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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미스 사이공> 이하나 [No.100]

글 |김영주 사진 |김호근 2012-01-10 5,008

 

  젊은 나무의 사랑 

 

<어디만큼 왔니>에서 청바지 입고 기타 치던 지난 시절의 대학생 양희은을 연기했고, <미스 사이공>에서는 가련한 베트남 소녀이자 모성애의 화신 같은 킴이었던 이하나는 무대 밑에서는 새내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앳되고 발랄했다. 말간 얼굴, 풋풋한 몸짓이 여배우라기보다 여대생 같다는 느낌 그대로 카메라 앞에서 여우처럼 포즈를 취하지도 못하고, 애써 시도해보다가도 괜히 쑥스러워서 더 크게 웃음을 터드리고 마는 그녀에게서 묵직한 역을 강단 있게 해내던 어린 여배우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꼭 보물찾기 같아요.”
설명을 하려고 보니 다시 그 순간의 기쁨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 이하나는 눈을 반짝였다. “연기를 하는 게 정말 좋아요. 무대에서도 좋은데, 밑에서 연습을 하고 준비를 하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역할에 대해 뭔가 하나씩 느끼고 배울 때마다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기분이에요. 오늘은 이만큼 보물을 찾아서 다 찾았다, 오늘도 잘했어, 라면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 한가운데서 ‘아, 여기 또 하나 찾았다!’ 하면서 보물을 집어 드는거죠.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갈수록 제가 해야 하는 역할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뮤지컬계를 뒤흔든 센세이셔널한 신데렐라 탄생은 아니지만, 이하나는 무대에 첫발을 들인 순간부터 지금까지 원래 정해진 운명대로 가는 사람처럼 순탄하게 상승 궤도를 타고 있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앙상블로 데뷔한 후 곧바로 <드림걸즈>의 로렐 커버로 캐스팅되었고, 학전의 <굿모닝 학교>에서 주인공을 거쳐 <미스 사이공>에서 킴 역의 커버 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어디만큼 왔니>에서 여대생 희은으로 누군가의 ‘커버’가 아닌 메인 캐스트로 무대에 섰을 때, 자신이 맡은 역의 이름에 눌리지 않는 저 신인이 누구인지 이름을 확인한 이는 적지 않았다. 이하나는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존재를 깨닫고 나면 다음을 기대하게 되는 기본기가 확실한 신인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무언가를 처음 배운 것은 악기였다. 제주도에서 유년기를 보내는 내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서울로 올라온 후로 재미난 일들이 널린 신천지에 눈이 번쩍 뜨여서 레슨이고 뭐고 도망을 다니다가 손이 굳어버렸지만. 그래도 부모님 허락도 없이 예고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할 때는 어렸을 때 배운 악기가 도움이 됐다. 덜컥 합격을 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탐탁치 않아 했다. 꼭 공연 쪽 일을 해야겠으면 배우가 아니라 스태프 쪽 일이면 안 되겠냐는 강권에 한동안 조명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하나는 연기에 대한 이끌림이 자신의 본능이었던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됐어요. 저희 큰아버지가 음악을 하시다가 큰 실패를 하셨대요. 아버지는 그 상처가 있으니까 이쪽 일은 취미로 즐기는 거지 직업으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거죠. 아버지는 제가 처음 <미스 사이공>을 할 때도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존경하는 김민기 선생님의 ‘아침이슬’을 부를 수 있다는 이유로 출연을 결심’했던 <어디만큼 왔니>는 아버지에게 딸이 배우라는 이름으로 비탈길을 걷고 있지는 않다는 믿음을 주는 고마운 작품이 되었다. “킴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마지막까지 풀지 못했던 숙제는 탬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던질 수 있는 그 마음이었어요. 저는 아직 결혼도 안했고 아이도 안 낳아본 데다가, 저라는 책이 아직 얇아서 그 큰 감정을 다 느끼고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루는 1막을 마치고 인터미션 때 아버지가 남긴 음성 메시지를 들었어요. 술을 한잔하시고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잘하고 있냐, 네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니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너를 믿는다고… 그 메시지를 듣고 대기실 밖으로 나가는데 정말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을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극단적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그게 죄이지만 죄가 아닐 것 같은 그런 큰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이게 킴이 탬에 대해서 갖는 감정인가라는 생각이 불쑥 들어서, 이 마음을 간직해야겠다고 되뇌었어요.”

 


20대 초중반의 사회 초년생들을 흔히 인생의 초여름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막 태어난 사람처럼, 배우로서 무대 위와 아래에서 겪는 모든 일들을 다 총천연색으로 생생하게 받아들이는 이하나의 생기는 막 깨어난 봄을 연상시킨다. <미스 사이공> 팀의 선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어떤 고마운 조언을 들었는지, 어떻게 의지가 되는지  감사하는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한데, 확실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선배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아직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지 못한 상태라, 학교로 돌아가야 할지 <레  미제라블> 오디션을 봐야할지 결정을 못했다고 고민을 토로하는 이하나에게는 뭐든 도움이 될 만한 말 한마디를 해줘야 할 것 같은 사랑스러움이 있다. 그녀의 타고난 매력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자체에 순수하게 집중하는 순도 높은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반응일 것이다.


“막이 내리고 무대 뒤에 기진맥진해서 앉아있으면 멍하니 있다가 ‘아, 재밌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요. ‘재미’라는 말이 굉장히 얄팍하게 들릴 수 있는 단어라는 건 알지만 그냥 정말로 재밌어요. 이 ‘재미’를 계속 느끼고 싶으니까 계속 생각을 하고, 이렇게도 해볼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고민을 하고, 그렇게 또 다른 재미를 찾고, 그게 재미있어요.”
자신의 연기에 대해, 무대에 대해 천진난만하다 싶을 만큼 돌려 말하거나 포장하는 법이 없는 이하나의 고백들은 계산을 할 여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이른 봄의 풋사랑 같다. 봄은 찬란하고, 그만큼 짧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봄 다음의 여름에도 그녀가 또 즐겁게 찾아낸 다른 빛깔들이 가득할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0호 2012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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