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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모차르트 오페라 락> 김호영 [No.101]

글 |김유리 사진 |김호근 2012-02-20 5,782

 

내 꿈의 왕은 나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을 알고, 주인공 ‘모차르트’ 역에 김호영이 캐스팅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그를 알고 있는 관객의 대부분은 썩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느꼈을 것이다. 개성 강한 배우, 주체할 수 없는 끼와 매력을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할 말은 다 하는 속 시원한 캐릭터 김호영에게 자유로운 영혼 ‘모차르트’는 꼭 맞는 역할이자 또 하나의 도전이다.

 

 

천상 무대 체질의 배우, 김호영. 본업인 배우로서뿐 아니라 쇼의 MC, 게스트로도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이 다재다능한 젊은 배우가 무대를 휘젓고 다닐 때면 참 자유로워 보인다. 그것이 타고난 자유든, 어느 정도 계산된 자유든 관객이 알아챌 수 없을 만큼 그는 무대에서 능숙하게 자신을 컨트롤한다. 이는 남들보다 이른 시기에 프로 무대에 데뷔하면서 ‘어려서’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더 이를 악물고 당차게 노력해온 결과다.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센 이미지도 얻었지만, 그가 무대에서 공연의 큰 그림을 꿰뚫으며 출연 배우들과 완급을 조절하며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10년 차 배우의 매력적인 내공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전국을 오가며 다양한 공연을 진행해온 그가 다시 본업으로 복귀하게 된 것은 <모차르트 오페라 락>의 주인공 모차르트 역에 캐스팅되면서다. 자유분방한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삶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작품은 천재라는 굴레를 힘겨워하는 빈 뮤지컬 <모차르트!>의 주인공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권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직관과 감정 표현에 솔직한 모차르트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이다.

“사실 모차르트라는 인물을 흠모했어요.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왠지 나와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죠.” 그런 생각에 <모차르트!> 오디션에 참여했지만 모차르트 역은 다른 이의 몫이었다. 그렇게 얼마가 흘러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 측에서 오디션 제의가 왔다. “영상을 찾아보는데 기존의 프랑스 뮤지컬과 달리 드라마 대사도 있고, 스타일리시한 분위기에,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고자 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오페라 록이라는 장르도 매력적이었고요. ‘어, 이게 나랑 더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새로운 모차르트의 탄생

배우도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상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호영은 자신이 가진 개성이 확실하고, 이를 분명하게 어필할 줄 아는 배우다. <모차르트 오페라 락>의 모차르트 역에 김호영이 캐스팅된 후, 작품과 그를 동시에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잘 어울린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오랜만에 그가 배우로서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난 게 아닐까 기대하게 된다.


사실 김호영은 어느 배우보다 색안경 낀 시선을 많이 받는 배우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전국에서 여학생보다 여자 연기를 제일 잘하는 남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청소년 연극제에서 상을 휩쓸었을 땐 ‘이것도 나름 유명세’라고 생각했다. 프로 무대에 데뷔해서도 이십대 초반, <렌트>의 엔젤, <갬블러>의 지지, 연극 <이>의 공길 역을 차례로 맡으면서 ‘여장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이는 그를 알린 일등공신이자 동시에 선입견을 심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후 그의 출연작에는 보통의 남자 배우들이 채울 법한 캐릭터가 대부분이었음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를 엔젤, 지지, 공길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

이쯤되면 스스로 답답해하기도 할 상황인데, 그는 이런 선입견과 염려에 개의치 않는다. “좀 독보적이지 않나요? 전 저만의 가치와 희소성을 가지는 배우가 되는 것이 좋아요”라며 확신에 차 눈을 반짝인다. “제가 햄릿을 할 순 있어요. 하지만 관객들이 김호영 햄릿을 떠올리긴 쉽지 않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들에서 독보적이 되어 캐스팅 영순위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배우로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온 길이 다르고 갈 길도 다르니까요.” 어쩌면 개의치 않는다는 표현보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문득 눈치 백단으로 유명한 김호영이 자신을 이렇게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을지 궁금해졌다. “많은 분들이 ‘넌 늘 행복한 것 같아. 너도 걱정거리가 있니?’라고 묻지만, 사실 소심한 A형인 난 늘 고민을 안고 살아요.” 하지만 그의 고민은 기본적으로 긍정성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전 늘 잘될 거라 생각했어요. 어머니께서 늘 ‘넌 잘할 거다, 너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지지해주셨거든요. 그래서인지 안 된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아무리 나와 잘 어울리는 역할이라 해도 캐릭터가 잘 안 풀리고, 힘든 시간은 있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공연 때엔 잘하겠지. 지금 조금 어려운 거 상관없어, 걱정 안 해. 나 김호영이잖아’라고 생각하면서 금방 마음을 다잡아요.” 자신이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알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가진 것을 최대한 이용한다 해도 한편,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호영은 자신이 가진 것을 충분히 소중히 생각하는 건강한 긍정성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런 그에게도 힘들었을 때는 있었다. 2007년 <바람의 나라> 때, 이지나 연출은 ‘너무 꽉 찬 연기를 한다’며 그에게 자신을 비워낼 것을 요구했다. 늘 자신의 충만한 에너지를 타인에게 전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배우에게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과정이었다. 우선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들을 뺐다. 목소리를 드라이하게 내고, 말꼬리에 힘을 버렸다. 그리고 기분이 너무 떠 있지 않도록 1막 내내 분장실의 불을 다 꺼놓고 모니터를 응시한 채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것은 연기적으로 여성스러운 느낌을 벗어 버린다는 것을 초월해서 김호영이라는 사람 자체를 놔야 하는 굉장히 큰 경험이었다고 소회한다.    


