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실제 사례, <라이온 킹> by 이지혜 번역가
주제가 ‘Circle of life’ 자막
It’s the circle of life 이것은 생명의 순환
And it moves us all 절망과 희망, 믿음과 사랑
Through despair and hope 그 모든 것 속에서
Through faith and love 우리를 살게 하는 힘
Till we find our place 우리가 제자리로
On the path unwinding 돌아갈 때까지
In the circle 삶은 돌고 돌 것이니
The circle of life 그것은 생명의 순환
<라이온 킹>에서 가장 번역하기 어려웠던 곡은 작품의 주제가인 ‘Circle of life’다. 가사가 시적인 데다 한국어와 어순도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Circle of life’라는 표현을 어떻게 우리말로 옮길 것인가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영어식 유머 코드 살리기
감초 캐릭터인 티몬과 품바, 자주는 코믹한 농담으로 극의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 웃겨야 할 장면에서 웃기지 못하면 공연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영어식 농담을 국내 관객이 웃을 만한 농담으로 바꾸는 데 신경 썼다.
티몬 : What do you have to say for yourself, Mr. Pouncer?
입이 있다면 변명 좀 해 봐, 몸만 좋으면 다야?!
티몬이 물에 빠진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심바에게 화를 내며 ‘Mr. Pouncer’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Pounce’는 ‘내밀다, 돌격하다’라는 뜻의 단어다. 그래서 처음에는 ‘Mr. Pouncer’를 ‘돌격대장’이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장면에 앞서 티몬이 심바에게 발정기가 온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더라. 맥락상 ‘Mr.Pouncer’ 역시 성적인 의미를 띤 농담인 거다. 그래서 자막을 ‘앞에는 텐트를 쳐가지고!’로 바꾸려 했으나, 제작사에서 너무 노골적인 표현은 쓸 수 없다고 하여 타협한 결과가 지금의 ‘몸만 좋으면 다야?’다.
품바 : The king! Your Majesty, I gravel at your feet.
왕이라고? 전하, 제 머리를 숨기겠습니다
티몬 : It’s not gravel. it’s grovel.
‘숨기겠습니다’가 뭐야 ‘숙이겠습니다’
품바가 ‘Grovel(굽실거리다)’을 ‘Gravel(자갈)’로 잘못 말하는 장면은 한국어 말장난으로 바꾸었다. 더 확실하게 웃길 수 있는 표현으로 ‘존나이겠습니다’와 ‘조아리겠습니다’도 생각해 봤으나, 비속어를 쓸 수 없어 포기했다.
자주 : There’s one in every family, sire.
I have a brother who’s constantly tweeting.
어느 집안이나 하나씩은 저러더라고요, 전하
제 동생은 자기가 파랑새인 줄 알아요 트윗트윗
무파사가 심바의 탄생을 알리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동생 스카를 꾸짖는 장면에서 코뿔새 자주가 뱉는 대사다. 여기서 ‘Tweeting’은 ‘짹짹거리다’라는 뜻과 더불어 트위터를 한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트윗’이라는 영어 발음을 그대로 살리고 트위터 로고로 쓰이는 파랑새를 언급했다. 자막이 뜨고 사라지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하이에나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말을 잘 못하는 하이에나 에드가 전면에 나설 때는 반드시 자막이 사라져야 한다. 다른 하이에나가 ‘어떻게 생각하나, 에드?’라고 물었을 때 자막이 딱 꺼지고 헥헥거리는 소리만 들려야 웃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연 첫날 앞의 대사가 남아 있을 때는 아무도 웃지 않았는데, 다음 날 앞의 대사를 없애니 관객들이 웃었다.
관객과 공감하기
티몬 : Ah, you’re an outcast! That’s great! So’re we!
너 아싸구나! 잘됐다! 우리도야!
티몬 : Are you achin’ / For some bacon?
어서 와서 드세요 / 쫄깃쫄깃 족발
He’s a big pig / You could be a big pig too.
일겹 이겹 삼겹살 / 맛있으면 0칼로리!
적절한 유행어 사용은 유머 코드를 살리는 데 효과적이다. 나는 관객 절반이 알아들을 만한 유행어라면 과감히 사용하는 편이다. 절반이 웃으면 나머지 절반도 따라 웃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세월이 지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 법한 유행어는 피하려고 한다.
품바 : It’s just a little lion. Look at him.
He’s so cute and all alone.
쬐끄만 아기 사자야. 봐♥ 엄청 귀엽고 외로워 보여
품바 : When I was a young WARTHOG! (고음을 내는 부분)
내가 아기 돼지였을 때↗
최근에는 말맛을 살리기 위해 자막에 다양한 글자체나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라이온 킹>은 제작사 측에서 작품 분위기에 맞는 클래식하고 절제된 자막을 원했다. 그래서 자막에 특수문자가 사용된 곳은 딱 두 곳뿐이다. 개인적으로 품바가 방귀 공격을 하는 장면에 큰 글자로 ‘뿌웅’이라는 자막을 넣고 싶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쉬웠다.
자주 : Looks like a shower curtain from Robinson’s! (필리핀)
꼭 서문 시장에서 파는 샤워 커튼 같구먼 (대구)
꼭 동대문 시장에서 파는 샤워 커튼 같구먼 (서울)
품바 : Let’s go grab a bite!
I could go for a piniritong tipaklong. (필리핀)
우리 밥이나 먹자! 난 번데기 샌드위치 (한국)
현재 서울에서 공연 중인 <라이온 킹>은 필리핀, 싱가포르, 한국을 거치는 투어 프로덕션으로 일부 대사는 공연 지역에 맞춰 달라진다. 마닐라 공연 당시 ‘로빈슨 몰’을 언급한 대사는 대구 공연에서 ‘서문 시장’으로 바뀌었고, 서울 공연에서 다시 ‘동대문 시장’으로 바뀌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