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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ESSAY] <어쩌면 해피엔딩> 미국 공연 작업기, ‘어쩌면 해피엔딩’이 ‘메이비 해피엔딩’이 되기까지 [No.197]

글 |박천휴 작가 2020-02-10 6,543

<어쩌면 해피엔딩> 미국 공연 작업기
‘어쩌면 해피엔딩’이 ‘메이비 해피엔딩’이 되기까지

 

<어쩌면 해피엔딩>의 미국 공연 버전인 <메이비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애틀랜타에 있는 얼라이언스 시어터에서 미국 관객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2016년 가을에 뉴욕에서의 첫 낭독회가 열린 이후 3년 넘는 준비 끝에 트라이아웃 공연이 올라가게 되었거든요. “뭘 했기에 3년이나 걸렸지?”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으리라 짐작됩니다만, 미국에서 새로운 뮤지컬이 이 정도 규모로 초연을 올리는 데 3년은 사실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말이 나온 김에, 미국에서 신작 뮤지컬은 어떤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오르는지, 그간 저희 공연의 개발 과정을 통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조금은 길고 짐짓 따분할 수도 있는 얼마간 전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 ‘고맙다, 올리버’ 장면에서 제임스와 올리버


프로듀서 제프리 리차즈

<메이비 해피엔딩>의 첫 시작은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된 뉴욕 낭독회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작가인 저와 작곡 파트너 윌 애런슨이 지금껏 함께 일했거나 친분이 있는 프로듀서들, 그리고 저희의 에이전트를 통해 초대한 몇몇 유명 프로듀서들, 크고 작은 극장의 예술감독들(이들은 자신들의 극장에 올릴 공연을 선택하는 일을 합니다), 잠재적 투자자들이 모였어요. 제프리 리차즈는 그렇게 초대된 프로듀서 중에서도 가장 관록 있고, 유명한 프로듀서라 제 에이전트인 로널드가 잔뜩 흥분했던 기억이 나요. “제프리는 정말 거물급(Big time)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라고!” 저와 윌은 저희가 미국에서 선보이는 첫 작품이 미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에, 토니상을 여덟 번이나 받은 이 프로듀서가 저희 낭독회에 온다는 게 기쁘지만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프리는 두 차례 진행된 낭독회 중 첫 회에 자신의 어시스턴트를 보내왔고, 두 번째에는 본인이 직접 와서 관람했어요. 그건 어시스턴트가 제프리에게 직접 가서 봐야 한다고 얘길 했단 뜻이겠죠.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게 가장 맨 뒷줄에 앉아 긴장된 마음으로 낭독회를 지켜보던 저와 윌은, 낭독회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제프리를 보며 “거봐, 저 사람이 우리 공연을 좋아할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낭독회가 끝나고 우란문화재단의 김유철 프로듀서가 고맙게도 술을 사겠다고 해서 함께 수고한 배우와 스태프 들과 함께 근처 펍에 갔는데 저희의 에이전트 론이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제프리한테 연락이 왔는데, 너희 공연을 브로드웨이에 올리고 싶대. 최대한 빨리 미팅을 하재!” 그 통화를 하고 난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즐거워하며 건배를 하던 김유철 피디와 “우리 며칠 있다가 <어쩌면 해피엔딩> 한국 초연을 위해 서울에 가야 하는데, 미팅은 언제 하지?”라며 걱정하던 윌, “제프리 리차즈? 오 마이 갓!”을 외치던 배우들의 모습 정도만 떠오릅니다.
 

시간을 조금 빠르게 돌리면, <메이비 해피엔딩>은 몇 번의 미팅과 수많은 이메일과 길고 긴 계약서가 오가고 난 후에 제작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제프리는 저희 어머니와 비슷한 연세지만 쉴 새 없이 엉뚱한 농담을 하고, 저보다 소주를 더 잘 마시며, 저처럼 아무런 브로드웨이 경력이 없는 신인 창작자들의 작품을 브로드웨이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 프로듀서입니다. 언젠가 저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말한 게 기억이 나요. “앞으로 <메이비 해피엔딩> 작업을 하면서 절대 해고할 수 없는 사람이 두 명 있어. 그건 너와 윌이야. 너희가 맘에 들지 않으면 나를 해고할 수는 있어도.” 

