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공연 예술의 필요성
‘4월’ 하면 어떤 기념일 먼저 떠오르는가. 식목일? 임시정부 수립일? 4·19 혁명 기념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기념일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하지만 4월에는 하나의 기념일이 더 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말이다. 국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장애인 관객을 위한 최대 배려인 휠체어석 이용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 관객을 위한 관람 문화가 형성되는 일은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포용적 공연 예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도 인식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사업운영팀장 오세형, 우리가 알아야 할 장애 예술
지난 2015년 대학로에 문을 연 이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곳은 재단법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위탁 운영하는 장애인 문화예술 센터다. 혜화역 2번 출구 바로 코앞이라는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경기문화재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거쳐 이음센터로 오게 된 오세형 사업운영팀장. 그가 경험한 장애 예술의 세계를 듣고 나면, 이음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인사말 ‘당신이 와서 좋습니다!’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
2015년 개관 당시 이음의 역할과 목표는 무엇이었나. 장애인 문화예술 센터 이음은 장애 예술가들이 ‘우리를 위한 공간 지원 센터가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낸 끝에 건립된 시설이다. 무엇보다 접근성이 중요했기 때문에 대학로 중심가에 위치한 옛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관을 리모델링해 쓰게 됐다. 현재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에 전시실, 세미나실, 연습실, 소공연장 등을 갖추고 있다. 개관 당시 문체부(문화체육관광부)의 총괄 아래 한문위(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지역문화재단이 장애 예술 사업을 담당하고 있던 터라 이음의 주된 기능은 장애 예술가들에게 연습실 같은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2017년, 장문원(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장애 예술 사업을 이관받으면서 센터의 정체성이 장애 예술을 진흥하는 지원 기관으로 바뀌었다. 주로 공간 운영만 담당하던 초창기에는 직원이 열 명 남짓했는데, 지난 2년 동안 지원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현재는 직원이 스무 명 가까이 늘어났다.
현재 국내에서는 장애 예술, 장애인 예술, 포용적 예술, 이렇게 세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음이 추구하는 프로젝트 방향은 무엇인가. 미국이나 영국 등 해외에서는 장애 예술이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면, 장애 예술이라 규정할 경우 그 대상자가 장애인으로 한정되어 예술 범위에 제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장애인 예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장애 예술이나 장애인 예술 대신 더욱 포괄적인 의미의 인클루시브 아트(Inclusive Art)라는 말을 쓰는데, 쉽게 말해 인종, 종교, 성정체성, 장애 등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모두를 위한 예술이라고 보면 된다. 인클루시브 아트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장애 예술의 창작자가 될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협업도 많이 이뤄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작품에 장애라는 정체성이 갖는 의미가 담겨 있느냐 하는 문제다. 물론 우리도 궁극적으로는 문화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겠지만, 선진국만큼 장애인 인권 향상이 이뤄지지 않은 국내 실정에서는 아직 장애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장애 예술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측면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국내의 장애 예술가 규모는 어느 정도로 보고 있나. 우리가 지원 사업 공고를 내면 보통 500개 정도의 개인 및 단체 지원서가 들어온다. 하지만 모든 장애 예술가가 지원 사업에 신청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실제로는 이의 두세 배 규모가 활동하고 있다고 본다. 좀 더 정확한 현황 파악을 위해 작년 9월부터 장애 예술가 실태 조사에 들어갔는데, 비장애인과 달리 서면이 아닌 대면 조사가 이뤄져야 해서 직접 방문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물론, 사전에 이를 충분히 고지한 후 동의 하에 방문한다. 사회적 편견에 많이 부딪치는 장애인에 대한 성의 있는 접근과 섬세한 배려 없이는 인터뷰 진행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로서 자각이 있는지, 어떻게 활동해 왔는지, 예술 활동에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등등을 묻고 장애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 지원 사업에서 보완되어야 할 점을 찾는 게 이번 조사의 주된 목적 중 하나다. 섣부른 일반화는 경계해야겠지만, 장애 유형에 따른 예술 특성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한다.
