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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젠틀맨스 가이드:사랑과 살인편> 로버트 L. 프리드먼, 발칙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의 탄생사 [No.185]

글 |박보라 사진제공 |쇼노트 2019-02-12 5,505

 

<젠틀맨스 가이드:사랑과 살인편> 로버트 L. 프리드먼, 발칙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의 탄생사

 


 

지난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이하 <젠틀맨스 가이드>)은 그동안 보기 드물었던 블랙코미디 장르로, 색다른 매력을 자아냈다. 영국 런던에서 가난하게 살아온 몬티 나바로가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후계자를 없애버리는 이야기다. 복수극을 연상시키는 발칙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탄생시킨 작가는 바로 로버트 L. 프리드먼. 이미 여러 편의 TV드라마 시리즈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는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져 약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쏟아 <젠틀맨스 가이드>를 곱게 빚어냈다. 빼곡한 내한 일정 속에서도 <더뮤지컬>을 만나 꺼내놓은 그의 여러 이야기를 지면에 옮긴다.

 

 

관객을 위한 깜짝 선물

어떻게 한국에 방문하게 됐나. 

<젠틀맨스 가이드>의 한국 초연을 직접 보고 싶었다. 앞서 한국 관객의 뮤지컬 사랑은 알고 있었다. 뉴욕에서 열정적으로 뮤지컬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을 만났는데, 그들을 통해 한국 뮤지컬 시장에 대해 들었다. 처음 찾은 한국에서 내 작품을 보게 되어 참 흥분된다. 한국 로컬 프로덕션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이 작품을 펼쳐낼지 궁금하다. 사실 내 작품이 미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 공연될 거라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정말 행복하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

대학원에서 만난 작곡가 스티븐 루트백과 팀을 이뤄 공연을 만들기로 했던 게 이 작품의 시작이다. 우린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감성이나 유머 감각이 잘 통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스티븐이 먼저 로이 호니먼의 소설 『이스라엘 랭크: 범죄자의 자서전』을 뮤지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신기하게도 그때 우리 둘 다 이미 소설을 읽었고 소설 원작 영화도 봤는데, 무엇보다 원작이 지닌 유머가 마음에 들었다. 영국 계급 사회의 위선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설하고 영화 둘 다 어두우면서 재미있는 매력이 있다. 물론 뮤지컬은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웃음) 2004년부터 대본·가사 작업에 들어갔고 이후에 연출가나 다른 스태프들이 합류하면서 완성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의 이야기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과 더 닮아간다고 생각한다. 
 

다이스퀴스를 1인 9역으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스티븐과 이 작품을 구상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에겐 상업 프로듀서가 없고, 작품을 올릴 극장도 없다고. 그땐 오직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우리 두 사람만 있었다. 하지만 막연히 언젠간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제작비 문제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적은 배우로 극적인 효과를 내야만 했다. 또 배우가 무대에서 다른 캐릭터로 변신하는 것은 스릴이 넘치는 일이다. 1인 9역이라는 빠른 변신은 배우에겐 무대에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하지만, 다이스퀴스를 맡은 배우들은 모두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뿌듯하다고 하더라. 종종 관객들이 한 명의 배우가 일인 다역을 맡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극장에 올 때가 있는데, 몇몇 관객은 다이스퀴스가 각각 다른 배우라고 생각했다면서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내 기억으로는 다이스퀴스가 가장 빠르게 퀵체인지를 해야 할 때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16초였다. 이렇게 1인 9역이란 설정은 배우뿐만 아니라 백스테이지 크루나 의상 팀에게도 아주 도전적인 과제다. 
 

원작 소설과 달라진 캐릭터가 있나.

