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무의 <스윙키즈> 관람기 , 로기수의 두근거림을 회상하다
“각오 높게 춤추라” 외치는 ‘로기수’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배우가 있다. 빼빼 마른 몸으로 부서져라 춤을 추며 땀을 흘렸던 사람, 바로 뮤지컬 <로기수>의 출발을 함께한 배우 윤나무다. 로기수의 이야기가 스크린에서 다시 태어난 지금 윤나무를 만나 로기수에 얽힌 기억을 회상했다.
“각오 높게 살라, 각오 높게 춤추라”
윤나무는 뮤지컬 <로기수>의 쇼케이스부터 초연과 재연을 함께한 배우다. 모든 시즌에 참여했다는 의의에 강도 높은 연습으로 전우애가 다져진 작품은 그에게 여전히 애틋하다. 최근 윤나무는 스크린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로기수의 이야기 <스윙키즈>를 관람했다. <스윙키즈>는 제작 초반 단계부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매력적인 시나리오라는 평과 기대감이 쏟아졌던 작품이다. 사실 <로기수>의 영화화 이야기는 초연부터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고. “초연 때 우연히 참석한 술자리에서 <로기수>가 영화로 제작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어요. 그러다가 정말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뭉클하더라고요.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느낌이랄까요.” 조명이나 간단한 장치로 연출됐던 뮤지컬 무대와 달리, <스윙키즈>는 강원도 삼척에 약 1만 평 규모의 세트장을 만들어 당시의 거제 포로수용소를 그대로 재현해 냈다. “무대에서는 공간을 제한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는데, 영화에서는 세트나 다양한 소품을 잘 활용했더라고요. 시대적 상황이나 로기수, 댄스단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보였어요. 현실감이 확 살아나는 걸 보고 감탄하게 되더라니까요!”
<스윙키즈>의 바탕이 된 <로기수>는 포토 저널리스트 베르너 비숍이 촬영한 거제 포로수용소의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됐다. 사진의 주인공은 복면을 쓰고 춤을 추고 있는 포로들이다. 작가 김신후는 무슨 사연으로 이들이 복면 속에 신분을 감추고 춤을 추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에 빠졌다. 이것이 미국 춤에 빠진 북한군 포로 소년 로기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역사를 잠깐 되짚어보면, 1952년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 대립으로 또 다른 전쟁터였다. 수용소를 관리하는 미군 헌병대는 포로들을 회유하려 미국식 문화인 노래, 악기, 춤 등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지만, 폭력이나 부정적인 물자 배급에는 방관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취했다. <로기수>와 <스윙키즈>는 이런 비극적인 상황의 거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탭 댄스에 빠진 북한군 포로 로기수의 이야기다. 전쟁으로 미국을 경멸하던 열입곱 살의 로기수는 포로수용소에서 미군 장교의 탭 댄스에 마음을 빼앗긴다. 포로수용소 소장은 로기수를 앞세워 댄스단을 만들고, 정치적·영리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극에 달한 포로들 간의 이념 전쟁 속에서 펼쳐지는 로기수와 댄스단의 열정적인 춤사위는 꿈과 사랑,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스윙키즈>에서는 로기수와 미군 장교 잭슨의 끈끈한 유대감과 갈등이 정말 잘 드러났어요. 뮤지컬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었죠. 아, 양판례와의 만남이나 애정 신도 담백하게 풀어냈고요. 영화를 보는 내내 로기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사실적이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뮤지컬이 로기수와 형 로기진을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영화는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로기수와 미군 장교 잭슨의 이야기가 부각됐다. 장르적 특정은 제쳐 두더라도,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결말이다. <로기수>가 판타지스러운 희망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면, <스윙키즈>는 전혀 다르다. “영화의 결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로기수와 잭슨이 만났고, 잭슨의 에필로그가 이들 이야기의 마지막이잖아요. 영화관을 나오면서 뮤지컬과 결말이 왜 다를까 생각해 봤는데, 당시의 현실을 드러냈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절대 미화될 수 없는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고, 무시무시한 전쟁의 아픔을 보여주는 끝이었죠. 이다윗 배우가 연기한 광국이란 인물을 통해서 전쟁의 참모습을 느꼈는데, 그 캐릭터도 크게 마음에 남아요.”
“탭 댄스라는 거이 참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드만”
윤나무가 <스윙키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댄스단의 마지막 공연이다. 화려한 재즈 밴드와 호흡하며 시작되는 댄스단의 공연은 밴드와 댄스단이 리듬을 공유하고 탭 댄스가 시작되면서 그야말로 완벽한 무대가 완성된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절박한 댄스단의 심경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고. “댄스단에게는 정말 절박한 상황이잖아요. 스크린을 통해 댄스단의 표정이 사실적으로 담긴 것도 멋졌어요. 전 특히나 로기수가 마지막까지 홀로 남아 춤을 추면서 보이는 감정이 좋더라고요. 정말 인상적이었죠.” 그렇다면 <로기수>에서 윤나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1막 피날레로, 로기수가 머리로는 탭 댄스를 하면 안 된다고 막고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발을 구르고 있는 장면이다. 로기수가 간절히 원하는 춤을 통해 세상 끝까지 나가고 싶다는 메시지가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이란다.
<스윙키즈> 속 로기수는 미군 장교 잭슨과 화끈하게 탭 댄스로 한판 붙는다. 윤나무는 있는 힘껏 자신만의 춤을 선보이는 로기수의 스텝에서 처음 탭 댄스를 배우던 때의 자신이 보였다며 슬쩍 웃는다. “와, <스윙키즈>를 보고 나니 <로기수>의 연습실이 생각나더라고요! 진짜 힘들었어요. 저는 춤을 잘 추지도 못하고, 습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스타일이거든요. 당시엔 노래, 연기, 북한 사투리, 탭 댄스까지 다 소화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죠. 그런데 문득 ‘내가 언제 또 이렇게 미친 듯이 무언가를 해보겠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로기수의 마음을 그렇게 알게 된 것 같아요. 특히 피와 땀으로 영혼까지 갈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제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이에요.” 윤나무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는 <로기수>의 쇼케이스 때부터 무시무시한 ‘발구름’을 경험했다고 했다. 하필이면 뮤지컬의 대본을 쓴 장우성 작가는 부산에서 탭 댄스로 이름 꽤나 날린 인물이었는데, 쇼케이스 무대에 서게 된 윤나무에게 ‘발구름이라도 보여줄 수 없냐’고 요청했다. 그렇게 장우성 작가와 신선호 안무가 그리고 박용갑 탭 댄스 감독이 탭 댄스 초보 윤나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윤나무의 말에 따르면 선천적으로 탭 댄스를 잘하는 사람은 없단다. 그렇다면, 그의 탭 댄스 비법은? 한 번이라도 더 스텝을 밟고 땅을 두들기는 것!
윤나무는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재연 <로기수>의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이어진 뒤풀이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쏟아냈다. “어우, 펑펑 울었어요. 다신 <로기수>를 못 할 것 같아서요. 하필이면 그때 김태형 연출이 마지막 공연을 못 봤는데, 그게 서운해서 뒤풀이에 온 김태형 연출에게 막 뭐라고 했죠. 그러다가 이제 다시 이 작품을 못 할 것 같다고 했는데, 의외로 ‘난 삼연에도 너 캐스팅할 건데.’라는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웃음) 그때 어렴풋이 현실적으로 다시 로기수를 하기엔 어렵겠다고 느꼈나 봐요. 하하. <스윙키즈>가 개봉했으니 <로기수>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물론 그때도 할수만 있다면 로기수로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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