올해 초, 영국문화원과 함께 개최한 ‘이음 해외 공연 쇼케이스’의 초청 공연이었던 <프레드>에서 장애인 관객 친화적 관람 문화인 릴렉스 퍼포먼스를 시도했다. 이음이 진행한 공연에 릴렉스 퍼포먼스를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알고 있는데, 이런 시도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작년 가을에 영국 언리미티드 페스티벌(Unlimited Festival)에 다녀온 게 계기가 됐다. 2012년에 시작돼 2년 주기로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개최되는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은 세계 각국에서 참여하는 대표 장애인 예술 축제다. 4회째였던 작년 페스티벌에 모두 34개국 120명이 참여했고 앞선 행사에는 20개국 60명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이제 시작 단계인 장애 예술의 가능성을 믿고 단기간에 대형 축제로 밀어붙이는 저력에 놀랐다. 물론 영국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장애 예술 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져 왔고, 여기에 문화 다양성을 추구하는 국가적 문화 정책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사실 페스티벌 방문 당시만 해도 나는 장애 예술의 예술성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장애 예술에서 ‘장애’라는 단서를 없애도 순수 예술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페스티벌을 통해서 동시대 예술의 다양한 형태를 표현해내고 있는 장애 예술가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 거다. 게다가 장애인 관객을 배려하는 영국의 극장 시스템은 직접 확인하니 충격적일 만큼 놀라웠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그 많은 공연과 전시를 보는 동안 나는 왜 이런 경험을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나부터 반성하게 되더라. 우리도 앞뒤 따지지 말고 한번 밀어붙여보자는 마음으로 한 게 지난 릴렉스 퍼포먼스다.
언젠가는 시작될 변화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나 역시 영국 내셔널 시어터의 장애인 관객 배려 방침을 보고 무척이나 큰 자극을 받았다. 장애인 관객이 휠체어를 타고 극장에 진입할 수 있는가. 이 정도 문제를 고민하는 게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 극장들의 실정 아닐까. 이음에 오기 전 다른 공공 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과거에 나 역시 이 이상의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언리미티드 페스티벌 행사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 해설을 제공하는 오디오 디스크립션을 직접 이용해 보고 많은 자극을 받게 됐다. 예를 들어, 포럼에서 발제자가 발표를 시작하면 수어 통역과 함께 자막 해설이 나오는데, 심지어 이를 그림으로 그린 설명까지 제공한다. 시각장애인 관객들이 공연 시작 전 무대 소품이나 의상 등을 미리 만져볼 수 있게 하는 터치 투어 역시 놀라운 발상 아닌가.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점은 이런 장애 관객 친화 서비스를 단순히 시혜적 행위가 아닌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단 점이다. 문화 다양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장애인과 공연 예술을 함께 공유하고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나로서는 무척 충격을 받았다. 영국의 경우엔 장애인들이 극장 문화를 경험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극장 문화 자체가 유연하게 바뀌고 있는 추세다. 우리는 아직 인클루시브 아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극장 문화가 다소 경직돼 있지만, 누군가 나서서 첫 테이프를 끊으면 빠르게 인식의 전환이 이뤄질 거라 기대한다.
릴렉스 퍼포먼스를 관람한 비장애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릴렉스 퍼포먼스의 취지는 장애로 인해 관람을 망설이는 관객들이 극장에 좀 더 쉽게 올 수 있도록 공연 중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돌발 상황을 공연 관람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학습장애 관객이 공연 중 큰 소리를 내거나 자리를 벗어날 수 있고, 배우들과 교감하기 위해 말을 걸 수도 있지만 이를 불편한 시선으로 보지 말자는 거다. 어느 하나 일반적인 공연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 아닌가. 공연 첫날엔 우리도 처음 릴렉스 퍼포먼스를 시도하는 거다 보니 어떤 우발적인 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어서 무척 긴장했다. 총 5회 공연을 하는 동안 발생한 가장 돌발적인 상황은 전동 휠체어를 탄 관객이 공연 중 퇴장했다가 다시 입장한 거였는데, 장애 관객은 물론 비장애 관객들까지 어느 누구도 이를 전혀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물론 사전에 릴렉스 퍼포먼스임을 밝혔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그래도 낯선 경험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모습에 왜 조금 더 빨리 이를 시도해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수어 통역을 해주신 분들이 연극 통역을 하는 건 처음이라 2주간 자발적으로 따로 연습을 하셨는데, 그 모습도 무척 고맙고 인상적이었다.
