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SPOTLIGHT] <왓츠 업> 조정석 [No.100]

글 |정세원 사진 |김호근 2012-01-17 6,514

 

 칼을 뽑았으니 멋지게 휘두르는 일만 남았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조정석에게 남겨준 것은 두 개의 남우조연상뿐만이 아니었다. 큰 눈 가득 불안함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낸 그의 모리츠는 공연장을 찾은 송지나 작가와 송지원 PD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들이 <카이스트> 이후 10여 년 만에 제작하는 캠퍼스 드라마 <왓츠 업>에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다. 조정석이 연기하고 있는 김병건은 이렇게 태어났다. 사전 제작 드라마로 화제를 모았지만 일 년이 넘도록 편성을 받지 못했던 조정석의 첫 번째 드라마 <왓츠 업>이 마침내 방영을 시작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막바지 촬영 중에 만난 조정석은 일 년 전의 기억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더듬어 내려갔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얼굴에 살이 좀 오른 것 같다. 티가 많이 나나. 감독님께서 살 좀 찌우라고 하신 덕에 <헤드윅> 때보다 5킬로그램이나 쪘다. 얼굴에 특히 살이 많이 붙어서 걱정이다. 오늘은 정면보다 측면으로 사진을 찍어야 할까보다. 45도 얼짱 각도로.(웃음)


이용주 감독의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 중이라고 들었다. 어떤 역할이길래 살까지 찌웠나. 남자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의 20대 시절. 남자 주인공인 엄태웅 씨가 첫사랑이었던 한가인 씨를 다시 만난 후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데, 그 회상 신에서 그의 연애 상담을 해주는 재수생 친구다. 쉽게 말하면 동네 노는 형. 1월 초에 촬영 끝나면 다시 살 뺄 거다.


영화가 좋아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10여 년 만에 비로소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됐다. 기분이 어떤가. 이런 얘기를 하면 좀 그런데, 솔직히 설레는 것 이상으로 물 만난 물고기가 된 것처럼 신난다. 내가 영화를 정말 정말 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뮤지컬 스케줄 때문에 놓친 작품도 꽤 있고. 그래서 <스프링 어웨이크닝> 마치고 <왓츠 업> 촬영 들어가면서 일부러 뮤지컬 스케줄을 안 잡았다. 새로운 장르를 접해보니 무대에서와는 다른 색깔, 다른 연기 톤을 표현할 수 있어서 재밌고 좋다. 촬영 분위기도 좋고. <왓츠 업>으로 카메라 연기 경험 쌓은 것도 도움이 됐다.


<왓츠 업>이 드디어 방송을 시작했다. 4편까지 봤는데 꽤 재밌더라. 구성도 탄탄하고 캐릭터들도 다양하고. 1년 가까이 기다렸는데 결국 종편 방송이라 조금 아쉬웠다. 고생해서 찍었는데 편성을 못 받으니까 그렇게 마음이 안됐더라. 지상파든 종편이든 상관없이 방영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우리가 고생해 만든 결과물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근데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이제야 지상파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줬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나 무대 공포증으로 주눅 들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왓츠 업>의 김병건을 보면서 문득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모리츠가 떠올랐다. 잘 보셨다. 병건 역은 원래 없었는데 송지나 작가님이 공연을 보고 만든 캐릭터다. 내가 연기했던 모리츠의 불안함을 병건의 캐릭터에 입히셨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촬영할 때도 나는 그냥 병건이었는데 드라마를 본 팬들이 모리츠 얘기를 해주더라. 작가님께 전해드렸더니 “날카로운 것들” 하셨다.(웃음)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작가님과 인터뷰를 참 많이 했다. 내 말투, 억양 등을 연구하시려고 그러셨던 것 같다. 대본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그냥 글로만 봐도 이건 내 말투였다. 예를 들면 “아니, 교수님, 어떻게 이런 걸로…”, “다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런 저런, 확 그냥, 저런 인간들을 그냥 확 잡아가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런 말들은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왓츠 업>에서 볼록 렌즈 앞에서 ‘아에이오우’ 하던 병건의 첫 장면은 좀 웃겼다. 카메라 감독님이 병건 컷이라고 만들어주신 거다. 나중에 또 나올 건데, 그건 병건이만 할 수 있다. 


