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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블루레인> 이주광, 입체적이고 디테일한 고민들 [No.191]

글 |김주연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표기식 2019-08-27 4,536

<블루레인> 이주광 
입체적이고 디테일한 고민들

 

카스트라토와 트렌스젠더 가수, 외국인 노동자와 뱀파이어, 독립운동가와 괴팍하고 위대한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데뷔 이후 지난 16년 동안 이주광은 어느 하나의 범주로 특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인물들을 맡아 연기해 왔다. 이번에 그가 새롭게 선보이는 인물은 친부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는 아들이다. 지금껏 해보지 못한 또 다른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는 그를 미리 만나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 

 

전작인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이하 <루드윅>)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바로 신작 <블루레인> 준비로 맹연습 중이라 들었습니다. <루드윅>에서 함께했던 추정화 작·연출과 이번에도 작품을 같이하게 되었는데요, 연달아 작품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네, 말씀하신 대로 이번 작품 <블루레인>의 스태프분들 거의가 전작인 <루드윅>에서 함께 작업했던 분들이에요. <루드윅>을 한창 공연하는 도중에 <블루레인> 팀에서 테오 역할로 누가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안무 선생님이 저를 추천하셨대요. 테오의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가적인 기질이 저랑 잘 맞을 것 같다면서요. 저 역시 당시 노년의 음악가를 연기하던 중이라 이번에는 젊은 역할을 해보고 싶었던 터라 감사히 제안을 받아들였죠. 또 극중 테오가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청년으로 나오는데, 저 역시 예전에 밴드를 꿈꾸던 적이 있어서 그런 점도 잘 맞을 것 같았어요. 
 

