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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국내 대표 뮤지컬 번역가, 김수빈·박천휘·이지혜 [No.185]

글 |편집팀 2019-03-06 9,141

국내 대표 뮤지컬 번역가, 김수빈·박천휘·이지혜

 

국내에 한 해 동안 올라가는 주요 라이선스 뮤지컬은 이들 손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을 보면서 한 번쯤 번역가가 누구인지 궁금하게 했을 국내 대표 번역가 3인방. 세 사람이 직접 말하는 뮤지컬 번역의 세계에 대해 들어보자. 

 


 

김수빈 번역가

 

코믹한 장르를 번역할 때 유독 돋보이는 번역가 김수빈. <애비뉴Q>(2013)의 내한 공연 당시 통통 튀는 자막 번역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7년 예그린어워드에서 각색·번안 상을 받은 <스위니토드>(2016)에서는 “신혼부부 파이를 먹어라. 신혼부부가 왜 이렇게 안 달달하냐? 꿀을 칠까? 아니, 기름을 치자. 무슨 기름? 아이 러브 유!” 같은 재치넘치는 대사로 큰 인상을 남겼다.

 

내가 생각하는 뮤지컬 번역과 일반 번역의 차이는?  문학 번역은 주석의 도움을 받아 독자에게 낯선 문화적인 요소에 대한 설명을 추가로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뮤지컬 번역은 한정된 시간 안에 관객들이 모든 내용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차이에서 볼 때, 뮤지컬은 단지 언어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행간을 살펴 정서를 번역하는 게 중요하다. 단어, 문장, 문단, 장면을 분석하고 작품이 지닌 메시지의 전달 방법을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뮤지컬 번역 작업의 원칙은?  원작이 지닌 메시지와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오는 것. 이는 단순히 글자를 번역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를 ‘깃발을 꽂는다’고 표현하는데, 대본을 세세하게 나눠 여러 감정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장면에서 슬픔을 느꼈다면, 왜, 어떻게, 어떤 슬픔을 느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대본이라는 큰 지도에 세세하게 깃발을 꽂고 그 흐름을 계산해서 오리지널 공연에서 나온 반응이 국내 공연에서도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작품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그에 알맞게 번역하는 것이 작업 원칙이다. 
 

번역한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작품마다 각각의 포인트가 있어 하나로 답하기 어렵다. <마틸다>는 하나의 레퍼토리로 이미 확실하게 자리 잡은 작품이라, 이를 우리말로 충실히 구현해 내는 것에 중점을 뒀다. 반대로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은 번역 과정에서 재창조한 부분이 많았다. 국내 공연을 위해 유머러스한 포인트를 재정리하는 작업을 거쳤는데,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또 <스위니토드>는 번역가로 상을 받아서 가슴에 남은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작업 가운데 가장 만족하는 번역 사례를 꼽는다면?  만족보다는 늘 아쉬운 점이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이나 <스위니토드>, <마틸다> 같은 블랙코미디 작품을 좋아한다. 사회적 풍자와 웃음, 재미, 슬픔 등을 잘 버무려야 하고, 원작에 우리의 정서를 덧붙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작품은 번역을 잘했다기보다는 과정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이 번역한 작품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킹키부츠> 초연은 내가 번역했지만, 재연에는 이지혜 작곡가가 번역을 맡았다. 개인적으로 재공연을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가 많더라. 또 이지혜 작곡가가 번역한 작품 가운데 <위키드>의 ‘Popular’ 가사 번역을 정말 좋아한다. ‘내 전공은 파퓰러, 부전공도 파퓰러’ 이 가사는 단번에 머릿속에 각인될 만큼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번역을 잘하기 위한 비결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뮤지컬 번역은 짧은 시간 안에 필요한 부분을 전달해야 한다. 필요한 골자를 전달하기 위해서 완급 조절이 필요한데, 이걸 잘하게 만드는 건 화술이다. 캐릭터 분석과 화술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많은 장르를 섭렵하는 것은 기본이다.
 

