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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퇴근길 과열 현상, 배우가 말하다 [No.191]

글 |박보라 2019-08-13 10,851

퇴근길 과열 현상, 배우가 말하다                                      

 

퇴근길의 당사자인 배우들은 최근의 과열 현상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설문을 통해 알아보았다. 최근 6개월 동안 최소 한 작품 이상 참여한 다양한 경력의 배우 65명에게 개별 연락을 취해 설문 참여자를 모집했으며, 익명성 보장을 위해 무기명 방식의 온라인 설문 조사 링크를 휴대폰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또한 배우에 따라 민감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설문 내용을 충분히 안내하였음을 미리 밝혀둔다.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퇴근길



퇴근길을 진행하는 배우는 전체 응답자의 94%라는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대극장 참여 배우와 중소극장 참여 배우가 각각 85%와 98%의 비율로 퇴근길을 진행한다고 답해, 극장 규모와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퇴근길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퇴근길 진행 빈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중소극장 참여 배우는 절반 넘게(53%) ‘기본적으로 진행한다’고 답한 반면, 대극장 참여 배우는 절반 가량(46%)이 ‘기본적으로 진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매 공연 종료 후 퇴근길을 진행한다’는 답변도 중소극장 참여 배우의 경우 응답률이 20%에 달했지만, 대극장 참여 배우의 경우 8%에 그쳤다. 또한 중소극장 참여 배우 가운데 ‘퇴근길을 한 번도 진행한 적이 없다’고 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로써 현재 국내 공연계는 대극장보다 중소극장에서 퇴근길이 더 활발히 진행된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배우들이 퇴근길을 진행하는 이유로는 ‘공연을 보러 와준 관객들에게 팬 서비스를 위해’(83%)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 결과는 경력, 성별, 극장 규모에 상관없이 동일했다. 퇴근길의 긍정적인 면을 묻는 질문에서도 거의 모든 배우가 ‘공연을 보러 온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다’(96%)를 퇴근길 진행 이유로 꼽았다. 퇴근길이 본인과 작품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한 배우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소수였다. 하지만 데뷔 1~2년 차 배우들은 그에 비해 높은 비율로 ‘참여 중인 작품 홍보에 도움이 된다’(40%)와 ‘배우로서 나를 알릴 수 있다’(20%)를 선택했다. 


 

퇴근길 진행에 통상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까? 이 질문에 30분 이내라고 답한 배우가 49%, 1시간 이내라고 답한 배우가 32%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눈에 띄는 점은 30분 이내라고 답한 비율이 대극장 참여 배우의 경우 64%로, 중소극장 참여 배우의 45%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10분 이내에 끝난다고 답한 비율도 대극장 참여 배우는 9%였지만 중소극장 참여 배우는 단 2%였다. 이는 곧 대극장보다 중소극장에서의 퇴근길이 더 길게 진행된다는 의미다. 배우의 경력에 따라서도 흥미로운 차이가 나타났다. 1~2년 차 배우는 1시간 이상 퇴근길을 진행한다는 답변이 40%를 차지한 반면, 15년 차 이상 배우는 1시간 이상 퇴근길을 진행하는 배우가 아예 없었다. 즉, 경력이 많은 배우보다 신인 배우가 대체로 퇴근길을 길게 진행하는 경향을 보였다.  

 



 

 

배우들은 실제로 퇴근길에 대해 얼마나 부담을 느낄까? 퇴근길이 부담스러운지 묻는 질문에 ‘가끔 그렇다’와 ‘자주 그렇다’라고 답한 배우가 53%로, ‘대체로 그렇지 않다’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답한 배우 47%보다 미세하게 높았으나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경력별로 살펴보면 5년 차 미만 경력의 배우들은 퇴근길을 비교적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다. 하지만 5년 이상 경력이 높아질수록 부담스럽다는 응답 비율이 증가하다가 15년차 이상에서는 감소했다. 여성 배우는 남성 배우보다 퇴근길 진행에 부담을 더 느꼈다. 특히 부담을 ‘자주 느낀다’(15%)는 응답 비율이 남성 배우보다 3배 정도 높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부담을 느낄까? 퇴근길 진행에 부담을 느낀 배우들의 답을 살펴보자. 절반의 배우가 ‘늦은 귀가가 다음 날 공연 또는 스케줄에 지장을 주기 때문’(50%)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극장 규모에 따라 부담감을 느끼는 이유에 차이가 나타난다. 중소극장 참여 배우는 ‘공연이나 연기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이 부담스러워서’(34%)라고 응답한 비율이 대극장 참여 배우보다 약 2배 높았다. 중소극장 참여 배우는 ‘퇴근길 진행이 일종의 감정 노동처럼 느껴져서’(14%), ‘퇴근길에서 또는 퇴근길 문제로 팬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곤 해서’(11%)라는 항목에서도 대극장 참여 배우보다 부담감을 드러냈다. 반면 대극장 참여 배우는 ‘옷차림이나 용모에 신경을 써야 해서’ 퇴근길에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 비율이 소극장 참여 배우보다 약 4배 정도 높았다. ‘퇴근길 내용이 SNS 및 온라인에 퍼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라는 응답 비율도 소극장 참여 배우보다 약 2배 정도 높았다. 이 밖에도 ‘공연 후 개인적인 일정이 있는데 진행할 때’, ‘원하지 않는 사진을 찍어서 악의적으로 온라인에 게재할 때’ 난감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퇴근길에 대한 부담감에는 배우 개인의 성향 차가 존재하겠지만, 퇴근길 유형에 따라서도 부담감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최근 퇴근길은 전체 관객 앞에서 인사를 하는 경우, 한 명씩 사인이나 셀카 촬영을 해주는 경우, 영상 촬영이 가능한 경우로 세분화되어 진행된다. 전체 응답자의 40%가 부담감을 느끼는 퇴근길 유형이 딱히 없다고 답했지만, ‘화관 착용 같은 아이돌 팬 서비스가 요구되는 퇴근길’(30%)에는 비교적 많은 배우가 부담감을 느꼈다. 특히 남성 배우의 경우 해당 퇴근길 유형이 부담스럽다고 답한 비율(35%)이 여성 배우보다 약 3배 정도 높았다. 여성 배우는 ‘영상 촬영이 가능한 퇴근길’(13%)을 남성 배우보다 더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할 때

