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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셜록홈즈> 송용진 [No.125]

글 |이민선 사진 |심주호 메이크업 | 차윤경 | 헤어 | 김홍민 | 스타일리스트 | 황난 2014-03-04 4,695

셜록의 질주를 누가 막을쏘냐지금 이 시점에서 셜록 홈즈 하면 전 세계 시청자가 긴 얼굴과 뱁새눈의 그를 떠올릴 것이다. 최근 종영한 BBC 드라마 <셜록>에서 (좋게 말해) 개성 있고 특이한 마스크로 ‘잘생김을 연기’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하지만 작은 대한민국 뮤지컬계에서 컴버배치인지 컴버배추인지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이 남자가 이 구역의 셜록이라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 여기서 셜록 홈즈 하면 단연 송용진이다.

 

 

 

 

 

다시 돌아온 셜록 홈즈                     
자유분방한 록커이자 배우인 송용진이 천재적인 추리력을 자랑하는 셜록 홈즈의 대명사가 됐다는 점 이전에, 창작뮤지컬 <셜록홈즈>가 이토록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핫한 작품이 됐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2011년 여름, 예고도 없이 울린 세 방의 총성의 행방을 쫓은 <셜록홈즈1>은 역시 예고도 없이 그해 최고의 작품으로 등극했다. 이력이 신뢰의 척도라면 영 믿을만한 구석이 없는 신생 제작사, 신인 작가와 작곡가가 소리 소문 없이 만들어 내놓은 작품에 이목이 집중될 턱이 없었다. 게다가 이 독보적인 사립 탐정의 이야기는 한국인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소재도 아니다. 뮤지컬 <셜록홈즈>의 캐스팅 제안을 받은 송용진이 가장 먼저 던진 “(그 작품은) 미국 꺼냐, 영국 꺼냐?”라는 질문은 우리 모두가 품었던 것이리라. 셜록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물 건너온 작품도 아니고 한국산 <셜록홈즈>라니, 된장찌개를 먹고 자란 이들이 피시 앤 칩스 먹는 흉내를 내는 어설픔이 예상됐던 것도 사실. 하지만 강호의 숨은 고수들은 소리 없이 강한 일격으로 무림을 재패했다. <셜록홈즈> 대본은 ‘촉 좀 있다’ 자신하는 송용진부터 쓰러뜨렸다. “<셜록홈즈>가 글쎄, 창작뮤지컬이래요. ‘아, 그래?’ 사실 곧바로 마음을 접고, 예의상 대본을 읽어보고 나서 연락하겠다고 했죠. 그러곤 읽어보지도 않았고요. 며칠 후 생각이 나서 읽어봤는데, 쭉 빨려 들어갔어요. 보통 뮤지컬 대본은 가사와 음악적 요소가 포함돼 있어서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질 않거든요. 완성된 대본이 아니었는데도 술술 읽히는 거예요. ‘어, 이거 뭐지?’ 제작진에게 곧바로 만나자고 연락했어요.” 좋은 작품은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셜록홈즈1>을 본 관객들이라면 그가 느꼈을 짜릿함에 공감할 것이다. “음악을 들은 후엔 이건 백퍼센트 성공한다고 확신했어요. 나만 잘하면 대박이다!”

 

