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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시티오브엔젤> 박혜나, 순간을 사는 법 [No.191]

글 |안세영 사진 |배임석 2019-09-04 4,981

<시티오브엔젤> 박혜나

순간을 사는 법 

 

194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극 중 현실과 영화 속 세계가 교차되며 펼쳐지는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이 작품에서 박혜나는 현실 속 영화 제작자의 비서 ‘도나’로, 영화 속 탐정의 비서 ‘울리’로 1인2역 연기를 선보인다. 극중극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인터뷰는 자연스레 배우 박혜나가 넘나드는 무대와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재즈와 누아르의 세계

<시티오브엔젤>의 어떤 점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나요?  이전에 샘컴퍼니가 제작한 <오케피>라는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 작품은 다른 뮤지컬과 지향점이 좀 달랐어요. 상업적인 쇼가 아니라 드라마가 살아 있는 작품이랄까. <시티오브엔젤>도 샘컴퍼니에서 제작하는 작품이고, <오케피>처럼 다양한 인물의 드라마가 한 데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갔어요. 무엇보다 끌렸던 건 재즈 음악이에요. 재즈는 정말 접해 보고 싶었던 장르거든요. 뮤지컬 넘버를 듣기만 해도 행복해요. 
 

18인조 빅밴드가 무대 위에서 재즈 음악을 연주한다죠?   네, 어서 빨리 빅밴드와 함께 노래할 수 있길 고대하고 있어요. 악기 하나하나가 주인공이 되어 자유롭게 공간을 가로지르는 듯한 재즈 특유의 느낌을 좋아해요. 물론 공연은 정해진 약속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마냥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그래도 재즈만의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무대에서 잘 표현해 보고 싶어요. 저에게는 새로운 장르, 새로운 시도라서 기대돼요. 
 

현실 속 인물과 영화 속 인물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특이한 설정의 곡이 많더라고요.  쇼케이스 때 부른 ‘What You Don't Know About Women’은 현실 속 인물인 개비와 영화 속 인물인 울리가 함께 부르는 듀엣이에요. 제가 연기하는 두 역할 도나와 울리가 ‘You Can Always Count On Me’라는 한 곡을 나눠 부르기도 해요. 이때는 후다닥 퀵체인지를 해야죠. 배우마다 부르는 노래의 수가 많지는 않아요. 캐릭터별로 뮤지컬 넘버가 고르게 분배되어 있어서 각자 주어진 시간 내에 무대 위에 모든 걸 쏟아내는 게 중요해요. 배우들도 서로의 노래, 연기를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될 것 같아요. 
 

198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 작품이 지금의 한국 관객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대본을 각색했다고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도나와 울리 캐릭터가 가장 많이 바뀌었다고요?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상도 많이 바뀌었잖아요.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공연보다는 자립적이고 목표가 뚜렷한 여성으로 그리려고 최대한 노력 중이에요. 그런데 짧은 등장 시간 안에 캐릭터를 충분히 표현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계속 고민하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어요. 현실 속 여성 도나와 달리 영화 속 여성 울리에게는 남성 각본가 스타인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어서, 이 점도 고려해야 해요. 
 

도나와 울리를 어떻게 구분해 연기할 생각이에요?  의식적으로 다르게 연기하지는 않으려고요. ‘두 캐릭터가 어떻게 하면 달라 보일까’가 아니라 ‘이 캐릭터는 뭘 말하고 싶어 하는 걸까’에서 출발하면 자연히 다른 인물이 되지 않을까요? 실제 무대에서는 현실 세계를 컬러로, 영화 속 세계를 흑백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역할을 구분하기가 크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연습실에서도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어요. 안경이나 가방 같은 소품을 활용해서 도나와 울리의 차이를 표현해 보는 거죠. 제 더블 캐스트인 (김)경선 언니는 집에서 살림살이를 한 보따리 가져 오셨어요. (웃음) 아무래도 뭔가가 진짜 있는 것과 있다 치고 연기하는 건 다르니까요. 
 

영화 제작자 버디의 비서인 도나는 각본가 스타인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도나는 작가를 지향했으나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인물이에요. 그래서 신인 각본가 스타인이 고군분투하는 걸 보면서 도움을 주고 싶었을 것 같아요. (최)재림이와 (강)홍석이가 연기하는 스타인이 워낙 순수한 열혈 청년이라 선배로서 끌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더라고요. 그런 마음을 시선으로 열심히 표현해 보려고요. 그렇게 스타인을 조금씩 도와주면서 사랑도 하고 배신도 해요.
 

1940년대 누아르 영화와 그 제작 현장이 배경이잖아요. 당시 누아르 영화의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연기하나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몰입해서 연기하다 보면 비슷한 애티튜드가 나오더라고요. 이 시대 여자들은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 피웠던 거 아시죠? 연습 중에 왠지 도나는 담배를 피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설정을 넣어볼까 해요. 시대적인 분위기도 살리고, 고뇌하는 작가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연출님 허락도 얻었는데 실제 무대에서 시도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비흡연자라 연습이 좀 필요하거든요. 듣자하니 요즘은 비타민 담배란 게 있다던데, 비타민 섭취를 해볼까 봐요. (웃음) 



 

현실과 무대 속의 나

<시티오브엔젤>은 현실과 영화 속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그런데 배우야말로 늘 현실과 작품 속 세계를 넘나들며 사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다 보면 혼란을 느낄 법한데, 작품 속 역할로 인해 평소 생활에 영향을 받곤 하나요?  아니요, 저는 무대 위 캐릭터와 저를 분명히 구분하는 편이에요. 그래야만 연기를 할 수 있어요. 
 

캐릭터에 접근할 때 본인과의 접점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는 배우들도 있던데요.  그런 교육도 받았지만 저와는 부딪히는 면이 있더라고요. 저는 경험에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배우가 캐릭터와 비슷한 경험을 해야만 그 캐릭터를 더 잘 연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캐릭터와 심정적으로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트라우마가 작용해 연기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반대로 ‘캐릭터는 나와 분리된 인물’이라는 생각은 저로 하여금 안전하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줘요. 자유롭게 탐험을 하는 거죠. 캐릭터를 제 안에 가두는 게 아니라 제가 캐릭터 안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할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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