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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김선영,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명의 여왕 [No.198]

글 |배경희 사진 |김현성 stylist | 천유경 hair |예금 make-up | 이창은 2020-04-06 5,558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명의 여왕 

김선영

 

2000년대 중반 한국 뮤지컬이 부흥기에 접어든 이후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사랑받는 여러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사람. 국내 뮤지컬 팬들에게 ‘여왕’으로 칭송받는 김선영은 아무리 많은 경험이 쌓여도 첫 공연을 앞둔 날에는 여전히 두렵고 떨린다고 했다. 그런 설렘이 없다면 어떻게 계속 무대에 설 수 있겠냐면서.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그가 긴장의 무게를 이겨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람은 분명 나 혼자가 아닐 것이다. 

 

끊임없는 도전이 주는 선물

 

지난 1월 20일에 열린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호프>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면서 한 해를 의미 있게 시작했어요. 하지만 <호프>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이렇게 커다란 성과를 거둘 거라 예상하지 못하셨죠?   그럼요. <호프>는 제 자신한테도 모험이었지만, 제작사 입장에서 훨씬 큰 모험이었을 거예요. 극장 규모에 비해 화려한 볼거리를 내세우는 작품이 아니었잖아요. 뮤지컬계에서는 드물게 여든에 가까운 노파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부담이 따랐을 테고요. 전 개인적으로 그동안 작품에서 못 만났던 후배들과 작업하다 보니 새롭고 좋았지만, 공연 준비를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을 거라곤 전혀 생각 못했어요. 그런데 개막 후 무대에 딱 오르고 나서 우리 마음과 관객들의 마음이 통했다는 걸 느꼈죠. 사실, 연습실에서 우리끼리 감동받아서 펑펑 울 때도 막상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 반응은 다를 수도 있다고 그랬거든요. 저희가 예상한 것보다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감정들이 훨씬 크게 관객들에게 전달된 것 같아서 기뻤어요.
 

창작뮤지컬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상은 언제 받아도 기쁠 테지만요.  작년 가을에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을 때, 제 개인 SNS에 <호프>로 상을 받아서 기쁘다고 쓴 적이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상은 받는 것 자체로 기쁜 일이지만 어떤 상은 내가 이걸 받아도 되나 싶기도 하거든요. 아주 솔직히 말하면요. (웃음) 하지만 <호프>로 상을 받은 두 시상식에서 제 이름이 호명됐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단지 제가 잘해서 상을 받은 게 아니라 에바 호프라는 인물이 우리에게 준 울림의 의미가 컸다고 생각했거든요. 창작뮤지컬의 작품 소재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는 시점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대해 말하는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고요. 사실 과거에 암묵적으로 창작뮤지컬은 라이선스 뮤지컬에 비해 만듦새가 떨어진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런 편견 아닌 편견을 깰 수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싶어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뮤지컬 작업 경험이 없는 신인 작가와 작곡가가 창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망설여지진 않았나요?   작품 이야기는 저희 소속사 대표님을 통해서 들었어요. 대표님께서 전화로 이런 작품이 들어왔다고 하시기에 어떤 역할인지 여쭤 봤더니 캐릭터 소개를 그대로 읽어주시더라고요.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동네의 미친 노파…,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느낌이 왔어요. ‘이런저런 점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도 전에 해야겠다 싶었죠. 저와 만나게 될 인연이었는지 큰 고민이 안 됐어요. 워낙 전무후무한 캐릭터이기도 했고요. 대본도 처음부터 막힘없이 쑥쑥 읽혔어요.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던 모험이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진 만큼 앞으로 더욱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됐을 것 같아요. 제작사나 창작자 입장에서도 더욱 과감하게 출연 제안을 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을 것 같고요. (웃음)  전 배우는 계속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안전한 선택이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물리치긴 쉽지 않아요.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배우라면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또 내가 무엇에 약한지 알거든요. 용기가 필요한 선택을 할 때에는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겠죠. 그럼에도 배우는 여러 새로운 상황에 과감하게 스스로를 내던져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오히려 예전보다 더 과감해졌어요. (웃음) <호프>만 하더라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작품하고 캐릭터만 보고 출연을 결정한 걸요. 그 외 작품 외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바로 다음 작품으로 선택한 <보디가드> 역시 <호프>와는 다른 의미에서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극 중 최고의 팝 스타로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는 작품이니까요.  저한테는 <호프>보다 <보디가드>가 더 큰 모험이었어요. 만약 5년 전에 이 작품을 만났다면, 그때는 그냥 아무 고민이나 걱정 없이 출연했을 거예요. 하지만 2019년의 배우 김선영에게 <보디가드>는 도전이었죠.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사실 단순했어요. 작년 봄에 <호프>를 끝내고 나서 제 자신을 다른 스타일의 작품으로 한 번 더 실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어려운 실험을 택한 거죠. (웃음) 이제 벌써 마지막 공연이 며칠 안 남았는데, 매회 공연을 마칠 때마다 오늘도 이 공연을 해냈다는 사실이 참 뿌듯했어요. 제가 <보디가드>를 하고 있는 걸 보면서 후배들이 또 다른 꿈을 꾸게 될 거라 생각하면요.
 