탄탄함을 갖춘 재목에 끌렸지만,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송용진이 처음 만난 제작자나 창작자들과 작업을 결정하는 건 모험이라 할 만 했다. “연출님이 보여준 청사진이 정말 좋았어요. 시리즈로 제작한다는 생각이 무척 신선했는데, 1편부터 3편까지의 계획이 연출님 머릿속에 명확하게 그려져 있었어요. 뜬구름 잡는 연출가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이분은 시리즈 한 편 한 편이 무엇이 다르며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했어요. ‘치밀하고 똑똑한 사람이구나. 정말 준비를 많이 했구나.’ 믿음이 확 갔죠. 1편을 연습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더욱 신뢰하게 됐고요.” 1편에 이어 2편에서도 변함없이 홈즈를 연기하게 된 건 전편에 대한 애정과 제작진에 대한 의리 때문일까? 아니다. ‘촉 좀 좋은’ 송용진이 시리즈 제작 계획을 듣고 한발 앞서 역할을 선점한 것이다. “제가 초연에 참여했는데 그 작품이 재공연될 때 다른 배우가 그 역할을 맡는 걸 보면 되게 아쉽더라고요. <셜록홈즈>가 시즌제로 간다면, 홈즈는 그대로 있고 범인이 바뀌면서 계속 새로운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약속을 받아냈죠. 정말 시리즈 제작을 할 거라면, 내가 이 작품에 올인하겠다, 대신에 내가 안 하겠다고 할 때까지 셜록 홈즈 역의 우선권은 나한테 달라고. (웃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그 계약의 이행 여부를 떠나서 이 작품에 대한 그의 확신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역할 잘 고르고 작품 잘 만났다고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워해요~” 자신의 심미안에 흐뭇해할 만도 하다. 그의 바람대로 변함없이 홈즈 역을 거머쥐려면, 1편을 성공시켜야만 했다. 계획은 계획일 뿐, 흥행하지 못하면 2편 제작은 무산되는 거니까. 그는 배우로서 캐릭터 확립과 연기 연습을 넘어 난제였던 캐스팅에도 직접 관여할 만큼 <셜록홈즈>의 탄생에 기여한 한 명이었다.

 

 

 

 

송용진의 이미지는 태생부터 고귀한 왕자님이나 지적이고 멋있는 엘리트와는 거리가 있다. 그는 처음에 “멋있는 셜록”을 기대했다고 고백했지만, 결국 완성돼 무대에 오른 홈즈는 다소 천방지축에 괴짜 천재다. 공연 초반에는 괴짜 같은 모습이 두드러졌다면, 후반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홈즈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4차원 이미지’를 이용했다. “홈즈는 사건을 맡았을 때와 해결할 때,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여요. 흥미로운 사건을 맡았을 때는 정말 애처럼 기뻐하며 뛰어다니다가도, 사건에 집중할 때는 진지하고 카리스마 있거든요. 성격의 극과 극을 더욱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셜록홈즈2>에서는 괴짜 같은 모습보다 진지한 모습을 더 많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드라마도 훨씬 어둡고요.” 알려졌듯이 1편에는 앤더슨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한 연인의 러브 스토리가 숨어 있었다면, 2편은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가 등장하는 스릴러물이다. “1편에선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게 관극의 포인트였다면, 2편에선 범인이 누구인지가 빨리 밝혀져요. 범인이 앞으로도 범행을 저지를 것인지, 홈즈가 그의 범행을 막을지 못 막을지가 관전 포인트죠. 사건이 재연되는 게 아니라 범행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니 더욱 스릴 있고 긴장감 넘칠 거예요.” 가사와 연기 등 표현 수위도 무척 잔인하며, 음악도 스릴러라는 장르를 배신하지 않는다. 지난여름에 이미 쇼케이스를 마쳤을 정도로 완성률이 높은 작품이기 때문에, 2편을 소개하는 송용진의 목소리에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국내에서 홍보나 마케팅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작품 자체에 대한 호감도로 흥행에 성공한 <셜록홈즈1>은 전국 곳곳에서 재공연을 치렀다. 이어서 지난 1월 21일에는 일본 라이선스 공연이 도쿄에서 개막했다. <셜록홈즈>가 일본에서 공연하는 첫날에, ‘오리지널 캐스트’인 송용진도 참석했다. 국내 창작물의 해외 진출에 대해 “애국이고 국위 선양”이 아니겠냐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했지만, 그의 바람대로 이 작품이 정말 셜록의 본고장인 영국으로 팔려 나가는 일도 상상해봄직하다. 훗날 웨스트엔드 극장의 객석에 앉아, 송용진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셜록 홈즈를 만나는 송용진을 기대해본다. 얼굴에 웃음은 가득하지만 어깨 힘 따윈 던져버린 쿨한 그가 던지는 인사말은 무엇이 될까.