번역가로서 국내 뮤지컬계에 전하고 싶은 말은?  누구라도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합리적인 상황에서 합리적인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박천휘 작곡가 겸 번역가 

 

지난 2018년의 최고 화제작 <베르나르다 알바>의 번역가. 그 외에도 스티븐 손드하임의 <어쌔신>(2005)과 마이클 존 라키우사 <씨왓아이워너씨>(2008), 브라이언 요키와 톰 킷 콤비의 <넥스트 투 노멀>(2011) 등 뮤지컬의 외연을 한층 넓혔다고 평가받는 지적인 작품들이 박천휘 번역가의 번역을 통해 국내 무대에 올랐다. 박천휘 번역가는 작곡가로도 활동 중인데, 지난해 서울예술단과 작업한 창작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으로 마니아층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내가 생각하는 뮤지컬 번역과 일반 번역의 차이는?  뮤지컬 장르의 특성이 다르다는 것. 뮤지컬에서는 말을 노래로 하는데 말의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노래의 시적인 특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음악으로 이야기를 응축하고 감정을 확장하는 뮤지컬의 특성을 가사를 통해 구현해 내면서 극 중 상황에 맞는 등장인물의 말을 찾아줘야 한다. 그리고 대사에서 노래 가사로 또다시 대사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구체적인 대사와 시적 언어 사이의 줄타기를 해야 한다.
 

뮤지컬 번역 작업의 원칙은?  번역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원작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다. 절대 텍스트를 원작자만큼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찾아보려 노력한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검색만 철저히 해도 실수를 예방할 수 있다. 사실 극적 감각만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게 오역이다. 연습실에서 연출가나 배우들이 대본을 보다 고개를 갸우뚱하면 십중팔구 번역에 문제가 있을 때다. 그리고 뮤지컬 번역에서 또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이다. 기술은 연마할수록 좋아지기 마련이며, 번역은 철저하게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번역한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최근 2월에 개봉할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의 더빙 가사 번역을 했는데, 영화 더빙 번역은 또 다른 세계였다. 일단은 작품을 번역하는 데 주어지는 시간이 매우 짧고, 영화 속 배우의 입모양에 맞게 발음을 맞춰야 해서 작업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해밀턴>의 작곡가 겸 작가 린 마뉴엘 미란다가 출연하는 데 그가 랩을 하는 부분에서는 라임에 특히 많은 공을 들였다.
 

지금까지의 작업 가운데 가장 만족하는 번역 사례를 꼽는다면?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씨왓아이워너씨>와 <베르나르다 알바>. 아마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동시대의 작가·작곡가이다 보니 번역할 때, 마치 내 작품인 것처럼 빠져들어 작업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번역은 <씨왓아이워너씨>에서 경비가 부르는 ‘몸조심해야죠’라는 곡이다. 리듬이 불규칙한 빠른 박자의 곡이라 강세를 맞추기도 어렵고, 한 사건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연결된다는 이야기가 가사의 말장난으로 이어져 쉽지 않은 작업으로 기억한다. 영어와 어순이 다른 우리말로 구현하기 어려운 가사인데, 경비의 간사한 캐릭터가 잘 살아나면서 간단명료하게 다듬어지지 않았나 싶다.
 

다른 사람이 번역한 작품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2006년 <벽을 뚫는 남자> 초연에서 들은 가사들은 놀라울 정도로 재치 있고 말맛이 잘 살아 있었다. 코미디는 번역이 가장 힘든 장르인 데다 노래 가사로 관객을 웃기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인데, 이지혜 작곡가가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해낸 것을 보고 많은 걸 배웠다. 내가 보통 번역할 때보다 의역의 범위를 훨씬 더 넓게 잡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번역가로서 국내 뮤지컬계에 전하고 싶은 말은?  번역가는 라이선스가 있는 오리지널 작품의 대본, 가사, 악보의 3분의 2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뮤지컬도 다른 대부분의 대중 예술 장르처럼 결국은 이야기의 예술이기 때문에, 다른 것이 아무리 좋아도 이야기에 결점이 있다면 이를 본질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번역가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작품도 많은데, 텍스트에 대한 존중이 결국 좋은 작가, 작사가, 번역가를 만들 것이라는 걸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이지혜 작곡가 겸 번역가 