좀 더 과감하게 작품이나 캐릭터에 용기 내도 된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네요.  여자 후배들은 다들 한 번씩 경험하게 될 일인데, 경력이 쌓이고 어느 연령대에 접어들면 스스로 작품 선택의 폭을 줄이는 순간들이 와요. 여성의 나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작품 앞에 위축되는 거죠. 저도 물론 경험한 일이라 만약 제 공연을 본 후배들 중 누군가 그런 고민에 직면했을 때 “선영 선배는 이랬잖아” 하고 용기를 낸다면 그보다 더 뿌듯한 일은 또 없을 거예요. 제 나이에 <보디가드>를 하기로 결정하고, 실제 그 작품을 해냈다는 사실 자체로 누군가는 또 다른 꿈을 꾸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할 수 있잖아요. 공연 준비 과정에서 고생했더라도 이 작품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보디가드>를 보면서 놀랐던 점은 배우로서 자기 관리 능력이 대단하다는 거였어요. 체력 관리나 컨디션 조절은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할 테지만, 20년 동안 흐트러짐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잖아요.  사실 저도 어렸을 때는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 했어요. 작품에 참여하는 동안 목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몇 회씩 공연을 못 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점점 선배의 위치에 올라가다 보니 제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지더라고요. 어떤 작품을 하기 위해 새로운 변신이 필요하다면 자기 관리를 더욱 철저하게 해서라도 맡은 바를 꼭 완수하자는 마음이에요.

 

 

의미있는 작품을 만나기까지

이번 인터뷰는 <더뮤지컬>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자리잖아요. 전문가와 관객들이 직접 선정한 국내 대표 뮤지컬배우에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요. 투표 주제가 지난 20년 동안 한국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남달랐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 하고 놀랐고, 곧 이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단지 다른 사람들처럼 제 삶을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 모습을 좋게 봐주신 거니까요. 저는 제 삶의 구성 요소 중 하나로 뮤지컬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마치 놀이하듯 제게 다가오는 작품들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어요. 물론 돌이켜 보면 중간중간 괴로운 순간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배우로서 많이 사랑받거나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열망에 무리하게 애를 썼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관객분들과 관계자분들이 함께 지켜봐 주시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까지 부여해 준 거잖아요. 영광스럽고 감사하죠. 이번 선정 결과에 너무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도 제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킬 앤 하이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2004년을 기점으로 2000년대 중후반 한국 뮤지컬 역사에 부흥기를 가져온 많은 작품들에 참여했어요. 김선영의 대표작으로 뽑히는 <지킬 앤 하이드>는 말할 것도 없고, <미스 사이공>이나 <맨 오브 라만차> 등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관객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라는 배우의 대표 캐릭터로 보통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를 많이 꼽아주세요. <지킬 앤 하이드>는 여러 시즌에 참여해서 저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기도 했고, 루시로 무대에 설 때마다 관객분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아서 제게 무척 고마운 작품이에요. 사실 제가 처음 <지킬 앤 하이드>에 참여했을 때는 초연이 워낙 큰 성공을 거둔 터라, 뭣도 모르고 작품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저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데 그다음 시즌에 다시 참여해 보니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저의 루시는 꾸준히 성장했던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좀 더 욕심을 부려서 계속 작품에 참여했다면 또 다른 루시가 나왔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전히 재공연되는 작품에서 과거의 저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해요.
 

