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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 캐릭터에게 보내는 편지, <팬레터> 너의 문장이 다시 시작되길 [No.192]

글 |배경희 2019-09-29 4,187

뮤지컬 캐릭터에게 보내는 편지

 

예로부터 일 년 사계절 중 유일하게 ‘독서’와 함께 설명되는 가을이 왔습니다. 맹렬하게 내리쬐던 햇볕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는 시기, 가을은 독서만큼이나 글쓰기가 어울리는 계절 아닐까요. 그래서 이제 곧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당신께 편지를 띄웁니다. 나는 당신과 이 책을, 이 영화를, 이 드라마를, 함께 나누고 싶노라고.


 

너의 문장이 다시 시작되길

 

얼마 전에 영화 <로켓맨>을 보고 나서 오랜만에 네 안부가 궁금해졌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만(그는 이런 과장된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야!), 단 한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마음속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거든.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더라도 메워지지 않은 커다란 크기의 상처 말이야.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건 얼마나 외로운 일일까. 영화를 보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세훈이 네가 떠올랐어. 네가 어쩔 수 없이 유일한 소꿉친구나 다름없었던 네 반쪽을 죽이기로 했을 때, 그가 너에게 그랬잖아. 너는 나 없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 네가 말하고 다시 네 자신에게 돌아갔던 그 아픈 말을, 너도 아마 기억하고 있겠지?

세훈아, 나는 네가 만들어낸 또 다른 네 자신인 히카루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권위적인 아버지 아래서 외로움을 느꼈을 어린 시절의 네 모습이 보였어. 나는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되짚어 보지 않고 자랄 수 있었지만, 사랑과 인정에 무심한 부모에게 상처받아 마음이 구겨진 채 어른이 된 사람들을 여럿 알고 있어. 네가 소중한 원고를 망가뜨린 애들 때문에 억울하게 학교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갔던 날, 너를 더욱더 외롭게 만들었던 네 아버지를 너는 앞으로 결코 쉽게 용서하기 힘들겠지. 하지만 나는 네가 더 늦기 전에 아버지와 화해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그래야 마음 한구석에서 스스로를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존재라 여기는 네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을 테니까. 

슬픔은 사람마다 모양이 달라서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시간이 허락할 때 리베카 솔닛이라는 작가가 쓴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을 읽어보길 바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인생을 말하는 책인데, 작가는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어떤 어머니에게, 내 어머니에게, 딸은 나눗셈이지만, 아들은 곱셈이다. 어머니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건 나의 어떤 행동이 아니라, 그냥 나라는 존재, 나의 성별과 외모, 그리고 내가 어머니를 완성시켜줄 기적이 되지 못하고 그녀를 분열시키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맞아, 이 책은 엄마와 애증 관계였던 딸이 여성 대 여성으로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이야기야. 그렇기 때문에 오직 이 세상에 ‘딸’로 나고 자란 이들만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 하지만 사소한 소재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스토리텔링 방식은 작가인 네게 영감을 줄 것 같아. 그리고 네가 앞으로 써 내려갈 소설이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이 작가가 하는 말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거든. 

이제 그만 글을 마치기 전에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네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은 때론 자신이 믿고 싶은 걸 진실이라고 믿기도 해. 왜냐면, 자기 자신이 살기 위해서. 네가 그토록 아꼈던 김해진 작가 선생님은 히카루, 아니, 너의 편지들로 인해서 자신이 바라는 형태의 사랑을 탐닉했을 테고, 또 사랑이 베풀어줄 수 있는 모든 희열을 맛보았을 거야. 그러니 네가 이제 그만 자책하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해진 선생님이 네게 편지와 함께 남기고 간 꽃다발이 지금보다 더 말라서 다 바스러지기 전에, ‘내가 눈 떴을 때, 때는 바야흐로 봄이었다’ 이다음에 이어질 문장이 새롭게 다시 쓰이길 빌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2호 2019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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