모텔 장면에서의 클레어와 올리버


연출가 마이클 아든

마이클 아든은 2017년 말, 제프리의 추천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마이클이 연출한 뮤지컬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의 리바이벌 공연이 브로드웨이에서 막 개막해 호평을 받고 있었어요(이 공연은 이듬해 봄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리바이벌 상’을 받고, 마이클 아든은 연출상 후보에 오르게 됩니다). 그때 당시 개막한 다른 브로드웨이 공연들과 다르게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무대 예술다운 무대’를 구현한 작품이었죠. 원형 무대에 모래를 깔아 섬을 표현하고 바닥에 깔린 천을 걷으면 그 아래에 있던 카펫이 드러나면서 장소 전환이 이뤄지고, 객석까지 설치된 무대 장식들이 관객이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했죠. 첨단의 특수 효과가 없어도, 아날로그의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아이디어가 무대 예술의 기본이자 여전히 가장 큰 매력임을 상기시킨 이 연출가와 함께 <메이비 해피엔딩>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 저와 윌은 마이클과 첫 미팅을 했어요. 감사하게도 마이클은 이미 저희의 대본을 읽고 데모를 들은 상태였죠. 사실 그 이전에 다른 몇몇 연출가와 미팅을 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은 없었어요. 그들의 재능을 높고 낮음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메이비 해피엔딩>과 결이 맞으면서도 창작자인 저, 그리고 윌과 생각이 비슷한 연출가들이 아니었거든요. “올리버와 클레어의 여정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든 잃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선택하는 내 자신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 마음 아프지만 아름다워”라고 첫 미팅 때 마이클은 말했어요. 그리고 “무대가 마치 제임스 터렐(빛을 이용한 공간의 구현으로 유명한 현대 미술가)의 작품처럼 심연을 헤아릴 수 없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물론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겠지만”이라며 지금껏 만난 다른 연출가들보다 훨씬 구체적이고도 용감한 비전을 제시했어요. 
 

지난 2년 동안 함께 작업하며 알게 된 건, 그가 무척이나 직관적인 예술가라는 겁니다. 뛰어난 직관을 가진 예술가들이 대체로 그렇듯, 누군가 자신의 확고한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속도를 쫓아오지 못할 때 더러는 서둘러 좌절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을 믿게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저와 윌에게서도 결국 완전한 신용을 얻어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그걸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최적의 상황을 재빠르게 꾸리는 결단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가 고작 몇 작품 만에 토니어워즈 연출상 후보에 오른 게 이해가 됩니다. 배우로서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마이클은 줄리아드에 학비를 면제받으며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곧바로 브로드웨이 공연에 캐스팅되어 학교를 중퇴했을 정도죠. 
 

사실 연출가와 작가는 도무지 편할 수만은 없는 관계입니다. 텍스트를 무대화하는 동안 크고 작은 타협과 양보가 수없이 이뤄져야 하고, 그 과정 동안 감성과 이성이 뒤섞이며 때로는 소심할 정도의 신경전을 벌이는 건 흔한 일이거든요. 마이클과 저는 매우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데다 서로 각자의 방식대로 예민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처음엔 감정적 교류와 의사소통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이번 애틀랜타 공연을 준비하며 워낙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를 감정적으로 이해하게 됐고, 예술가로서 신용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실은 꽤 많이 비슷한 면을 가졌다는 것도요. 그래서인지 이제 극장에서 서로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둥켜안으며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저와 <메이비 해피엔딩>이 마이클 아든을 만난 건 정말이지 해피한 일이에요.