흥행 면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배우 김선영을 이야기할 때 2006년에 공연된 <에비타>라는 작품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에비타>는 당시 열린 양대 뮤지컬 시상식에서 모두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잖아요.  관객분들에게 저를 알린 작품이 <지킬 앤 하이드>였다면, <에비타>는 저를 배우로서 한 단계 발돋움하게 해준 작품이에요. 공연 당시 주위 사람들에게 ‘네게 이런 새로운 면이 있었구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저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해 주었어요. 저한테는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죠. 그리고 제가 <에비타>라는 작품 자체를 참 많이 좋아했어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낯선 아르헨티나 퍼스트레이디의 이야기라 아쉽게도 큰 공감을 얻진 못했지만, 저는 그 작품의 뮤지컬 넘버들이 제 몸에 남긴 느낌들을 아직도 기억해요. 
 

개인적으론 <에비타> 이전에 맡았던 <미스 사이공>의 엘렌 역시 김선영이 잘 살려낸 역할이라 생각해요. 지나간 인연을 잊지 못한 남편에게 넓은 아량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삼십 대 초반의 나이에 깊이 있게 표현했으니까요.  저는 ‘미스 사이공’ 하면 오디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2006년 초연 때 배우를 찾기 위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오디션이 열렸거든요.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작품이다 보니, 오디션이 열리기 전부터 갖가지의 소문이 무성했고요. 당시 제 또래 배우들 대부분이 킴으로 오디션에 지원했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킴은 제 길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엘렌 역으로 오디션을 봤죠.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웃음) 만약 제가 킴을 하고자 했다면 <미스 사이공>이라는 작품을 경험하지 못하지 않았을까요. <미스 사이공>은 작품 외적으로도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의미가 있었어요.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해외 스태프들이 오디션에 참여해 실력과 이미지만으로 배우를 선발했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열심히 준비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거든요. 국내 초연이다 보니 모든 파트의 해외 스태프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같이 작품을 만들어갔던 것도 저한테는 신선한 경험이었죠. 저뿐만 아니라 다들 그때의 기억들이 좋았는지 초연 팀 멤버들끼리 아직도 모임을 갖고 만나요. 
 

당시 한국 공연을 위해 내한한 연출가 로렌스 코너가 김선영 씨를 두고 언어 문제만 해결되면 지금 바로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라고 극찬했다면서요.   저도 그 말 기억해요. (웃음) 만약 제가 뮤지컬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제 성격상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외국으로 나갔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시 이제 막 뮤지컬배우로 성장해 가고 있었을 때라 여기 남아 해야 할 것들이 더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떠날 수 없는 여러 개인적인 상황도 있었고요. 그래서 로렌스 코너의 그 말은 마음속 꿈으로 남겨두기로 했죠. 지금 다시 그런 제안을 받는다면 이제는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 같아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무대가 제 인생에서 꼭 성취하고 싶은 무엇이라서가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려 보고 싶어서요. 제 현실상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웃음) 뮤지컬배우 김선영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제 자신이 혼자 덩그러니 놓여졌을 때, 제가 그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해요. 새로운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려고 할까. 저에 대한 호기심은 나이를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지난 출연작을 쭉 다시 훑어보니, 2000년대 초반에는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창작뮤지컬에 참여했는데 그 이후에는 주로 라이선스 작품으로 관객과 만났어요. 관객으로서 조금 아쉬운 일이긴 해도, 그 시기의 창작뮤지컬 가운데 여성 캐릭터가 제대로 등장하는 작품이 많이 없긴 없죠.  제가 <마리아 마리아>하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할 때만 하더라도 창작뮤지컬 쪽은 불모지에 가까웠어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공연계 사람들 사이에서 창작뮤지컬은 마치 돌봐줘야 하는 대상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고요. 해외의 대형 라이선스 흥행작들이 국내에 막 소개되던 때였으니까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마리아 마리아>하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당시에 나름대로의 쾌거를 이뤘어요. 특히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열악한 상황에서 출발한 작품인데, 동료 배우들 가운데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때 그 공연 되게 재미있게 봤다면서요. 개인적으로 당시 창작뮤지컬계에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초연이 잘 올라가도 작품이 지닌 본질이나 매력이 얼마 못 가 흐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초연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재공연 때 무리하게 공연 규모를 키워서 오히려 관객들의 마음을 잃는 사례들이 있었죠. 갑자기 <호프>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번에 많은 상을 받고 나서 배우와 스태프 들끼리 우리 작품에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줬다고 해서 괜한 욕심 부리지 말고 앞으로 이 작품이 품은 의미를 잘 가꾸어가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어떤 작품이든 초연이 사랑을 받으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잊어버려선 안 되죠.