비슷한 캐릭터도 있지만, 뮤지컬은 원작과 전혀 다르다. 소설은 훨씬 어두운데, 지금 생각나는 원작의 인상적인 캐릭터는 오염된 손수건 때문에 병에 걸려 죽는 아이다. 교회 탑에서 떨어져 죽는 목사, 벌에 쏘여 죽는 시골의 대지주, 무대에서 총을 쏴서 죽는 배우, 운동하다 죽는 보디빌더 등 대부분의 캐릭터가 뮤지컬을 위해 새롭게 창작한 인물이다. 원작에서 빌려온 캐릭터는 몬티를 사랑하는 시빌라와 피비 정도다.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

다 자식 같다. 한 인물을 꼽자면 은행장인 다이스퀴스 1세에 동정심이 가장 많이 간다. 다이스퀴스 1세는 몬티의 어머니에게 벌어진 일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후회하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와는 달리 현재 몬티를 진정으로 아껴주고 그의 미래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몬티에게 살인 당하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은 상당히 많은 반전을 품고 있다.

작품에 관객을 놀라게 할 수 있는 서프라이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다이스퀴스가 죽기 시작하면 모든 다이스퀴스들이 죽겠다고 예상한다. 내가 의도한 설정은 1막에서 한 명의 다이스퀴스를 제외하고 다른 다이스퀴스들이 모두 죽는 것이다. 이 상황을 통해 자연스럽게 2막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난다. 살아남은 다이스퀴스 애덜버트 백작을 통해 앞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흥미를 주고, 그가 정말 중요한 인물이라고 알려 주는 거다. 또 애덜버트 백작의 죽음이 몬티의 계획이 아니었다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외에도 감옥에 갇힌 몬티가 새로운 다이스퀴스를 만나는 것, 몬티를 감옥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시빌라와 피비가 음모를 꾸미는 것 등 관객을 위한 서프라이즈가 곳곳에 숨어 있다.
 

연쇄 살인을 코믹하게 풀어낸 이유는 뭔가.

살해 당하는 다이스퀴스들을 못되고 혐오스러운 캐릭터로 만들어야 했다. 이들은 대부분 배려심이 없고 이기적이고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 이렇게 관객들이 몬티의 복수에 만족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그런 부류의 인간을 하나쯤은 알고 있으니까. 물론 ‘이런 사람들이 살인 당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라면 그럴 만도 해’라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수준의 표현을 정하는 것이 어렵지만 중요했다. 사실 고백하자면 내게 못되게 구는 사람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사고로 죽는다면 안타깝지만 슬프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했을 법한 생각을 통해 작품이 주는 희열이 있을 것 같았다.  
 

코미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쓴다. 작곡가와 함께 작업하면서 우린 서로를 웃게 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본, 특히 노래 가사는 가장 적은 단어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대본을 다듬으면서 장면마다 큰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난 극장에 앉아 공연을 보면서 관객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좋다. 기대했던 반응이 없으면 실망하지만 말이다. (웃음) 이렇게 의도한 부분에서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모든 스태프와 함께하는 작업을 통해서다. 대본과 노래를 잘 소화해 주는 배우, 이야기가 살아 있게 하는 연출 등 작품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조합이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요소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열린 결말이다. 어떤 뒷이야기를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공연을 본 관객도 뒷이야기를 궁금했으면 좋겠다. 몬티가 다이스퀴스 백작이 될 수도, 어쩌면 새로운 다이스퀴스의 등장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엔딩 이후 몬티가 감옥에서 나와 어떤 여자랑 함께 살 것인가도 궁금할 거다. 몇몇 사람들은 몬티가 피비와 시빌라 둘 다 데리고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그걸 어떻게 알겠나. (웃음) 
 

당신에게 <젠틀맨스 가이드>는 어떤 의미인가?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지금까지 TV 드라마를 쓰는 작업도 즐거웠지만 이 작품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젠틀맨스 가이드>도 어려웠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매끄러운 과정을 통해 완성됐다. 2004년부터 쓰기 시작한 작품은 2013년이 돼서야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됐다. 유명한 창작진이나 배우가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원작 소설이나 영화도 생소했다. 심지어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공연했을 때 해당 시즌에서 가장 좋은 리뷰를 받았고, 다음 해에 토니상을 받았다. 정말 뿌듯했다. 



 

꿈이 이뤄진 순간

<젠틀맨스 가이드>로 토니상을 받을 때 어땠나. 

