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가수의 진실성
이미테이션 가수의 이미테이션. 모방과 진실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것 같은 소재였다. 그 자체로 흥미가 갔는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헬로! 파인데이>에서는 뮤지컬에서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재인 장모와 사위의 관계에 대해 들여다본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관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재밌는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다. 어렵고 불편한 장모와 사위가 딸을 찾기 위해 동행한다. <헬로! 파인데이>는 이미 그 발상부터가 흥미진진하다. 이 장모와 사위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신인 뮤지컬 창작자들에게 작품 개발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입니다.
<헬로! 파인데이> 작품 소개
이미테이션 가수 주형필의 아내 주형미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주형필은 장모인 최말자와 아내를 찾아 나선다. 그곳에서 또 다른 이미테이션 가수 니훈아를 만난다. 니훈아는 출세도 하고 아내를 찾을 수 있다고 유혹해 주형필의 돈을 가로챈다. 결국 오갈데 없는 주형필과 장모는 나이트클럽 아방궁에서 서빙 일을 하게 된다. 스타 이미테이션 가수인 조용팔이 스테이지를 펑크내자 주형필에게 무대에 설 기회가 온다. 그러나 주형필은 조용필이 아닌 조용팔을 이미테이션 하는 일을 거부하게 되는데…
이동규 작가가 작품을 먼저 구상하고 작곡가를 섭외했다고 들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안혜진 조용필이나 나훈아의 기존 곡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서민적이고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권새미 대학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았다.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도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의 소재가 흥미롭다. 어떻게 발상하게 된 것인가?
이동규 영국에 있을 때 TV에서 연상인 여자와 젊은 남자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봤는데 인상적이었다. 그러다가 한국에 왔는데 매형들이 나랑 있을 때는 늘어져 있다가 어머니가 들어오면 자세를 바로 하더라. 어머니도 어색한지 계속 걸레질만 하시고. 그런 장모와 사위의 관계가 흥미로웠다. 거기에 영국에서의 단상이 떠올라 장모와 사위가 신나게 노래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테이션 가수를 이미테이션 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런데 발상에선 이미테이션이란 소재가 중요하지 않았나 보다.
이동규 첫 발상인 장모와 사위의 관계가 매력적이어서 그것을 버릴 수는 없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한테 딸을 맡겨야 하니까 장모는 사위와의 관계가 원만할 리 없다. 이런 관계가 극대화되기 위해 사위의 직업으로 가장 불안하고 부정적인 게 뭘까 생각하다 강원도 카지노 랜드를 생각했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이들을 위로하는 허름한 카바레 ‘아우성’을 창조해냈다. 거기서 딴따라를 모방하는 이미테이션 가수 주형필이란 캐릭터가 탄생했다. 이미테이션 가수 자료를 찾다보니 처음하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미테이션 가수라고 하면 한심스럽고 불행할 줄 알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니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행복해했다. 남들이 보기에 가짜 인생을 사는 것 같은데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이게 진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동규
그래서인지 작품은 장모와 사위의 이야기로 진행되다 이미테이션 가수 이야기로 갈아타는 느낌을 준다.
안혜진 우리가 생각했을 때 주된 이야기는 장모와 사위였다. 아내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인생들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두 가지 이야기가 분리되지 않게 녹여내야 할 것 같다.
이동규 작곡가님들을 만날 때는 장모, 사위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었다. 진행하는 과정에서 장모, 사위 이야기에서 단편적인 에피소드는 나올 수 있어도 큰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힘들겠다는 생각이어서 오히려 이미테이션 이야기를 중심에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위와 장모가 딸을 찾아나서는 로드무비 형식이지만 극 중반에 이르면 이들에게서 딸을 찾으려는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에 딸을 만났을 때 감동적이지 못했다.
권새미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있었다. 딸과 사위, 장모의 관계가 먼저 정리되고 엔딩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사람도 있고, 딸이 너무 금방 나오는 것이 아니냐, 너무 화해가 빠르다, 또는 아예 딸이 안 나오는 게 좋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작품에서 딸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 만났을 때 감동이 적었던 것 같다.
안혜진 애초 우리가 생각한 대로 이야기는 전개됐는데 이야기의 연결 고리들이 약하지 않았나 싶다.
안혜진 작곡가는 무용이나 연극 음악에 바탕을 두고, 권새미 작곡가는 몇 편의 뮤지컬 경험이 있다. 뮤지컬 작업은 어떤 점이 재밌고 힘든가?
안혜진 연극이나 영화, 무용 음악은 숨는 음악이다. 뮤지컬 음악 작업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음악이 전면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재밌지만 또 그래서 가장 힘들기도 하다. 책임감도 들고 어떻게 하면 드라마와 조화를 이루면서 잘 들릴 수 있을까 고민도 되고.
