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정인지, 성숙으로 빛나는 순간
에밀 졸라의 19세기 동명 소설을 뮤지컬로 옮긴 <테레즈 라캥>에서 주인공 테레즈 라캥을 둘러싼 등장인물은 모두 세 명이다. 고아나 다름없는 테레즈를 거둬준 라캥 부인, 라캥 부인의 병약한 아들로 테레즈와 결혼하는 카미유, 카미유와 정반대로 테스토스테론이 넘쳐흐르는 친구 로랑. 그리고 이 네 사람이 만들어가는 줄거리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로랑을 만나 육체적인 욕망에 눈을 뜬 테레즈가 라캥 부인의 강요에 따라 남편으로 맞이했던 카미유를 죽인 후 죄의식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이야기라고. 지난 세기 동안 수없이 읽힌 이 이야기에 정인지는 어떤 해석을 덧붙일까. 지금 우리가 가장 궁금한 질문은 이것이다.
깊어지는 생각이 가져온 변화
오늘 인터뷰를 하러 오기 전에 당신의 최근 기사를 찾아봤더니, 지난해 연말 <베르나르다 알바>를 끝낸 후에 여행을 가겠단 이야기가 있었어요. 정말 여행을 다녀왔나요? 네, 꽤 오랫동안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왔어요. 46일 동안 미국에 다녀왔거든요. 워싱턴, 필라델피아, 뉴욕, 이렇게 세 도시에 들렀다 돌아오는 루트로요. 사실 막연히 여행을 떠나잔 생각만 했지 목적지를 못 정하고 있었는데, 문득 뉴욕에서 공연을 보고 와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부터 브로드웨이 화제작이라는 <웨이트리스>나 <디어 에반 한센>이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 안 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다녀왔어요. (웃음) 다행히 두 작품 다 진짜 만족스러웠고요. 뮤지컬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정말 부러웠어요.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게 되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많아지잖아요. 괜히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서. (웃음) 정인지란 사람은 어때요? 저는 여행 가서는 잘 안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평소에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 예전에는 주된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였다면, 이제는 ‘이 일을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할까’로 생각의 중심이 바뀐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을 한다고 치면, 그 작품을 마주하는 제 자신의 태도가 더 중요해진 거죠. 아마 나이를 먹었다고도, 그렇다고 안 먹었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나이라 이런 생각을 많이 하나 봐요. (웃음) 저라는 사람이 살고 싶은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과정을 잘 쌓아가고 싶어요.
하루 일과가 정해진 회사원과 비교하자면, 배우는 생활환경이 비교적 자유롭잖아요. 때문에 일상생활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균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요? 예전에는 배우로서의 삶과 저 개인으로서의 삶, 양쪽의 밸런스를 유지하려고 뭔가 대단한 걸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한 작품을 끝내고 나서 일상에 복귀하려면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도 필요했고요. 그런데 요즘은 제 나름대로 정해놓은 하루하루의 일과를 지키는 게 평범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꽤 도움이 되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꼭 집 안의 실내 공기 환기를 한다거나 조금 일찍 일어나서 여유 있게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다거나, 이런 사소한 시간들이 제 일상의 중심을 지켜주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마친 연극 <추남, 미녀>는 2인극이었어요.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무언가 얻은 게 있을까요? 저는 배우가 무대에서 모험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관객은 실험 대상이 아니잖아요. 어떤 작품이든 철저한 준비를 마친 후 무대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이 생각이 저한테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 나요. 특히 <추남, 미녀>는 연출님이나 작가님이 배우에게 많은 부분을 맡겨주셔서 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죠. 작품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두 분 다 ‘오케이’ 이러시니까 아주 미칠 것 같더라고요. (웃음) 게다가 연극은 뮤지컬처럼 음악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공연 첫날 말 그대로 무대에 내던져진 기분이었어요. 긴 호흡으로 공연을 이끌어 가는 데 용기가 좀 필요했다고 할까요. 그런데 막상 공연을 마치고 나니까, 완급 조절을 하면서 공연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공연은 백 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작품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번 작품을 통해 새삼스레 느끼게 됐어요.
두려움 없는 선택
다음 작품으로 <테레즈 라캥>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뭐였을까요? <추남, 미녀>를 할 때 이 작품 제안을 받았어요. 그땐 원작 소설을 읽기 전이라 ‘테레즈 라캥’이라는 말에 영화 <박쥐>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 관심이 갔죠. <박쥐>는 제가 기억하는 가장 날것에 가까운 영화인데,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을 때의 강렬한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뮤지컬은 여자 두 명, 남자 두 명이 나오는 4인극으로 각색했다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했고, 각각 캐릭터의 연령대가 다르다는 것 또한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테레즈 라캥처럼 본능에 충실한 여성 캐릭터가 뮤지컬에 잘 없잖아요.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죠.