 

뮤지컬 <무한동력>, <더데빌>의 작곡가. 음악에 대한 전문적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 작업에 뛰어들어 <맨 오브 라만차>(2005), <위키드>(2013), <킹키부츠>(2016) 등을 번역했다. <위키드>(2012), <라이온 킹>(2018)의 내한 공연 자막을 번역하기도 했다. <위키드>는 재치 있는 번역으로 웃음을 주었는데, 글린다가 머리를 넘기며 ‘Toss Toss’라고 말하는 대사를 ‘샤방 샤방’이라고 바꾸거나, 엘파바와 글린다가 서로를 향해 ‘Loathing’이라고 말하는 가사를 ‘밥맛’이라고 번역한 것이 그 예다. 

 

내가 생각하는 뮤지컬 번역과 일반 번역의 차이는?  뮤지컬 대본은 지문과 대사,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지문은 누가 봐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한다. 이런 게 일반 번역이라면, 대사는 말하기 편하게, 가사는 노래하기 편하게 번역해야 한다. 일단 초벌 번역을 한 뒤에 직접 대사를 읽어보고 연기를 하면서 말이 입에 붙도록 다듬는다. 마찬가지로 노래 가사는 노래를 하면서 번역한다. 그러고 나서도 제작사, 음악감독, 배우의 요구 사항에 맞춰 수정을 거듭한다. 음악감독이 특정 음에서 원하는 발음이 있거나 라임을 살리기를 원한다면 그에 맞춰 수정하는 식이다. 또한 해외 제작사에 한국어 대본을 다시 영어로 번역해 보내고 확인받는 과정도 필요하다. 뮤지컬 번역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자막 번역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자막은 음악에 글자 수를 맞추거나 발음에 신경 써서 번역할 필요가 없다. 대신 어순을 최대한 원문과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 영어와 한국어 어순이 다르다고 해서 배우가 말하는 내용과 자막의 내용이 너무 어긋나면, 두 언어를 모두 아는 관객은 어색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 화면에 몇 개의 글자를 띄울 것인가, 언제 화면을 넘길 것인가도 꼼꼼히 계산해야 한다. 배우의 연기 호흡과 자막이 뜨는 타이밍이 딱 맞아야 하는데, 특히 웃긴 장면에서 자막이 너무 일찍 뜨거나 늦게 뜨면 웃음이 터지지 않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공연이 올라간 후에도 자막 오퍼레이터와 타이밍 맞추는 작업을 계속한다.
 

번역한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04년 처음 번역한 작품인 <아이 러브 유>. 그 전까지만 해도 관객이 번역된 노래를 듣고 웃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 작품으로 그게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그런가 하면 <벽을 뚫는 남자>의 ‘나는 나는 알콜 중독, 그런데 내가 의사다’라는 가사는 연습 때까지도 전혀 웃길 줄 몰랐다.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니 관객들이 웃더라. 관객을 만나는 순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공연이라는 걸 배웠다. 
 

지금까지의 작업 가운데 가장 만족하는 번역 사례를 꼽는다면?  <맨 오브 라만차>의 ‘이룰 수 없는 꿈’ 가사.
 

다른 사람이 번역한 작품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김수빈 번역가의 <스위니 토드>. 
 

번역가로서 국내 뮤지컬계에 전하고 싶은 말은?  번역은 공연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뮤지컬 번역가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다. 내가 번역한 어떤 작품은 수년째 공연되고 있는데도 그에 대한 로열티가 전혀 없다. 이제는 계약 단계부터 재공연을 올릴 경우 처음 지불한 번역료의 몇 퍼센트를 지급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도 애초에 받은 번역료가 크지 않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돈은 적다. 번역에 쏟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을 받지 못하니 보람을 느끼기 어렵다. 뮤지컬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배우뿐 아니라 창작자의 대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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