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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서편제> 김다현 [No.102]

글 |박병성 사진 |이맹호 장소협찬 | 카페74(02-543-7412) 2012-03-12 5,048

 

 다시 배우의 옷을 입고

 

한 해의 숫자가 바뀌는 시기가 되면 마치 내일은 어제와는 다른 태양이라도 뜨는 듯, 새로운 각오를 벼른다.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새해 벽두면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역사의 변혁이나,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 결정적인 계기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비슷하다. 우연한 사건 하나가 세상을 바뀌게 하기보다는 대부분 한 방울씩 떨어진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 마지막 짐 하나가 아닌, 누적된 짐의 총량이 낙타를 쓰러뜨린다. 변죽이 길었다. 김다현이 돌아왔다. <돈주앙>으로 뮤지컬 배우로서 한층 깊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가 군 생활을 마치고, 뮤지컬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서편제>였다. 대한민국 남자에게 군대는 한 사람의 인생의 진로를 바꿔놓기에 좋은 사건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군대에서의 시간이 김다현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자연인 김다현으로 살다


김다현은 <돈주앙>으로 이전의 작품보다 연기가 깊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고 배우로서도 성숙해져 간다는 평가를 받는 시점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방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김다현은 그 사실이 안타깝지 않았나 보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들을 할 수 없을 때는 아쉽죠.” 이 말을 하는 김다현에게 별로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일에 미련을 갖지 않는 소탈함이 아닌, 정말로 한창 물이 오른 시점에 찾아온 군 생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히려 군대의 시간이 소중했다고 한다. “군 생활을 지방에서 했는데 서울을 떠나서 살아본 것은 처음이에요. 연고지도 아니고 거기서 만날 지인도 없어서 군대가 아니었으면 가져볼 수 없는 시간이었어요. 왜 사람들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 그리고 군인으로 나누잖아요. 저는 오히려 군인이었던 시간이 가수나, 뮤지컬 배우, 연예인이 아닌, 인간 김다현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가수로 데뷔하고 몇 년 후 뮤지컬 배우 활동을 하면서 무대에서 TV 브라운관을 오갔던 그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기회가 거의 없었다. 얼굴이 알려진 공인으로서의 굴레 역시, 자유로운 생활을 제약했다.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외모 때문에 어딜 가도 바로 주목을 받은 김다현이었기에 더욱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대는 달랐다. 군대에서는 배우 김다현, 연예인 김다현이 아닌 육군 병장 김다현, 형 김다현으로 살 수 있었다. “제가 나이가 들어서 군에 입대하다 보니까 사병들이 잘 따라 주었어요. 사회 경험도 했고 가정도 있으니까 연애 고민, 인생 고민을 털어놓더라고요. 고민을 상담해주는 형이고 선생님 같은 역할을 했어요. 그러니까 다른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더라고요. 솔선수범하게 되고, 규칙도 더 잘 지키고.”

 

하지만 배우라는 꼬리표는 군대에서도 떼어버릴 수 없었다. 군대에서 제작한 뮤지컬 <생명의 향해>를 통해 군인 김다현을 만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배우로서 무대의 갈증이 있었을 텐데, <생명의 향해>를 회상하는 김다현의 말에서는 흥을 발견할 수 없다. 군대에서 자연인 김다현으로 지내는 삶이 더 좋았던 것일까. “그것도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사회에서 하는 뮤지컬과는 달랐어요. 제게는 선택권이 없었죠. 군인 정신으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죠. 육군본부와 한국 뮤지컬 협회가 제작하는 큰 작품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었달까요.” 마음을 읽기가 어려운 말이었지만 아무튼 군대 생활 중 배우로 무대에 섰던 순간조차도 군인 김다현, 자연인 김다현이었다.