 

 

 

 

 

꿈을 먹고 사는 남자                      

세상에 꿈 많고 열정적인 사람은 많지만, 그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가 송용진이다. 그를 수식하는 표현만 해도 뮤지컬 배우, 영화배우, 록 밴드 보컬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는 인디 레이블 해적의 대표이자 뮤지션이며, 뮤지컬 연출도 겸하고 있다. 킥복싱에 서핑, 축구 등 취미까지 더하면 그의 활동 영역 규모는 보통 사람들의 곱절 이상이다. 각 분야에 대한 그의 집중도를 보면 똑같이 24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이 맞나 궁금해진다. 한 편의 연극에 출연하면서 두 편의 뮤지컬을 준비하고, 개인 콘서트의 기획 및 연출, 출연을 도맡아 하며, 더욱이 힘들어서 두 번은 못한다는 결혼 준비까지 하는 게 최근 이 남자의 스케줄이다. 이걸 다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당연한 대답 같지만 “꿈과 욕심이 많아서”다. 그는 가장 왕성하게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 30~40대를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 붙잡아 둘 수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150% 활용하며 살고 있다.

 

그와는 대척점에 있는 사람으로서 저런 열정과 성실은 타고나는 걸까 궁금했다. “20대에는 저도 한량, 한량, 이런 한량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서른 살이 되면서 꽃다운 20대를 스스로 되돌아보니 ‘뭘 했나?’ 한심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무언가 하나를 시작했더니 (그걸 통해) 다른 욕심이 생기고, 그래서 그 문을 열었더니 또 다른 길이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그의 이력이 하나둘 불어났고, 지난 십여 년간 보여준 열정과 도전의 결과물은 지금의 송용진을 만들었다. 간혹 고통과 피로가 열정을 꺾을 때가 있진 않을까 의심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돈이 되든 안 되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대답으로 공연계 대표 열정남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것이 타인을 의식해서 고른 듣기 좋은 말이 아님은 평소 그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짐짓 격식을 갖추는 시상식에서 극 중 모자 소품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거나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해 솔직한 생각을 나눌 때, 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이 충분히 드러난다.

 

그의 가치관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참여하는 모든 작품이 다 좋을 수는 없지 않느냐 반문했다. “사실 예전엔 제가 잘나서 작품 활동을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철이 드니까, 건강이 허락되고 내가 무대에서 쓰이는 게 다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란 걸 느끼게 됐어요. 선배들도 할 수 있을 때 즐기면서 많이 하라는 말씀을 해주시고요.” 그는 지금, 동시에 갖기 힘들어 보이는, 구름 위를 나는 열정과 바닥에 뿌리내린 현명함을 모두 갖추고 있다.

 

 

 

 

단순한 기능인이 아닌 예술가를 지향하는 그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창작뮤지컬 작업을 더욱 즐기고 있다. 창작을 향한 그의 열정은 뮤지컬 연출가와 영화감독의 꿈으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록키 호러 쇼>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제 꿈도, 내용은 무엇이 됐든, 그런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록키 호러 쇼>를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로 만들고, <헤드윅>을 영화 <헤드윅>으로 만든 것처럼, 제가 만든 공연을 영화로도 만드는 것.” 지금까지 나온 두 편의 ‘이상한 뮤지컬’과 내년쯤 계획하고 있는 세 번째 뮤지컬에 이어, 송용진이 선보이는 뮤지컬 영화를 볼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음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드는 등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꿈도 많지만, 배우로서 최종 목표는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오래도록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는 연륜과 인생이 묻어나는 얼굴, 빚어놓은 듯한 이목구비보다는 켜켜이 쌓인 삶이 느껴지는 눈빛이 갖고 싶다고 말했다. 더 나이를 먹은 후에도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등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며, 꾸준히 오래 연기하고 싶다고. 문득, 인터뷰 초반에 <셜록홈즈>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안양에서 한 첫 공연 때 무대 문제로 제가 다쳤어요. 그래서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긴 막대기를 짚고 절뚝거리고 있었거든요. 그때 연출님이 옆에서 보고 웃으면서 하는 말이, 나중에 나이 먹어서 지팡이를 짚고 있는 홈즈를 연기할 때까지 하라는 거였죠. 홈즈와 같이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그 말이 정말 좋았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5호 2014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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