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COVER STORY] <벤허> 한지상, 삶과 복수를 이야기하다 [No.191]

글 |배경희·박보라 사진 |표기식 hair/make-up | 이창은 stylist | 윤미경 2019-09-05 6,477

<벤허> 한지상
삶과 복수를 이야기하다

 

고난과 역경, 사랑과 헌신으로 설명되는 벤허의 삶을 그린 <벤허>가 공연을 펼친다. 이번 재연은 스토리 라인 보강을 위해 대본 수정과 뮤지컬 넘버가 추가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번 시즌 벤허로 이름을 올린 한지상은 삶과 복수, 용서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그가 펼쳐낼 인간 벤허의 모습은 어떨까.


 

설명할 수 없는 힘을 느끼다

올 상반기 <젠틀맨스 가이드>를 시작으로 <킹아더>에 출연하며 바쁘게 보냈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공연을 하면서 본능적으로 배우 인생의 한 부분을 마무리 짓는 작품이라 느꼈다. 그동안 배우로서 다양성을 좇았는데, 1인 9역의 다이스퀴스라는 캐릭터를 만나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배우 인생을 4분기로 나누자면 <젠틀맨스 가이드>로 1/4분기를 잘 마무리 지었고, <킹아더>로 2/4분기를 시작한 거라 보면 된다.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갈증을 해소했다면, <킹아더>에서는 평생의 숙제를 해결했다. 이타심과 진정성이 무엇인지 같은 팀 동료들에게서 느꼈으니까. 사실 <킹아더>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영국의 신화를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풀어내는 동시에 재미와 감동도 놓칠 수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의 맛과 우리의 맛이 섞여 스타일리시한 작품이 됐다. 개인적으로 정말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인데, 팀원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에 매료됐다. 다들 정말 배울 것이 많았다.  

 

앞서 이야기가 나왔지만 <젠틀맨스 가이드>에서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해야만 했다. 작품에 참여하면서 자신에 대해 새롭게 느낀 점이 있었나. 최근 인터뷰에서는 새삼 연기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고 했던데.   <젠틀맨스 가이드>는 내게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작품이었다. 시기상 타이밍이 잘 맞아서 작품을 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 작품을 잘 해내야만 한다는 동기가 확실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확실한 힘이 존재했다.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공연을 무사히 끝낸 후에 만족스러웠나. 뮤지컬 무대에 서고 연기를 하면서 어떨 때 개인적인 만족감을 가장 크게 느끼나.   나는 쉽게 스스로 만족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마 대부분의 배우들이 관객들이 자신의 연기를 어떻게 볼지 가장 먼저 알 거다. 이렇게 설명하면 되려나. 농구 선수들은 슛을 던지면 골대에 닿기 전에 이 공이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안다고 하더라. 바로 그 느낌이다. 스스로 ‘이거 나쁘지 않았다’라는 느낌이 오는데, 대부분 그 감이 맞는다. 배우는 본능에 예민하고 다른 직업군보다 감성적이면서 자유분방하다. 규정되어 있지 않은 자유 속에 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런 느낌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을 공감하다

<벤허>는 이번 재공연에 뉴 캐스트로 합류했는데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벤허>는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지 않나, 개인적으로 2016년에 개봉한 버전을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1959년에 개봉한 버전에서 거대한 스케일과 클래식이 느껴진다면, 최근 버전은 인물의 내면에 집중했다. 인간 사이의 이야기들이 보여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시도라 생각했다. 창작뮤지컬 <벤허>는 정말 놀라운 결과물인 데다가 자랑스럽다. 감히 말하자면 이번 재연 공연에 참여하는 것에 배우로서 큰 책임을 느낀다. 아직 연습실에서 작품 디테일을 풀어 나가고 있는 과정이지만, 연습하면서도 스스로 ‘<벤허>에서 무엇을 해내야만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벤허와 잘 어울릴 수 있을 거라 자신한 이유가 있나.    왕용범 연출님이 작년에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건 꼭 써주셔야 한다. 난 누군가에게 들은 긍정적인 이야기는 끝까지 기억한다. (웃음) 작년에 연출님이 내가 만약 벤허를 연기한다면, 부각될 수 있는 나의 장점을 말해 주셨다. 이건 무대에서 보여줄 예정이라 인터뷰에서는 말을 아끼고 싶다. 그런데 연출님 이야기를 듣자마자 혹했다. 그 전까지는 벤허를 떠올렸을 때 보편적인 이미지가 있었다. 초연 공연을 보면서는 ‘벤허를 연기하는 배우는 따로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연출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뺏겼다. 그리고 연습을 시작하고 나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더라. 물론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연을 잘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았겠지만, 연출님의 말에 힘을 얻은 건 사실이다.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였으니까. 보석 같은 비밀 하나를 얻은 쾌감을 느꼈다. 
 