 

 

꽃다현이 만들어가는 동호

제대 후 김다현이 선택한 작품은 연극 <연애시대>였다. 김다현은 이전 인터뷰에서도 연극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열렬히 동경해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상대를 이야기하듯, 연극을 하고 싶은 욕망과 그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런 그가 제대 후 첫 작품으로 동경하던 연극 무대에 선 것이다. 이것은 프로 배우로서 활동하면서 처음 하는 연극 무대 도전이기도 했다. 첫 연극 무대라는 사실이 중요할 줄 알았는데 김다현에게는 그것보다 ‘소극장 무대’라는 데 방점이 찍혔다. “군대에서 공연계와 거리를 두고 보니까 내부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공연 시장의 흐름도 바뀐 것 같고 예전에는 사람 냄새가 좋아서 공연을 했는데 이젠 그런 것들이 약해지고 지나치게 흥행 위주로 간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까 대형 상업 작품들만 부각되고요. 제대를 하고 나면 한국 뮤지컬이 나아갈 길에서 배우 김다현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대형 뮤지컬도 있었지만 우선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소극장에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진지해서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정도였지만 그의 진지함이 진실돼 웃을 수는 없었다. 이런 모범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그에게는 확실히 내가 알지 못하는 생각의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라면 김다현이 <서편제>의 동호에 출연하는 것이 백분 이해가 된다. <서편제>의 동호 역에 김다현이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캐릭터와 화사한 김다현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동호란 인물은 고아와 다름없는 처지로 의붓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적성에도 맞지 않는 북치는 고수가 되어 소리를 하며 방랑하는 인물이 아닌가. 실제 김다현의 성장기는 알 수 없으나 이미지로만 봐서는 곱게 자란 귀공자 타입의 그와 동호는 결이 맞지 않았다. “이지나 선생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세요. 왕자를 하면 젤 잘 어울릴 것 같은 애가 북 치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하다고. <서편제>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이지나 선생님이나 조광화 선생님의 영향이 컸어요. 그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서편제>가 한국 뮤지컬의 대표작으로 길이 남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우리의 소리와 한이 담겨 있는 작품이잖아요.” 그는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는 우려에 대해 오히려 좋은 작품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김다현은 <서편제> 초연을 봤다고 한다. 초연에서 동호 캐릭터가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 인물을 잘 만들어 내고픈 열정이 생겼다. “동호는 소리라는 측면에서 <서편제>를 풀어가는 열쇠를 지닌 인물이에요. 시골에서 소리를 하던 친구가 라디오에서 현대음악을 듣고 심취해서 내 음악을 하겠다고 떠나잖아요. 현대음악을 한다고 했는데 그 속에 우리의 소리가 담겨 있었던 것이죠. 우리의 소리가 서양음악이 들어와서 현대음악으로 바뀌는 과정이 <서편제>에 다 담겨 있는데 동호를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동호가 왜 떠나고, 왜 다시 돌아왔는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아직 캐릭터 분석 중이라며 김다현은 <서편제> 무대에서 선보일 동호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다현이라는 배우

배우로서 김다현은 모범적이다. 배우이기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그렇고,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렇다. 이런 모범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천연덕스러움보다, 김다현이라는 배우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열정이다. 그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배우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신념들과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미묘한 모순이 발생한다. 이를 테면 공연계가 흥행성 위주로 흘러가는 것이 우려가 된다면서 트렌디한 상업 연극인 <연애시대>를 제대 후 첫 작품으로 선택한 것이나, 이미지를 연기로 보완해 나갈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하면서 <서편제>의 동호에 출연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열정’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이성적으로 선택하기보단 열정이 끌리는 것을 선택해왔고, 김다현은 늘 자신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깨는 작품에 열정을 느꼈다. “항상 중요한 것은 열정이라고 생각해요. 열정이 식으면 연습도 어려워지잖아요. 바꾸려고 노력한다고 바뀌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열정을 가지고 하다보면 시간이 나를 변하도록 하잖아요.” 김다현은 갑작스런 변화가 아닌 크게 굽이치는 강물처럼 오랜 시간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변해가는 배우다. 군대라는 시간이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했지만 그것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김다현을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김다현이란 배우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다.
 
그의 열정에 찬 도전은 늘 기대와 흥미를 준다. 이번 <서편제> 동호 역시도, 이전의 도전들처럼 직접 확인하고픈 궁금함이 든다. 김다현의 이미지와 동호 캐릭터가 만나 어떤 동호를 만들어낼지 기대하며, 그의 변함없는 도전을 지지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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