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빛낸 앙상블, 신지혜·이승일·장예원·조은서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캐릭터 외에도 무대를 묵직하게 지켜주는 이들이 있다. 노래와 춤 실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요, 순식간에 다른 캐릭터로 변신하는 그 이름은 앙상블이다. 한국 뮤지컬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앙상블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다. 무대를 묵묵히 빛내는 앙상블 12인. 지금부터 그들을 소개한다.
신지혜
2018 출연작
<프랑켄슈타인>, <올슉업>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이십 대 초반에 앨범을 내고 활동을 했다. 그런데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고, 회사와 문제도 생겨 그만두게 됐다. 그때 우연히 <아이다>를 보게 되었는데, 뮤지컬이 가진 매력을 느끼게 된 거다.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인터넷을 통해 오디션을 찾아다녔다. 처음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족들의 놀란 모습이 생각난다.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린 것 같아 너무 뿌듯했다.
뮤지컬 배우가 되길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은?
내가 공연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 “부모 인생의 낙은 자식들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혜 공연 보는 낙으로 산다”는 어머니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뮤지컬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서 나 역시 행복하다
앙상블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앙상블은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들로 나온다. 의상과 헤어 모두가 바뀌는데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절대 쉽지 않다. 무대 뒤는 전쟁 그 자체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퀵 체인지’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특히 많은 인원이 퀵 체인지를 할 때는 모든 배우들이 손발을 맞춰 잘해야 하므로 정신없다.
처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작품에 참여하는 결정은 스스로 하는 것이니 계약서 내용은 각자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간혹 계약서와 다르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계약서의 효능이 ‘무’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재연과 삼연에 참여한 <프랑켄슈타인>은 개인적으로 특별한 작품이다. 두 번이나 같은 작품을 하는 건 처음이라, 공연을 시작하기 전까지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다. 더 잘하고 싶었던 마음에 부담감이 컸다. 그런데 삼연의 첫 공연이 끝났을 때 들리던 큰 함성과 박수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순간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지 않을까.
이승일
2018 출연작
<마틸다>, <시카고>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교회 성극에 참여했다 이게 내 길이구나 하고 느낀 거다. 뮤지컬은 고등학교 때 알게 됐는데, 원래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던 터라 이걸로 대학에 가야겠다 싶더라. 그런데 입시에서 다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자동차과에 들어갔는데 한 학기 내내 무대에 선 내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다. 결국 자퇴를 하고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가 무용과로 편입했다. 뮤지컬을 하기까지 꽤 스펙터클한 과정을 거쳤다.
출연작 가운데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뮤지컬 데뷔작인 <로스트 가든>. 데뷔하기까지는 어려웠지만, 첫 뮤지컬 이후 지금까지 십 년 동안 쉼 없이 활동할 수 있었으니까 정말 운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만난 <아리랑>도 소중한 작품이다. 보통 배우들은 서른 중반에 접어들면 이 길을 계속 갈 것인가,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하고 고민하게 되는데, 그 시기에 만난 작품이 <아리랑>이었다. ‘살아 볼수록 산다는 게 어렵소야’라는 극 중 대사가 너무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더라. 배우의 길을 계속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무대에 서는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마틸다>도 소중한 작품이다. 처음으로 배역을 맡은 작품이니까.
앙상블을 맡을 때의 고충은?
앙상블 배우들은 당연하게도 앙상블 배우로서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주위의 인식이 그렇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 작품에 참여하는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하나의 작품을 올리기 위한 앙상블이라고 생각하는데, 보통은 배우를 주연과 조연, 앙상블, 이렇게 구분 지어 생각하지 않나. 앙상블은 실력이 부족한 배우들이 맡는 역할이라고 생각할 때 특히 속상하다. 경력이 오래된 앙상블 배우들을 여전히 데뷔를 꿈꾸는 배우 지망생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간혹 예고나 예대에 출강하면,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데 제가 재능이 있을까요?”라고 묻는 학생들이 있다. 그럴 때 보통 하는 말이 ‘잘생기지 않았는데’, ‘키가 크지 않은데’, ‘목소리가 좋지 않은데’ 이 일에 적합한 자질이 있냐는 거다. 물론 배우에게는 외모나 체격도 굉장한 재능이다. 하지만 그보단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중요한 재능 아닐까. 아무리 훌륭한 외적 조건을 갖췄다고 해도 정작 배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건 아무 소용 없는 재능이니 말이다. 스스로 재능이 있느냐고 자문하기 전에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은지 먼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무언가 정말 간절하게 꿈꾸면 어떤 식으로든 길이 열리는 것 같다.