무대 밖에서의 병건은 굉장히 밝고 유쾌하다. 조정석은 어떤가.  음,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감추는 위장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고. 어쩌면,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한테는 어두운 면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이혼, 아버지와 조카의 죽음…. 하지만 굳이 들춰내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얘기하게 되더라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툭 던지고 싶고. 힘들 땐 어릴 때부터 늘 함께해 온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그냥 한바탕 실컷 울면서 풀어낸다. 대외적으로 친한 지인들에게 그런 얘기를 못하겠다는 건 아닌데, 그런 얘기를 하려면 서론, 본론, 결론을 다 얘기해야 하니까 잘 안 하게 되더라. 또… 안 좋았던 기억들을 얘기할 때 상대방이 동정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게 싫다. 그냥 가볍고 편하게 서로 따뜻한 기운을 나눠주는 게 좋다.


어머님 연세가 많으셔서 걱정이 많겠다. 다른 공연들처럼 <왓츠 업>도 재밌게 보고 계신가. 어휴, 엄청나게 보신다. 재방송까지 다 챙겨서. 공연장까지 안 나오시고 집에서 편히 아들 얼굴 보니까 더 좋으신가보다. 깔깔 웃으면서 보셨다. 엄마랑 둘이 살아서 그런지 점점 걱정이 되긴 한다. 어제도 새벽에 응급실에 다녀왔다. 가끔 엄마가 ‘우리 막내아들 손주 안아보고 싶다’고 하실 때나 편찮으실 때면 결혼을 해야 하나 싶다. 그래도 아직 배우로서 더 많은 걸 해내고 싶고 쟁취하고 싶은 게 많아서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


서른둘이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조정석과 결혼은 왠지 좀 안 어울린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는 배우에게 장점일 수도 있지만 역할의 한계를 줄 수도 있다. <왓츠 업>과 <건축학개론>에서만 봐도 조정석은 여전히 스무 살 청춘이지 않나. 스물일곱, 여덟 즈음에 그 고민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헤드윅> 하고 <올 슉 업>, <바람의 나라>, <찰리 브라운>도 다 스물일곱 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얼굴의 역사는 내가 만들어간다는 걸 느꼈다. 남들이 아무리 동안이라고 해도 이제는 내 나이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걸 연기로든 재능으로든 대중에게 보여줘야겠지. 하지만 동안이라고 해서 역할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불안은 없다. 실력으로 그 한계를 넓히면 되는 거니까. 모든 것은 하기 나름이다.

 


그럼 조정석이 배우로서 걱정하거나 고민하고 있는 일이 있나. 물론 삶에 대한 걱정은 있다. 돈도 많이 벌어야 하고 엄마도 모셔야 하고…. 하지만 배우로서는, 솔직히 없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집념이 있으니까 걱정할 시간이 없다. 어떤 역을 맡으면 최선을 다해 잘 만들어내고 표현해내려는 열정뿐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재밌다. 내가 열심히 준비해서 만든 캐릭터가 반응이 좋지 않으면 더 좋게 만들면 되는 거다. 또 내가 섣불리 도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않나. 끝까지 해서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만 모험을 걸고 도전하는 스타일이지 무모한 도전은 하지 않는다.


조정석에게 무모한 도전이란 무엇인가. 음, 예를 들면 <저지 보이스>에 3옥타브를 넘나드는 ‘파리넬리’를 연상시키는 배우가 있는데 그 역할을 하라고 하면 나한테 무모한 도전인 거다. 음역대에 대해 자가 진단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다.


