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캐릭터에게 보내는 편지
예로부터 일 년 사계절 중 유일하게 ‘독서’와 함께 설명되는 가을이 왔습니다. 맹렬하게 내리쬐던 햇볕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는 시기, 가을은 독서만큼이나 글쓰기가 어울리는 계절 아닐까요. 그래서 이제 곧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당신께 편지를 띄웁니다. 나는 당신과 이 책을, 이 영화를, 이 드라마를, 함께 나누고 싶노라고.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시라노. 뜻밖의 편지를 받아들고 약간 의아해하실 것 같아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서 공연도 보고, 글도 쓰며 살아가고 있는 하루입니다. 이렇게 불쑥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오랜만에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 무척 반가워서이고, 또 문득 당신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 떠올라서입니다.
저는 당신을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에 휩싸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스스로 이렇게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제 글솜씨는 미천합니다만-으로서 당신의 탁월한 글재주에 탄복하면서 동시에 끝없이 솟아나는 부러움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글재주뿐인가요? 시인, 검객, 음악가… 분야를 막론하고 재능을 뽐내는 당신을 두고 누군가는 ‘달 아래 사는 사람 중 가장 매력적인 친구’라고 하던데, 당신을 알면 알수록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저를 부럽게 했던 건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늘 자신만만하던 당신은 사랑 앞에 한발 물러섰고, 세상 누구에게도 거침없는 말을 쏟아내던 당신은 침묵했습니다. 그것도 평생을.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길 바랐기 때문이죠. 사랑에 빠지는 일조차 기적처럼 느껴지는 저에게 당신이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은 기적 그 이상이었습니다.
당신을 보다 보니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책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요. 제목만 보면 매우 흔한 실전 연애 지침서 같지만, 실제로는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인간 실존의 문제-분리-에 대한 해답으로써 사랑을 분석한 책입니다. 사랑이 무엇이냐는 난제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 될 수 없겠지만, 사랑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던 책이라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 저는 사랑은 퐁당 빠져버리는,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감정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운 좋게 겪게 되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이 아니라 배움이 필요한 능동적인 ‘활동’으로 분석하고,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우는 것’을 강조합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사랑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 왜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 조목조목 분석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제가 사랑을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하고, 좁은 의미로만 이해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책 대부분은 이론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어 다소 딱딱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말이 있듯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막연하기만 한 사랑을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고 사랑에 대한 이해도 확장할 수 있게 되죠. 또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숙한 개인이 되어야 하고, 얼마나 큰 노력과 강한 의지가 필요한지 알게 되고요.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아마 당신이라면 저보다 더 많은 걸 느끼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당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보다 더 멋진 책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당신과 책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길 바라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2호 2019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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