<벤허>에서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벤허>의 초연을 정말 잘 봤다. 이번 <벤허>를 통해서는 ‘인간은 예측 가능하기도, 또 불가능하기도 하다’는 의외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다. <벤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프랑켄슈타인>도 같은 제작사, 연출가, 작곡가였지만 괴물은 결국 괴물로서 남게 되더라. 약 2천 년 전 인간의 삶이 지닌 특수성 속에서 벤허가 겪은 상황은 너무나 특별하다. 민족 간의 갈등, 친구와의 배신 등이 얽히고설킨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국 큰 맥락에서는 보편적인 갈등이 벌어진다. 이런 부분을 통해 벤허의 삶에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벤허>는 인간에 대한 탐구이자 질문이다. 어쩌면 의외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 인간에 대한 학문일 수도 있다. 초연 당시에도 인간에 대한 설명이 감동으로 버무려졌지만, 재연에서는 인간이 특수한 상황에 맞닿으면 미칠 수도 있고, 욱하고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고, 또 해결할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벤허는 격정적인 캐릭터인 동시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혹시 벤허를 통해 공감대를 느낀 부분이 있나.   난 벤허보다 훨씬 감상적이다. 내가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난 아마 그처럼 큰 그림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거다. 왜냐면 난 벤허처럼 대인배도 아닌 데다가 시야도 좁을 테니까. 연습하면서도 벤허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다. 배우를 하면서 많은 사건을 겪는 캐릭터를 직접 연기하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 가운데 <벤허>처럼 깨달음을 주었던 캐릭터가 있다면?  <두 도시 이야기>의 시드니 칼튼은 내가 엄두도 못 낼 삶을 사는 캐릭터다. 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망설임 없이 단두대에 올라갈 위인은 절대 못 되니까. 하지만 시드니 칼튼을 통해 잘못 살아왔던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자아 성찰에 대해서 배웠다. <보니앤클라이드>에서는 문제아 클라이드처럼 살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웃음) 이 밖에도 여러 캐릭터를 통해 성장했다. 
 

<벤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있나.  이번 재연에서 음악이 새롭게 추가되는데, 그중 특히 마음에 드는 곡은 벤허의 솔로곡 ‘살아야 해’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조심스럽지만, 억울한 누명을 쓴 벤허가 노예로 전락하고 나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서신을 받는 장면에 이어 나오는 곡이다. 이후 희망을 잃은 벤허가 검투경기장에서 결전을 벌이면서, 꼭 살아남아 억울함을 갚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살아야 해’는 벤허의 복수를 향한 욕망과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곡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내 생각엔 이 노래가 재연 <벤허>의 대표곡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벤허>가 품은 이야기 중 무엇이 가장 흥미로웠나?   인간이 배신을 해결하는 방법. 배신에 대한 복수심은 참 억누르기 힘든 감정이다. 그런데 배신을 겪고 복수를 실행하고 난 후에 얻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됐다. 
 

그럼 인간관계 속에서 복수나 배신에 대한 답을 찾았나.   답은 찾았다. 무대에서 어떻게 잘 표현하느냐가 문제지만. (웃음) 벤허는 배신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는 인물이다. 사람이 잃을 것이 없다면 무서워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재산이나 명성, 가족 등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품은 결심을 바라보려 한다. 벤허를 움직이는 힘은 그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런 벤허의 모습과 생각은 공연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다.
 