테레즈 라캥은 무언가에 갇혀 있다 그것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여성이잖아요. 고전 소설에 이런 캐릭터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 테레즈만의 다른 점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해요? 테레즈는 가장 원초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다른 소설 속 여성 캐릭터들이 자신이 갇혀 있던 틀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갈등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테레즈는 새로운 감정 변화에 “이건 뭐지?” 잠깐 생각할 뿐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동물 같은, 가장 날 것의 인간에 가까운 인물이라 할 수 있죠.
19세기에 원작 소설이 출간됐을 때, 에밀 졸라는 평론가들로부터 외설을 즐기는 작가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대요. 원작 소설을 읽은 소감은 어땠어요? 만약 에밀 졸라가 외설을 쓰고 싶었다면 성적인 관계가 이뤄지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에밀 졸라는 단지 성적인 장면을 묘사한 게 아니라 그 순간에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말해요. 그때의 감정들이 세포 단위처럼 세세하게 묘사되어 마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올누드의 인간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전 그렇게 느꼈어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론 요즘 우리 사회에 팽배한 혐오야 말로 또 다른 외설적 표현인 것 같아요.
아주 오래 전에 쓰인 이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아직 유효하다면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 팀이 고민하는 문제는 ‘현재의 시선에서 과거 이 이야기를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현재에 가져올 것인가’예요. 아직 열심히 고민 중이라 자세한 답변은 드릴 수 없지만요. (웃음) 사실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욕망 중 하나인 육욕이라는 게 자극적인 소재잖아요. 그래서 19세기에는 이러한 소재를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자극에 노출된 현대의 사람들에게 이게 어떻게 다가갈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이 이야기가 지닌 의미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전 이 작품에서 본능적으로 욕망을 따르는 원초적인 두 인물이 부딪치는 지점이 흥미로웠어요.
로랑, 카미유, 라캥 부인, 테레즈를 둘러싼 세 사람 가운데 누구와의 관계가 가장 흥미로워요? 로랑이나 카미유와의 관계는 소설에도, 저희 대본에도, 꽤 쉽게 잘 드러나 있어요. 하지만 라캥 부인과의 관계는 다르죠. 라캥 부인은 테레즈에게 엄마 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녀와 주종 관계를 이루기도 하거든요. 게다가 둘은 여성 대 여성이라는 대결 구도까지 미묘하게 얽혀 있는 관계라 제일 흥미로워요. 라캥 부인은 아들을 키우는 데 헌신적으로 자신의 일생을 바친 인물이지만, 그녀 역시 누군가의 엄마이기 전에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라는 점이 제가 두 사람의 관계를 풀어가는 열쇠예요.
무언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면 결코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잖아요. 혹시 테레즈가 경험한 감정적 변화와 유사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까요? 조금 사적인 이야기지만, 어느 날 문득, 정말 아주 문득, 무언가를 선택할 때 제 자신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더욱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저는 스파게티를 먹고 싶은 데 친구는 밥이 먹고 싶대요. 그럼 예전에는 친구랑 같이 밥을 먹으러 갔어요. 저는 밥이 먹고 싶지 않아도요. 그런데 이제는 “난 스파게티 먹고 싶은데, 넌 밥이 먹고 싶어? 그럼 우리 각자 먹고 만나자” 이렇게 말할 용기가 생긴 거죠. 음식에 비유하자면 그래요. (웃음) 제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거치면서 스스로 조금 더 성장한 것 같아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베르나르다 알바>에 출연하면서 많은 여성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고, 여러 공적인 자리에서 공연계에서 여성이 설 자리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를 냈어요. 혹시 이에 대한 주위의 시선이나 기대가 부담스럽진 않아요? 아니요, 그런 부담은 전혀 없어요. 왜냐면 전 모든 여성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제가 사람들에게 쉽게 노출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제 목소리가 크게 느껴질 뿐이죠. 어떻게 보면 전 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쉽게 얻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최근 일련의 움직임들로 비단 여성 캐릭터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전형적인 패턴의 정형적인 인물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거기서 조금 탈피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테레즈 라캥>도 그런 작품 중 하나고요. 정말 반가운 변화예요.
<테레즈 라캥>을 마친 후에는 또 어떤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전 작품으로는 도전하지 말자는 주의예요. ‘작품은 안전하게, 도전은 내 삶에서!’가 제 모토죠. (웃음) 아까 잠깐 이야기한 것처럼, 저는 배우가 관객들을 만나야 하는 무대에서 모험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신 평소 삶에서 다양한 도전을 하고, 그 도전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너무 거창하게 말한 것 같지만, 제가 배우로서 바라고 꿈꾸는 건 하나예요. 제가 제 삶을 잘 지켜서 건강한 영혼을 가지고 좋아하는 이 일을 오래도록 하는 거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9호 2019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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