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이 희망을 향하는 진실한 목소리
2009년 토니 어워즈 뮤지컬 오리지널 스코어상의 후보 명단에는 너무도 쟁쟁한 후보가 있었다. 바로 <빌리 엘리어트>의 작곡가 엘튼 존과 작사가 리 홀. 하지만 그해 상은 브로드웨이의 뉴웨이브를 보여준 <넥스트 투 노멀>의 작곡가 톰 킷과 작사가 브라이언 요키에게 돌아갔다. <넥스트 투 노멀>의 음악은 세련되고 유려한 가운데 드라마를 더 극적으로 드러낸다. 과거의 상처로 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그녀가 가족에 끼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록 음악을 기반으로 정통 뮤지컬 음악, 팝,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드라마와 함께 엮어 관객들의 감정을 천천히 고조시킨다. 가족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차가운 금속 드럼과 똑 떨어지는 피아노 선율로 차갑게 제시하면서도, 이들의 숨겨왔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뜨거운 불덩어리가 되어 보는 이의 심장을 관통한다. 지난 11월 <넥스트 투 노멀> 한국어 공연 개막을 앞두고, 11년 만에 자신과 브라이언 요키에게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안긴 이 작품에 대해 작곡가 톰 킷과 서면을 통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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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로 부터 한국 공연의 연습 과정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요? 자주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놀랍고, 배우 분들이 무척 훌륭하다고 극찬하더군요.
미국 외 다른 국가에서 공연한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노르웨이 오슬로 공연을 봤습니다. <넥스트 투 노멀>의 첫 해외 프로덕션이었죠. 굉장히 새로운 마음이 들더군요. 우리의 작품이 다른 언어로 너무나 아름답게 번역된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제 인생에서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작품에서 붙들고 고민했던 이슈들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재능을 보였던 어린 시절 어느 여름, 한 음악 캠프에 참여하면서 록과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뮤지컬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컬럼비아 대학 시절 브라이언 요키와 ‘The Varsity Show’ 서클에서 함께 작업하게 되었죠. 그러고 나서 스티븐 손드하임, 존 캔더, 조나단 라슨의 작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뮤지컬 작곡가를 꿈꾸게 되었어요. 뮤지컬 공연이 관객들을 설레게 하고 즐겁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늘 알고 있었죠. 하지만 뮤지컬이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전달하며 강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제가 원하던 것이 뮤지컬 작곡이었음을 확신했습니다.
좋은 조건의 직장 대신 뮤지컬을 택할 정도로 당신을 사로잡은 뮤지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뮤지컬 특유의 협업 작업에 매료되었어요. 각기 다른 아티스트들이 내 작품에 시간을 투자해서 그들만의 영감과 열정을 쏟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정말 신나는 일이죠. 제가 쓴 음악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을 보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어요.
1998년 BMI 워크숍에서 작사가 브라이언 요키와 10분짜리 뮤지컬 <필링 일렉트릭>을 함께 작업했고, 이 작품이 <넥스트 투 노멀>이 되어 브로드웨이 부스 시어터에 오르기까지는 11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공연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시간은 절대 예상할 수 없어요. <넥스트 투 노멀>의 작업 과정은 작품을 완벽하게 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큰 부담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인도해 나가기에 적합한 팀을 만났을 때도, 그 톤을 완벽하게 하고,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제대로 전달할는지 확신이 들 때까지 시간이 걸렸죠.
그 사이 당신은 20대에서 30대가 되었습니다. 작품을 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이 작품의 작곡을 시작했을 땐 24살이었고, 브로드웨이에서 올라갔을 때 저는 35살로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였어요. 이것이 가장 큰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극 중 나탈리와 게이브에 공감할 수 있던 시절에서 이제는 댄과 다이애나에 더 공감할 수 있게 되었죠. 제 인생이 변해가면서, 이 작품에서 제기된 이슈들과의 공감도도 변해가더군요.
록과 팝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작업 능력을 인정받아, 2006년에는 닉 혼비의 소설을 각색한 동명의 뮤지컬 <하이 피델리티>의 작곡가로 데뷔했습니다. 아쉽게도 금방 막을 내렸는데, 창작자로서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저는 지금까지도 <하이 피델리티>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작품은 제가 원하는 대로 썼어요. 작가로서, 일이 어떻게 풀려 나갈지 절대로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통제였습니다. <하이 피델리티>를 작업할 때 그랬던 것 같아요.
<넥스트 투 노멀>은 조울증을 가진 어머니와 그녀의 병이 그들의 가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뮤지컬에선 일반적이지 않을뿐더러 쉽지 않은 소재죠. 영감을 받은 사건이나 계기가 있나요? 또, 소재로 인해 음악을 쓰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손드하임의 <숲 속으로>와 <스위니 토드>, 칸더와 엡의 <카바레>, 라파인과 핀의<팔세토즈>, 라슨의 <렌트>처럼 쉽지 않은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작품으로부터 매우 큰 영감을 받았어요. 이 작품들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한 동시에 <넥스트 투 노멀>과 같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정신병과 같은 어려움으로부터 그 누구도 면역될 수는 없습니다. 브라이언과 저는 이 점이 꼭 전달되어야 할 중요한 스토리이고, 뮤지컬 장르에서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뮤지컬의 규칙은 감정이 북받쳤을 때 노래가 나오고, 그 감정에 대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이죠. 정신병과의 고투보다 더 감동적인 스토리를 쓰는 건 상상할 수가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를 위해 음악을 쓰는 데 전혀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캐릭터들이, 노래하는 작품 속 그 순간들이 늘 자연스러운 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작업할 때 영감을 주었던 다른 작품이 있나요? 많은 예술 작품들이 영감을 주었습니다. 브라이언과 제가 이야기 나눴던 작품들은 영화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1980)과 앞서 언급한 뮤지컬 <렌트>와 <팔세토즈>, 그리고 <토미>, 희곡에서는 입센의 『인형의 집』과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입니다.
