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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ON TOUR] <킹 앤 아이>, 현대와 호흡하는 고전 뮤지컬 [No.191]

글 |송주희 서울경제 기자 2019-09-03 3,281

<킹 앤 아이>
현대와 호흡하는 고전 뮤지컬  



여전히 건재한 뮤지컬 고전

1951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선보인 <킹 앤 아이>는 19세기 말 시암(태국 방콕)을 배경으로 한다. 영국의 싱글맘 안나가 시암 왕실의 가정교사로 왕궁에 들어가 왕과 사사건건 부딪치다 이내 서로를 이해하고 애틋한 감정을 나누는 내용을 그린다. 초연 당시 이국적인 배경과 ‘Shall We Dance’, ‘Getting To Know You’, ‘I Whistle A Happy Tune’ 등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콤비의 풍성한 음악으로 인기를 끌어 율 브린너(왕)와 데보라 커(안나)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될 만큼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 수많은 리바이벌 버전으로 지금까지 관객과 만나고 있다. 

유명한 원작은 양날의 검이다. 높은 인지도는 든든한 장점이 되지만, 때론 원작의 흥행이 부담이자 극복해야 할 ‘큰 산’이 되곤 한다. 2015년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킹 앤 아이> 리바이벌 프로덕션도 고전 뮤지컬이라는 왕관을 짊어진 채 출발했다. 하지만 링컨센터 시어터 프로덕션이 선보인 리바이벌 버전은 이 같은 왕관의 무게를 당당히 이겨냈다. 제69회 토니 어워즈 리바이벌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의상디자인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남우주연상, 안무상, 최우수감독상, 조명상, 디자인상 등 5개 부문에도 후보로 올랐다. 지난해에는 런던 웨스트엔드의 팔라디움 시어터에서 개막해 올리비에 어워즈 뮤지컬 부문에서 리바이벌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7월, 미국에 이어 영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프로덕션 <킹 앤 아이>가 일본에 상륙했다. 


현대와의 끊임없는 호흡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공연을 거쳐 이번 일본 공연에 참여한 바트 셔 연출과 남녀 주연인 와타나베 켄, 켈리 오하라는 공연 성공의 비결을 ‘현대와의 끊임없는 호흡’에서 찾았다. 18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옛이야기지만 현대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끄집어내려 공을 들였다는 것. 기자 간담회에서 바트 셔 연출은 “극 중 왕은 서구 열강으로부터 자신의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으면서 안나를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배워간다. 뮤지컬을 보는 관객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다양한 책임을 안고 살고 있고, 주변의 사람들과 연결돼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나가고 있지 않느냐. 작품과 관객이 이렇듯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데 연출의 주안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연출의 이 같은 노력에 배우들의 고민도 더해졌다. 리바이벌 버전으로 토니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켈리 오하라는 ‘그 시대의 여성상’을 연구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1980년대, 여성의 권리가 지금 같지 않았던 때에 ‘페미니스트 싱글맘’이라는 안나의 입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그 당시의 안나의 위치를 현대 여성과 비교하면서 연기하려 애썼다. 개인적으로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상대역인 와타나베 켄은 맡은 배역의 또 다른 면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인간 보편의 감정을 끌어내는 데 노력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왕은 강인하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에게서 연약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그에게는 제 자신도 언젠가는 죽고 다음 세대에게 나라를 넘겨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그리고 안나를 사랑하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 결국엔 보통의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왕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킹 앤 아이>는 뮤지컬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지만, 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된 시선을 보여주는 오리엔탈리즘적 요소가 강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바트 셔 연출은 “뮤지컬 <킹 앤 아이>는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같은 작품”이라며 “서양이 우월한 시각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서로 간의 이해를 강조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문화에 익숙한 왕과 안나가 사사건건 부닥치며 충돌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성’에 주목해 달라는 게 그의 당부다. 와타나베 켄은 “바트 연출가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 주었다. 어려움 앞에서도 신뢰를 쌓고 이해하는 왕과 안나의 이야기는 다른 문화와 생각의 사람들이 상대를 존경해야 하는 지금 세상에도 필요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와타나베 켄의 ‘남다른’ 고국 무대

이번 공연은 첫 뮤지컬 도전에서 큰 성과를 낸 와나타베 켄이 고국 팬들에게 선사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극단 출신으로서 라이브 공연의 중압감을 익히 알고 있는 그에게 영어로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브로드웨이 대작 출연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 제안을 받곤 ‘이걸 내가 어떻게 하느냐’며 ‘무리’라는 말만 했다고. 하지만 고민의 순간, 바트 셔 연출이 “우리에게는 훌륭한 가수나 훌륭한 댄서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섬세한 감정을 표현해 줄 왕이 필요하다”며 와나타베 켄에 대한 신뢰를 보냈단다. 와나타베 켄은 “훌륭한 연출가와 상대 배우를 믿었고, 배우로서 링컨센터라는 무대도 솔직히 욕심이 났다. 결과적으로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 됐다”고 뿌듯해했다. 아날로그 무대의 힘을 재확인한 것도 큰 수확이다. 그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객석으로, 객석의 환호가 배우에게 바로 바로 전달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라이브 무대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이 무대와 연기에 녹아들어서였을까. 개막 후 첫 주말이었던 7월 14일 일요일 공연에는 약 2,000석의 자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이 커튼콜 후 객석 조명이 켜진 후에도 기립해 무대를 향해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이에 주연 배우들은 세 차례 무대로 다시 나와 인사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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