 


 모차르트의 진심, 나의 진심

지난해부터 김호영에게 강의를 부탁하는 곳이 부쩍 늘었다. 대상은 초등학생부터 기업의 신입사원들까지. 주제는 ‘긍정적인 삶과 행복, 꿈’이다. “나이는 달라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 똑같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원하는 일이 잘되지 않았다면,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이런 그의 긍정은 무수한 속앓이로 하얗게 지샌 불면의 결과물이자, 무수히 필터로 걸러 얻어낸 엑기스다. 끊임없는 내적 고민의 과정이 있었기에 더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것, 그게 김호영 표 긍정이다.


그는 모차르트에게서 자신을 본다. “제 여성스러운 연기, 독특한 패션에 대해 ‘나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듯, 모차르트에게도 ‘천재’라는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들이 있었을 거예요. 예전엔 대항해서 이겨보려고도 했지만,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더라고요. 근데 ‘갈 길이 다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모차르트도 자신을 보는 시선과 편견을 받아들이기까지 고민과 분투가 많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모차르트와 만나서 얘기하게 된다면 왠지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이번 공연에서 모차르트의 비애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데뷔 때 <렌트>의 박칼린 음악감독님이 ‘호영, 네게서 비애가 느껴져’라고 하셨어요. 그땐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그런 느낌이 정말 있는지 이후로 한이나 비애를 가진 인물을 많이 맡았어요. 엔젤, 공길, 호동, 자나, 모두 외형적으로는 밝고 귀여운 이미지인데 늘 가슴속에 아픔이 있고, 자의든 상황에 따라서든 죽게 되죠. 모차르트에게서도 그 비애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더 내게는 맞춤옷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만큼 그 감성을 제대로 전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전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못 진지하게 숨겨진 감정을 드러내던 그에게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서 가장 좋아하는 넘버를 묻자 이내 장난기 어린 얼굴로 돌아온다. “2막의 첫 곡, ‘내 꿈의 왕은 나’ 를 가장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단어인 ‘꿈’과 ‘왕’으로 이뤄진 곡이죠. 제가 트로트를 좋아하는데, 한번은 가사를 쓴 적이 있어요. ‘오늘만은 내가 왕이다’라고.(웃음) 이건 <아이다> 이후 생긴 저의 좌우명이기도 해요. 한동안 ‘그래, 내가 잘될 건 알겠는데, 언제? 대체 언제 잘되는 거야?’라고 조바심을 냈던 적이 있어요. 근데 <아이다> 끝나고 쉬는 동안 깨닫게 되었죠. ‘오늘만은 내가 왕’이라는 생각으로 매일을 잘 살다보면 다 잘될 것 같았어요. 모차르트의 노래 내용도 비슷해요. 밖에서 자신에 대해 뭐라하든 절대 개의치 않겠다고, 난 내 꿈의 왕이니까. 그를 내면적으로 단단하게 했던 그 핵심을 보여준 노래인 것 같아요.”


현재로서는 자신과 모차르트의 비슷한 점을 찾아가고 있는 단계이지만, 공연이 올라가면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김호영, 그 이유는 모차르트로 잘 놀수록 그의 감정과 진심을 관객에게 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2002년, 자신의 연기에 스스로 감동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자 했던 약관의 청년은 10년이 지나 자신만의 희소성을 진심으로 즐기는 배우로 성장했다. 그에게 이후 10년을 묻자 재미있는 답을 한다. “빌딩을 소유해 ‘토털 엔터테인먼트 센터’를 운영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가 되어서 빌딩을 살 수 있다는 것엔 정말 모든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남들에게도 꿈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글로벌 아이콘이 되고 싶고, 될 거예요. 저 한국에서만 있기 아까운 스타일 아닌가요?” 세상의 모든 것을 영민하게 흡수하는 김호영에게는 앞으로 세상 자체가 무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1호 2012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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