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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왕자와 백조의 호수 [No.193]

글 |김영주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제공 |LG아트센터 2019-10-14 3,049

왕자와 백조의 호수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는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미친 왕들 중에서도 독특한 인물이었다. 자기 신하와 백성을 잔인한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대제국 로마의 네로와 칼리굴라, 영국의 메리 1세나 우리의 연산군에 비하면 임팩트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나라를 털어먹은 방식이 획기적인 것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루트비히 2세의 삶을 결정지은 것이 한 편의 오페라였다는 점부터 드라마틱하다. 그의 나이 15세에 극장에서 본 바그너의 대표작 ‘로엔그린’의 막이 오를 때 미친 왕의 의문사로 막이 내리는 비극 또한 시작되었다.

스무 살이 채 되기 전에 즉위한 이 젊은 바이에른 왕은 빼어난 외모와 현실감이 떨어지는 성격, 불안한 정신 상태까지도 합스부르크 황후 엘리자베트와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는데 두 사람은 실제로 오촌지간이며 인간적으로도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엘리자베트가 자신의 아름다움에 집착했던 것에 반해 루트비히 2세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현실에 구현해 내는 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쳤다. 

고만고만한 인생을 사는 필부필부가 ‘덕질’ 좀 해봐야 기껏해야 굿즈를 사 모으고 성지순례를 하느라 가산을 탕진하는 수준에서 끝이 나지만 바이에른의 국왕쯤 되면 당연히 스케일이 달라진다. 즉위와 동시에 바그너를 모셔오라는 명령으로 치세를 시작한 19세의 왕은 자신이 <로엔그린>을 보면서 상상한 백조의 성을 실제로 건축하기에 이르는데, 왕실 재산을 모두 쏟아부은 세 개의 성 중에서 특히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백조의 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마치 <로엔그린>의 무대처럼 산 속 깊은 곳에 신비롭게 자리 잡은 이 아름다운 성은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바그너의 막대한 빚을 대신 갚아주고 그의 작품 활동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면서 진정한 ‘성덕’의 길을 걷는 듯했던 루트비히 2세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강력한 공화주의자였던 바그너가 어린 국왕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한 보수적인 귀족들은 그를 왕국 밖으로 추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패배로 힘을 잃은 루트비히 2세는 끝내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한 축성으로 현실에서 도피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백조를 타고 날아온 기사 로엔그린을 사랑했던 아름다운 젊은 왕은 온 국민들의 기대와 사랑을 받으며 왕위에 올랐지만, 20여 년 만에 젊음도, 아름다움도, 사랑도 잃고 깊은 밤 호수에 떠오른 시신으로 발견된다. 무릎 깊이밖에 되지 않는 호수에서 수영에 능숙했던 왕이 익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모두가 의문을 품었지만 공식적인 사인은 자살이었다.  

호수 위에서 맞이한 그의 마지막 순간은 매튜 본이 창단한 어드벤처스 인 모션 픽처스(Adventures in Motion Pictures)의 <백조의 호수>에서 왕자와 백조가 처음으로 대면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클래식 발레 버전에서 왕자는 자신의 생일 축하연을 마치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마음으로 호숫가를 찾았다가 백조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매튜 본은 자신의 왕자에게 세상 밖으로 달아나고 싶은 충동 끝에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존재를 만나는 드라마틱한 설정을 선사했다. 


 

고전발레와 달리 강력한 퀴어 코드가 들어가 있는 작품이고 매튜 본 자신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동성애자였던 루트비히 2세가 더 겹쳐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발레곡 <백조의 호수>를 쓴 차이콥스키나 그 유명한 동화 「미운 오리 새끼」와 「백조왕자」를 남긴 안데르센 역시 대표적인 게이 예술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들의 대표작에 백조가 강력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 이상의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우스꽝스러운 괴짜, 부적응자, 소수자로 낙인 찍혀 조롱당하고 고통받는 세상의 모든 외톨이들의 가슴에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보다 더 강력한 이야기로 새겨져 있다. <백조의 호수>와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듯한 「백조왕자」는 여동생의 희생으로 저주가 풀리지만 그 순간조차 한쪽 팔 대신 백조의 날개를 가진 채 인간으로 돌아온 막내 왕자의 이미지가 강렬한 동화이다.

매튜 본은 <백조의 호수> 속 왕자의 캐릭터가 그가 일생 동안 왕실의 가십을 통해 접했던 사고뭉치 왕족들, 즉 마가렛 공주나 사라 퍼거슨 왕자비, 해리 왕자 등을 모델로 한 인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강력한 어머니에게서 인정받고 싶고 사랑을 갈구하지만 늘 차갑게 외면당하는, 존재감 희미한 왕자의 모습에서 우리가 연상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젊은 날의 찰스 왕자에 가깝다. 

현실의 자신이 되지 못한 이상적인 존재를 사랑하고, 그 대상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은 여러모로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흔히 그런 식으로 사랑에 빠진다. 도무지 현실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찾지 못하는, 걷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울 수가 없는 이들에게 백조는 마치 무지개 저 너머 어딘가처럼 닿을 수 없는 이상을 상징했던 것이다.

고귀한 신분과 권력, 높은 교양 수준과 외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던 루트비히 2세도, 하늘이 내린 재능을 타고난 안데르센과 차이콥스키도 자신의 심연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어둠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그 고독이 오로지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나 <백조의 호수>, 그리고 안데르센의 동화는 냉엄한 현실의 족쇄를 찬 채로 자신의 영혼이 꿈꾸는 이상을 잊을 수 없었던 이들이 맛보아야 했던 쓰디쓴 삶의 고통 덕분에 인류가 누리게 된 유산임은 분명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3호 2019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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