<블루레인>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원작으로 새롭게 재창작한 작품입니다. 원작은 친부 살해, 신의 존재, 선과 악의 경계, 법과 정의 등 상당히 묵직하고 어두운 주제들로 가득한 작품인데, 처음 대본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첫인상은 “와, 세다! 뮤지컬로 담아내기에는 정말 굉장한 작품이구나”였어요. 일단 첫 장면부터 어마어마한 감정의 크기로 시작되는 데다가,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서로 의심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엄청난 두께의 감정을 쌓아가거든요. 거기에 복잡 미묘한 심리 묘사들도 빼곡하게 들어가 있고요. 과연 이걸 두 시간 정도의 무대에서 모두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죠.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배우로서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추정화 연출님이 배우 출신이어서 그런지, 배우가 인물로 표현해 내는 에너지의 폭을 굉장히 크고 힘 있게 쓰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그분 작품을 연기하다 보면 배우로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런 감정적인 진폭이 크게 느껴져서 처음부터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길기로 유명한 도스토옙스키 소설 중에서도 가장 길고, 또 가장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품입니다. 덕분에 연극으로 만들기에도 쉽지 않은 텍스트인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카라마조프>나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등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이 여러 편 무대에 올랐어요. 이 작품의 어떤 지점이 뮤지컬로 풀어내기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거라 생각하나요?   최근 들어 갈수록 더 크고 드라마틱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소재나 이야기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극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대극장 무대 위에서 인물의 거대한 감정을 쏟아내고 표출해 내는 작품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감정의 두께와 무게가 남다른 작품들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관객들도 눈앞에서 배우가 그런 에너지를 쏟아내는 작품들을 선호하는 것 같고요. 이 작품은 등장인물 각각이 짊어진 고뇌의 크기와 무게가 크고 강렬한 작품이다 보니, 그런 면에서 뮤지컬로서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드미트리를 형상화한 테오 역을 맡았습니다. 사실 원작에서도 세 형제 중 가장 인간적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데요, 테오라는 역할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도 계속 만들어가는 중인데요, 일단은 극 중 가장 자기 감정에 솔직한 인물이라 보고 있고, 연출님도 감정적인 인물로 해석해 주길 바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크게는 감정적인 캐릭터로 가닥을 잡기는 했는데,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어려운 지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감정적이라는 건 대체 뭘까, 바로바로 느끼는 걸 표현하면 감정적인 걸까, 아니면 감정의 크기를 남들보다 더 크게 보여주는 게 감정적인 걸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테오만의 디테일한 감정선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테오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데 가장 어려운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테오는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체포되고서는 “난 범인이 아니에요”란 대사를 반복하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범위가 좀 한정되어 있어요. 요리사로 따지자면 재료가 많지 않은 상태인데, 그 적은 재료를 가지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래서 현재로서는 이런 비슷한 대사 속에서 어떻게 테오만의 디테일한 감정을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지, 어떻게 그 고민의 폭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지 최대한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처음부터 테오가 범인이야 혹은 범인이 아니야 하고 단정 지어 버리면 극의 긴장감이 떨어질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범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어야 극적 긴장감이 팽팽해질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이 지점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친부 살해 사건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는 무엇이며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극 중 선과 악은 때론 선명하게 나뉘기도 하고, 때론 서로 엉켜 있어서 어디부터가 선이고 악인지 모호하기도 한데요. 스스로의 기준에서 볼 때, 테오는 선과 악 가운데 어디에 속한다고 보시나요?  <블루레인>이라는 작품 안에서 테오는 선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유는 테오가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극 중 테오는 헤이든이라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내어 주려고 해요. 작품 안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진심 어린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이고, 유일하게 ‘나’보다 ‘너’를 더 생각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선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작품 외적으로 바라보면 조금 걸리는 지점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극 중 테오가 헤이든에게 돈을 갖다 주기 위해 도박을 한다는 설정이 있는데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인 잣대로 볼 때 도박을 하는 행위 자체가 선이 아니기에 극의 바깥, 즉 현실의 시선으로 볼 때는 테오를 선이라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블루레인>에는 테오 말고도 무정한 아버지 존, 냉정한 차남 루크, 미스터리한 사생아 사일러스, 테오의 사랑을 받는 헤이든, 그리고 이 위기의 집안을 지켜온 엠마 등 매우 개성이 뚜렷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가득합니다. 만약 작품 안에서 테오가 아니라면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은가요?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라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긴 한데, 지금의 저에게 테오 말고 어떤 역할을 하겠냐고 물으신다면 사일러스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일단 사일러스는 비밀스럽고 이중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어서, 배우로서 연기하기에도 상당히 매력적인 지점이 많은 캐릭터예요. 그리고 작품의 후반부에 20분가량 사일러스가 몰아붙이는 에너지는 정말 어마어마하거든요. 누구라도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그런 장면을 이끌고 간다는 면에서 참 매력적인 캐릭터라 한 번쯤 연기해 보고 싶은 인물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지난 6월 <루드윅>에서 캐릭터와의 싱크로율 100%라는 평가를 받으며 공연을 마쳤습니다. 초연과 재연, 두 번의 공연을 하고 나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초연과 재연, 그리고 그 전에 연습 기간까지 합하면 반 년 이상을 베토벤이 되어 살았네요. 사실 이 작품의 베토벤 역할은 제게 그 자체로 커다란 도전이었어요. 제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50대 후반의 베토벤 역할을 맡은 거잖아요. 그 연령대의 배우가 맡게 되면 자체적으로 느껴지는 연륜과 원숙함 같은 것이 있는데, 저는 그걸 연기로 만들고 설득시켜야 했으니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그래서 머리도 길러 탈색하고, 말투나 목소리의 톤, 앉아 있는 자세 같은 것도 바꾸면서 인물에 가까이 가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언젠가는 저도 실제 이런 나이가 되어서 나이 든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겠지만, 그 전에 이렇게 노력을 통해 나이 든 역할에 도전해 보는 것이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어느 역할이나 마찬가지긴 하지만, 특히 실존 인물을 맡을 때는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껴요. 너무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최대한 왜곡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른 때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작품에서도 베토벤의 위대한 지점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나약한 부분, 부족한 부분도 함께 드러내기 위해 연구를 많이 했고, 그런 지점을 통해 더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실존 인물에 대해 말씀하시니 생각났는데, 지난 4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낭독 뮤지컬 <백범>에서 김구 선생 역을 맡기도 했죠. 의미 있는 시기의 의미 있는 공연인 만큼, 작품에 임하는 마음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네, 낭독 공연이긴 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 올라간 공연이었고, 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었던 만큼 배우로서 느끼는 무게감은 상당히 컸죠. 하지만 덕분에 백범 김구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한 번 찾아보고 또 생각해 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전에는 백범이라고 하면 위인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다면, 이번 작업을 통해 어떤 부분이 정말 위대했는지, 또 어떤 부분은 인간적으로 아쉬운 지점이 있었는지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할까요. 베토벤 때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백범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요. 위인이라고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어떤 부분은 부족하고, 또 어떤 부분은 과하고 그래서 실수도 하고. 그렇기에 그들이 더 인간적으로,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원래 다작을 하기보다는 한 작품에 우직하게 집중하고, 다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스타일을 고수해 왔는데, 최근 들어 거의 쉼 없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앞으로는 가능한 한 많은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심경의 변화가 생긴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제가 무대에 선 지가 오래되다 보니 팬들도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어요. 학생 때 처음 제 작품을 보고 뮤지컬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팬이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배우가 된 경우도 있고, 또 아이 엄마가 되어 극장에 찾아오기도 해요. 근래에 그렇게 오래된 팬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우연히 제 작품을 처음 보고 공연에 매력을 느껴 이쪽 일을 시작했다는 말이나 제 연기를 보고 그 인물에 감동을 받아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좀 충격을 받았어요. 저로서는 일상이기도 한 연기와 공연이 어떤 이들에게는 인생을 바꿀 만큼 큰 전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갑자기 엄청난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그런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씀이 너무 작품을 띄엄띄엄해서 기다리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어요, 한 번 공연 하고 나면, 아 이제 또 한참 기다려야 작품 하겠구나 하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이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무대에 서서 좋은 연기 보여주는 것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최대한 쉬지 않고 작품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지금까지는 꽤 열심히 지켜오고 있는 편입니다. 
 

데뷔 16년 차에 접어든 배우로서 현재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 있다고 보시나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으신지요?  젊었을 때 저는 좀 청개구리 같은 성격이었어요. 뻔한 걸 싫어하고 남들 놀래키고 싶은 욕망이 강해서, 사람들이 “너 이렇게 할 거지?” 하면 그럴 생각이다가도 일부러 다르게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놀라면 그런 데서 자기만족을 느끼곤 했죠. 그래서 작품도 저한테 어울리는 것을 찾아다니기보다는 늘 예상 못한 것에 도전하고, 그걸 증명해 내느라 몇 배의 노력을 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자기만족보다는 배우로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저는 무대 크루부터 시작해서 앙상블, 단역, 조연, 주연 등 무대에서 해볼 수 있는 역할은 다 해보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그렇게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도 꾸준히 배우로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대에 있다는 확신만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요즘 들어 하는 생각은 어떤 작품을 하는가보다는 어떤 작품을 하든 제 공연을 보는 관객에게, 그리고 저와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란 결국 어떤 순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순간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담아갈 수 있도록, 매회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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