 ©Deborah Abramson
 

<메이비 해피엔딩>의 첫 번째 홈. 얼라이언스 시어터

브로드웨이를 목적지로 한 작품이더라도, 첫 시작은 뉴욕이 아닌 다른 ‘지역 극장(Regional theater)’에서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 이유는 일단 브로드웨이 극장의 숫자는 제한적이고, 그곳에서 공연을 올리는 비용은 천문학적인 숫자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새 창작물을 바로 브로드웨이에 가져가는 건 여러모로 현실적인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리고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의 리뷰가 신작의 흥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풍토도 있어요. 게다가 미국은 뉴욕이 아니더라도 대도시마다 긴 역사를 지닌 큰 규모의 극장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 창작물의 경우, 뉴욕 바깥의 이런 지역 극장에서 완성을 하고, 그 결과물이 좋을 경우 브로드웨이로 옮겨 가는 게 일반적인 개발 과정이에요. 이건 한국에서도 사용하는 명칭인 ‘트라이아웃 공연’의 의미와도 같습니다. <메이비 해피엔딩>의 첫 번째 홈그라운드가 되어준 얼라이언스 시어터는 미국 동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애틀랜타에 위치한 700석 규모의 극장으로, 2007년 토니어워즈에서 지역 극장상을 받은 유명 지역 극장 중 하나입니다. 뮤지컬 <아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더 프롬>이 이곳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하고 브로드웨이로 옮겨갔어요. 유명 지역 극장들이 그렇듯, 얼라이언스 또한 예술감독의 지휘 하에 극장의 비전에 어울리는 새 작품을 선발합니다. 창작자인 저와 윌을 비롯해 많은 팀원이 지난해 12월 초부터 이곳에 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얼라이언스 시어터의 꼼꼼한 체계와 진지하고 다양한 예술 교육, 공공 관련 프로그램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무대 예술이 어떻게 지역 사회와 새 세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매우 체계적인 고민과 노력을 하는 게 느껴졌어요. 예를 들면, 이 도시의 모든 교사와 학생들은 저희 공연 티켓을 단 10달러에 살 수 있고, 작품과 관련한 세미나를 열기도 합니다. <메이비 해피엔딩>의 경우, 아시아인 단체와 연계한 포럼이 열릴 예정입니다. 또한 극장 내 상주하는 무대와 의상 제작 팀의 수준 또한 뛰어나서, 유명한 브로드웨이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저희 팀과도 조화롭게 작업하고 있어요. 이런 튼실한 지역 극장 문화가 한국에서도 곧 자리 잡기를 바라요. 그래야 서울에만 의존하고 있는 한국 공연계가 앞으로 더 고르고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의 방 안에’ 장면에서의 올리버
 

‘어햎’이 아닌 ‘메햎’

지난 3년 동안 미국에서의 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메이비 해피엔딩>은 <어쩌면 해피엔딩>과는 사뭇 다른 공연이 된 것 같아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관객들의 정서와 문화를 고려하다 보니 생긴 변화들 때문이겠죠. 그리고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 특히 연출가 마이클 아든의 의견도 적잖이 반영되었어요. 우선, 두 시간에 가까운 ‘어햎’의 러닝타임과 달리 ‘매햎’은 95분 길이입니다. 그리고 재즈 싱어 역할을 ‘길 브렌틀리’라는 이름의 독립된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드라마적으로는 클레어의 옛 주인들에 관한 회상 장면이 추가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비롯한 몇몇 뮤지컬 넘버는 ‘메햎’을 위해 새로 만든 곡으로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오케스트라 또한 대극장 규모에 맞게 커지면서 관악기들을 추가한 총 9인조가 되었어요. 이렇듯 다른 나라 무대 위에서 다른 언어로 펼쳐질 공연이지만 어떻게 하면 저희가 아껴온 ‘어햎’의 정서를 최대한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을 한국으로 유지하고, 아시아계 배우를 캐스팅하기까지 꽤 많은 어려움이 있기도 했어요. 이제 고작 며칠 후면, 저에겐 낯선 도시인 이곳 애틀랜타에서 미국 첫 관객을 맞이하게 돼요. 어떤 반응일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어 긴장되지만, 저와 윌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담담한 마음으로 객석에 앉아 관객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국인과 미국인 창작자가 공동으로 만들고,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낯선 이야기와 노래들이, 미국 관객들과 얼마큼 소통하게 될까요? …괜찮을까요? 어쩌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6호 2020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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