권새미 작업에 참여한 사람이 같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연출가, 작가, 배우의 생각이 다 다르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가는 게 가장 힘들면서도 재미있다.
이번 작품에서 셋의 그림이 가장 맞았던 장면은 무엇인가?
권새미 ‘쌤통이다, 이년아’를 부르는 장면. 처음에는 그렇게 가사가 세지 않았다. 보통 드라마에서처럼 엄마가 딸에게 ‘널 사랑한다’ 이런 식의 가사였는데. 최말자(엄마)가 그렇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을 할까? 이런 엄마라면 욕부터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쌤통이다. 이년아’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가사를 같이 만들고 그런 방식으로 협업을 했는데, 협업이 잘된 장면을 관객들도 좋아해주시더라.
이동규 개인적으로는 김미라(딸)가 양수리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내가 그렸던 분위기대로 느낌이나 음악이 나온 것 같다.
ⓒ 권새미
음악을 화려하게 쓰지 않았다.
이동규 딸을 찾아 사위와 장모가 떠나는 로드무비 형식이고 드라마가 중요하니까 음악은 최대한 튀지 않고 편안하게 드라마에 묻혀 갈 수 있는 곡이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그래서 작곡가로서는 좀 불만이 있지 않았나?
안혜진 그런 주문이 있었지만 중요한 솔로곡들, 최말자의 노래라든가, 주형필이 부르는 ‘못난 내 인생’ 등 음악이 주가 되는 곡들이 있다고 본다. 넘버가 많아서 그런데 전체적으로 중요한 부분에서는 음악적인 욕심을 부렸다.
권새미 장면 곡들이 많아서 그렇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경찰들이 ‘365일 스마일’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이면은 그렇지 않은 장면이나, 최말자가 가지고 다니는 ‘짝퉁 가방’, 이런 것들이 이미테이션 가수와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이미테이션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이동규 우리는 자발적으로 삶을 선택해서 살아가고 있나? 비록 이미테이션 가수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선택한 삶이고 이름이다. 이들은 스타 가수들을 모방하며 살아가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자신이 선택한 삶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관객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위의 반응에 상관없이 힘내라고 ‘브라보’를 외쳐주고 싶었다.
연출이 연기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이번 작품은 작가나 연출가가 주도할 때 꽉 짜여진 느낌보다 공동 작업에서 흔히 드러나는 신선한 아이디어나 애드리브성 장면들이 좋았다.
이동규 배우들에게 맡기고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것이 내 작업 스타일이다. 그래서 어떤 배우가 참여하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드라마를 알고 연기의 이유를 찾는 배우를 선호한다. 메인 배우 두 명은 글을 쓸 때부터 같이하자고 해서 참여한 배우들이다. 배우들이 자유롭게 접근을 하되 큰 틀에서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큰 틀이 다른 것은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원론적인 질문을 하자. 뮤지컬이 무엇이라 생각하고 왜 하는가?
이동규 노래만큼 감정을 전달하기 좋은 게 없다고 본다. 이전에 연극이나 아동극 작업에서 관객들이 극장에서 나갈 때 삶을 되돌아본다거나 무언가 변화가 생기길 바랐다. 뮤지컬도 예외는 아니다. 단지 노래를 이용해 감정을 전달하기 유리하다는 것일 뿐 접근 방식은 같다.
안혜진 오페라는 음악을 보여주려고 극이 살짝 끼어든 것이라면 뮤지컬은 음악의 도움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뮤지컬이란 음악 장르는 없고 실제 뮤지컬에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쓴다. 극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음악이 사용된다. 클래식이나 오페라의 음악은 굉장히 추상적이다. 그런데 뮤지컬은 직접적으로 우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그런 점이 매력적이다.
권새미 처음 뮤지컬을 좋아했던 이유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음악과 춤, 조명, 의상, 소품 등을 보고 2시간 동안 그 작품에 푹 빠져서 다른 걱정들을 안 하고 즐거워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르여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 뮤지컬을 하고 있다.
ⓒ 안혜진
‘헬로우 파인 데이’라는 제목과 작품이 잘 매치되지 않는다.
이동규 내가 속해 있는 단체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장모와 사위가 화해를 하고 결국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면서 삶을 응원한다는 메시지가 잘 맞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면 바뀔 수도 있다.
이후 작품 일정은 어떻게 되나?
이동규 작품 쓸 때부터 몇몇 프로듀서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이번 리딩 발표를 하고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프로듀서는 결정된 상태이고 내년에 중극장 정도에서 공연을 생각하고 있다. 프로듀서는 있지만 경험 있는 기존 제작사가 공동 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싶어 공동 제작사도 찾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7호 2011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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