<넥스트 투 노멀>은 전통적인 뮤지컬 스타일의 스코어부터 록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들이 잘 조합되어 있습니다. 이런 음악적 조합을 창조해내기 위해 어떤 고민의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사실 음악 스타일의 충돌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무엇보다도 저는 절대로 이 작품에 억지로 록을 넣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에는 록 외에도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있어요. 만약 록이 이 작품을 표현하는 데 적절하지 않았다면, 사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록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어느 순간 스토리에 한층 고조된 감정을 불어넣어 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넥스트 투 노멀>에서 록 스타일을 쓴 것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다양한 종류의 록과 팝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을 겁니다.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표현할 듯한 스타일로 늘 써 나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각 캐릭터마다 부여한 음악적인 특성이 따로 있나요? 꼭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각 캐릭터들이 명확한 음악적 성격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저는 각 캐릭터들의 음악적 표현에 일관성이 있다는 점을 아주 좋게 생각합니다. 캐릭터들이 자신들을 표현하는 방식에 제가 일관된 톤을 주었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댄은 자기 가족을 편안하게 하고 보살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멜로디가 좋고 진지한 경향이 있어요. 그에 반해, 다이애나는 록에서 재즈, 컨트리/웨스턴에서 발라드로 종횡무진이죠.
가장 어렵게 작업한 장면과 음악이 있나요? 작품의 엔딩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것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여러 번 다시 썼어요. 모든 것을 완결시켜버리거나, 어떤 것도 꾸미지 않으면서 관객들에게 희망을 주는 아주 진실한 엔딩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들이 아주 중요한 길목에 서 있다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과 음악이 있나요?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저는 1막 중간에 ‘You Don`t Know/I Am the One’ 부분이 늘 좋았어요. 브라이언과 저는 다이애나와 댄,게이브와 댄의 대립을 음악적으로 풀어낸 것에 대해 만족합니다. 그리고 배우들이 그 내용에 굉장히 열정적으로 파고드는 것을 지켜보는 건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에요. 그들에게 뭔가 활발하고 신나는 놀이를 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컬럼비아 대학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브라이언 요키와의 작업에 대해 “우리는 음과 양 같은 관계다”라 언급했습니다. 그만큼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공고해 보이는데, 두 사람의 작업은 보통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우리는 아주 훌륭한 협업 관계를 맺고 있어요. 이 협업 안에서 서로의 작업을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보완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죠. 나는 브라이언의 가사에 곡을 붙이는 게 좋고, 내가 쓴 음악에 그가 새롭고도 아름다운 레이어를 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래를 정말 빨리 씁니다. 서로 일하는 방식이나 스타일, 속도를 잘 알고 진행하기 때문이죠. 마음이 통하는 아주 훌륭한 협업 관계예요.
<넥스트 투 노멀>은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더불어 2000년대 후반 기존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관객에게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임에도 관객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감동을 받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저 역시 그런 사람이고요. 좋아하는 작품들은 저를 울거나 웃게 하고, 여러 시간 동안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게끔 만들죠. <넥스트 투 노멀>에 공감하는 사람들 역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주제가 어렵다 해도, 그들은 이 작품에 대해 자신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에 굉장히 고무된 듯한 모습이었어요.
<넥스트 투 노멀>은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고, 흥행적으로 큰 성취를 거두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 작품은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네, 무척 소중합니다. 제가 늘 만들고 싶었고, 앞으로도 또 만들고 싶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제 이름이 붙고, 새로운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게 되는 것은 굉장한 영광입니다. 이 작품이 전 세계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 이 작품 나름의 삶이 있을 거라는 점은 제게 일어난 가장 보람된 일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을 보고 한국 관객들이 함께 느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한국 관객들도 다른 나라의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신나고, 즐거운,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가슴 뭉클한 경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공연에서의 이슈들이 관객들에게도 반향을 불러일으켜 굿맨 가족의 이야기가 전 세계 어떤 문화에서도 회자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또는 앞으로 참여하게 되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저는 현재 브라이언 요키와 함께 다수의 프로젝트를 작업 중입니다. 이 중엔 <넥스트 투 노멀>의 프로듀서 데이비드 스톤과 연출가 마이클 그라이프와 함께 제작하는 새 뮤지컬도 포함되어 있어요. 11월에는 <하이 피델리티>의 작사가 아만다 그린과 <인 더 하이츠>의 린-마뉴엘 미란다와 공동 작곡한 뮤지컬 <브링 잇 온>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오픈했습니다. 이 작품은 12월에는 샌프란시스코, 1월에는 덴버와 휴스턴을 경유하며 전국 투어를 할 예정이에요.
이 작품 이후 주목받는 컨템퍼러리 작곡가이자 록 뮤지컬 계보의 새로운 희망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젊은 뮤지컬 작곡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제 작품에 대해 성원해 주시고 열정을 보여주신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보다 앞서 계셨던 분들로부터 영감을 받지 못했다면 저는 작곡가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제 작품이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들이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제겐 큰 영광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당신에게 말을 걸어 진정으로 당신의 소리를 필요로 하는 그런 프로젝트와 스토리를 찾아보세요. 그것이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샘솟는 음악을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0호 2012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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