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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섬: 1933~2019> 박소영 연출가·이선영 작곡가·장우성 작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목소리 [No.190]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9-07-29 5,507

<섬: 1933~2019> 박소영 연출가·이선영 작곡가·장우성 작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목소리, 그 두 번째 

 

목소리 프로젝트는 지난해 <태일>로 기존의 뮤지컬과는 결이 다른 형식을 선보이며 의미 있는 한 발을 내디뎠다.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물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취지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실존했던 인물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충실하게 그려낸다. <태일>에서 선한 천성을 지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삶을 조명한 목소리 프로젝트는 2탄으로 소록도의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를 주목한다. 


 

목소리 프로젝트의 탄생

 

출발은 광화문이었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박소영 연출가와 이선영 작곡가는 집회에서 흘러나오는 양희은의 노래를 들었다. 심플한 멜로디에 진솔한 가사가 강렬한 감동을 주었다. 이선영은 나도 이런 곡을 쓰고 싶다고 했다. 박소영은 어떤 작품이 이런 곡에 어울릴까 고민했다. 아무래도 인물을 다루는 작품이 이런 음악에 어울릴 것 같았다. 박소영 역시 반복되는 상업 공연 시스템에 지쳐 있던 차였다. 창작자 중심으로 우리들이 하고 싶은 공연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그의 취지에 공감한 장우성 작가가 참여하면서 목소리 프로젝트의 퍼즐이 완성된다.

목소리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장르는 굳이 분류하자면 음악극이다. “음악극은 음악이 없으면 극이 성립되지 않는 장르예요. 뮤지컬보다 상위 장르로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음악이 있으면 음악극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음악극이면 좀 더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이선영은 전작인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레드북>에서 드라마와 음악이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뼈와 살처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태일>에서는 달랐다. 전태일의 수기 중 전하고 싶은 부분을 먼저 음악으로 만들고 이를 이야기로 연결했다. 

전태일의 목소리가 담긴 수기를 가사나 극에 녹여내다 보니 전태일의 목소리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내레이션으로 객관적인 거리를 두었다. 장우성은 스팅의 테드 영상을 참고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다가 점차 캐릭터로 빠져들도록 대본을 구성했다. 그것이 <태일>의 중요한 컨셉 중 하나였다. 박소영은 배우들에게도 내레이션을 할 때 배우 자신으로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태일의 감정을 점점 보태는 방식으로 연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만드는 작가도, 연기하는 배우도, 최종적으로는 이를 보는 관객도 태일을 알아가면서 닮아가기를 바랐다. 

목소리 프로젝트라는 컨셉에서 <태일>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태일>을 만들다 보니 목소리 프로젝트의 성격이 완성되었다. “우리에게 울림이 있고 잊히기 아까운 목소리를 기억하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선영)” <태일>을 만들다 보니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물, 그의 선한 삶의 태도나 목소리를 작품으로 남기고 싶다는 컨셉이 분명해졌고 목소리 프로젝트의 성격이 자리를 잡아갔다. 


 

조용히 편견을 거둬낸 마리안느와 마가렛

 

목소리 프로젝트 2탄의 주인공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지만 여성의 경우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았고 상업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질 것 같은 인물은 피하다보니 더욱 어려웠다. 그러다 추천받은 인물이 소록도의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였다. 처음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태일>의 미술감독 역시 운명처럼 이들을 추천하는 것이 아닌가. 박소영과 이선영은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자료를 찾으러 광화문을 다시 찾았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이들에 대해 다룬 다큐 영화 예고편을 봤다. “장막을 거둬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나이든 분들의 목소리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잖아요. 이분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이라 이 말이 어떤 맥락인지 모르지만 목소리에 울림이 너무 큰 거예요. (이선영)” 