장예원
2018 출연작
<젠틀맨스 가이드>, <웃는 남자>, <킹키부츠>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성악을 전공했고 오페라에 빠져 있었다. 대학원 재학 중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2005년에 초연한 <아이다>를 보고 운명이 바뀐거다. 화려한 무대와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신세계를 경험했다. 갑자기 뮤지컬 배우를 하겠다고 해서 엄마 속도 많이 썩였다. 지금은 뮤지컬 무대에 빨리 도전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뮤지컬 배우가 되길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은?
매 순간 느낀다. 지난해 공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한 아주머니가 나를 껴안고 기 좀 받아가도 되냐고 하시더라. 흔쾌히 안아드렸더니, “요새 계속 우울했는데 공연을 보고 많이 웃고 정말 행복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게 나 또한 행복해지는 길이다.
앙상블을 맡을 때의 고충은?
요새 부쩍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느낀다. 주·조연은 거의 더블이나 트리플 캐스팅이지만 앙상블은 전부 원 캐스팅이다. 사실 배우들은 몸이 아파도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무대에 오르는데, 그렇기 때문에 몸 상태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그런데 매일 공연을 하다보면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젠틀맨스 가이드>의 첫 공연. 다른 공연을 하면서 연습을 병행했는데, 스스로 걱정이 많이 됐다. 내 자신을 향한 믿음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였다. 그런데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주는 관객을 보니 너무 행복했다. 긴장의 끈 놓지 않고 더 열심히 무대에 서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꿈의 작품은?
과거에 <페임>에서 무용 전공을 하는 뚱뚱한 소녀 메이블이 정말 탐났다. 역할을 위해 체중을 불렸고, 정말 열심히 오디션에 참여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메이블이란 역할을 따내게 됐다. 지금은 특별히 꿈의 작품을 꼽기보다 그동안 커버를 맡았던 주·조연의 배역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조은서
2018 출연작
<존 도우>, <1446>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때 공부만 열심히 하다 친구에게 뮤지컬을 추천받았다. 뮤지컬을 알게 된 순간부터 정말 푹 빠졌다. ‘이걸 직업으로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는 무작정 혼자 연습했다. 경험이 없다보니, 대학 입시 시험이나 오디션이 내겐 배움의 장이었다. 졸업 후에 현실에 나와 보니 생각보다 어렵더라. 정말 많은 오디션에 참여했고 어린이 뮤지컬이나 극단 생활도 했다. <살짜기 옵서예>를 계기로 본격적인 뮤지컬 무대에 올랐는데, 따뜻한 작품을 만나 시작이 좋았다.
앙상블을 맡을 때의 고충은?
부상.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스트레칭도 하고 공연 중 각별히 조심하는데, 무대에서 본의 아니게 다치는 경우가 있다. <페스트>에 출연할 당시, 공연 중에 무릎을 다쳐 일주일 동안 격렬한 몸짓이나 안무에서 빠진 적이 있다. 정말 속상했다. 배우로서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앙상블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실력이 부족해서 앙상블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더라. 물론 거짓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작품 전면에 나설 기회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꽃도 자기 계절에 핀다는 말이 있지 않나. 좋은 기회와 적절한 배역을 만난다면 더 활짝 필 것이라 생각한다.
처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금전적인 문제. 스스로 ‘알바몬’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작품과 다음 작품이 이어지지 않는 공백기가 길어지면 아르바이트나 레슨을 하게 된다. 작품에 계속 참여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올해 첫 작품 <존 도우>를 시작으로, 2018년에 만난 작품 모두가 따뜻했다. 이런 따뜻한 작품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3호 2018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