정말 초현실적이었다. 이름이 불리는 순간부터 무대까지 걸어가는 데 약 90초가 걸린다고 하던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정말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웃음) <젠틀맨스 가이드>의 개막일과 토니상을 받던 날, 어머니가 많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작가로서의 나를 정말 많이 응원해 줬다. 앞서 말한 개막일과 토니상을 받던 날은 나의 꿈이 이뤄졌던 순간이라 할 수 있는데, 정말 짜릿했다. 쉰이 넘은 나이에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가 처음 공연됐고, 토니상을 받았다. 만약 더 어렸을 때 토니상을 받았다면 이 상의 무게에 두려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작가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토니상은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감을 줬다. 
 

작가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었다. (웃음) 어렸을 때부터 작고 소소한 신문을 만들기도 했고, 쇼 비즈니스나 엔터테인먼트를 많이 좋아했다. 문제는 내가 LA에서 자랐는데 주변에 엔터테인먼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그러나 늘 그 세계에 속한 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사실 로스쿨 진학과 뉴욕에서 뮤지컬을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 중에 많이 고민했는데, 결국 내린 선택은 뮤지컬이었다. 뉴욕에 와서도 글을 쓰고, 돈을 벌기 위해 정말 많이 일했다. 여러 해 고생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창작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작가로 성장했다. 내 인생에서 이룬 가장 큰 성취는 작가가 됐다는 것 자체다. 무엇보다 그동안 꿈꿨던 뮤지컬 작가라는 나의 소망이 이뤄졌다. 
 

많은 나라에서 <젠틀맨스 가이드>가 공연됐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무리 다른 문화권이라고 해도 많이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사는 큰 흐름은 같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정이 있다. 또 작품에는 육체적인 개그가 곳곳에 숨어 있는데, 이것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큰 웃음을 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도쿄와 상하이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공연됐는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매 프로덕션마다 배우, 스태프, 무엇보다 공연을 보는 관객이 다르다. 도쿄와 스톡홀름 공연에 참여한 다이스퀴스는 현지에서 유명한 배우였다. 관객들은 인기 많고 연기와 노래를 잘하는 배우가 참여하는 작품에 흥미를 가졌다. 또 상하이 공연에 참여한 배우들은 어리고 유명하지 않았지만 실력이 뛰어났다. 그런데 이런 배우 캐스팅을 제쳐놓아도, 공통적으로 관객 반응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다른 언어로 공연되는 <젠틀맨스 가이드>를 보면 기분이 새롭고 뿌듯하다. 


 

다른 나라에서 공연될 때 번역에 대해 신경 쓰기도 하나.

어머니의 사촌이 스웨덴 스톡홀름에 산다. <젠틀맨스 가이드>의 스톡홀름 공연을 같이 본 사촌이 “스웨덴에서만 하는 농담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 번역가가 굉장히 노력을 한거다. 공연을 보니 가사와 노래가 잘 어울리도록 라임을 최대한 맞추려고 했다. 사실 <젠틀맨스 가이드>에는 캐릭터의 대사나 표현 방법으로부터 발생하는 유머가 많다. 다른 나라에서 이 작품이 공연된다고 했을 때 발생했던 가장 큰 고민은 에드워드 시대, 영국적인 대사의 구현이었다. 도쿄 공연의 경우는 일본어로 번역된 대본을 다시 영어로 번역하는 역번역을 통해 내가 직접 확인했다. 오역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세세하게 코멘트했는데, 어느 순간 이런 번역에 대한 부분을 내려놓게 됐다. 내가 살아 있는 공연에 관여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공연되는 나라의 문화를 완벽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연하는 나라의 문화를 잘 적용한 번역이 작품의 장점을 잘 살려줄 거라 생각하고 번역가의 능력을 믿는다.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던데 어떤 작품인지 말해 줄 수 있나.

게리 마샬의 영화 <플라밍고 키드>를 뮤지컬로 만들고 있다. 작품은 1963년 뉴욕을 배경으로 18세 청년의 인생이 바뀌는 이야기를 그린다. 클럽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청년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성장한다. 특히 아빠와 아들의 관계가 조명되는데, 개인적으로 나와 아버지의 과거가 생각났다. 이번 이야기도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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