그러나 어려움이 있었다. 전태일이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과 달리 이들 자료에서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육성이 별로 없었다. 관련 다큐와 책에서는 두 사람의 육성보다 주변인들의 객관적인 증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태일>과 같은 형식으로 풀어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장우성은 소록도가 형성되던 1930년대 백수선의 이야기와, 2019년 현재 발달 장애 아이를 키우는 고지선의 이야기를 추가했다. “두 번째 작업에서는 역사적 인물의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시대의 목소리로 확장시키고 싶었어요. (장우성)” 백수선의 이야기는 『소록도 80년사』, 『소록도 100년사』를 통해 당시 소록도의 삶과 상황을 배경으로 창작해 냈다. 2019년 고지선의 이야기는 최근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장애아 부모님이 무릎을 꿇는 사건을 모티프로 삼고 장애 아동 학부모인 류승연 작가의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을 참고했다. 류승연 작가를 초청해 이야기도 들었다. 작가는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의 공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참 많은 장애 아동이 있지만 우리가 그만큼 인식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태일>이 전태일의 생각과 목소리를 전했다면 <섬: 1933~2019>은 한센 병력자와 장애 아동 등을 통해 과거에서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차별과 타자에 대한 편견을 메시지로 담아낸다. 우리나라는 한센병을 극복한 나라여서 젊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과거에는 심심찮게 문학이나 영화 속에서 한센 병력자들의 괴담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한센 병력자들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과거에는 혐오적인 이미지가 담긴 나환자, 문둥이로 부르다, 이를 순화한 명칭이 ‘한센인’이지만 이 역시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 한센은 병균을 발견한 사람이면서 병명이다. 우리가 암에 걸린 사람을 암인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한센인이라는 표현도 적당한 명칭이 아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는 한센병에 대한 편견을 깨고 그들을 동등하게 대했다. <섬: 1933~2019>에는 1930년대 한센 병력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2019년에는 발달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를 통해 장애아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편견을 보여준다.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데 왠지 모를 불편함이 있었어요. 우리가 가진 편견을 많이 느꼈어요. 류승연 작가님에게 발달 장애 아이가 만약 말을 한다면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물었어요. 은연중에 ‘엄마’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쉬’라고 말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장우성)” 소변이 마려우면 그냥 바지를 내려버려 주위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발달 장애 아이의 부모이기에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우리는 한센 병력자나 장애인, 또 이와 같은 위치에 있는 이들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너무 모르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발달 장애아 지원은 특정 배우가 연기하지 않고 모자를 돌려쓰며 연기하도록 했다. 이는 작가가 아예 대본에 명시해 둔 것이다. “이름도 지원이라고 성별이 모호한 이름으로 했어요. 장애아 연기를 사실적으로 노출하지 않으려고 한 이유는 어눌한 말투라든가 그런 표현으로 인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또 하나는 실제 장애인들이 존재하지만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현실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걸 작품에서는 장애도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런 현실을 연출적으로 반영했어요. (장우성)”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 인물에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의도치 않은 묘사가 발생하게 돼요. 지금의 방식이 좀 더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을 소재로 하기보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엄마인 고지선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박소영)” <섬: 1933~2019>은 1930년대 한센 병력자와 현재의 발달 장애 아이 가정을 통해 이들에 대한 편견과 이들과 공존하는 법을 고민한다. 그것이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가 일생 동안 해온 작업이고, 이분들의 목소리를 전해 주는 방식이라고 본다. 


 

형식적 실험보다 작품의 본질을 살려

 

<태일>이 그랬던 것처럼 <섬: 1933~2019>도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다른 이 작품만의 음악극 형식을 취한다. 전태일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담았던 전작과 다르게 대본만 봐서는 <섬: 1933~2019>의 음악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되지 않았다. 세 시대를 넘나드는데 1930년대에서는 구전민요나 노동요가 사용되기도 하고, 현대로 오면 음악의 비중이 극히 줄어든다. 적절한 타이밍에 노래가 나오는 뮤지컬과 달리 음악의 사용이 다른 원리로 움직였다. 그러나 음악의 컨셉은 명확하다고 말한다.“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극도로 자신을 드러내는 걸 회피했던 분들이에요. 소개한 책도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분들이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노래하는 ‘아이엠송’을 부르는 게 맞지 않는 거죠. 기획 초기부터 합창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의 인물들이 합창으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죠. (이선영)” 컨셉은 명확했지만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에 절절한 드라마가 강렬한 1930년대의 이야기와 드라이한 현재의 이야기가 추가되면서 음악적 톤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결국 1930년대는 시대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잡고 가야겠다고 생각해 노동요나 구전민요를 차용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소록도에 오게 되는 1960년대는 종교적으로 경건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제가 성가대를 나가요. 거기서는 피아노와 오르간 두 대로 연주하는데도 울림이 크더라고요.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가 모두를 동등하게 대한 것처럼 음악도 평등하게 구성했어요. 남자 여섯, 여자 여섯을,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각 세 명으로 동등하게 구성했죠. (이선영)” 형식을 떠나 작품을 제작하고 고민하는 방식이 상업 프로덕션과는 확실히 달랐다.“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2탄을 준비하면서 1탄과는 달리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게 확장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열두 명의 배우가 필요했어요. 상업 프로덕션이라면 이런 선택을 쉽게 할 수 없잖아요. 작품에 맞다면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결단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박소영)” 작가들의 생각을 실현하는 데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은 큰 힘이 된다. 

목소리 프로젝트의 작업은 기존의 뮤지컬이나 음악극 작업과도 구분된다. 이들이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철저히 실존 인물에 중심을 두고 극이나 음악, 연출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세 명의 창작자뿐만 아니라 목소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배우들도 <태일> 작업부터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다는 부담감이다. 이분들을 왜곡하거나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의 이야기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온전히 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목소리 프로젝트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실존 인물을 음악극의 형태로 소개하는 목소리 프로젝트의 실험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어질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지만 잊혀져 가는 인물들이 아직 많잖아요. 형식적인 도전이나 실험보다도 그런 목소리를 전하면서 조금이라도 닮아가고 싶고, 메시지가 강한 작품인 만큼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를 많이 고민하고 나누는 본질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고 싶어요. (박소영)”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다루니까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할 거야, 이런 의식을 경계하면서 욕심내고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 선을 지키려고 해요. 그리고 이 작업만큼은 참여하는 어느 누구도 상처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고 섬기려고 노력했는데, 그분들을 다루는 작품을 하면서 욕심으로 누군가를 다그치지는 행동은 말아야겠다 생각해요. (이선영)”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선한 생각을 하게 되어서 좋고, 예술가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것 같아 좋아요. 작품을 기획할 초기에는 반대가 많았어요. 그러다 주위의 도움으로 선한 에너지가 파동처럼 퍼져 나가면서 긍정적으로 변하는 과정이 너무 신기해요. 이 파동이 관객에게까지 이르게 된다면 굉장히 감사하겠죠. (장우성)”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0호 2019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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