 



 

퇴근길이 활발해지다보니 퇴근길에서 배우가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도 발생한다. 배우들이 느끼는 대표적인 퇴근길 피해는 과반수가 선택한 ‘일부 관객의 무례한 언행으로 불쾌감을 느꼈다’(51%)였다. 하지만 여성 배우는 다른 이유보다 ‘늦은 귀가로 인한 컨디션 난조’(92%)에 압도적인 표를 던졌다. 퇴근길은 많은 팬들이 함께하는 만큼 ‘팬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사례’(28%)로 인해 배우들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해당 응답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여성 배우는 8%만이 이 항목을 선택한 반면, 남성 배우는 35%가 이 항목을 선택했다. ‘성희롱 발언 또는 행동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보기에는 응답자가 많지 않았으나, 1~2년 차 배우의 40%는 이 항목을 택했다. 기타 의견으로 ‘퇴근길에서 이뤄진 피드백으로 인해 작품의 특정 장면 또는 캐릭터가 변질됐다’는 응답도 있었다.

 

그렇다면 배우들은 최근 1~3년 사이에 퇴근길이 과열되고 있다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해당 질문의 답변을 살펴보면 ‘약간 동의한다’는 의견이 45%로 가장 높았고,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가 32%로 뒤를 이었다. 특히 경력이 높은 배우일수록 퇴근길이 과열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1~2년 차 배우의 60%, 3~4년 차 배우의 67%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 반면, 5년 차 이상의 배우는 모두 60% 이상이 동의한다는 뜻을 전했다. 특히 15년 차 이상의 배우는 80%가 퇴근길이 과열되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배우들이 바라는 퇴근길

 



 

최근 퇴근길은 다양한 규칙 안에서 진행된다. 배우마다 퇴근길 규칙이 다른 만큼 이들이 퇴근길 규칙을 정하는 데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조사 결과 ‘팬클럽에 퇴근길 진행을 위임하고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28%로 가장 많았다. 또한 ‘장소만 상의한다’는 답변이 21%로, ‘세부 규칙을 정한다’(8%), ‘전반적인 진행에 참여한다’(8%) 등 퇴근길 규칙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답한 배우는 비교적 적었다. 기타 응답으로 ‘규칙이 없다’, ‘팬클럽이 없어 그냥 현장에서 기다리는 팬들 곁으로 간다’, ‘현장 상황에 맞춰 진행한다’ 등이 있었다. 

 

퇴근길의 공통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렸다. 경력 4년 차 이하의 배우들은 규제의 필요성을 특별하게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지만, 5년 차 이상 배우들은 ‘사인 또는 간단한 촬영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규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응답자도 전체의 25%를 차지했다. 일부 응답자는 ‘배우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다’, ‘공통적인 규제를 누가 할 수 있겠는가?’라며 퇴근길 규제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일각에서 대두되는 퇴근길 폐지론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결과, ‘별로 동의 안 함’(57%)이라고 답한 배우가 가장 많았다. 뒤이어 ‘약간 동의’(26%), ‘매우 동의’(9%), ‘전혀 동의 안 함’(8%)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응답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밝혔다. 일부 응답자들은 ‘어느 순간 공연보다 퇴근길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가 된 것 같다’, ‘퇴근길이 배우의 의무나 책임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퇴근길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과열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라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배우 스스로가 중심을 잘 잡는다면 퇴근길에서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퇴근길 문화가 건강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등의 긍정적인 의견을 찾아볼 수 있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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