 중 유일한 군인이었던 백기범은 그렇게 ‘나도 뮤지컬 스타다’의 우승을 거머쥐었고 곧이어 <하이스쿨뮤지컬>의 앙상블 배우로 데뷔하게 됐다. 

뮤지컬 무대에 첫걸음을 내디딘 그에게 조금은 가혹한 시간이 펼쳐졌다. 스윙을 맡게 되면서 실제 무대에 오른 횟수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본 공연에는 오르지 못하고 커튼콜에만 등장했어요. 그리고 마이크를 차면 전원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리 노래를 크게 불러도 공연장에 들리지 않았죠. 그럴수록 무대를 향한 열망이 커졌어요. 운이 좋게 남자 주인공의 커버를 맡았지만, 딱 한 번 리허설에서 공연했거든요. 그러니까 더 미치도록 무대에서 연기하고 노래 부르고 싶더라고요.”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자, 자격지심이 그를 덮쳤지만 오히려 또 다른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백기범은 ‘저 무대 위에 꼭 내가 오르도록 해야지’라는 오직 하나의 목표로 자신을 갈고닦게 됐다. ‘백기범의 색을 만들자’고 다짐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스스로 봐도 다른 배우들보다 잘생기거나 신체적인 조건이 좋지도 않다면서 믿을 건 밴드 활동으로 다져진 노래 실력이라고 생각했단다. 

이렇게 있는 힘껏 노력했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2017년 후반부터 2019년 초반까지 텅 비어 있는 공백기를 볼 수 있다.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배우 백기범’을 잘 몰랐어요. 오디션을 수십 번 봐야 겨우 한 작품에 참여할 수 있었고요. 공백기라는 표현도 민망한 것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쉬게 됐거든요. <햄릿>에서 호레이쇼를 원 캐스트로 맡아 지방 공연까지 마치고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잊혀졌죠.” 의도치 않게 휴식기를 가진 그는 그동안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뮤지컬배우로 살아갈 수 있을까. 뮤지컬배우로 활동하며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을까. 현실적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해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했다. 

많은 뮤지컬 팬에게 백기범이라는 이름을 알린 작품은 <해적>이다. “쉬면서 점점 뮤지컬배우로서의 미래를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그때  <해적>의 제작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뮤지컬을 안 하려고 마음을 먹은 바로 그때요. 어차피 끝을 생각한 만큼 초연 2인극 창작뮤지컬이라니까 한번 도전하고 싶었죠. 그리고 제 인생의 2막이 시작됐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무대를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 만나게 된 작품은 데뷔 이후 무대에 서지 못했을 때 느낀 감정을 되살리게 해줬다. 인생에서 데뷔작보다 더 큰 애착을 갖게 된 작품으로 꼽는 <해적>은 뮤지컬배우로서의 자리를 다져준 것뿐만 아니라 그가 꿈꿔 온 캐릭터를 만나게 해줬다. “저는 대본을 읽었을 때, 재미있으면 참여해요. 마지막에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면 좋죠. 중간에 슬프고 힘들고 화나도 결국에는 희망을 주는 이야기요. <해적>의 앤과 루이스는 모두 이야기의 끝에 희망을 느끼는데, 무대에 오를 때마다 뭉클한 감정이 몰려와요.” 

백기범의 다음 작품은 국내 뮤지컬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구마식을 내세운 <프리스트>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만큼 베일에 싸여 있는 작품은 작가 겸 연출로 데뷔하는 배우 주민진과의 인연으로 출연하게 됐다. 지난해부터 우연히 길거리에서 혹은 모임마다 자주 마주쳤다는 주민진을 필두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배우들이 입을 맞춘 것처럼 백기범을 추천했단다. 이렇게 쌓인 우연은 결국 필연이 됐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신선했어요. 연습하면서 연출님이 공간을 인지하라는 말을 많이 하셨는데, 그렇게 공간을 상상하며 연습했더니 대본과 이야기가 색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연출님이 배우로도 활동하니 배우의 입장에서 디테일하게 연기 방향을 말해 주세요.” 백기범이 <프리스트>에서 연기하는 요한은 무속인 집안에서 태어난 의사 지망생으로, 운명을 거부하고 과학의 힘을 믿는다. 어렸을 때의 상처를 숨기고 살아가는 요한은 노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요한의 이런 성격은 백기범과 닮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여긴다. “요한은 일관되지 않은 캐릭터라 생각해요. 모든 사람은 일관된 가치관으로 살지 않고 행동하지 않아요. 어떠한 상황에 있느냐,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니까요. 관객이 요한을 볼 때마다 ‘그래, 사람은 원래 저렇지’라며 공감하셨으면 좋겠어요.” 

백기범은 캐릭터를 구축할 때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편이다. “무대 위의 캐릭터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겠지만, 저는 무대에서 보이지 않는 다른 순간도 생각하며 연기해요. 그리고 캐릭터의 사소한 빈틈을 상상할 수 있는 재료를 조금씩 넣죠.” 아직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시간이 흘러 지금보다 발전한다면 더욱 완벽한 공연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의지를 다진다. 백기범이 지닌 배우로서의 가장 큰 욕심은 무엇일까. “어떤 특정한 ‘인생캐’보다는 어떤 캐릭터에 대입해도 잘 어울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나아가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9호 202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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