장애 관객과 그의 보호자로 온 관객들에게도 소중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이 공연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더라며 지방에서 장애 연극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 보러 오셔서 얼마나 열성적인 반응을 보였는지 모른다. 장애 아이와 함께 온 부모님들도 참 많았는데,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공연 관람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무척 뿌듯함을 느꼈다. 다들 정말이지 무척 좋아하더라. 어느 사회복지사 분은 제발 매년 이런 공연을 해달라고 당부를 하기도 했다. 장애 아이들과 소리를 내도 되는 콘서트는 보러 갈 수 있어도, 조용히 관람해야 하는 연극은 보러 갈 엄두를 낼 수 없는 장르라 이런 완전한 형태의 작품을 보는 게 처음이라면서 말이다. 그전에 아이들과 본 연극은 복지관에서 하는 작은 인형극이 전부였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해외 공연 쇼케이스의 의미 있는 성과라면, 우리 사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장애 예술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좋은 인력의 좋은 아이디어가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이런 관심이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공연을 선보이고 싶은 국내외 장애 극단이 있나. 국내에 초청할 수만 있다면, 미국의 청각장애인 수어 극단 데프 웨스트의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공연해 보고 싶다. 비장애인의 말과 청각장애인의 수어라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소통 체계를 하나의 언어로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무대에서 수어가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해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애 예술의 특성을 완성도 있게 보여주면서 문제의식도 놓치지 않는 작품이라 국내에 소개된다면 장애에 대한 편견을 날려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아닐까 싶다. 야외극을 선보이는 영국의 전통 깊은 극단 그라이아이도 초청하고 싶은 팀이다. 장애인들이 직접 공연에 출연하는데 공연이 무척 우화적이면서도 아름답다고 하더라. 국내 극단 중에서는 장애 여성 퍼포먼스 극단 춤추는허리나 트러스트무용단, 연극 극단 다빛나오의 공연을 재미있게 봤다. 무엇보다 공연에 담긴 진정성 때문에 그 자체로 감동할 수 있었다. 작품마다 이 공연은 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작품이란 걸 목도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할까. 장애 예술은 비장애인이 할 수 있는 예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다른 표현 체계를 가진 독자적인 영역이라는 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는 장애 예술과 비장애 예술을 비교하는 시선이 사라지도록 말이다. 그렇게 되도록 힘쓰는 게 우리 기관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이음은 앞으로 또 어떤 지원 사업을 구상 중인가. 현재 이음 홈페이지에 정보 시스템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나름대로 이음TV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는데, 쉽게 말해 장애 관객을 위한 포털 사이트라 생각하면 된다. 사이트 내 게시물 카테고리를 장애 유형별로 나누어 장애인 이용객이 자신의 장애 유형을 클릭하면 그에 맞게 데이터가 분류돼 한 번에 해당 콘텐츠가 검색되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에게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콘텐츠가, 학습장애인에게는 학습장애인용 콘텐츠가 제공되는 거라 생각하면 된다. 영국은 장애별로 볼 수 있는 공연을 일 년 단위로 조사해 미리 공개하는데 향후에는 이런 서비스 제공까지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앞에서 영국의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도 장애 예술 축제가 없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의 축제는 어딘지 모르게 경연 대회적인 성격을 띤다. 언리미티드 페스티벌처럼 비장애인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테마를 만드는 능력도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들의 예술 축제가 경연 대회가 아닌 서로 축복하고 축하하는 자리가 되도록 하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장애 예술가들이 소란스럽고 시끄럽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길 바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7호 2019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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