<벤허>를 통해 얻고 싶은 게 있다면?   진정으로 사람을 공감시키는 것. 무대 위에서 야망만 보여준다면 관객은 작품과 캐릭터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양질의 표현으로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얻는 게 내가 해야만 하는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나서 <벤허>를 만났기 때문에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렇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벤허>를 못 했을 거다. 이젠 분출하고 싶은 열정과 뜨거움 말고도 내려놓음이 그 틈새에 버무려져 있더라. 이걸 알아가면서 내 인생이 조금씩 완성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내려놓음도 알아야지 무대에서의 표현도 농익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런 요소가 조금 부족했던 철부지 당시에만 할 수 있는 작품도 있는데, <벤허>만큼은 지금이 적기라 생각한다.  
 

혹시 배우로서 내려놓기가 가장 어려웠던 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   모든 배우가 그렇겠지만, 야망을 포기하기가 참 쉽지 않다. 젊은이의 야망은 어마어마하지 않나. 예전에는 야망이 밖으로 티가 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젠 작품에 잘 녹여서 표현하는 차이가 있다. 물론 캐릭터로 잘 스며들기 위해 야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야망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자가 진단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야망으로 잘 빚어내야만 한다. 
 

현재 한지상이 품고 있는 야망은 과거와 어떻게 다를까.  과거에는 무조건적인 성장만 바랐다. 이제는 여기에 여유가 더해졌다. 두 걸음 전진하기 위해 한 걸음 후퇴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야망을 위한 야망이 아니라 속이 꽉 차 있는 야망을 품게 됐다. 이것은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게 한다. 
 

아까 감성적인 성격이라고 했는데, 배우로서는 이런 감정적인 부분을 감당하기 힘들지 않나. 혹시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이 있는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는데, 난 취미가 따로 없다. 취미는 자신을 힐링시키고, 묵혀왔던 응어리를 해소하려는 본능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내겐 그런 특별한 것이 없다고 깨달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나는 힐링 방법으로 일을 선택했던 것 같다. 쌓인 감정을 다음 날 공연 때 풀어버리는 이상야릇한 경우가 많다. 하하.
 

타고난 배우 체질일 수도 있겠다.  다행이다. <완득이>의 완득이가 복싱을 통해서 화를 누그러뜨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한다. 그 상황에서 복싱은 마음 수양으로 볼 수도 있다. 내게 무대와 연기는 자신을 수양하는 수단이다. 

 


 

꽃이 피어날 수 있는 자리

뮤지컬은 신작의 경우 결과물을 쉽게 예측할 수가 없는 장르다. 배우로서 경험이 쌓이면서 과거와 현재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졌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신인 때는 ‘작품을 선택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작품은 전부 다 했다. 오디션에 붙어야 했기 때문에 모든 기회가 절실했다. 어느 작품이든 배울 것이 있다고 믿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떤 작품이든 기회만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참여하고 싶었다. 작품을 개척하는 것도 곧 배우의 역량이라고 믿으니까. 자신의 폭을 넓히고 성장하는 데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지금까지 적지 않게 달려왔으니 내가 더 개척해 나가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내가 쌓아온 것을 잘 지키면서 시도해야 할 더 새롭고 다양한 작품과 배역은 무엇일까. 이 작품과 나의 시너지는 뭘까. 최근에는 이런 부분을 고민하게 된다. 

 

지난 인터뷰에서 <그리스>, <넥스트 투 노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두 도시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을 인생 작품으로 꼽았다. 이후에 추가된 작품이 있을까.   <젠틀맨스 가이드>도 당연히 들어가야 하고, <킹아더>가 빠지면 삐질 테고. 아, <벤허>도 당연히 넣어주어야 한다. 
 

이미 <프랑켄슈타인>으로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음악감독과 합을 맞췄다. 이번 <벤허>에서도 시너지가 발휘될 것 같은데.   인터뷰에 오기 전에 왕용범 연출님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어마어마한 성과다. 영화계에 ‘봉테일’이 있다면 뮤지컬계에는 ‘왕테일’이 있다. 연출이 디테일하면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질 것 같지만, 뻗어 나갈 수 있는 가지가 많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꽃 피울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 이런 무성한 디테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이 참 좋다. 
 

<벤허>를 기다리는 관객에게 한마디하자면.   자아도취성 발언은 아니지만, 한지상이 재연 <벤허>에 참여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음, 나를 보여줘야 한다기보다는 <벤허>를 위해 내가 해줘야 한다. 극장에 오시면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