 

오래도록 지금 이 무대에서

과거 인터뷰에서 특정 시기에 할 수 있는 작품을 놓친 게 아까울 때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이십 대 당시 청춘물 <그리스>에서 리조를 맡았다면 아주 잘했을 것 같다고요. 혹시 또 놓쳐서 아쉬운 작품이 있을까요.  저는 배우한테 작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연애를 걸듯 자꾸 다가오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언젠간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끝내 멀어지는 작품이 있어요. 저한테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그런 작품 중 하나예요.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품 가운데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음악을 제일 좋아해서, 제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가 마리아가 부르는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이거든요. 사실 언젠가 출연할 뻔하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인연이 안 되더라고요. 옛날에는 제가 하고 싶은 작품하고 자꾸 어긋나면 ‘왜 안 되지?’ 하고 낙담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와 인연이 아닌 작품에 연연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도 지금에라도 꼭 하고 싶다고 욕심내는 게 아니라, 예전에 나에게 꿈을 안겨준 기억으로 제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어요.
 

배우와 작품이 인연으로 만나야 하는 것처럼, 작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객과의 인연도 중요하잖아요.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 가운데 관객과 인연이 잘 맺어지지 않아 오히려 마음에 남은 게 있을까요.  옛날 작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는 아직도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과 1/2>을 뮤지컬로 만든 <나인>이 생각나요. 제가 맡았던 귀도의 아내 루이사는 다른 여자 캐릭터들에 비해 도드라지지 않았던 역할이었는데도요. <나인>을 공연했던 게 2008년이니까 벌써 10년도 더 지난 작품인데, 당시의 대형 뮤지컬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실험적인 성격이 너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마니아층도 두텁지 않았고요.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 작은 규모의 극장에서 훨씬 더 파격적인 연출로 올리면 되게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것 같아요. 왜냐면 <나인>은 많은 여자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데다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시공간이 계속 바뀌는 작품이거든요. 신춘수 대표님께서 멋스러운 작품을 너무 이른 시기에 앞서서 올렸는데… 대표님, 그 작품을 요즘 같은 때에 다시 안 한다면 감이 없으신 걸로 보겠습니다. (웃음) 
 

20년 넘게 누구보다 뮤지컬을 사랑한 사람으로서 뮤지컬계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한국 뮤지컬계가 더욱 좋은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요.  언젠가 한참 아래 후배가 저한테 뜬금없이 “저는 언니가 자랑스러워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뮤지컬만 하면서 계속 배우 생활을 이어가는 게 멋있다는 거예요. 앙상블이 많이 참여하는 작품에서 새로운 후배들을 알게 되거나 학교에서 뮤지컬배우 지망생 아이들을 가르쳐보면 재능이 반짝반짝하는 친구들을 종종 보게 돼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뮤지컬 무대에 서기 위해서 방송을 경험하고 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지금의 캐스팅 현실이 조금 안타까워요.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여전히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뮤지컬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뮤지컬이라는 한 우물만 파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후배들이 다른 부수적인 고민들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건강한 제작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젊은 배우들의 패기와 열정이 꺾이면 안 되잖아요. 왜냐면 저도 오디션을 통해서 이 자리까지 왔으니까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뮤지컬의 저변이 확대되면 제작사들이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지 않고 과감하게 신인 배우들을 기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 믿어요. 그날이 하루빨리 올 수 있도록 저도 제 자리에서 계속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죠. 
 

지금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꿈은 뭘까요.  저는 그냥 제가 오래오래 배우로 일할 수 있길 바라요. 여기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데, 단순하게 말하면 배우의 전성기 그런 걸 다 떠나서 어떤 작품의 어떤 역할을 맡든 오래도록 무대에 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제가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준은 딱 하나예요. 이 인물을 통해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가. 돌이켜 보면, 이제껏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 역할만 한 것 같아도 작품에서 조용하게 제 몫을 하는 역할을 맡았던 적도 많아요. 대단한 흥행을 거둔 작품도 있지만, 흥행에 완전히 실패한 작품도 있고요. 저한테 한 가지 꿈이 있다면, 나이를 아주 많이 먹은 후에도 무대에서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배우로 남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8호 202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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