노래를 더 잘하고 싶진 않나. 그 생각은 오백 번도 더 한다. (레슨을 받거나 하는 노력은 하지 않나.) 내가 뮤지컬 배우이고, 노래, 춤, 연기 삼박자를 고루 갖춘 배우가 훌륭한 뮤지컬 배우라고들 말씀하시지만, 내게 넘버원은 연기다. 노래 못하고 춤 못 춘다는 얘기 들으면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데 연기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 마음속으로 칼을 갈게 된다. ‘아 그래? 그럼 내가 끝까지 파고들어서 잘하는 모습 보여줄게’ 하면서. <헤드윅> 초연 때 그랬다. 어쩔 수 없이 <올 슉 업> 연습과 병행하게 됐는데 나중에는 내가 헤드윅인지 채드인지 헷갈리는 거다. 완전 상반되는 캐릭터라 더 심했던 것 같다. 덕분에 쓴소리를 많이 들었다. 재공연을 별로 한 적 없는 내가 <헤드윅>을 세 번이나 출연했던 건 다 그 때문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다 보여준 것 같나. 모르겠다. 평가는 관객들이 하는 거니까. 그래도 뭔가 확실히 다르다는 건 느꼈다.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갔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잘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어차피 연기는 완벽한 계산이지만 너무 완벽하게 계산하려 했다. 두 번째 공연에서는 그나마 좀 풀렸고, 세 번째 공연에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진 것 같더라. 왜 50대 중년 아줌마들이 ‘예전에 내가 스물두 살 때 이혼했잖아’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듯한 느낌. 보이지 않게 자기 슬픔을 억누르고 삭이는 헤드윅이었다.

 


인간 조정석은 어떤가. 항상 웃는 모습이라 속이 궁금할 때가 많다. 난 긍정적인 인간이다. 좋은 게 좋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는 ‘넌 뭐가 만날 좋냐, 병신’ 한다. 근데 가끔은 관심이 없어도 그냥 좋다고 해준다. 학교 때도 다른 선배들이 다 기합 주고 그럴 때 나는 그냥 인사하고 웃으면서 지나쳤다. 그래서 후배들은 나를 좀 무서워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관심이니까. 그렇지. 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무한 잔소리를 퍼부어준다. 작품 할 때는 다르다. 모두가 다 내 관심 안에 있어야 한다. 작품이 잘 나오려면 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전체 앙상블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편 가르기도 없어야 하고, 왕따도 없어야 하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베스트 앙상블상 탔을 땐 정말 기뻤다. 내 믿음이 틀리지 않다는 걸 확신했으니까. 그래서 <왓츠 업>에서도 내 역할보다는 배우들과의 관계를 더 많이 신경 썼다. 대부분 8~10살 정도 차이가 나는 동생들이었지만 그들과 친해지려고 정말 애 많이 썼다. 원래는 후배 앞에서 무게 잡는 거 잘하는 사람인데 그걸 못했다. 애들이 불편해 할까봐. 대신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일부러 한 번 더 물어보고 먼저 장난 걸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 때도 늘 붙어 다녔다. 난 그렇게 웃긴 사람이 아닌데 어떤 친구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웃긴 사람인지 안다. 그만큼 노력했다는 거다.


<건축학개론> 이후에 또 다른 영화가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다. 이러다 당분간 뮤지컬 무대에서 만나기 힘들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뮤지컬 스케줄을 맞춰보고 있는 중이다. 내가 원래 실리보다는 의리를 중요시하고 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그냥 하는 사람인데, 지금은 일단 영화를 찍고 있으니까 여기에 최선을 다할 거다.
2012년 서른셋을 앞둔 기분이 어떤가. 아, 드디어 ‘삼땡’이다! 내가 3이라는 숫자에 민감해서 그런지 서른이 되면서 방황도 많이 하고 정말 힘들었다. 왜 삼재라고들 하지 않나. 올해 12월까지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들이 꽤 많았다. 물론 지난 3년 동안 상도 타고 드라마, 영화 출연까지 좋은 일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80년생 원숭이띠 친구들이 다 같이 안 좋았는데, 내년에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다들 건강하면 좋겠고. 그리고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배우라는 얘기를 변함없이 듣고 싶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0호 2012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