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실제 사례, <마틸다> by 김수빈 번역가
아역 배우를 위한 맞춤 작업
Matilda : Once upon a time, the two greatest circus performers in the world- an escapologist who could escape from any lock that was ever invented, and an acrobat who was so skilled it seemed as if she could actually fly.
마틸다 : 옛날 옛날에, 아주 위대한 서커스 곡예사들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어떤 자물쇠라도 뚝딱 열고 나올 수 있는 탈출 마술사, 또 한 명은 하늘을 슝- 날아오르는 우아한 공중 곡예사.
마틸다가 쓸 수 있는 표현인가 아닌가. <마틸다>의 번역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질문이다. 물론 어느 작품이든 번역을 할 때에는 캐릭터의 성격을 고려해야 하지만, <마틸다>는 다섯 살 여자아이라는 마이너한 주인공을 내세운 만큼 이 같은 요소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했다. 아이가 구사할 수 있는 단어를 쓰되 깜짝 놀랄 만큼 신박한 표현일 것. 천재 소녀 마틸다의 세계관에 어울리는 말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마틸다를 실제 아역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도 번역의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아무리 수려한 표현을 쓰더라도 실제 아역 배우들이 소화할 수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용이하면서 간단명료하게 정서를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찾아야 하다 보니 다른 공연에 비해 의성어나 의태어를 많이 활용했다. 마틸다가 펠프스 선생님께 동화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하늘을 가로지르듯 날아가는’을 ‘슝’으로 바꾼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 읽었을 때 예쁜 소리로 들려야 해서 아이들의 호흡에 맞도록 문장으로 다듬는 것 역시 중요했다.
정서 전달을 위한 과감한 의역
Revolting Children
We are revolting children
Living in revolting times
We sing revolting songs
Using revolting rhymes.
We’ll be revolting children,
‘Til our revolting’s done,
And we’ll have the Trunchbull vaulting
We’re revolting!
토 쏠리게 개기는 아이들
토 쏠리게 반항하는 아이들
역겨운 시대에 살며
격한 반항의 노래를 부르고
격한 반항의 라임을 맞추네
우리는 토 쏠리게 반항하는 애들이겠지
우리의 격한 반항이 끝날 때까지
트런치불은 저 멀리 토끼게 만들어주지
우린 토 쏠리게 반항적이니까! (초벌 번역)
틀려먹은 세상의 뒤틀려 먹은 애들
미친 몸짓으로 빡친 춤을 추고
눈치 따윈 안 보고 지치지도 않아
이제 트런치불 잘 꺼졌다 잘 가라
틀려먹은 세상의 뒤틀려 먹은 애들
미친 몸짓으로 빡친 춤을 추고
눈치 따윈 안 보고 지치지도 않아
이제 트런치불 잘 꺼졌다 잘 가라 (공연 버전)
번역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원어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다. 즉, 단어 하나하나가 가진 개별적 뜻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상 이 단어가 어떤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쓰였는지 찾아야 한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 충실한 직역보다는 과감한 의역을 하는 편인데, 대표곡 ‘Naughty(버릇없는, 짓궂은, 못된)’를 ‘약간의 똘끼’라 옮긴 이유다. 모나지 않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조금 모난 사람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곡의 정서를 한 방에 표현할 단어로 똘끼만 한 단어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서 번역이라는 난제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곡은 아이들이 단체로 악당 트런치불에게 반기를 들며 부르는 ‘Revolting Children’이었다. 이 제목은 우리나라 말로 직역하자면 ‘반란의 아이들’ 또는 ‘저항하는 아이들’인데, 내가 붙인 제목은 ‘토 쏠리게 개기는 아이들’이다. 반란과 저항의 뜻을 가진 ‘Revolt’가 형용사 ‘Revolting’이 되면 ‘혐오스러운’, ‘역겨운’이라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반항 중인 아이들 또는 역겨운 아이들(속된 말로 너무 개겨서)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중의성을 한 번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극 중 트런치불이 아이들에게 ‘토가 쏠리네’라는 말을 한다는 점과 연관 지어 붙인 제목이기도 하다.
가사 번역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소리의 맛을 살리는 것이다. ‘Revolting Children’의 음성적 특징은 리볼‘팅’, ‘칠’드런, ‘타’임 같은 파열음과 파찰음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는 것. 이는 아이들이 화가 나 있다는 감정 전달에 적합하고, 전투적인 동작으로 구성된 안무를 뒷받침하기에도 효과적이다. 국내 공연에서 ‘틀’려먹은, 뒤‘틀’려, 미‘친’, 빡‘친’처럼 센소리를 반복 사용한 이유다. 또한 핵심 단어인 ‘Revolting’을 ‘반항’으로 옮기면 의미도 의미지만, 들리는 소리가 너무 약하다고 판단해 대체어로 ‘싸울 거야’를 썼다. 단, 리볼팅이란 3음절에 맞추기 위해 ‘싸울 거야’를 아주 빠르게 말한다. 이 노래의 경우 아이들이 말을 빠르고 격하게 하다 보니 가사 전달이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됐는데, 해외 크리에이터들이 하는 말이 오리지널 공연에서도 관객들이 아이들의 말을 절반도 못 알아듣는다는 거다. 아이들이 잔뜩 화가 나 있다는 정서를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거친 반항의 느낌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대사로 캐릭터 성격 살리기
루돌포 :
No one’s gonna love you if you don’t know the rumba
전율하는 이 느낌은 화끈한 룸바
웜우드 부인 :
Everybody loves a little something exotic
이국적인 외국적인 삘이 좋잖니
루돌포 :
But learning a language is over the top?
근데 외국말은 졸라 어렵잖니?
웜우드 부인 :
It doesn’t really matter if you don’t know much!
아, 상관없어 모르면 더 용감해
웜우드 부인 & 루돌포 :
The less you have to sell, the harder you sell it.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야 원래
The less you have to say, the louder you yell it.
목소리가 큰 놈이 갑이야, 올레!
사실 <마틸다>에서 트런치불 못지않게 나쁜 악당은 웜우드 부부다. 자신들의 딸 마틸다를 구박하고 방치하는 이들 부부는 사실상 아동 학대범인데, 만약 관객들이 둘의 행동을 불편하게 느낀다면 공연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따라서 <마틸다>는 관객들이 웜우드 부부 만행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둘을 다소 현실성 없는 동화적 캐릭터로 그려낸다. 번역 작업에서도 당연히 이런 특성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개인적으로는 관객들이 웜우드 부부를 보고 “어휴, 저 푼수들” 하고 웃어넘기는 반응이 나오길 바랐기 때문에, 번역에서 둘의 ‘푼수끼’를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어, ‘갑빠’, ‘몰랑’, ‘삘’처럼 일반적인 부모라면 사용하지 않을 법한 ‘싼티’나는 단어들을 팍팍 쓰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맥락 없이 웃긴 단어만 쓴 것은 아니다. 공연 중 가장 큰 웃음을 유발하는 단어 중 하나인 ‘독서충(책을 좋아하는 마틸다를 부르는 말)’은 오리지널 대본의 ‘책벌레(Bookworm)’를 인생 최고의 멘토로 ‘테레비’를 꼽는 웜우드의 캐릭터에 맞게 옮긴 것이다. 간단한 단어로 등장인물의 성격을 쉽게 드러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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